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1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

    [태상종도사님 말씀]

    일심만 가지면 못 될 일이 없느니라

    道紀 138. 7. 19(토) 성직 일꾼 집체 교육, 증산도 교육문화회관
    [말씀요약] 우리 증산도 일꾼들은 상제님 천지공사의 틀을 집행하는 천지의 역군, 천지의 사역자다. 천지를 대신하는 천지의 일꾼이다. 그러므로 사욕과 편견과 사심을 다 버리고 공도에 입각해서 일을 집행해야 한다. 우리 일은 백 번을 이야기해도 천지의 마음, 천지의 핵심을 집행하는 일이다.

    지금은 천지 질서가 바뀌는 하추교역기다. 대자연 섭리로 볼 때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우주의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다. 우주의 가을이 되면 봄여름에 분열·발달해 온 각 문화의 진액을 전부 뽑아 모은 새로운 문화가 나오는 것이다. 이 하추교역기에는 필연적으로 우주질서, 자연섭리 자체가 개벽을 한다. 우리 일꾼들은 개벽하는 때에 상제님 진리로 상제님을 신앙하는 자신들도 살고, 그 성스러운 이념으로 힘 닿는 데까지 전 인류를 살려서, 새 세상을 건설하는 것이다.

    상제님 진리는 선천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화해서 해원, 상생, 보은, 원시반본原始返本을 바탕으로 새 세상 판을 개창하는 진리다. 천지공사란 대우주 천체권 내의 만유 생명을 지배하는 인간 문화가 상제님 뜻대로 둥글어 가게끔 짜 놓으신, 상제님의 새 세상 틀이다. 기존 역사 문화의 진액을 뽑아 모아 신명공사로써 처결을 해 놓으신 것이다.

    내가 스물네댓 살 먹어서 우주변화 원리 도표를 그려서 내놨다. 그건 사실 알고서 보면, 금방 써먹는 데는 주역보다도 좋고 정역보다도 더 좋다. 이 우주변화 원리 도표는 천지가 둥글어 가는 설계도다. 우주변화 원리를 모방해서 거기 갖다 놓은 것이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가장 성숙된 통일 문화, 알갱이 문화, 고갱이 문화, 천지 질서를 집행하는 문화가 바로 이 증산도 문화다. 이 문화가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문화다. 한마디로 묶어서 매듭짓는 문화, 자기를 찾는 문화다. 이 운수는 한국 땅에서 오지 다른 데서는 오지도 않는다. 찾아올 데를 바로 찾아왔다. 129,600년 만에 오직 한 번 이뤄지는 일이다.

    죽기 살기로 자꾸 포교하다 보면 진리가 알아지고 머리가 열린다. 그 핵심 도구가 뭐냐 하면 바로 일심一心이다. ‘언제든지 죽을 준비가 돼 있다. 죽기밖에 더 하느냐’ 하는 그런 일심이다. 다 바치면 천지신명도 받들어 주고 죽지도 않는다. 우리 일은 신인神人이 합일해서 되는 일이다. 일심 가진 사람은 일심 가진 것만큼 성공을 할 것이다. 이 이상 더 교육시킬 것이 없다. 우리 일은 일심에 달려 있다. “일심을 가지면 못 되는 일이 없느니라. 일 안 되는 것을 한하지 말고 일심 못 가진 것을 한해라. 일심만 가질 것 같으면 못 되는 일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꼭 명심하기 바란다. ■


    천지공사 틀을 집행하는 일꾼


    이합집산離合集散은 법도에 맞아야 한다. 이합집산이 법도에 맞지 않으면 결론은 아무것도 없다. 다시 풀이해서 말하면, 옮길 이離 자, 합할 합合 자, 모을 집集 자, 흩어질 산散 자, 떨어지고 합하고 또 모이고 다시 흩어지고 하는 것이 법도에 맞아야 하는 것이다.

    이합집산이 우주 질서에 부합하듯이, 인사는 조직적이고, 계획적이고, 치밀하고, 규모가 있어야 한다. 종도사가 오래 전부터 창조적이며, 도덕적이며, 외교적이며, 영웅적인 일꾼이라는 네 가지 요건을 말한 사실이 있다. 4대 요소가 구비된 일꾼이 돼야 하는 것이다.

    물을 부어도 샐 틈이 없게 치밀하고 합리적으로 일처리를 해야 한다. 상제님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끝맺고서 “이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굳게 짜 놓았으니 제 한도限度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린다.”(道典 5:416:1)라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는 상제님 천지공사의 틀을 집행하는 천지의 역군, 천지의 사역자다. 천지를 대신하는 천지의 일꾼이다.

    공도에 입각해서 사욕을 버려라


    사명감을 의식조차 하지 않고 자기중심으로, 개인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행위는 공도에 입각해서 보면 누累가 될 뿐이다. 누는 밭 전田 밑에 실 사糸 한, ‘여러 루累’라는 글자다. 여러 번, 백 번, 천 번 거듭거듭 쌓이면 그게 때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걸 누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때라는 누 자다. 더러울 오汚 자, 물건 물物 자, 오물이라면 알 것 아닌가.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누가 되지 않으려나 모르겠다’는 말을 통용하는 것이다.

    사람은 혈통이 각각이고 몸도 다 각각 아닌가. 개인사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사람마다 다 부모도 있고, 형제도 있고, 처자도 있고, 생겨난 데도 다르고, 생활하는 사정도, 습관도, 생각도 다르다.

    그러나 공도에 입각하지 않고, 자기 사견私見, 사욕私慾, 편견을 가지면 공도를 그르치고, 나아가서는 결론적으로 패망도 할 수 있다. 어느 단체, 어느 민족도 역사 속에서 ‘역逆 결과’, 반대 결과가 연출되는 수밖에 없다. 욕심도 공욕公慾이 있고 사욕이 있다. 공욕은 어디까지고 좋지만, 큰일 하는 사람은 사욕은 금물이다. 사욕과 편견과 사심을 다 버리고 공도에 입각해서 일을 집행해야 하는 것이다. 천지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 개인주의, 사욕을 불식하지 못하면 거기서 다 비뚤어지고 만다.

    공도를 집행하는 사람은 공익公益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공익은 공도를 위한 이익이다. 공익을 중심으로 해서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손을 한 번 놀리고 발도 한 번 놀리고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공익을 집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잔꾀를 부리면, 거기서 다 비뚤어지는 것이다. 그 사람은 공사를 구별 못하는 사람이다.

    사람 쳐놓고서 부모, 형제, 처자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나. 증산도보다 뿌리를 더 지중하게 여기는 단체도 없지 않은가. 상제님도 성부님, 성모님이 계시지 않았는가. 성부님이 편하신 것도 좋지만, 상제님께서는 공도를 위해서 성부님의 죄를 벗겨 주시느라고 짚신을 삼게 하셨다.

    사람은 육신이 있을 때만 사는 것이 아니다. 심령心靈은 속사람이라 하면 된다. 몸뚱이라 하는 것은 속사람의 거푸집이다. 해탈을 하면 그 닦은 바에 따라서 그 속사람이 천 년도 가고 만 년도 간다.

    천지의 핵심을 집행하는 일


    우리 일은 백 번을 이야기해도 천지의 마음, 천지의 핵심을 집행하는 일이다. 총 결론이 그렇다. 이 자리에 참여하려는 사람은 편견이나 사욕은 다 불식拂拭하고 공평하게 공도에 입각해서 신앙을 해야 한다. ‘신앙자세가 정의로워서 ‘나는 천지이법, 대자연 섭리, 상제님의 천지공사를 집행하기 위해서 전부를 다 바친다. 전 인류를 위해서, 후천 새 세상을 열기 위해서 나는 산다’ 이렇게 되어 있어야 한다.

    교육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천 시간, 만 시간을 받아도 기본이 되어 있지 않으면 소용없다. 그 사람 생각, 사상에 정의감이 결여되면 소용없는 사람이다. 종도사가 아무리 별스런 이야기를 한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기본정신이 비뚤어졌으면 다 소용없는 일이다.

    상제님 일은 당신님 말씀과 같이, 제 한도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린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안 해서 그렇지, 상제님 공사 내용으로 보면 앞으로 파탄破綻 도수가 실현된다. 내가 그 이상은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상제님의 천지 사업을 집행하는 일꾼이 바로 우리 증산도 신도들이다. 호호탕탕浩浩蕩蕩한 천지이법에 어두워서 우리 증산도 신도들이 신앙하면서도 그것을 잘 모른다. 자기 번지수를 모르는 것이다.

    인류를 살려서 새 세상을 건설한다


    천지라 하는 것은 질서가 거듭거듭 바뀐다. 그런데 행인지 불행인지 따지기 이전에 이번에 우리는 천지 질서가 바뀌는 바로 그 시점에 태어났다. 지금은 천지 질서가 바뀌는 하추교역기다. 대자연 섭리로 볼 때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우주의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다.

    봄에 물건 내서 여름철에 기르는 것은 가을에 열매 하나 맺기 위한 과정 아닌가. 지구 일 년에서 봄에 물건 내어 여름에 기른 진액을 모아 가을에 결실하듯이, 우주의 가을이 되면 봄여름에 분열·발달해 온 각 문화의 진액을 전부 뽑아 모은 새로운 문화가 나오는 것이다.

    이 하추교역기에는 필연적으로 우주질서, 자연섭리 자체가 개벽을 한다. 천지에서 지축을 정립正立한다. 내가 늘 말하는 바와 같이 타원형 궤도를 도는 지구의 궤도가 정원형으로 수정을 한다. 그것이 바로 ‘이른바 개벽’이다.

    장차 이름 모를 병이 돈다. 앞으로 괴질이 돌면, 우리나라 전 지역을 49일 만에 한 바퀴 굽이친다. 그러고서 전 세계에 3년을 돈다. 상제님이 “나의 운수는 더러운 병病 속에 들어 있다.”(道典 5:291:5)라고 하셨다.

    또 “내가 천지공사를 맡아봄으로부터 이 땅의 모든 큰 겁재를 물리쳤으나 오직 병겁만은 그대로 두고 너희들에게 의통醫統을 붙여 주리라.”(道典 7:33:6~7)라고 하셨다. 개벽하는 때에 상제님 진리로 상제님을 신앙하는 자신들도 살고, 그 성스러운 이념으로 힘 닿는 데까지 전 인류를 살려서, 새 세상을 건설하는 것이다.

    선천은 상극이 사배한 세상


    선천 세상이라 하는 것은 상극相克이 사배司配한 역사 과정이었다. 지나간 세상은 상대를 죽이고 눌러야 성공을 한다. 종도사 교육을 들으면서 한 번 생각을 해 봐라. 칼로 찌르면 피가 나오고 목숨이 끊어져서 죽는다. 선천에는 그렇게 죽임으로써 성공을 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묶어서 ‘선천은 전쟁의 역사’라고 이야기한다. 타의에 의해서 죽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다 원혼귀寃魂鬼가 됐다. 자유를 누리고 자기 생각대로 한평생 살다 죽으려고 태어났는데, 세상 나와서 보니 그게 아니다. 정치 조직이라는 것도 있고 사회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가서 죽을 줄 알면서도 끌려간다. 끌려가지 않으면 저도 죽고 가족이 다 죽는다. 당장은 안 죽으니 전쟁터로 죽으러 가는 것이다. ‘병兵은 사지死地라’, 군대라 하는 것은 죽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에 가서 그렇게 다 죽었다.

    억울하게 죽은 선천의 신명들을 해원시키지 않으면 좋은 세상을 열 수가 없다. 그래서 상제님이 그 신명들을 해원시키고 새 세상을 여시러 오신 것이다. 우리는 상극의 세상에서 상생의 세상으로 넘어가는 이때에 상제님 일을 하려고 모였다.

    모사는 재천하고 성사는 재인이라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대자연 섭리를 집행하셨다. ‘모사謀事는 재천在天하고 성사成事만 재인在人이라’, 일을 모사하는 것은 천지의 주재자, 통치자이신 하나님, 상제님이 이미 그렇게 하셨고, 우리는 신도로서 그것을 집행한다. 상제님이 천지공사에서 이미 결정을 하셨다. 지나간 세상 그 수많은 신명들의 원한을 풀어서 후천 상생의 세상이 열리도록 틀을 짜 놓으신 것이다. 상생, 해원을 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역사 과정에서 쓰레기라고 할까, 그런 부산물들을 다른 무엇으로써 어떻게 처치할 수가 없다. 해원解寃이라는 방법으로 이화하지 않으면 아무런 방법이 없다. 원한을 풀면 자동적으로 상생相生도 되고, 보은報恩도 되는 것이다.

    천지이법에 의해서 선천은 상극이 사배를 하니 척도 많고 원한도 쌓였지만, 앞으로는 필연적으로 우주변화 법칙에 의해 해원, 상생, 보은 같은 좋은 진리가 나와서 매듭지어진다. 그렇게 되는 수밖에 없다. 해원, 상생, 보은이 되도록 상제님이 천지공사를 집행하신 것이다. 상제님 진리는 선천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화해서 해원, 상생, 보은, 원시반본原始返本을 바탕으로 새 세상 판을 개창하는 진리다.

    모사는 재천하고 성사만 재인이라. 우리가 하는 일은 상제님이 천지공사 보신 그 틀을 집행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억지로 무엇을 만들어서 하는 게 아니다. 이건 자연섭리이고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고와 마디가 순리적으로 풀린다.

    천지공사란 대우주 천체권 내의 만유 생명을 지배하는 인간 문화가 상제님 뜻대로 둥글어 가게끔 짜 놓으신, 상제님의 새 세상 틀이다. 기존 역사 문화의 진액을 뽑아 모아 신명공사로써 처결을 해 놓으신 것이다.

    이 세상이 왜 이렇게만 둥글어 가느냐? 증산 상제님의 천지공사 내용 이념이 바로 그렇게 돼 있기 때문이다. 천지공사에서 짜 놓은 그대로 세상이 표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제님 천지공사 내용 이념을 아는 사람만이 이 세상이 어떻게 둥글어 가고 어떻게 매듭지어지는지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 알 도리가 없다.

    우주변화 원리 도표는 천지가 둥글어 가는 설계도


    허나 이 세상은 천지가 개벽하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금 그 숱한 얘기를 다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내가 스물네댓 살 먹어서 우주변화 원리 도표를 그려서 내놨다. 하늘땅 생긴 이후로 이 증산도 종도사가 처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건 사실 알고서 보면, 금방 써먹는 데는 주역보다도 좋고 정역보다도 더 좋다. 이것으로 이야기하면 누구도 알아들을 수가 있다.

    내가 종정을 포교하는데 그것 가지고서 했다. 부모 자식 간이라 하더라도 자식이 부모의 말을 듣는가. 부모는 자식의 몸뚱이만 낳아줄 뿐이다. 사상思想은 제게 안 맞으면 부모 말이라도 안 듣는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서 불러 앉혀 놓고 내가 모조지에다 우주변화 원리 도표를 붓글씨로 그려서 줬다. 먹을 갈아서 모필로 잘 그려서, 아주 정성스럽게, 기가 막히게 잘 써서 그걸 가르쳐 줬다.

    “이 우주년은 129,600년인데 여기 전前 64,800년은 선천先天이고, 이것은 후後 64,800년, 후천後天이다. 이처럼 우주가 분열발달, 통합수장 해서 생장염장生長斂藏으로 둥글어 간다. 이렇게 동서남북東西南北, 춘하추동春夏秋冬, 인의예지仁義禮智 다 붙여서 설명을 한다. 해서 요 하추교역기에는 이렇게 해서 개벽을 한다.”

    이 우주변화 법칙, 순환 법도를 부정할 사람은 없지 않은가. 이것을 어떻게 부정하는가. 우주변화 원리 도표로 어떤 사람이라도 다 포교할 수가 있다.

    내가 만든 그 도표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말을 안 들어서 상제님 사업을 못 한다. 여기 앉아 있는 우리 이 신도들도 그걸 가지고서 천지 둥글어 가는 것을 알았을 게다. 이 우주변화 원리 도표는 천지가 둥글어 가는 설계도다. 우주변화 원리를 모방해서 거기 갖다 놓은 것이다.

    천하사인 고로 이렇듯 더디고 어렵다


    내가 그 도표를 내놓기 전에, 상제님 사업하려고 천지공사 이야기를 하면 공감하는 사람도 더러 있고 할 사람도 생겨나긴 하는데, 그 사람들 머리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그 사람들 하는 소리가 그렇다. “아들딸 다 가르치고 볼일 다 보고 난 다음에 그때 하자.” 10년이나 20년, 30년 후에 제 일 다 보고 그때 하자는 것이다. 세속 사람들 정신으로는 안 되게 생겨서 내가 그 도표를 만들었다.

    상제님 진리가 한 나라 일에 그칠 것 같으면, 시간도 짧고 쉬울 테지만 이게 천하사가 되기 때문에 이렇게 멀고 어렵다. 상제님을 좇던 성도들도 “우리 일이 백 년도 더 간다.”라고 했으면 다 도망가 버리고 하나도 안 남았을 게다. 상제님 당대에 당장 일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사람들, 빛도 못 보고서 말았다. 기가 막힐 일 아닌가. 그 조그만 김호연 성도가 “언제 일 되여?” 하면 “곧 된다.”라고만 하셨다.

    천지공사대로 전개되는 오선위기 육자회담


    우리 일은 억만 분지 일 프로도 거짓이 없다. 이건 상제님이 우주원리에 입각해서 천지 역사를 집행하신 일이다. 그 숱한 진리 이야기도 다 못 하는데 어떻게 거짓을 말할 수가 있나? 거짓은 통할 수도 없고 십 년, 백 년을 이야기해도 거짓이라는 게 있을 수도 없다.

    내가 총 결론을 말할 테니 들어 봐라. 상제님 사업 하다가 잘못된다 하더라도 죽기밖에 더 하는가?

    여기 종도사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종도사는 우리 신도들 교육할 때 “나는 언제고 죽을 각오가 돼 있다.”라고 한다. 나는 그런 죽을 각오를 가지고서 상제님 사업을 했다. 상제님 사업은 신앙사업, 새 세상을 여는 사업이다. 상제님 세상을 여는 것이다. 진리의 틀이 그렇게 돼 있다. 허면 그것을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모사는 재천하고 성사만 재인이라. 이미 상제님이 ‘그렇게만 둥글어 가거라’ 하고 천지공사 틀을 짜 놓으셨다. 해서 이 세상은 그렇게만 둥글어 간다.

    그래서 하늘도 상제님의 하늘이요, 땅도 상제님의 땅이요, 이 세상에 있는 사람도 다 상제님의 사람이다. 또 세상도 그렇게만 둥글어 간다.

    다시 말해서 이 지구가 상제님 천지공사를 집행하는 활무대活舞臺이다. 살 활活 자, 춤출 무舞 자, 대라는 대臺 자. 그러면 그 활무대 위에 있는 배우는 누구냐? 그건 지구상에 생존하는 전 인류다. 지구상에 생존하는 67억 인구, 흑인종 백인종 황인종, 그 수많은 각색 종족이 모두 배우이다. 그 사람들이 왜 그 일을 해야 되는지도 모른다. 환경이 그렇게 돼 있다. 그것을 그렇게 해야만 되게 생겨서 하는 것이다.

    그 진원지가 바로 어디냐? 상제님이 천지공사로 집행해 놓으신 여기 삼팔선이다. 김정일이 핵무기 만들어서 ‘너 죽고 나 살자’ 한다 말이다. 역사 섭리가 ‘나 살기 위해서는 너를 죽여야 되겠다’는 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상제님 말씀에 “두 신선은 판을 대하고 두 신선은 훈수하고 한 신선은 주인이라. 주인은 어느 편을 훈수할 수 없어 수수방관하고 다만 손님 대접만 맡았나니”(道典 5:6:3~4)라고 하셨다. 공궤지절供饋之節만 빠지지 않으면 주인 노릇은 다하는 것이다.

    오선위기五仙圍碁,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데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그리고 조선, 이렇게 다섯 나라다. 그런데 우리 조선이 하나라야 오선위기가 되는데, 지금 남북으로 갈려 있다. 그러니 남쪽, 북쪽 양쪽에서 대표로 나와야 되니까 육자회담六者會談이 된 것이다. 그러나 실은 그게 오선위기다. 이것을 백 년 전 천지공사에서 상제님이 그 틀을 정해 놓으신 것이다.

    일심을 가지면 깨달음이 열린다


    변심할 사람은 다 이 자리를 떠나도 좋다. 그렇다고 가족을 버리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큰일 하는 사람이 어떻게 세세하게 다 신경을 쓸 수 있는가. 절대 사욕을 갖고 신앙하지 말라.

    인류 역사를 통해서 가장 성숙된 통일 문화, 알갱이 문화, 고갱이 문화, 천지 질서를 집행하는 문화가 바로 이 증산도 문화다. 더는 없지 않은가. 후천 5만 년에 새 세상이 열려도 더는 없다. 이 문화가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문화다. 한마디로 묶어서 매듭짓는 문화, 자기를 찾는 문화다. 사람으로서 더 갈 데도 없다.

    이 운수는 한국 땅에서 오지 다른 데서는 오지도 않는다. 이 지구상에서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태동되는 일이다. 찾아올 데를 바로 찾아왔다. 129,600년 만에 오직 한 번 이뤄지는 일이다.

    이건 거짓 없는 사실이다. 내가 지구의 지리地理서부터 ‘인류 문화의 모태가 바로 우리나라’라는 사실을 수도 없이 교육하지 않았는가.

    죽기 살기로 자꾸 포교하다 보면 진리가 알아지고 머리가 열린다. 그 핵심 도구가 뭐냐 하면 바로 일심一心이다. ‘언제든지 죽을 준비가 돼 있다. 죽기밖에 더 하느냐’ 하는 그런 일심이다.

    일제 시절의 일화


    나는 상제님 사업한다고 왜제倭帝 때 이런 일도 당해 봤다. 조그만 회사에 내가 주주의 한 사람으로 있는데 그 회사가 망해 버렸다. ‘광일사’라는 광산 회사인데 회사가 망하니 어디를 가든지 사람을 우습게 알고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다. 그전에 굉장히 친하고 ‘선생님, 선생님’ 하던 사람들이 그렇더라 말이다.

    그래서 내가 세상을 농하느라고 이름을 고쳐 버렸다. ‘일편담심一片丹心’이라고 하는 붉을 단丹 자, 그리고 돌 석 밑에 새 을 한 자, 그게 돌이라는 돌乭 자다. 이 ‘돌’은 미천한 사람들의 이름 항렬자다. 저 왕십리 그쪽을 지나다 보면 쇠돌이, 은돌이, 박돌이, 그런 문패가 붙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성은 안가安哥이고, 위에 이름자는 붉을 단, 밑에 자는 돌이라는 돌 자다. 안단돌安丹乭. 그 단 자는 ‘속 알갱이, 고갱이, 진짜배기’라는 단 자다. 아주 빨간 고갱이, 진짜배기이지 상놈이 아니라는 소리다. 만일 그 ‘단돌’이 물건이라고 하면 물에다 넣어도 썩지 않을 것이요,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철매로 쳐도 깨지지 않을 것이다.

    한번 불러 봐 ‘안단돌’. 그건 발음도 달리 변하지 않는다. 부르지 않으면 모르거니와 부르려 할 것 같으면 ‘안단돌’, 명백하게 발음이 된다. 내가 그런 이름도 지어서 다닌 경험이 있다.

    그때는 화선지라는 누에고치 껍데기로 만든 종이가 있었다. 지금도 그런 종이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최고로 좋은 종이다. 고치 껍데기, 실크로 만든 종이다. 그때는 명함지도 넓었는데, 근래 것을 보면 명함지도 아니다. 아무리 장사꾼 세상이라지만 말이다. 명함지에다 주소도 안 넣고 성명 석 자만 ‘안단돌’이라고 떡 하니 새겨서 찍었다. 명함을 받고, 내가 명함을 내놓으면 옆에 같이 간 사람이 속으로 우스워서 죽으려 한다. 이 거지 같은 세상, 세상을 농하느라 그렇게 한 적도 있었다.

    변함없는 일심으로


    왜제 때, 그때도 나는 상제님 사업만 하려고 했다. 식민통치 하에서 어떻게 못 해서 그렇지, 아니 누가 나보고서 상제님 사업하라고 하는가. 또 그런 사람이 있기나 한가. 나 혼자 아무것도 없이, 죽지 않으면 살기로 그렇게 했다. 여기 우리 일꾼들도 그런 정신 갖고서 해야 되지, 남의 팔매에 밤 주워 먹으려는 생각으로 장난처럼 해서는 안 된다. 다 바치면 천지신명도 받들어 주고 죽지도 않는다.

    또 큰일 하다가 죽으면 어떤가. 큰일 하다가 죽으면 영광 아닌가. 허나 죽지도 않는다. 그런 생각 가지고서 착수하려면 하고, 그렇지 않고 두 마음 품고서 한 발은 들여 놓고 한 발은 내놓고 그러려면 시작을 하지 말라. 사람이나 속지 신명이 속는가. 신명들은 그 정신이 꿈틀대는 것을 요렇게 실물, 실체 보듯 보고 있다. ‘저놈 정신 상태가 저렇게 됐다’ 하고 신명들이 보호도 하지 않고 응기도 하지 않는다. 우리 일은 신인神人이 합일해서 되는 일이다.

    일심, 변함없는 일심! 내가 입만 열면 하는 소리지만 상제님 말씀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하면,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이요 청풍명월금산사淸風明月金山寺라.” 일만 나라의 구원의 활방은 오직 남쪽 조선, 바로 이 자리다.

    또 “이 일은 남조선 배질이라. 혈식천추 도덕군자의 신명이 배질을 하고 전명숙全明淑이 도사공이 되었느니라.”(道典 6:83:4) 증산도 신도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혈식천추血食千秋 도덕군자道德君子가 이 남조선 배를 배질한다. “천추의 혈식을 받는 그 신명들에게 ‘어떻게 하면 천추의 혈식을 받을 수가 있느냐?’ 하고서 상제님이 물어보니, 그 신명들이 하나같이 ‘일심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을 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대하든지 일심 못 함을 한할 것이요 못 되리라는 생각은 품지 말라.”(道典 8:52:2~3) 일심만 가지면 못 되는 일이 없다. 세상만사 일심만 가지면 다 이룰 수가 있다. “내가 인간의 복록을 맡았느니라. 그러나 태워 줄 곳이 적음을 한하노니 만일 일심 자리만 나타나면 빠짐없이 베풀어 주리라.”(道典 9:1:8~9)라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 증산도 판 안에 사주 관상가도 있고, 사주를 보러 다니는 사람도 있는 걸로 안다. 지구가 뒤집어지고 천지가 다 엎어져서 죽이는데 사주로 뭘 하는가. 가을이 되면 초목 하나도 안 남기고 다 죽이지 않는가. 그 판에 사주가 무슨 소용이 있나 말이다.

    그러면 나라끼리 전쟁을 하는데 ‘10만 대군이 몰살을 했다, 5만이 몰살을 했다’ 하면, 그 사람들이 다 한날한시에 죽는 팔자였던가. 천지대세가 넘어갈 때는 그게 다 소용이 없다. 그런 틀을 알아야 된다. 지금 세상에 사주팔자 보고 사주를 보러 다니는 것은 다 경거망동輕擧妄動이고 식견이 좁은 것이다. 내가 안 할 이야기를 한다만 그것을 명백히 밝혀 주는 것이다.

    일심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일심을 가져라. 일심을 안 가져서 일이 안 되는 것이다. 기독교 믿는 사람만큼은 가져야 할 것 아닌가. 기독교인들은 조상을 배척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여호와를 유일신이라고 해서 다 바쳐서 신봉한다.

    성여불성成與不成이라 하는 것이 오직 일심에 있다. 전부가 다 일심에 있다. 일심만 가지면 못 될 일이 어디에 있는가. 물론 기본 교육도 받아야 하지만 일심 못 가진 사람은 교육을 아무리 받아도 소용이 없다. 일심을 가지면 모르는 것도 자연 알아진다. 지식도 창출이 된다. 왜 그런지 그렇게 알아진다. 안 될 일도 저절로 다 된다. 또 도道도 통한다.

    중국 선종禪宗의 제2조가 된 혜가慧可(487~593)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구도의 성심을 보이려고 팔뚝을 잘라서 바쳤다. 불교 진리가 무엇인가? ‘색즉시공色卽是空이요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이것 말고 더 무엇이 있는가. 불교를 한마디로 묶어서 말하면 불립문자不立文字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팔만대장경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문자를 세우지 않고 심법으로써 심법을 전한다는 것이다.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한다. 그것이 다 일심이다.

    천지 일이 다 일심이다. 왜 성공을 못 했느냐, 그 허구한 이유 다 필요 없고 일심이 없어서, 일심이 부족해서 성공을 못 했다. 그게 정답이다.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이 일심을 가지면 자기 목적한 바를 다 같이 이룰 수 있다. 천지의 역군으로서 상제님 사업, 천지 사업에 손색없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일심을 못 가진 사람은 그 일심이 90프로냐, 80프로냐, 50프로냐에 따라서 그것만 한 대가를 받을 것이다.

    자문자답自問自答을 해 봐라. 자기 자신 보고서 스스로 물어 봐라. ‘내 마음은 우리 목적한 바, 일을 해 내겠느냐? 그런 일심을 가졌느냐?’ 하고. 남한테 물을 것 없다. 자기가 자기 마음한테 물어보는 것이 정답이다. 그 이상 정답이 없지 않은가. 자기 일심이 어떻게 돼 있나, 자기 일심한테 물어봐라.

    일심 가진 사람은 일심 가진 것만큼 성공을 할 것이다. 이 이상 더 교육시킬 것이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 내가 헤아려서 교육을 한 것인데 오늘 교육은 묶어서 ‘일심 교육’을 한 것이다.

    우리 일은 일심에 달려 있다. “일심을 가지면 못 되는 일이 없느니라. 일 안 되는 것을 한하지 말고 일심 못 가진 것을 한해라. 일심만 가질 것 같으면 못 되는 일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꼭 명심하기 바란다.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

    2018년 01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