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9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

    [입도수기]

    우여곡절 끝에 만난 참된 진리 외 (한유란, 정정은, 정준흥, 강연원, 김재돈, 박희열, 김가은, 장원형, 송승주, 설상훈)


    우여곡절 끝에 만난 참된 진리


    한유란(여, 33) / 부천도장 / 147년 음력 5월 입도

    안녕하세요? 중국에서 온 고려인 한유란입니다.

    증산도와의 인연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2007년 10월 27일 처음으로 대한민국 서울에 입국하였고 15일 만인 11월 11일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화여대 길거리에서 한 여성분으로부터 조상님께 치성을 드려야 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서슴없이 아현역까지 따라가서 지갑에 있는 동전까지 탈탈 털어서 치성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휴대폰 번호와 회사 주소 등 개인 정보까지 알아내고는 계속 연락이 왔습니다. 그 뒤로는 여러 가지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였고 4차례 걸쳐 120만 원 정도를 바쳤던 것 같습니다. 어설픈 ‘우주1년’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와닿아서 4개월간 다니게 되었고 거기서 ‘태을주’를 배웠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진리 공부를 성경 책으로 하는 것도 이상하고, 돈에 집착하는 것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발길을 멈췄습니다.

    3년 뒤 하루는 집에서 쉬고 있는데 두 여성분이 찾아와 물 한 잔 달라고 해서 집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전과 똑같이 조상님께 치성을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지만 3년 전에 한 건 가짜라는 말에 솔깃해서 도장까지 따라가서 치성을 올렸는데 그곳도 역시 ‘○○진리회’였습니다. 이후 두 번 정도 갔는데 돈에 집착이 심했고, 더 충격적인 것은 서슴없이 낙태를 부추기는 모습이었습니다. 또 속았구나 하는 생각에 허망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하게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봤더니 ‘증산도’가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겨서 도장을 방문하고 싶었지만 집 근처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동네에서 산책을 하던 중 길가에서 증산도 책을 홍보하시는 지금의 인도자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번이나 당한 입장이라 조심스럽게 책 한 권을 빌려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전에 만났던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제서야 진정한 도인을 만났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저의 증산도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증산도 진리에 관심을 갖게 되고 상제님 말씀에 공감을 하게 된 밑바탕에는 어린 시절 함께 사셨던 외할머니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했던 친할머니와 달리 외할머니는 평소 일상생활에서 천지에 기도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런 일화가 있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여덟 명의 딸을 두셨고 그 중 여섯째를 임신하였을 때 토끼 고기를 먹었는데, 애를 낳고 보니 토끼처럼 눈이 빨갰다고 합니다. 외할머니는 죄책감에 하늘에 누가 계신 듯 간절하게 비셨고, 다행히 제 어머니의 바로 위 이모가 되는 그분은 눈 색깔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또 외할머니 옆집에는 무당이 살고 있었는데, 외할머니는 그분에게 자신도 그런 능력을 갖게 해 달라고 청했지만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당이 돌아가시고 나서 할머니는 3년 동안 꿈을 통해 현실을 미리 보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외할머니는 기도문 같은 주문을 읽어서 사람들을 치유하는 분이셨는데, 할머니가 가르쳐 주신 그 주문을 통해 저도 아픈 사람을 치유한 경험이 있습니다.

    외할머니와 함께한 시간들이 증산도 진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진리 공부를 하면서 모든 내용들이 신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한국에 와서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찾은 진리인 만큼 꼭 일심으로 공부하여 개벽상황 때는 태을랑으로 활약하여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기를 빌고 또 빕니다. 감사합니다. ◎


    [한유람 도생의 인도자 수기] 간절함과 정성이 이끈 살릴 생生 자 결실


    정정은(여, 39) / 서울잠실도장, 종감

    도기 146년 3월부터 용기를 내어 패널을 들고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패널을 폈다 접었다 하기가 너무도 부끄럽고 힘들었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기에 스스로 자신에게 ‘난 할 수 있다!’를 반복하며 고개를 숙인 채 패널 옆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가판을 펴기도 전에 다가와 궁금해하면서 말을 건네는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이거 뭐 하는 겁니까?” 기뻤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이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요? 신앙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궁금해하는 한 분을 만났을 뿐인데, 저는 자신감과 기쁨에 차올라 신이 났습니다.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성심껏 정성을 다해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활동이 두 달을 이어 갔고, 두 달 뒤에는 다른 장소로 자리를 옮겨 활동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활동 장소를 옮긴 이튿날 5월 19일, 유모차를 밀며 다가오는 한 분이 계셨습니다. 『생존의 비밀』 책을 집어 들며 “상생방송 가끔 보고 있어요.”라고 하셨습니다. 이 한마디에 쿵쾅쿵쾅 가슴이 뛰고 설레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OO진리회에 두 번이나 다녀왔기에 증산도도 살짝 경계를 했었다고 합니다. 한유란 도생과는 이렇게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책을 받고 며칠이 지나도 카톡 연결이 안 되어서 ‘전화번호를 다르게 적었구나!’ 하고 실망했었는데, 그 뒤 보름이 지났을까? 카톡에 번호가 올라왔습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진리 글을 무조건 올렸습니다. 세 번 정도 받아 보시고 고맙다는 인사와 차를 한잔 사 드리겠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요즘 분들은 대부분 일반적으로 글만 받고 거의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차를 한잔 사 주겠다는 그 한마디에 저는 너무 기쁘고 무척 힘이 났으며, 용기가 두 배는 더 북돋워지는 듯했습니다.

    그 뒤 『개벽실제상황』 책을 보내 드렸습니다. 그런데 또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정말 갑갑하고 애타는 심정이었습니다. 진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현실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카톡이 차단되고 있음을 느끼면서 혹시 남편이 차단을 시키지 않았을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침마다 칠성경을 읽으면서 꼭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 답답함 속에서 아쉬움의 시간은 흘러갔고, 또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다른 장소에서 활동을 하던 중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더 열심히 증산도를 알리고자 노력했습니다. 당시 한 도생은 제가 들려드리는 얘기를 들으시며 “정말요? 정말요?”를 반복하면서, “신기해요! 한번 가 보고 싶어요.”라고 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든 저는 “가요. 언제 시간 주시겠어요?” 하니 한 도생은 “남편이 알면 큰일 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죠. 쉽게 도장 방문이 이루어질 리가 없죠. 그러나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롭게 받아들이시는 분이라 꼭 수렴까지 이끌어 보고자 정성을 들여 보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도장 방문 한번 하겠다고 약속은 받았지만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한 달, 두 달 마음은 조급했지만 남편이 극구 반대를 하였기에 연락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어느 날 증대 교육 중 갑자기 도장을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사람 하나 살리는 게 참 더디고 힘겹고, 될 듯 말 듯 애간장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한숨짓는 순간과 또 성취한다는 기쁨 두 갈래 길을 걷고 걸으며 우리는 스스로 열매가 되는 성숙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제 자신에게 위로를 했습니다.

    드디어 한 도생은 남편의 강력한 반대도 무릅쓰고 그 눈을 피해 가면서 일주일에 두 번, 두 달 동안에 걸친 입도 공부를 큰 어려움 없이 잘 해냈습니다. 어려운 고비 고비를 조상님께서 함께하고 계심을 생활 속에서 체험을 하고, 원하는 일들을 끌러 내도록 길을 열어 주고 계시는 조상님의 존재를 확신하면서 한 도생은 증산도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고 있으며, 늘 기쁘고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한 도생의 가족이 함께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은혜를 크게 베풀어 주시옵기를 간곡히 기도드립니다. ◎

    하루하루 정성스럽고 소중하게 바뀐 삶


    정준흥(남, 47) / 서울잠실도장 / 147년 음력 5월 입도

    과거에는 내면의 욕구와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끌려다니며 내 마음대로 사는 삶이었는데, 증산도를 만난 날부터 마음이 다스려지며 하루하루가 정성스럽고 소중하게 바뀌어 가고 있음에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천주교를 다니다가 이후 30대 후반까지 기독교, 선불교, 명상 단체 등 여러 군데를 다니면서 각 문화를 체험하며 보고 들은 것은 많았지만, 뚜렷이 내 마음을 꽉 채우는 충실함이 없어 허전해하였습니다. 진리에 대한 갈증과 신과 영혼, 수행에는 늘 관심을 두었으나 바쁜 일상생활에 종교와는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유튜브’를 통해 홍익학당, 법륜스님, 정법 강의 등을 들으며 유불선, 인문, 철학 공부를 하던 차에, 증산도에 들어와서 『개벽 다이제스트』, 『증산도의 진리』 책을 보고는 우주의 이치와 원리, 역사, 종교, 인간과 신에 대한 체계적이고 논리 정연한 내용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상생방송의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여러 편 보면서 이전까지 몰랐던 한민족의 뿌리와 역사 현실을 알게 되었고, 종도사님의 동서고금을 꿰뚫는 해박함과 인문, 역사, 철학적 내공에 전율을 느끼며 감동을 넘어 깊은 존경심이 들게 되었습니다.

    또한 도장에서 우주일년, 개벽, 상제님의 천지공사 등에 대해 교육을 받으며 새로운 정보에 놀라움과 함께 증산도 수행 문화에 신선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매일 태을주를 하면서부터 기운이 바로 서고, 정신과 마음이 밝아지니 너무나 좋습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작정하여 욕구에 끌려가지 않고 기본 1년을 목표로 흔들림 없는 다스림으로 공부와 마음 수양에 도전해 보고자 합니다.

    증산도 도장에 온 지 이제 한 달이 지났지만, 옛날부터 그토록 찾아 헤매던 우주, 대자연, 신과 영혼, 인간 세상,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와 원리를 이곳에서 공부하고 찾을 수 있다는 확신과 믿음이 섰고, 입도를 하면서 상제님의 가르침과 주문 수행, 개벽을 준비하는 수행 공부를 정식으로 더욱 열심히 하리라는 다짐을 합니다.

    길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이렇게 좋은 증산도에 인도하고 도움을 주신 정 포감님과 해박한 지식과 가르침으로 정성을 다해 일깨워 주시는 수호사님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리며, 또한 조상 선령님들의 공덕과 보살핌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 너무 다행스럽고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잠실도장의 모든 인연을 너무 소중하고 행복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감사함을 참된 신앙으로, 후천 선경세계의 일꾼으로 보은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보은!

    종도사님의 특강에 영감을 받다


    강연원(남, 70) / 인천주안도장 / 147년 음력 5월 입도

    저는 어린 시절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에 있는 천등산에서 ‘무량대도회(무량교)’에 입문해서 도를 닦고 계신 외숙부의 권유에 따라 1960년 음력 10월 초사흗날 천등산에서 ‘100일 천제 기도’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외숙부의 인도에 따라 기도를 하던 중, 21일째 되는 날 새벽에 갑자기 눈부시게 하얀 광채가 눈앞에 비치더니 온몸에 뜨거운 열기로 강한 전류가 흐르면서 강降이 내려와 전신을 두드리고 몸이 거뜬해지고 황홀해지면서 귀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이후에 밤 자子시와 인寅시 기도를 할 때에는 ‘태을주’ 주문을 계속해서 소리 내어 하였는데 49일 새벽부터 온몸에 열기와 함께, 알 수 없는 글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저절로 입에서 ‘시천주주’와 ‘칠성주’며 ‘운장주’를 큰 소리로 따라 읽기 시작했으며 말할 수 없는 황홀한 기운에 이끌려 벅찬 가슴을 억제하지 못하고 입에서 알 수 없는 말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기도하시던 외숙부께서 그 광경을 유심히 살펴보시고 제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기록해 주시면서 이것은 삼신상제님께서 내려 주신 주문이니 이제부터는 태을주 주문 수행을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입에서 항상 떠나지 않게 독송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해서 50년 동안 항상 삼신상제님을 위패로 모시면서 나름대로 상제님의 상생의 대도 법을 배우고자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기도하여 오던 중 2016년 3월부터는 갑자기 ‘이제는 판 밖에서 하지 말고 내 일은 판 안에 있으니 판 안에 들라’는 계시를 받고 그 뜻을 몰라 고심하던 중 우연히 인터넷 방송에서 ‘환단고기 북콘서트’ 사부님 특강을 듣고, 그 즉시 영감을 받아서 증산도 홈페이지에 들어가 제가 증산 상제님과 태모님 어진을 모시고 판 안에 들고자 한다는 상담을 한 후 인도자이신 공주도장 김 포정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상제님과 태모님 어진을 자택에 모실 수 있는가를 알아보니 인천주안도장에 두 분의 어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인천주안도장의 수호사님을 소개받아 연락이 되어 두 분 어진을 작년에 모시게 되었고, 그 후 인천주안도장에 나가 여러 성도님의 도움으로 증산도 팔관법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를 도문으로 인도해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며, 부족한 제가 만유의 하느님이시며 미륵존불이신 증산 상제님의 상생의 대도를 열심히 배우고 익혀 곧 닥쳐올 대환란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도록 증산도 입도를 허락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보은! 보은! 보은!

    무량대도회(무량교)
    1920년 손치성이라는 사람이 병고로 천등산에 들어가 기도하다가 도를 통하고 병을 치료하며 나온 종교. 다른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면서 종단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300여 명의 신도가 남아 있다.
    (출처- 인터넷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환단고기』와 상생방송, 그리고 『도전』


    김재돈(남, 57) / 고양마두도장 / 147년 음력 윤5월 입도

    안녕하세요!

    저는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서 조그만 열쇠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재돈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가게 일이 없는 시간에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이 소일하곤 했는데, 하루는 우연하게 유튜브에서 『환단고기』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다른 여러 나라들도 그럴 것으로 생각되는데, 동북아 역사전쟁은 승자와 패자에 따라 역사적 사실이 너무도 많이 왜곡되고 거짓되고 말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거듭해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 역사가 1만 년 가까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라의 왕들조차 함부로 말하지 못했던 내용이 들어있는 「삼성기」, 「단군세기」, 「태백일사」같은 소중한 책들이 역사의식이 있는 선조들의 숨은 노력으로 전해지게 돼서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 전인가 초등학교에서 단군왕검 상을 욕되게 하는 일도 있었는데 도대체 누가 왜 그런 환부역조하는 짓을 했는지 울분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환단고기』 강의를 들으면서 한순간 머리가 번쩍 뜨이고 ‘바로 저거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기 조상과 역사 뿌리부터 찾는 운동과 함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참 역사 교육을 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갖게 되었습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제대로 된 똑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되겠다는 생각이 불덩이처럼 솟아올랐습니다. 그런데 역사 강의 속에는 그 무엇인가가 또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시원 문화와 시원 신앙이었습니다. 바로 청수 문화, 칠성 문화 이야기였습니다. 그것은 제가 어렸을 때 저희 할머니께서 행하시던 그 모습 그대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늘 하얀색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기도하시던 할머니를 생각하니 지금 우리 세대는 왜 그 소중하고 고귀한 우리 문화를 외면하고 살았는지 후회스러웠습니다. 또한 저의 아버지께서는 조상님을 아주 극진히 모시던 분이었습니다. 기일에는 항상 목욕재계하시고 엄숙하게 제를 올리시던 분이셨습니다. 6·25 때 가슴에 총탄을 세 군데나 맞고도 살아남으신 불굴의 전사로 무궁훈장까지 받으셨는데, 그 후로 몸이 늘 아프셔서 제가 10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꿈에 아버지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생전 안 보이시던 분이 나타나셔서는 아이들 장난하는 것처럼 “나 죽었다~” 하시고, 조금 있다가는 저쪽에서 “나 또 살았다~” 하시는 것을 몇 번 반복하시더니, “난 안 죽는다!” 하고 말씀하시는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무슨 꿈인지 아무 생각도 못하고 몇 년의 세월이 그냥 흘렀습니다.

    그러던 중 『환단고기』와 ‘개벽 콘서트’를 통해 증산도와 STB상생방송을 알게 되었고, 태모 고수부님에 관한 퀴즈 문제 풀기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도전』을 받아 읽게 되었는데, 너무 재미도 있고 슬프기도 하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무협 소설 같다고 할지 몰라도, 저는 감정이 북받쳐서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하루에 100쪽 이상을 읽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빠른 시간 안에 『도전』을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도전』을 보면 상제님께서 저기서는 맞아서 돌아가시고, 또 여기서는 살아계시다 하시고, 또다시 어천하시고, 돌아가신 것인지 살아 계신 것인지 일반 사람들은 도통 알 수 없는 행적을 남기셨는데, 제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셔서 보여 주셨던 내용과 비슷해서 깜짝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보여 주신 꿈의 의미를 알게 되어서 제 가족들 모두를 데리고 증산도 도장에 찾아가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현역 복무 중이라 제대하면 그때 가도 되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도장의 박 포감님으로부터 방문을 권유하는 전화를 받고 무작정 그냥 뛰어왔습니다. 도장에서 매일 수행을 하다 보니 처음엔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팠지만, 기분은 고향 집에 안착한 것처럼 포근하고 따스했습니다.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증산도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영광이 어느 날 갑자기 저에게 주어짐에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증산도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삶의 답을 찾아 준 상생방송


    박희열(남, 77) / 부산중앙도장 / 147년 음력 5월 입도

    저는 부산시 다대포에서 사는 77살 노정의 길에 들어선 박희열입니다.

    저는 지금껏 생을 살면서 꿈의 실현을 위해 보다 많은 노력과 심혈을 쏟아 보았으나 만나는 인연마다 배신과 음해로 뜻이 좌절되고 세월 속에 고통만 가중되었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나는 왜 그런가?’ 한탄하고 삶에 회의를 느끼면서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고심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년 전에 우연히 상생방송을 시청하게 되면서 그 시대의 참된 진리를 계몽하고 선도하신 성현들의 출현에 성스러운 곳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내 생의 참된 진리와 참된 지도자를 만나 봐야겠다는 일념으로 증산도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부산중앙도장에 방문하여 수호사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진리 공부와 정성 수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진리 공부를 하면서 어렴풋이 알았던 내용들이 더욱 명확해지고 정리가 되면서 상제님 진리에 대해서 더욱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를 진리로 인도해 주신 상제님과 태모님 태사부님과 사부님께 감사를 드리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음으로 양으로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신 조상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상제님 진리를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신앙을 잘하며 개벽기에 상제님 진리를 널리 전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보은! ◎

    태을주 읽어 상제님 태모님을 만나고 싶어요


    김가은(여, 8) / 진주도장 / 147년 음력 5월 입도

    엄마 아빠가 증산도에 다니셔서 저도 함께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창원에서 진주로 이사를 오면서 이종 사촌인 자민이 가족과 함께 도장에 다니게 되었는데 더 재미가 났습니다. 도장에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같이 음악도 듣고 태을주도 같이 읽으니까 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도장에서 ‘입도’라는 게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자운이 언니도 했고 자민이도 한다고 하니까 조금씩 마음이 생겼습니다.

    입도는 상제님 태모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고 나의 소원인 우리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인데 그것이 이루어지는 길이라고 엄마가 말씀해 주셔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입도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입도 공부를 할 때는 지겹기도 하고 힘들었지만 입도 시험을 통과하고 입도식을 올리니 매우 기뻤습니다. 입도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소원이 생겼습니다.

    “태을주를 열심히 읽어 상제님 태모님을 만나 뵙고 싶어요.”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을 잘 믿어서 수호사님처럼 되고 싶어요.”입니다. 앞으로 청수 잘 모시고 태을주 열심히 읽는 어린이 도생이 되겠습니다.! ◎

    조상님과 하나 되어 아이들의 수호자가 되기로 하다


    장원형(남, 59) / 울산옥현도장 / 147년 음력 윤5월 입도

    1960년대 초등학교 시절 어느 여름 방학 때 학교 주관으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고전읽기”라는 대회 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저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대회에 참석하는 친구들과 돌려서 읽은 책은 석가, 예수(신·구약), 공자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총 세 권의 책이었습니다.

    방학이 끝나 갈 즈음 겨우 훑어서 억지로 끝까지 읽었습니다. 머리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3명의 위인 모두가 현실 세계에선 있을 수 없는 초인류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이 무한한 의혹으로 남았습니다. 그 의혹은 20대와 30대를 거치면서 갈수록 커져 가고 또 구체화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또 새롭게 주입되어 들어오는 의혹들은 하나도 정리 못한 채 뇌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서 할 일 많아 바쁜 제 인생을 더욱 작아지게만 하고 있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의혹들은 대략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지구의 탄생 비밀과 지구상에 인류를 포함한 많은 생명체들의 탄생, 생존, 미래, 시간의 한계, 태양과 우주 천체의 정체 그리고 신명관이었습니다. 신명관은 우리 민족의 제사 문화를 아이들에게 전수해야 하는 아버지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고민이었습니다.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기적 같은 소통의 세상에 살다 보니 저도 페이스 북이나 카카오스토리 등 SNS를 심심찮게 접했는데 어느 날 한 분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분의 페이스 북은 저를 크게 놀라게 하였습니다. 의미 있는 사진을 삽화하여 적어 내린 글은 표현이나 맞춤법 틀이 너무나 교과서적이었습니다. 60이 다 되게 살아왔어도 모르고 있었던 ‘환국’의 얘기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글을 읽은 제 마음을 댓글에다 정성스럽게 적어 올렸는데 얼마 안 가서 1:1 창으로 편지가 날아오고 통화 가능 여부를 묻는 메시지가 뜨자마자 전화 통화가 이루어지고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영원히 모르고 지나쳤을 소중한 우리 역사의 귀중한 진실을 그분을 통해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토의 서북단 강화도에서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온 열정의 태을랑 강화도장 이 수석포감님의 진리 전수와 인도로 저는 울산옥현도장에 소개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도장에 교육을 갈 때마다 서프라이즈의 연속이었습니다. 울산옥현도장 수호사님으로부터 증산 상제님의 일대기와 말씀을 전해 듣고 저는 소름이 돋는 지경을 경험했습니다. 어릴 적 세 분의 성인 얘기에서 품었던 신信과 불신不信이 교차하여 도저히 뇌리에 정리를 할 수 없었던 내용들을 해소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로 우리 조국 강산에, 그것도 전설의 시대가 아닌 근대사에 증산 상제님께서 친히 인간으로 오셨다는 절대적 진실을 접하면서 반세기 동안 앓아 왔던 궁금증(病)을 말끔히 치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증산 상제님의 대도 진리에서 ‘보천교’로 이어지는 증산도의 진리를 만나 저의 조상과 하나 되어 아이들을 보호하는 수호천사가 되기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교대 근무로 빠듯한 저의 시간에 우선적으로 맞추어 교육해 주신 박 포감님께도 감사를 드리며 상생을 실천하고 증산도의 살릴 생生자 포교를 하는 일꾼이 되고자 합니다. 보은!

    역사적 정당성까지 갖춘 증산도


    송승주(남, 59) / 광주상무도장 / 147년 음력 윤5월 입도

    어린 시절 어머니는 새벽녘이면 제 머리맡의 조그만 상 위에 정화수를 떠 놓고 뭔가를 중얼중얼거리며 기도를 하시곤 하셨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니가 저를 위해 치성을 드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 2학년 때까지 친구를 따라서 교회에 다녔습니다. 목사님께서 하나님을 믿고 성령을 받으라고 해도 왠지 제 마음에는 와닿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유대인이 선택받은 민족이고,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했는데 그 유대인에 비해서 역사적, 정신적으로 우위에 있는 이 한민족을 제치고 ‘선민選民’이라 한 것은 성경의 왜곡이거나 스스로 기독교가 유대인의 민족 종교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 판단하였고, ‘고작 그 척박한 가나안 땅이 어찌 한반도에 비할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군 제대를 한 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역사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하면 할수록 고등학교 때까지 배워 왔던 역사관은 표면적인 것이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명이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그 수준이 높고 민족성 또한 매우 우수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공무원 시험이 끝나고 가판대에서 우연히 『이것이 개벽이다』라는 책을 구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그 책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본래 종교는 따로 있었고, 그 종교가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원시 종교이며 후천개벽이 다가올 것이라는 나름의 과학적 논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4년 전에 상생방송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일제 때 보천교였던 증산도에 대해 “이것은 9천 년 동안의 우리 민족의 종교였다. 우리 민족의 종교이자 모든 종교의 원천이었으며, 보천교의 교세가 구한말 800만 명에 이르렀고 그 신도들의 성금이 독립 운동 자금에 막대한 재정적 토대가 되었다.”라는 말씀을 듣고서, 역사적 정당성까지 있는 증산도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작년 여름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일입니다. 누구나 죽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종교 의식을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즉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고, 그 영혼이 사후 세계로 간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을 합니다. 상주의 입장에서 이왕 아버지 장례식을 할 바에는 전통성 있는 증산도식으로 모시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해서 시도하려고 했습니다만 가족의 결사 반대로 뜻대로 하지는 못하고 아버지 관에 태을주 주문을 넣어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환갑을 바라보는 처지에서 이 시대가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생을 종료할 때까지 물질적인 경제 활동에만 전념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 측면에서 보아도 스스로가 비참하다 사료되어, 여타의 가치 있는 목표에 정진하는 것이 풍요로운 인생을 사는 길이라는 것이 저의 소신입니다.

    따라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전통 종교인 증산도를 보급하는 것은 영적, 정신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다는 개인적 소신과 더불어 후손을 위하여도 선조로서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입도를 계기로 차츰 증산도 보급에 많이 힘써야 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다시 돌기 시작한 구도의 시계


    설상훈(남, 43) / 광주오치도장 / 147년 음력 5월 입도

    세상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행복하길 바라고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당연하게 모든 것을 누리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듯합니다. 성장하면서 주변 환경과 집안 생활이 나아지면서 자신에 대한 의식이 터지고 ‘왜?’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 OO진리회를 알게 되었고 모든 해답이 그 안에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통스러웠지만 진리가 이곳이라는 착각을 하며 그곳 생활을 참 열심히도 했습니다. 하지만 생활하면 할수록 점점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해져 가고 스스로 한계를 절감했으며, 결국 가족 품에 돌아왔을 때 형제들은 날 무관심과 비난으로 대했지만 어머니만은 못난 자식을 품어 주셨습니다.

    그동안 못 받은 사랑을 늦게나마 받게 되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OO진리에 억눌린 상처들이 치유가 되어 가고 있었지만 한편으론 신앙에 대한 미련과 개벽에 대해 사회 생활도 오랫동안 유지하기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OO진리회에 대한 회의와 문제점을 뒤늦게야 알고 스스로 인정을 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린 듯합니다. 늦은 결혼도 하고 자식도 생기고 이제는 안정감이 생기는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어딘가 진리를 찾고자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저 자신이 받은 고통과 가족의 고통을 뒤 돌아봤을 때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그냥 이대로 살면 어떨까, 세상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라는 안일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7년 전 인터넷을 통해 증산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긴 세월 속에서 꾸준하게 문자와 부담되지 않은 전화 통화를 통해 나름 감사하게 생각하는 본부 김 수호사님으로부터 도장 방문 권유를 받았고, 저는 호기심과 그동안 노력해 준 성의에 대한 보답으로 선뜻 응하여 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도장에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도장을 방문하면서 7년 전에도 무언가 기대를 하고 갔다 그냥 돌아왔던 도장이라는 선입견으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광주오치도장 포정님의 허물없고 가식 없는 모습은 부담 없이 저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고 질문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 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에 안심하고 하루 이틀 도장에 다니면서 21일 정성 공부도 하게 되었습니다. 포정님은 공부 과정을 통해 증산도와 상제님, 그리고 그동안 제가 한쪽만 바라본 잘못된 신앙을 바로 볼 수 있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증산도를 알게 되면서 스스로 조금씩 달라지고 그동안 멈췄던 시계가 다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한편으로는 도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과 성찰을 하고 부담감이 존재하지만, 하나하나 극복하면서 우리 가정을 지키고 포교를 실천하며 세상에 떳떳한 증산도인으로 바로 서는 그날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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