2018년 03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

    [입도수기]

    나는 이 진리를 만날 운명인가 보다 외(황선무, 김현진, 이재준)

    나는 이 진리를 만날 운명인가 보다


    황선무(24, 남) / 서울동대문도장 / 147년 음력 11월 입도

    저는 어려서부터 우리 고대사에 관심이 많았고, 『환단고기』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년 전인 2015년, 저는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재학생으로 교정을 거닐고 있다가 증산도 도생님들이 홍보하는 모습을 보고 다가가 『환단고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교내 증산도 동아리방에 초대받아 증산도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교리도 배우고 근처 도장에서 수행도 했습니다. 특히 수행을 할 때는 불편한 제 다리가 펴지려고 하는 체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체험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며 주위의 우려와 저 자신의 흔들림으로 인해 2016년 초, 입도를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증산도에서의 수행 체험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이후로도 그 생생한 경험과 상제님 진리는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었고, 계속 <상생방송> 영상 등 상제님 진리와 관련된 것을 찾아보고 접하려 하였고, 또 그만큼 많이 괴로워했습니다.

    수개월이 지난 2016년 하반기, 저는 제2 전공 신청 성공으로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로 오게 되었습니다. 안암캠퍼스를 다니는 동안에도 학교 광장을 많이 돌아다녔고, 교내 동아리 홍보 행사가 있으면 ‘증산도 동아리 부스는 없나’ 기웃거리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 광장에서 증산도 홍보 부스를 보게 되었고 저는 다시 다가가 여러 도생님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저의 과거를 모두 들어 주고, 저의 죄책감과 괴로움을 풀어 주면서 다시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를 했습니다.

    저는 증산도 동아리방을 찾아갔고, 도생님들은 저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교리 공부와 수행을 다시 시작했고, 제가 걱정이 생길 때마다 도생님들은 용기를 주셨습니다. 수행 때 신명님들의 목소리도 다시 듣고, 『도전』 속 ‘무기천지한문戊己天地閈門, 붉은 닭’에 관한 구절을 접하면서 ‘아, 역시 상제님 진리는 피할 수 없고, 나는 이 진리를 만날 운명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깊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 동지대치성에도 참여하고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도문에 들어서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던 만큼,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도록 상제님 태모님과 조상님들께 기도드리면서, 처음 증산도를 만났을 당시의 저의 섣부름을 항상 되새기고 경계하여 신중하면서도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제가 정말 사랑하는 제 가족들, 또 증산도를 믿지 않는 분들이 상제님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인도자이신 박지원 도생님을 비롯한 여러 도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이제는 누구를 만나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상제님 진리를 전할 수 있는 강한 일꾼으로 거듭나겠습니다! ◎

    조상의 인도로 찾은 증산도


    김현진(49, 남) / 부천도장 / 147년 음력 11월 입도

    저는 형제 없이 홀로 자라며 어린 시절 집안 사정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생활했습니다. 그러면서 책 읽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성장하여 아버님의 고향인 충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낼 때는 몸이 약하고 잔병이 많아 부모님의 권유로 태권도를 수년간 배우기도 했습니다.

    친할머니는 개신교를 평생 신앙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님 쪽 외갓집은 외고조할아버님 때부터 온 집안이 천주교를 신앙한 집안이라 전 자연히 14세 때 천주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22세까지 8년간 열심히 하였습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여 꾸준히 여러 방면의 독서를 병행하며 신앙(천주교)생활을 하였고, 학창 시절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천주교 사제의 꿈도 잠시 가져 보았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가정 문제로 고향에서 더 이상 생활할 수 없게 되어 천주교 사제의 꿈은 접고 다른 꿈을 찾기 위한 저만의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주말에도 일을 하다 보니 22세 이후로는 천주교 성당을 안 가게 되었습니다. 생활 환경으로 성당을 다닐 시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사회생활에 우여곡절을 겪기에도 빠듯했습니다. 그렇게 성당하고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44세 되던 해 IPTV와 인터넷을 새로 신청하여 시청하던 중, 어느 날 채널을 돌리다가 상생방송에서 <환단고기 북 콘서트>를 방영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태권도를 배울 때 재미를 붙여 가며 무술과 관련된 기공, 무협이나 역사 등의 서적들을 읽었고, 이것에 재미가 생겨 꾸준히 독서를 하다 보니 역사와 관련된 여러 책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 나름대로는 학창 시절 역사 수업에 의문을 많이 가지게 된 터에, <환단고기 북 콘서트>를 시청하면서 지금까지 제가 모르고 있던 더 넓은 여러 가지 정보에 뒤통수를 크게 한 방 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 다른 프로그램은 시간상 시청을 못 해도 시간을 맞춰 가며 <환단고기 북 콘서트>는 보려고 애를 쓰게 되었고 꾸준히 시청하다 보니 그 전에 제가 간직하던 여러 가지 의문들이 하나하나 풀려 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과정에서 상생방송이 ‘증산도 방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와 종교, 그리고 제가 살아왔던 지난 과정들이 복잡한 생각으로 얽혀 가다가 더 넓은 무언가가 보인다는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되면 가까운 도장에 방문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습니다.

    그러던 중 2017년 9월경 제 주변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갈 무렵 SNS를 통해 부산에 계시는 최승철 포정님과 연결이 되었고, 직접 뵙진 않았지만 그분의 권유로 부천도장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도장에서 여러 말씀을 해 주셨는데 그 가운데는 11월 7일 상제님 성탄대치성이 태전에서 있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비록 입도는 하지 않았고 도장을 한 번 방문했을 뿐이라 잠시 주저했지만 마침 시간이 허락되기도 하고 태전도 한번 가 보고 싶어서 성탄치성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대치성 행사가 끝나고 부천에 도착한 시간이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갔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고향에서 매년 하는 조상 시제時祭를 마치고 나서 증산도에 제대로 다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도장에 가서 수행하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저희 집안 친척들은 모두 교회에 다니느라 시제에 참석하지 않지만 저는 아버님 덕에 어릴 때부터 꾸준히 시제에 참석해 왔습니다. 아마도 조상님들께서 그런 저를 좋게 보셔서 증산도를 알게 해 주셨고 저를 인도해 주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도장에서 21일 정성 공부를 하면서 수행으로 정신도 맑아지고 몸도 건강해지는 걸 저 스스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장에 계신 모든 분들께서 저를 잘 인도해 주셔서 무사히 21일 정성 수행을 마치고 이제 입도를 준비 중인 요즘, 제 조상님과 부모님께 더욱 감사드리고 도장의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입도는 제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하는 도생으로서 더 열심히 정진하고 또한 조상님과 부모님께 더 효도하는 자세를 잃지 않겠습니다.


    어머니의 정성을 잇는 구도의 길



    이재준(63, 남) / 대구수성도장 / 147년 음력 10월 입도

    저는 새벽마다 지극정성이셨던 어머니의 장독대 정화수 기도 덕분에 비교적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불교 학교를 나왔고 불교에 심취하여 1주일간 홀로 입산 수도도 해 보았습니다. 성당도 5년이나 다녔습니다. 여러 교회도 다녀 봤습니다. 나름대로 삶과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하며 명상을 하거나 뜻대로 안 될 때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저에겐 또 다른 종교가 있었습니다.

    먼저 ‘고향교’입니다. 제 고향은 충청도 홍성이며 차령산맥의 끝자락 변두리 두메산골이었습니다. 아직 팔순 어머니가 지키고 계신 고향을 떠나온 지 벌써 4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엔 ‘고향의 돌이 되어’라는 글을 교지에 싣기도 하였습니다. 어쩌다 밤에 고향 꿈을 꾸면 다음 날 일진이 좋았습니다. ‘고향’은 나의 신앙이었고 종교였습니다.

    다음은 ‘조상교’입니다. 문중의 파조 존오 할아버지는 고려 말 요승 신돈을 탄핵하려다 좌천되어 귀양지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상면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셨으나 행방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사진 한 장 외에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고 독립유공자 혜택도 없습니다. 그러한 상면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군인이 되었고, 파조 존오 할아버지처럼 불의에는 맞서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조상’은 나의 신앙이었고 종교였습니다.

    세 번째는 ‘마누라교’입니다. 후배들에게나 어쩌다 부부 동반 모임 술자리에서 저는 마누라교 교주라며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래야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는 마누라 말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진정성 없는 위선이었고 조선 남자의 전형을 감추기 위한 허세였습니다.

    군에서 만기 전역을 한 후 역사 공부도 마무리할 겸 새 직장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사회 생활 경험이 없던 저는 지독한 꾐에 빠져 평생 한이 되는 일을 당하였습니다. 속았다는 분노는 원한으로 변했습니다. 원한은 심장에 불을 질렀고 특히 밤은 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누구를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피눈물 나는 말년을 보낼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원한을 풀기 위한 무서운 복수 방법을 고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닥친 불행은 그 어떤 종교로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밤새워 고민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냉엄한 현실이었습니다. 현실을 떠난 문제 해결 방법은 공허하고 헛된 망상일 뿐이었고, 망상에서 깨어나면 고통스런 현실뿐이었습니다.

    답답한 심경에 인도자 태을랑 김광남 도생에게 묘책을 물었습니다. 10년 전에 『천지성공』이라는 책을 보내 온 인도자는 태을주를 소개했습니다. 태을주만 외우면 자신도 모르게 일이 해결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신기하게도 원하는 일이 잘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조상님과 신령님들이 도와준다고 하였습니다. 막연한 기대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태을주를 외워 보기 시작했습니다. 태을주를 외우는 순간은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즈음 백제 역사에 대한 특강과 연재를 준비하면서 한민족의 원류를 찾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고자 하는 내용을 발견하였는데 책을 무료로 보내 준다고 하여 요청해 보았습니다. 며칠 뒤에 양산에 있는 송성훈 포정이 보내온 책은 뜻밖에도 『한민족과 증산도』였습니다.

    이게 무슨 인연인가? 인도자 김광남 도생은 조상님의 은덕과 관련 공부를 많이 한 인연 때문이라며 직접 도장에 나가 수행해 볼 것을 권유하였고 대구수성도장을 소개받았습니다. 대구수성도장의 김창현 수호사는 부끄러운 제 이야기를 경청하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증산도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팔관법을 공부하면서 수호사님을 비롯해 노윤석 포정과 김자영 포감이 정성으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모두 고마우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9월 24일 태전에서 열린 <도전 강해 콘서트>에도 참가해 말씀을 경청하면서 태을궁의 많은 도생들과 함께 수행, 도공을 했는데 혼자서 수행할 때와는 다른 큰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종유통에서 청수 그릇에 관심을 보이자 인도자가 선물로 구매해 주었습니다. 새벽에 집안 거실에서 청수를 올리고 새벽 수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새벽 수행은 깊은 원한으로 밤잠을 설치고 뜬눈으로 지새웠던 밤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여러 주문 내용들도 나를 평온하게 해 주었습니다. 도공수행을 한 후에는 잠을 잘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가 의롭고 진실한 참도인이 될 수 있도록

    전쟁과 이생에서 범한 모든 죄와 허물을 사하여 주옵시고

    모든 척신과 복마의 발동으로부터 끌러 주옵시고

    저의 조상을 해원시켜 주시어 선령과 후손을 새 운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습니다. 막연히 은퇴 후에 도 닦겠다고 했지만 현실이 허락지 않은 상태에서 새벽 수행은 도였습니다. 이생에서 제가 닦아야 할 도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제 무지와 욕심으로 생긴 척신과 복마로부터 탈출해야 했습니다. 맨 먼저 올리는 심고문은 의롭고 진실되게 살다 가신 조상에게 면목이 없고, 후손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오늘의 제 현실을 극복해 주는 발원문이었습니다.

    내 종교는 ‘조상교,’ ‘고향교,’ ‘마누라교’라고 농담같이 말하곤 했는데, 증산도는 바로 제가 입버릇처럼 말한 종교의 집합체였습니다. 종교를 뛰어넘는 현실의 도였습니다. 이제 일심으로 수행하며 도를 잘 닦아 곧 닥칠 대환란으로부터 부모형제와 가족을 구원하여야 합니다. 어머니가 새벽마다 장독대 정화수 기도를 올렸던 것처럼 새벽마다 청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엄니 마눌 아이들 웃음 건강 오래 지속시켜 주시고

    백제 역사의 올바른 전도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저의 무지와 욕심으로 생긴 원한을 끊고 새 운수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새벽 수행이 끊이지 않게 하여 주시고 태을주를 입에 달고 살도록 해 주소서.”

    원한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평생을 괴롭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도둑 맞은 돼지를 찾는 신경수 성도에게 하신 상제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네가 전생에 남의 눈을 속여서 손해를 끼쳤으므로 이제 금세에 그 보복을 받은 것이니 분해하지도 말고 아까워하지도 말라.”

    이제 잃어버린 돼지를 찾는 어리석음을 끊고 새 길로 나가야 합니다. 원시반본하여 태을주를 외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계속하다 보면 새 길의 희망도 열어 주실 것입니다. 평생 쉬지 않고 태을주를 읽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실천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몸이 불편하여 특별한 날에만 새벽 장독대 정화수 기도를 하시는 어머니의 정성을 이어서...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

    2018년 03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