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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적을찾아서]

    종도사님과 함께하는 성지순례 | 도운 대부흥의 성지 정읍을 순례하다


    ● 일시: 도기 147년 11월 18(土)~ 19일(日)
    ● 장소: 전라북도 정읍시 대흥리 일대, 왕심리

    지난해 11월 18일과 19일 양일간 증산도 도전 강독 제4차 성지순례 일정이 진행되었다. 18일에는 성지순례를 위한 사전 교육이 교육문화회관에서 있었고, 19일에는 종도사님과 함께 떠나는 성지순례가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와 왕심리 일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생기발랄하고 영민한 많은 초립동 도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태모님과 차경석 성도에 의해 도운의 첫 씨가 뿌려진 대흥리와 왕심리 지역을 돌아본 이번 성지순례의 이모저모를 참여 도생들의 소감과 현장 모습을 담은 사진을 통해 살펴본다.

    성지순례 참여 소감


    ●박지원(서울동대문도장, 대학생포교회)
    성지순례 하루 전날인 11월 18일에 성지순례를 위한 사전 교육이 진행되었다. 초립동 성지순례의 의미를 되짚고 도운 대부흥의 산실인 ‘보천교’에 대한 『도전』 성구를 읽었으며, 정읍의 지리와 역사적 인물에 대해 배우고 마음가짐을 바로잡기도 했다. 다음 날인 11월 19일, 2일차 일정이 시작되었다. 정읍 성지를 향해 출발하며 종도사님께서는 “정읍 대흥리 역사를 모르면 증산도를 알 수 없다. 상제님의 종통 전수의 역사를 알 수 없다.”고 밝히며 순례의 서막을 열어 주셨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흥리의 원주인은 차경석 성도가 모셨던 태모 고수부님이시다.”고 짚어 주시며, 700만 보천교의 근원에는 수부도수가 있었음을 일깨워 주셨다.

    지금은 공허하게 흔적만 남은 십일전 터로 이동한 후 종도사님께서는 차경석 성도가 내려 받은 ‘장군도수’와 ‘왕자포덕도수’, ‘초패왕도수’, ‘차돌도수’에 대한 말씀과 함께 700만 대부흥의 역사가 허무하게 무너진 이유에 대해 밝혀 주셨다. 점심 식사를 한 이후 찾아간 최종 목적지 왕심리 도장에서는 “천지 어머니가 대흥리에서 처음 개창하셨지만 그 꿈이 무너졌는데, 그것을 완성하는 곳이 왕심리 도장이다.”라는 설명과 함께, 인사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모든 것은 마음과 심법의 문제이며, 차경석 성도의 마음에 ‘수부사명’이 들어오지 않아 태모님을 받들지 않았다.”라는 종도사님 말씀이 크게 와닿았다. 신앙을 함에 있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수부사명을 맡으신 태모 고수부님을 천지어머니로 받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되새겼다.

    종도사님과 함께한 이번 성지순례는 700만 구도자들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 시간이었다. “우리 신앙과 믿음은 1변과 2변 도운의 선배 도생들에게 큰 빚을 졌다. 이제 우리는 진리를 실천함으로써 과거 선배 도생들의 믿음에 대한 진리 빚을 갚아야 한다. 그분들의 자손에게 상제님 진리를 전해야 한다.”는 종도사님 말씀이 깊이 다가왔다. 초기 신앙인들이 얼마나 간절한 마음과 열정으로, 구도의 길을 닦으셨을지를 느끼면서 이 시대 초립동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3변 도운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우리들의 사명이 얼마나 중차대한 것인지를 새기며, 일심 신앙을 해 나갈 것을 다시금 다짐해 본다.

    ●최동주(구미원평도장, 청소년포교회) - 개인적으로 이번 성지순례가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보천교가 사이비고 나쁜 종교다, 그런 이유로 교과서에도 안 나오는데 그 베일이 벗겨지고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보천교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해주었다.’ 이렇게 교과서에 실리면 보천교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고, 그리되면 상제님 진리가 널리 퍼질 것 같아서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박아경(양산북부도장, 청소년포교회) - 성지순례에 오기 전 어머니께 미리 성지순례 내용을 들었던 게 기억에 남아 차경석 성도님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귀에 쏙쏙 들렸던 것 같습니다. 상제님이 차경석 성도님께 집을 짓지 마라 하신 내용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승진(논산도장, 청소년포교회) - ‘십일전’이라는 이름의 뜻이 궁금했었는데 성지순례를 통해 가을 천지의 동서남북이 바로 선다는 것과 십과 일을 합치면 중앙 토, 황극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태모님과 차경석 성도에 대해 알아가는 계기가 돼서 좋았습니다. 성지순례를 통해서 도전을 읽는 것에 재미가 붙었고 앞으로 도전을 꾸준히 읽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김가희(전주덕진도장, 청소년포교회) - 십일전 터에서 도훈 말씀을 받들 때. 증산도의 선배 신앙인들이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여기 자리에서 신앙하셨을 것이라 생각을 하니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또한 외증조할아버지께서 보화교 신앙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보화교랑 증산도가 별개가 아니란 것을 알아서 새삼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박은서(마산도장, 어린이포교회) - 항상 가면 갈수록 재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이드북도 잘 나왔고, 알기도 쉽고 지도도 잘 나왔습니다. 상제님 태모님이 다니셨던 길을 걸어서 좋았습니다.

    ●강서현(서울목동도장, 어린이포교회) - 성지순례에 네 번 다 참여했습니다. 오늘도 춥긴 했지만 재미있고 보람이 있었습니다. 청수 잘 모시고 기도 잘 하고 태을주를 열심히 읽겠습니다.

    ●이금한(진주도장, 어린이포교회) - 정말 재미있고 우리 반 친구들과 소풍 온 거 같아서 즐거웠습니다. 아침, 저녁 청수를 매일매일 꾸준히 모시겠습니다. 또 아빠가 입도하게 도와줄 것입니다.




    기고 | 성지순례 소감문

    정읍에서 느낀 도운의 숨결


    문선아(교무녹사장, 태전선화도장)

    ‘국유형國猶形하고 사유혼史猶魂이라’,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 『단군세기』의 이 한마디는 아마도 신채호 선생의 가슴에서 살아 숨 쉬는 용광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의 어설픈 정신세계에서도 이 말씀은 의식 밑바닥을 콕콕 찌르는 양심의 소리가 되고 있다. 이러한 영혼의 물길을 당기는 역사 탐방인 제4차 성지순례를 떠난 것은 작년 11월 19일 일요일이었다. 차가운 새벽바람과 함께 어스름한 태양이 내 옆구리에서 자꾸 낑낑대며 일어나고 있었다. 3차로 길가에 꼬치구이마냥 늘어선 차량을 보면서, 간단한 짐 가방 하나 들고 교육관 쪽으로 걸어가는데, 전날 성지순례 사전 교육에서 종도사님의 도훈 말씀과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설레며 잠이 들었을 도생들과 책임자분들의 얼굴이 새벽 별빛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어포들과 함께 4호 차에 올랐다. 이번 참에 아이들의 순하고 맑은 기운이나 왕창 받아볼까, 내심 생각하면서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이 순례 길이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다시 한 번 믿음의 발판을 만들어 주리라 생각했다. 정읍은 어떤 곳인가? 녹두장군 전명숙의 의분으로 혁명이 일어나 만백성의 눈물의 함성으로 횃불을 지폈던 근현대사의 출발점이며, 삼신상제님이 탄강하신 성소이며, 상제님 도문의 첫 발자국을 뗀 1변 도운의 시작점이 아니던가?

    대흥리 도장


    이내 첫째 순례지 대흥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보천교 본소가 있던 곳에 이르자 종도사님께서, “정읍 대흥리의 역사를 모르면 후천 5만 년 역사를 알 수 없다.” 하시며 내장산을 중심으로 삼신산과, 입암산 일명 ‘삿갓 모양’이라 하여 천관산, 그리고 비룡산의 주변 산세를 설명하시는 동안 불현듯 대략 700여 명이 넘는 도생들의 모습과 보천교를 일으킨 700만 선배 신앙인들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종도사님은 정읍을 ‘시천주주’의 심법 장소라고 말씀하시며 몇 분간의 도공으로 추위를 떨쳐내 주셨다.

    종도사님께서 ‘훔치교’로도 불리던 보천교는 방대한 문화조직 집단을 형성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메카였고, 이곳의 실질적 주인은, 차경석 성도님이 모신 태모님이라고 강조하셨다. 최제우 대성사의 구도의 열정과 지극한 염원을 이은 근현대사의 출발점이 갑오동학혁명이라는 말씀을 하시며, 시천주 조화정, 즉 인간으로 오신 천주님을 잘 모시고 가을철 무극대도를 만나야 살 수 있음을 강조하실 때 우리들의 패기 넘치는 의분심이 다시금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차경석 성도님이 상제님을 만나신 일련의 과정은 어쩌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전생의 인연과 조상의 음덕에 따라 상제님 진리를 만나는 과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상제님 성수 37세 되시던 1907년 5월 17일 용암리 물방앗간에서 역사는 시작되었다. 그날 차경석 성도님이 상제님을 못 만났다면, 혹은 상제님께서 차경석 성도님을 안 만나셨다면 지금의 역사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 차경석 성도님의 뱃심과 야심을 꿰뚫어 보신 상제님께서 붙이신 여러 도수에 따라 단시일에 일어선 보천교, 그 과정은 얼마나 장대하고 극적인가!

    “나는 낙종 물을 맡으리니 그대는 이종 물을 맡으라. 추수할 사람은 다시 있느니라.” 종도사님은 이 성구 말씀을 내려 주시면서 후천 5만 년을 향한 도통 전수에서 이 외는 모두 난법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난법은 말 그대로 이 세상을 어지럽히게 하는 법이요, 진법은 이 세상을 진리대로 살게 하는 상제님의 무극대도이다. 진정한 진법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매번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이 점을 되새기며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간간히 부딪히는 바람에 생과 사를 가름하는 나뭇잎이 흐물흐물 흔들리고 있었고, 겨울 정취는 가을 뜨락에 잠시 쉬었다 가는 안단테 칸타빌레 소나타의 여울목 같았다. 멈출 수 없는 시간의 춤사위는 보천교의 터전에 날갯짓을 하며 가는 해를 붙잡고 싶어 하는데, 종도사님이 밝혀 주시는 진리 말씀에 겨울 코트 속에 숨겨진 도생들의 숨소리까지도 가지런해지고 있었다.


    보천교 십일전 터


    우리는 대흥리 보천교 본부의 중심 십일전 터를 향해 걸어갔다. 차경석 성도님이 원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천안문 황제궁보다 더 큰 궁전이 십일전이다. 천상의 최고신, 서신사명이신 상제님과 그 짝이 되시는 태모님의 수부사명이 온 지구촌에 올려 퍼지는 그날, 진정한 ‘개벽’의 참뜻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나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10년 천지공사를 보신 태모님께서는 차경석 성도님을 데리고 1변 도운의 씨를 뿌리시면서 그 험난한 진리의 사역자가 되셨다. 천지 어머님이신 태모 고수부님이 참으로 낯설면서도 묘한 친근감이 드는 것은, 한 인간의 어머니가 아니요 이 지구를 넘어 전 우주의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어머니이기 때문이리라.

    수부님을 천거하신 차경석 성도님에게 초패왕 도수를 붙이시어 후천 세상 창업사령관으로 임명하셨다는 종도사님의 말씀과 눈빛에 도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살아나고, 사랑스러운 겨울 돌멩이 하나에도 생명력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것 같았다. 말씀을 내려 주시는 종도사님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여전히 울림이 있고 우렁차고 아름다우시다. 따스함을 간직한 이 겨울날 종도사님의 무한한 기운을 받는 우리들이 지금 여기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 가고 있구나 하는, 마음 한편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를 무어라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우물 정井 자는 열십자요 10이니, 이 ‘십일전’이란 글자가 바로 우주 원십자요, 10이요, 1태극이 들어있는 우주의 완전수이다. 십十과 일一이 만나 토土가 되는데 이것이 바로 황극이라고 정의 내려 주셨을 때, 선천이든 후천이든, 난법이든 진법이든 이 세상은 황극이 주도하는 법칙대로 사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마음속에 꽂히는 것 같았다. 십일전은 1936년에 보천교 해산령에 따라 헐리고 말았다. 십일전은 조계사 대웅전으로 옮겨 지어지고, 건물 일부는 동대문으로, 십일전의 청기와는 경무대 건물 기와로 쓰였다. 십일전의 청기와에서 ‘청와대’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역사란 단순히 앎에만 그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일전 터에서 종도사님 말씀을 듣고, 나는 과연 상제님 천지사업에 진정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지, 상제님 태모님의 그 무한한 애정을 몸소 보여주시는 종도사님의 뜻을 얼마나 헤아리고 있는지, 그리고 상제님 도에 애정과 자긍심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고 새로운 다짐을 하였다. 십일전 터에서 종도사님을 모시고 멋진 사진 한 방으로 추억의 한 장을 만들며 우리는 오후 햇살에 함박웃음 한 조각을 날렸다.


    왕심리 도장


    다시 살아난 700만 명 보천교 구도자의 후예들이 대흥초등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조장님과 책임자분들의 인솔 하에 마지막 성지로 가는 길은 씩씩한 걸음이 필요했다. 조장의 깃발이 나부끼는 하늘 아래 다리를 건너고 찻길을 건너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꽤 긴 길이었다. 왕심리 도장으로 가는 길목마다 우리들의 다짐이 뿌리를 내리고 꽃과 바람에게 각오를 전하면서, 집 한 채와 작은 마당 터가 있는 왕심리 도장에 도착하였다.

    순흥 안씨 집성촌 왕심리에서 종도사님은 ‘너희들의 어머니, 수부님의 치마폭을 벗어나면 다 죽으리라’는 상제님의 말씀을 강조하시면서 종통의 중요성, 뿌리의 중요성을 진지하게 깨우쳐 주셨다. 수부사명으로 오신 천지 어머님이 도권을 계승했지만, 조종골에서 고민환을 수석성도로 앉히자, 강씨들이 수부님을 여자라고 무시하고 배반함으로써 온갖 고난을 겪으셨을 어머님에 대한 말씀을 듣는 우리는 잠깐 숙연해졌다.

    “삼천이라야 내 일이 이루어지리라.”라는 말씀처럼 3변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는 지금은, 안내성 성도님의 3년 태을주 송주 심법을 진정 체득해야 할 때이다. 정읍 새재에서 상제님의 모진 외면에도 결국 끝까지 쫓아가 태을주 도수를 받으신 안내성 성도님의 그 마음은 과연 얼마나 절실하였을까?

    종도사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고 큰 조직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태모님의 도체조직 공사에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또 ‘포교는 독립운동이다. 나라가 망해서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강력한 도심으로 포교를 하였다’라고 말씀하실 때, 상제님 도생의 과업은 단순히 사람 하나 살리는 차원이 아니라 한 나라를, 인류를 건지는 위대한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의 늘어지는 햇빛이 숨죽이고 있었다. 그만 서녘 땅으로 돌아가고 싶어 눈을 깜짝대고 오스스한 찬 기운이 몰아들 무렵, 종도사님의 마지막 각오의 한 말씀에 우리들은 다시 한 번 마음에 불을 댕겼다. ‘코미타투스. 코미타투스는 하늘의 신을 섬기며 주군과 생사를 함께했다.’ 이 말씀이 유독 내 피부 속으로 들어왔다. 하늘의 신을 섬기며 주군과 생사를 함께할 동지들, 인간을 건져 낼 코미타투스 부대가 지금 정비되어야 한다고, 아니 정비되어 가고 있다고 하시며, 천지의 큰 일꾼이 되기를 기원하시는 말씀을 끝으로, 우리들은 서로 얼싸안았다. 기쁜 마음으로 찻길에 올랐다.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성지순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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