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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도수기]

    종교의 벽을 허무는 길, 증산도 외(박경용, 박계수, 최영덕)


    종교의 벽을 허무는 길, 증산도


    박경용(46, 남) / 아산온천도장 / 147년 음력 10월 입도

    어릴 적부터 종교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학창 시절 친구들을 따라 시골 교회를 다녔었습니다. 솔직히 하느님을 만난다는 개념보다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고 박수하고 찬송가 부르며 웃고 즐기다가 오는 일요일 오전 야유회의 성격이 더 짙었었죠. 이때 제 어머님께서는 절에 다니시고 또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 놓고서 하늘에 대고 두 손을 모아 비시며 무언가를 기도하셨던 시대였습니다. 가끔은 어머님께서 다니시는 절 법당에 따라가기도 하였었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받은 인상은 교회를 갈 때보다 절에 가면 무언가 신이 계시는 듯 영험한 듯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향냄새로 인하여 짓궂기 짝이 없던 개구쟁이 버릇이 한순간에 줄어들면서 스스로 묘한 느낌을 받아 순간적으로 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거나 그 순간만큼은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을 스스로 느끼곤 했습니다. 교회와 절은 왜 달라도 이렇게 다를까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성년이 되어서는 신앙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나 자신과 맞는 종교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나머지 교회보다는 불교 쪽인 절로 가게 되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취미 생활로 운세를 감정하는 ‘사주 명리학’이라고 하는 60갑자 역학과 우주 자연의 이치를 기호화하여 풀이한 ‘주역’이라는 학문을 공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학문을 접해 보니 재미있고 신기하기도 하여 중간에 멈추지 않고 오래도록 계속하게 되었으며 이윽고 단순한 취미 공부가 아닌 그 이상의 단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내 운세를 내가 보게 되고, 역학 공부를 한다는 사실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려져 저에게 자기의 운세를 묻기라도 하면 저는 또 재미있게 묻는 분에게 상담을 해주면서 자연스레 역학이라는 학문에 젖어 들게 되었습니다. 이후 아직 혼인을 하지 못한 41세의 나이에 16년간 다니던 직장을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하여 그만두게 되고 그간 공부하여 두었던 역학 학문을 토대로 제2의 직업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운세를 상담하는 철학관이었습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이었습니다. 상담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한 여성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첫눈에 보기에도 신앙심이 매우 강해 보였고 저와 대화도 아주 잘 통했습니다. 단군을 모신 적이 있던 분이었습니다. 서로가 종교철학에 관심이 깊었기에 상담을 마친 후에도 그분과 저는 안부 전화를 자주하며 대화를 하였고 여러 차례 왕래를 하며 지냈습니다.

    어느 날 가끔 종교방송을 즐겨 보느라 채널을 전환하던 과정에서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종교 방송 같지는 않고 일반 방송 같지도 않은 이 방송은 또 무엇인가 하고 의문을 품으며 방송 내용을 잠시 지켜보던 때였습니다. 갑자기 어느 방송에서도 볼 수 없었던 주역의 기호와 괘 이름이 나오고 ‘상제님’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후 이 방송을 며칠 동안 지켜보게 되었고 방송 내용이 바로 하느님 상제님께서 오셨음을 알리는 내용이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느닷없이 하느님이 오시긴 어딜 오셔 하면서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방송을 접하면 접할수록 내가 공부해 둔 60갑자 용어와 주역의 용어가 자꾸만 저의 귀를 자극하면서 거짓말 같으면 한번 확인해 보라고 하듯이 와닿았습니다.

    이윽고 저는 강원도 춘천에 있는 증산도 도장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개벽 실제상황』이라는 책을 읽어 보라고 권유하여 책값을 지불하고 집으로 가져와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저는 오른 손바닥으로 제 무릎을 내리치면서 “아하 이제 알겠다, 이제 알겠다.” 하면서 또 한 번 놀라게 되었습니다. 곧바로 저는 제 사무실에 찾아왔던 전보경 씨에게 전화를 하여 종교방송 프로그램 중 상생방송을 시청해 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 후 전보경 씨도 그 방송을 신뢰하게 되었고 그녀는 결국 포천신읍도장에서 저보다 먼저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전보경 씨는 저에게 원장님도 어서 입도를 하라고 권유하였으나 저는 그 당시에 신뢰는 갔지만 아직 확신이 들지 않아 입도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모르니 더 확인해 보자 마음먹고 이번에는 증산도 본부에 전화를 걸어서 『도전』을 주문하여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도전』을 다 읽는 데는 약 3주가 걸렸습니다. 『도전』을 읽고 나서 저는 이제 의심 없이 100%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60갑자 용어와 주역의 전문용어를 공부해 두어 다른 사람보다 이해를 좀 빨리 할 수 있어서 아주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만약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면 의심에 의심을 품고 상생방송을 머릿속에서 지울 뻔도 했었습니다.

    그 후로 입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월수입이 형편없고 경제가 안정되지 않아 현실도 챙기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입도만 형식적으로 해 놓고 제대로 행하지 못하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하는 꼴이 되어 버리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하는 고민을 거듭거듭 하면서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무실을 접고 저는 충남 천안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모셔진 대전 현충원과도 가깝고 하늘 아래 편안한 곳이라는 뜻을 지닌 천안天安이란 이름도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자마자 가장 먼저 저를 맞이한 사람들은 바로 한기총(한국 기독교 총연합회)과 격렬한 종교 다툼을 하고 있는 “신OO”라고 하는 단체였습니다. 한기총의 행패에 대해 여론 서명 좀 해 달라며 연락처를 묻기도 하여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었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진짜 ‘신OO’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로구나. 안타깝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신OO의 개념을 왜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하며 혼자 중얼중얼거리듯 생각하며 흘려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상생방송을 시청하는데 바로 그때 “석가 공자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느니라”라는 『도전』의 상제님 말씀이 보였습니다.

    이 성구 말씀에서 ‘불교 유교 도교의 각 종교 모두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경전인 셈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보이지 않는 벽을 쳐 놓고서 내 종교 네 종교로 구분하며 상대 종교의 교리를 무시하고 배격하며 신앙 생활을 해 왔으니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배격하여 온 꼴이 된 것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아주 잘못되어 왔음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온 세상 사람들이 상제님의 참진리를 만나지 못하도록 해왔던 가장 큰 병 중의 하나로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판단을 하는 순간 증산 상제님의 진리를 만나게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 선천의 “이 종교 저 종교”라는 벽부터 허물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직업 생활을 통해 이 내용을 위주로 포교를 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과 살릴 생生 자 공부가 나의 임무로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입도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동안 저를 잊지 않고 계속적으로 입도를 권유하고 보조해 준 전보경 도생님에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보은! ◎

    돌고 돌아 참진리의 품으로


    박계수(64, 남) / 부산중앙도장 / 147년 음력 9월 입도

    저는 1954년 경남 남해군 서면 남상리에서 태어났습니다. 8살 때에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고 4학년 2학기 때 아버님마저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부산 영도에 사시는 작은아버님 댁에 양자로 입양되어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 야간 중학교에 다녔습니다. 청년 시절 일본에서 건너온 ‘남묘호렌게쿄’를 열심히 신앙해서 남자 부장 역할도 맡고 했지만 결혼 후 장모님의 신앙 반대와 누님의 반대가 심하였습니다. 때마침 왠지 모를 신앙에 대한 허전함이 생기고 해서 신앙을 접게 되었습니다.

    제 장모님은 부산 감만동에 신당을 차린 소문난 무속인이셨습니다. 누님은 어머님께서 집에서 매일 목욕하시고 왕복 5리를 걸어 맑은 샘물을 길어다가 천지신명님과 조상님 전에 지극정성으로 치성을 드리고 낳은 귀한 자식이 너이니 언제나 어머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2006년 부산 강서구 송정동에서 사업을 하면서 회사 근교에 있는 길상사 절을 3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다녔습니다. 그곳의 신도 회장을 맡으면서 3년 동안 세 번의 천도제를 모시고 자식이 할 수 있는 조상님과 부모님 제사와 더불어 200일 정성기도를 올리는 등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가면서 불교의 모순은 물론 스님과 보살님의 욕심과 욕망을 많이 접하게 되었고, 이것이 내가 생각했던 진리가 아닌 듯하여 절 생활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지인의 소개로 경남 남해군 남해읍 대명사에 가서 무속 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초하루, 보름날에 있는 각종 행사에 부산에서 남해까지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신명님의 말씀을 무속인을 통하여 전해 듣고 산신 기도와 용왕 기도를 했으며 강이나 바다에 가서 방생도 하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차츰 무속 신앙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 8월 초순경 일 때문에 서울에서 4일 동안을 지내게 되었는데 첫날 밤 숙소에서 불교방송을 보려고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STB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방송도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되었고 이후 계속해서 방송을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도전』 말씀과 종도사님의 <환단고기 광주, 경주 콘서트>, <부산 개벽 콘서트>를 시청하면서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증산도와 천부경! 그리고 우리 역사의 자랑스러운 신교 문화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증산도가 참진리이고 정법이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상생방송 시청자 센터’로 문의 전화를 하고서 『개벽 다이제스트』, 『한민족과 증산도』, 『생활 도전』을 전해 받았습니다. 방송국에서 안내해 준 부산중앙도장에 전화를 해서 수호사님과 통화를 하고 도장을 방문하여 사배심고를 배우고 상제님과 태모님, 태상종도사님 전에 절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해서 기쁨을 말로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장 치성과 교육에 참석하면서 우리 민족의 뿌리 종교인 신교문화와 우주 1년, 생장염장 등 증산도 기본교리를 알차게 배웠습니다. 지난번에는 대전 태을궁에서 열린 <도전 콘서트>에 처음 참석하여 종도사님 용안을 직접 뵐 수 있어서 큰 영광이었습니다. 아! 조상님과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저를 증산 상제님의 도문으로 인도하셨음을 느끼면서 너무도 감사하였습니다.

    여러 도생님들의 지도와 배려로 도장에서 아침 저녁 청수를 모시면서 50일째 정성 수행을 진행하고 『도전』과 『증산도의 진리』, 『천지성공』, 『생존의 비밀』 등 진리 서적을 탐구하면서 상제님의 도문에 입도하게 되어서 감사함을 느낍니다.

    증산 상제님과 태모님, 태을천 상원군님, 태사부님과 사부님께 일심으로 보은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가족, 친지, 지인, 친구들에게 상제님의 무극대도를 당당하게 전하며 많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일꾼이 되리라 다짐을 해봅니다. 너무도 감사드립니다! 보은 보은 보은! ◎

    새로운 삶을 사는 길


    최영덕(38, 남) / 태전유성도장 / 147년 음력 10월 입도

    20대 초반 때의 일입니다. 저는 길을 걷다가 “혹시 도를 아세요?”라고 뜬금없이 묻는 여자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도를 공부하는 곳이 있으니 같이 가서 해 볼 생각이 없냐.”라고 하기에 호기심에 따라갔습니다. 연립주택가에 있는 어떤 방으로 들어갔는데, ‘선사’라고 하는 사람이 오더니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 주면서 “조상 제사를 잘 지내야 한다. 제사를 지내라.”라고 했습니다.

    저는 ‘조상님 제사’라고 하기에 별로 거부감이 없어서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가진 돈이 얼마냐, 지금 당장 지내자.”라고 해서 얼마 없던 돈을 탈탈 털어서 그날 거기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동안 해 오던 신문 배달 일을 그만두고, 그 주택에서 생활하며 신앙을 했습니다. 주소지도 옮기고, 있었던 사진과 추억될 만한 물건은 도 닦는데 방해된다며 모두 태우게 하였습니다. 속으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곳이 바로 ‘OO진리회’였습니다.

    그 곳에서 공부를 하는 중에, 문득 곱게 차려입은 여성분이 그려졌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셨는지, ‘이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어서 나와라.’ 하고 말씀하는 듯했습니다. 얼마 못 가 OO 신앙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상제님은 분명 믿어지는데, 그곳의 진리 빈약함과 많은 문제가 보여 자연히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 후 증산도를 처음 알게 된 건, 얼마 안 돼서였습니다. 인터넷 채팅을 통해 태전세종도장에서 신앙하고 있던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도장 방문도 하게 되었습니다. 도장에 간 날 이야기를 들으며, ‘이곳은 체계적으로 진리를 배우는 곳이구나. 여기가 진짜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

    서점에서 『OO진리회의 정체』와 증산도 진리 서적을 보며 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태모님 신단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돌고 돌아서 진리를 찾아 왔구나 싶었습니다. 그 후 도장에 여러 번 가면서 입도 교육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지방에서 일하고 있었고, 저의 게으름과 나태함 때문에 결국 입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연락을 끊고 도장 나가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최근 도장에 와서 수호사님께 『도전』교육을 받으며, 그 당시 제가 왜 중도포기를 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도전 9편 2장을 보면 “나는 해마를 주장하는 고로 나를 따르는 자는 모든 복마가 발동하나니 복마의 발동을 잘 받아 이겨야 복이 이어서 이르느니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부분을 교육받으면서 제가 척신과 복마의 발동을 이겨 내지 못해서 중도 포기를 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1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동안 저는 허송세월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도박에 빠져 방탕한 삶을 살았고, 온갖 부정적인 방법으로 경제생활을 해 왔습니다. 이런 제 자신이 싫어져 자살도 생각하고, 사람이 갈 수 있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을 쳤습니다.

    그러던 11월 20일 우연히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20대 초반에 공부했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동안 내가 지은 죄도 많고, 게으르고 무식한 내가 증산도에서 신앙할 자격이 될까.’ 하며 도장 방문을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가을개벽기 인종씨를 추리는 이때에, 나도 뭐라도 해야겠다.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어 태전유성도장에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장 방문 이틀째, 수호사님께서 『도전』 9편 3장의 ‘바르게 사는 길’에 대해서 교육해 주셨고, 증산도 신앙을 통해 과거를 참회하고 새로운 삶을 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비록 부족하지만, 저를 있게 해 준 부모님, 조상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은혜로 증산도를 만났고, 제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길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일심으로 성경신을 다해 상제님 진리권 안으로 많은 사람을 인도하고 살릴 수 있는 천하사 일꾼이 되겠습니다.

    “너희들은 매사에 일심하라.”, “일심이면 천하를 돌린다.”는 상제님 말씀과 “모든 일은 정성이 밑천이다.”라는 태상종도사님의 말씀을 각골명간해서, 의롭고 진실한 참도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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