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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산책 ]

    신과 함께

    박덕규 / 본부도장

    신과 함께 - 죄와 벌
    Along With the Gods: The Two Worlds, 2017


    평점 관람객 8.75점 | 평론가 5.92 | 네티즌 8.00
    개요 판타지, 드라마 | 한국 | 139분 | 2017 .12.20 개봉
    감독 김용화
    출연 하정우(강림), 차태현(자홍), 주지훈(해원맥), 김향기(덕춘)
    등급 [국내] 12세 관람가
    흥행 예매율 2위 | 누적관객 12,844,290명 (01.14 기준)

    저승 법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사후 49일 동안 7번의 재판을 거쳐야만 한다.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7개의 지옥에서 7번의 재판을 무사히 통과한 망자만이 환생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화재 사고 현장에서 여자아이를 구하고 죽음을 맞이한 소방관 자홍, 그의 앞에 저승차사 해원맥과 덕춘이 나타난다. 자신의 죽음이 아직 믿기지도 않는데 덕춘은 정의로운 망자이자 귀인이라며 그를 치켜세운다. 저승으로 가는 입구 초군문에서 그를 기다리는 또 한 명의 차사 강림, 그는 차사들의 리더이자 앞으로 자홍이 겪어야 할 7개의 재판에서 변호를 맡아 줄 변호사이기도 하다.

    염라대왕에게 천 년 동안 49명의 망자를 환생시키면 자신들 역시 인간으로 환생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삼차사들, 그들은 자신들이 변호하고 호위해야 하는 48번째 망자이자 19년 만에 나타난 의로운 귀인 자홍의 환생을 확신하지만, 각 지옥에서 자홍의 과거가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예상치 못한 고난과 맞닥뜨리는데... [네이버 영화]


    <신과 함께> 흥행의 이유는?


    누구나 가지만 누구도 살아서는 갈 수 없는 곳, 저승의 문이 열렸다! 영화 <신과 함께>가 1,300만을 향해 가고 있다. 북미를 비롯한 해외에서도 인기몰이 중이다.

    “언어와 문화 차이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 물론 감동과 함께!” (영화평론가_Patrick Suen_홍콩)


    국가와 세대를 넘어 대중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신과 함께>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이승에서 저승으로
    어떤 영화나 드라마, 대중문화가 호응을 얻는 것은 그 사회의 집단 무의식을 건드리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신과 함께>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공통으로 갖고 있는 원형原型의 정서를 드러낸다.

    먼저, 누구나 궁금해 하는 저승 세계를 스크린으로 재현했다. 이를 통해서 죽은 다음의 세계와 그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삶의 연속성과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저승에서 말하는 ‘귀인’은 재벌이나 정치인, 유명인이 아니라 평범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사는 우리 주변의 ‘의인’이란 것을 깨닫게 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저승차사 덕춘이 김자홍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김자홍~ 김자홍~ 김자홍~” 일상의 소리가 사라지고 자홍에게만 또렷이 들리는 외침.

    영화는 강림도령 신화를 본 따서 저승차사가 망자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저승에 다녀온 사람들은 ‘저승사자가 손짓하면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서 따라가게 된다’고 말한다.

    “죽는 것도 때가 있나니 그 도수를 넘겨도 못쓰는 것이요, 너무 일러도 못쓰는 것이니라. 나의 명으로 명부에서 데려오라고 해야 명부사자가 데려오는 것이니 각기 닦은 공덕에 따라 방망이로 뒷덜미를 쳐서 끌고 오는 사람도 있고, 가마에 태워서 모셔 오는 사람도 있느니라.” [도전 9:213]


    정의로운 망자, 김자홍
    “귀인이요 귀인!”

    19년 만에 나타난 귀인 김자홍. 그는 사고 현장에서 많은 생명을 구해낸 소방관이다. 죽게 된 것도 아이를 살리다가 사고를 당해서다.

    저승에서 자홍 같은 귀인은 무척 드물었던 듯하다. 천 년 동안 무죄 선고를 받은 숫자는 겨우 47명. 이제 48번째 귀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는 덕춘.

    자홍의 적배지(망자의 이름이 적힌 명부)를 초군문의 개찰구에 넣자, ‘의義’라는 글자가 밝게 빛난다.

    “사람이 의로운 말을 하고 의로운 행동을 하면 천지도 감동하느니라.” [도전 4:15]


    삶과 죽음의 경계, 명부冥府
    누구나 죽게 되면 49일 동안 재판을 받는다. 문제는 저승의 법이 이승과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재판 결과에 따라서 지옥이라 불리는 끔찍한 형벌을 받기도 하고 다시 환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명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망자의 삶을 정리하고 신명이 되어서 살아가는 9천의 세계, 신도神道로 가는 중간 경유지다.

    "하늘에 가면 그 사람의 조상 가운데에서도 웃어른이 있어서 철부지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듯 새로 가르치나니 사람은 죽어 신명(神明)이 되어서도 공부를 계속하느니라. 죽었다고 당장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니라.” [도전 9:213]


    영화는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의 7가지 죄를 심판한다. 그리고 죄를 하나씩 물으면서 자연스럽게 자홍의 삶을 들여다본다.

    이승의 삶이 내 중심으로 살아온 것이라면, 저승은 객관적으로 그 삶을 돌아보게 한다. 저승을 다녀온 사람은 “만인경(업경)을 통해 내 삶을 들여다보는 순간, 온몸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고 말한다.

    평범한 듯 험난했던 자홍의 삶은 공감을 일으킨다. 누구에게나 삶은 치열하고 힘들다. 그러나 자홍 같은 의인도 객관의 기준으로 보면 죄가 되는 것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관객으로서는 ‘저 정도의 죄는 누구나 있지 않나?’ 하는 억울한 마음이 들게 된다. 하지만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문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여기로 들어오는 모든 자들은 희망을 버릴지어다’


    “이 세상을 살면서는 죄를 지어도 남 모르게만 하면 그만인 줄 알아도 죄진 사람은 천상에 가면 모든 게 다 드러난다. 죽으면 편할 줄 알고 ‘죽어, 죽어.’ 하지만 천상에 가면 모든 것이 다 무섭다. 믿으면서 지은 죄는 사하지도 못하느니라.” [도전 1:42]


    단테의 <신곡>으로 그린 저승세계
    <신곡>이 나오기 전까지 서양인에게 지옥은 미지의 세계였다. 그런 지옥을 단테는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묘사했다. 재미있는 것은 단테의 <신곡>에 우리의 사후관과 비슷한 것이 많다는 점이다.

    먼저 3이라는 숫자가 반복된다. 저승으로 여행을 떠날 때 나타난 세 마리의 야수,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으로 이어지는 3부의 구성, 아홉 단계로 나뉜 저승 세계, 99개의 서사시 등 우리의 저승 삼차사와 9천처럼 3과 9를 중심으로 묘사했다.

    또한 지옥에서 정화의 산이라 불리는 연옥을 거쳐서 천상으로 가는 우주여행을 ‘인간의 삶은 하느님에게로 인도되는 순례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마치 인간이 완성된 신선이 되어서 9천의 옥경에 올라가 상제님을 뵙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한국의 생사 신화
    웹툰과 영화의 모티브는 불교의 <불설수생경佛說壽生經>이다.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7번의 재판을 받는다거나 지옥, 육도 환생의 결말이 그렇다.

    반면에 웹툰의 이승 편과 신화 편은 우리 신화와 제주도의 ‘본풀이’를 따왔다. 본本은 뿌리를 뜻하므로 구전으로 전해지는 ‘창세신화’를 말한다. 혼돈으로부터 천지가 개벽해서 하늘과 땅이 열리고 우주를 주재하는 천지왕(옥황상제)의 아들인 대별왕과 소별왕이 이승과 저승을 다스리게 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조선 시대는 성리학의 시대였다. 그 영향으로 신비주의로 치부되는 신화는 모두 역사의 그늘로 숨게 되었다. 고립된 섬, 제주도가 신神들의 고향이 된 이유다.

    영화 2부에서는 성주신을 비롯한 한국 신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


    하나, 죄와 공
    영화로 돌아가 보자, 재판은 자홍의 삶을 따라가며 죄罪와 공功을 판단한다.

    첫 번째 살인지옥의 펄펄 끓는 유황불은 생지옥 같은 화재 현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곳에서 많은 인명을 구한 공과, 어쩔 수 없이 두고 와야 했던 동료가 죽게 된 죄를 저울질하지만 “생명을 무게로 잴 수 없기에 비교할 수 없다”는 판관의 말이 무죄로 이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두 번째 나태지옥의 물은 수해 현장에서 필사적으로 소를 구하는 모습과 오버랩된다. 그러나 물에 빠진 생명을 구한 공이 “돈 때문이었다.”는 고백에 초강대왕은 “잘못된 신神을 섬겼다.”며 분노하게 되고 지옥으로 떨어지려는 찰나에 “그 돈이 가족을 살렸다.”는 강림의 변호로 간신히 무죄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만능주의와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세 번째 거짓지옥에서는 순직한 동료의 딸에게 편지를 보내서 위로한 공과 아빠로 속인 죄의 경중을 따진다. 죄의 유무를 따지는 재판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무심코 했던 말과 선의를 가지고 했지만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되었던 일, 지키지 못한 약속 등 살면서 행한 모든 일은 결국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삶의 무게라는 생각이 든다.

    속언에 ‘죄는 지은 데로 가고 공은 닦은 데로 간다.’는 말이 참으로 성담(聖談)이니 잘 기억하라. [도전 2:95]


    둘, 용서
    마지막 7번째 재판인 천륜지옥에서 염라대왕은 “이승에서 진심으로 용서받은 죄는 저승에서 심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홍의 공과 죄는 하나의 문제에서 출발했다. 가족과 함께 자살해서 삶을 포기하려 했던 것. 그 죄책감으로 집을 나와 평생 연락을 끊고 소방관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게 번 돈으로 가족을 도왔다.

    순탄할 것 같았던 자홍의 재판에 차질이 생긴 것은 동생 수홍이 억울한 죽음으로 원귀가 되어서다. 원귀는 소멸시킨다는 저승 법마저 어기면서 강림이 지켜 주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원 일병은 자신에게 잘 대해 준 수홍을 죽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자책한다. 결국 목을 매달아 자살을 시도하자, 수홍은 복수를 거두며 “넌 잘못한 게 없다.”, “지나간 슬픔에 새로운 눈물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자.”라며 용서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 장면은 동생 수홍이 저승으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꿈에 나타났을 때 엄마가 했던 말이다.

    “수홍아, 내 새끼! 너희는 아무 잘못 없어. 모두가 이 못난 엄마가 잘못했다. 자홍아, 미안하다! 내 아들, 사랑한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으로 살면서 누구나 지을 수밖에 없는 죄는 불효일 것이다. 그 죄마저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열 달을 품어 낳고 평생 길러 주시는 부모님의 끝없는 내리사랑이다.

    “효는 만복의 근원이요 만행의 근본이니
    이 뒤로는 허물을 뉘우쳐 다시는 그리하지 말지어다” [도전 9:122]


    원작과 달리, 수홍의 엄마가 말 못하는 벙어리로 설정한 것이 신파라는 비난에 대해서 감독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식의 허물 앞에서 다 벙어리라는 설정이었다.”고 말한다.

    “내가 너에게 15년이라는 시간을 주었는데 너는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15년의 시간이 흐르고 자홍이 어머니에게 전하려 했던 마지막 선물은 엄마에게 진정한 용서를 비는 것이 아니었을까. 자홍이 미처 전하지 못했던 선물을 강림이 대신 전하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말이 있다. 우주의 탄생부터 문명을 개척하고 살아왔던 역사는 대중의 입을 거치며 신화로 탈바꿈되어 전해 내려왔다.

    겨울밤, 이불 머리맡에서 할머니에게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착하게 살면 복 받고 나쁘게 살면 벌 받는다’는 단순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적 메시지가 이제껏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지탱해 온 힘이 되었다.

    인간은 죽어서 이승의 삶에 대한 심판을 받고 이를 통하여 다음 생의 삶이 다시 시작된다는 윤회의 여정을 조금 느껴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신과 함께>는 좋은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영화 스토리로 다 할 수 없는 삶과 죽음, 그리고 윤회를 관통하는 우주 여정旅程의 신비에 대한 더 큰 비밀은 〈우주 일 년 이야기〉를 통해 풀어낼 수 있다.

    ‘추지기신야秋之氣神也’ [도전 6:124]

    동서양의 신관은 아직 신도神道 세계의 진면목을 드러내지 못했다. 우주의 가을 세상과 더불어 열리는 신의 세계, 생과 사의 순환 속에 성숙하는 인간 존재의 진면목에 대하여 성찰해 보아야 한다. 생명은 곧 살아있는 신이다. 우리는 언제나 신과 함께 살고 신과 함께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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