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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성구]

    이달의 성도 | 상제님 대학교 도수의 주인, 김경학


    ●본관: 김해
    ●족보명: 연상演相
    ●자: 경학景學
    ●호: 시은市隱
    ●도명道名: 경학京學
    ●가족: 부 형태瀅兌와 모 김씨의 넷째 아들. 부인 은殷씨와의 사이에 용주龍冑 등 3남 1녀를 둠
    ●입도: 1907년 4월
    ●출생: 1862년 8월 4일 전북 정읍군 옹동면 오성리
    ●순도: 1947년 8월 15일 전북 정읍군 태인면 태흥리(86세)

    김경학金京學 성도는 키가 크고 풍채가 좋으며 얼굴 혈색이 좋고 하얀 수염이 길게 난 멋쟁이 노인이었다고 한다. 김경학 성도의 맏형 경순景淳은 태인 칠천 석 벼농사 중 이천 석을 경영하였으며 집이 2,700평 정도로 태인에서 가장 컸다.

    동학 신앙 때 천상보좌의 상제님을 알현한 김경학


    김경학(金京學)은 태인 사람으로 대부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하며 학문에 열중하더니 동학 접주였던 셋째 형 경은(景恩)을 따라 동학을 신앙하니라. 그 후 칠보산 줄기인 태자봉 아래 백암리(白岩里)로 이거하여 훈장을 하다가 47세에 상제님을 뵙고 따르게 되니라. 일찍이 경학이 석 달 동안 시천주주(侍天主呪) 수련을 하던 중 꿈에 천상에 올라가 옥황상제(玉皇上帝)를 뵈온 일이 있었는데 하루는 상제님께서 이르시어 “네 평생에 제일 좋은 꿈을 꾼 것을 기억하느냐?” 하고 물으시거늘 경학이 일찍이 상제님을 뵙던 꿈을 아뢰며 “선생님의 형모가 곧 그때 뵌 상제님의 형모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고 아뢰니 증산 상제님께서 여러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로 옥황상제니라.” 하시니라. 경학은 상제님을 만난 후로 오직 상제님께 절을 올릴 뿐 다른 곳에 가서는 절을 하지 않으니라. (3:174)

    그 날로 상제님을 따르니라


    하루는 경학을 조용히 방 안으로 부르시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물으시기를 “경학아, 네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 하시니 경학이 “한 삼백 석 거리는 됩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돈이 많으면 돈에 정신이 팔려 나의 도를 믿지 않게 되나니 나를 좇으려면 먼저 망하고 들어서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에 경학이 작심하여 삼백 석지기 논을 팔아 성금으로 바치고, 그 날로 아예 걷어붙이고 상제님을 따르니라. (3:175:6~9)

    천지 일꾼 기르는 상제님 대학교 도수


    무신년 가을에 태인 백암리 김경학(金京學)의 집에 계실 때 천지대신문을 여시고 글을 써서 벽에 붙이시니 이러하니라.

    一身收拾重千金(일신수습중천금)이니 頃刻安危在處心(경각안위재처심)이라
    多有曲岐橫易入(다유곡기횡이입)이나 非無坦道正難尋(비무탄도정난심)이라

    내 한 몸 잘 가짐이 천금보다 중하니 순간의 평안함과 위태로움이 마음가짐에 달려 있느니라.
    굽은 길과 갈림길이 많아 죽는 길로 쉽게 빠져드는데 탄탄한 대도의 살 길이 없는 게 아니요 바로 찾기가 어려울 뿐이니라.

    奇珍落地泥沙混(기진낙지니사혼)하고 仙鶴移巢野鵠侵(선학이소야곡침)하니
    行止莫輕跬步內(행지막경규보내)요 出門氷薄又淵深(출문방박우연심)이라

    기이한 보배가 땅에 떨어지면 진흙 속에 묻히고
    선학이 둥지를 옮기면 들고니가 침노하나니
    가고 그침은 반걸음 이내라도 가벼이 말라.
    문을 나서면 살얼음판 위요 또 심연과도 같으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신명에게 칙령을 내리시며 말씀하시기를 “경학(京學)의 학(學) 자가 ‘배울 학’ 자이니 경학의 집에 대학교(大學校)를 정하노라.” 하시고 또 “학교는 장차 이 학교가 크리라.” 하시며 “내 세상에는 새 학교를 세울 것이니라.” 하시니라. (6:61)

    후천선경의 대학교 사명, 육임 조직


    백암리에 계실 때 하루는 경학에게 “무당 여섯 명을 불러오라.” 하시어 경학으로 하여금 두건과 두루마기를 벗기고 각기 청수 한 그릇씩 모시게 한 뒤에 여섯 사람에게 “청수 그릇을 향하여 사배(四拜)하라.” 하시니라. 이어 상제님께서 먼저 시천주주(侍天主呪)를 세 번 읽으시고 여섯 명에게 따라 읽게 하신 뒤에 거주성명을 물으시고 “세상에서 사람들이 다 아는 이름이냐?” 하시니 모두가 “그러하옵니다.” 하고 대답하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청수를 마시라.” 하시매 여섯 사람이 명하신 대로 하니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복록이니라.” 하시고 “이제 여섯 사람에게 도(道)를 전하였으니 이는 천하의 대학(大學)이니라. 이 때는 해원시대라. 도를 전하는 것을 빈천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비로소 ‘육기초(六基礎)’를 놓고 신명 공부를 시켰느니라.” 하시니라. (6:62)

    천지 일꾼의 심법 전수 : 백만 명은 당적해야


    11월에 하루는 경학을 바라보시며 “오늘 두문동(杜門洞) 성수(星數) 72인 공사를 보려는데 나를 잘 믿겠느냐?” 하고 물으시거늘 경학이 “예, 잘 믿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니 이와 같이 세 번을 다짐받으신 뒤에 물으시기를 “자네, 사람 하나에 얼마나 당적했으면 하겠는가?” 하시니라. 이에 경학이 “백(百) 명을 당적하면 안 하겠습니까.” 하거늘 상제님께서 “아니지.” 하시니 경학이 다시 “천(千) 명 당적이면 적다 하겠습니까?” 하는지라 상제님께서 거듭 “아니지.” 하시니 “만(萬) 명 당적이면 적당하겠습니까?” 하매 “그것도 아니지.” 하시니라. 이에 경학이 “사람 한 명이 만 명 이상을 당적한다는 말씀이십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사람 하나가 백만 명은 당적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5:328)

    대개벽 후 국가 건설의 단위


    상제님께서 경학에게 물으시기를 “십 인 적(敵)이면 왕이 되겠느냐?” 하시니 경학이 “적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일 적이 열 사람이니라.” 하시니 경학이 아뢰기를 “십 인 적이면 왕이 되지 못하겠나이다.” 하니라. 또 물으시기를 “백 인 적이면 어떠하겠느냐?” 하시니 대답하기를 “그도 불가합니다.” 하거늘 “천 인 적이면 어떠하냐?” 물으시니 “그도 불가합니다.” 하고 “만 인 적이면 어떠하냐?” 하시니 “그도 불가합니다.” 하고 아뢰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십만 인 적이면 어떠하냐?” 하시니 경학이 비로소 “십만 인 적이면 가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상제님께서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라. (7:56:1~6)

    김경학을 이부에 명하심


    초사흗날 상제님께서 관재(官災)를 피하여 백암리 김경학의 집에 가 계실 때 경학에게 ‘이부(吏部)’라 써 주시며 집 벽에 붙이게 하시고 경학으로 하여금 그 글을 향해 사배(四拜)하게 하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너를 이부에 명하노라.” 하시니라. (5:351)

    일심 공부


    상제님께서 하루는 김경학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심(一心) 공부가 죽기보다 어려우니라.” 하시니 경학이 “그러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하고 여쭈거늘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일기가 청명(淸明)하고 바람 없이 고요한 날, 깊은 물에 돌을 넣으면 소르르 들어가는 그러한 마음으로 한 시간만 나아가도 공부가 되느니라.” 하시니라. (9:202:1~3)

    김경학의 개심의 계기


    이 날 경학은 치성을 드려도 아무런 응험이 없으므로 착잡한 마음에 음복할 생각도 않고 미륵전을 나와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부르짖기를 ‘이제 집에 가면 죽어 버릴랍니다.’ 하니 문득 상제님께서 대장전 앞에 나타나시어 “못 죽는다.” 하시는지라 경학이 느껴지는 바가 있어 그 길로 집에 돌아와 청수를 올리고 기도와 수행에 일심하니라. (10:85:1~5)

    다시 깨어진 김경학의 믿음


    금산사 치성 후로도 성도들은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상제님과 같은 다른 스승을 찾아보려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니라. 경학 또한 스승을 찾아 방황하다가 경술(庚戌 : 道紀 40, 1910)년 2월에 집에 돌아오니 늙은 어머니가 급병으로 죽고 가족들은 초종(初終)에 쓸 제구 준비에 바쁘거늘 “내가 만고의 대신인(大神人)을 따르다가 늙으신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였구나.” 하며 대성통곡하다가 ‘태을주로 사람을 많이 살리리라.’ 하신 상제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일시에 마음을 돌려 방에 들어가 가족을 물리친 다음 상제님께 기도를 올리고 지성으로 태을주(太乙呪)를 외우니 문득 노모가 살아나니라. 이로부터 병자가 생기면 자청하여 찾아가 태을주를 읽어 고쳐 주니 ‘경학이 신의(神醫)가 되었다.’는 소문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하니라. (10:39)

    후천 대학교 도수의 포교운 발동


    그 즈음 인근 놋점리 류의경(柳義卿)이 장질부사로 사경에 이르매 그 집안사람이 경학을 찾아와 살려 주기를 간청하거늘 경학이 저녁에 찾아가 청수를 올린 뒤 상제님께 기도하고 태을주를 외우니 의경의 병세가 돌려져서 수일 만에 완쾌되더라. 이에 의경이 경학에게 주문을 읽어서 큰 병이 치료되는 이치를 물으니 경학이 상제님의 신성하심과 상제님께서 천지를 개벽하시는 조화주이심을 설명하여 의경을 신앙의 길로 인도하니라. 그 길로 의경을 데리고 금산사 미륵전에 가서 치성을 드린 뒤에 구릿골 약방에 이르러 상제님의 유적을 참관하며 며칠 동안 머무를 때 하루는 문득 약방 아랫목 벽에 칼끝으로 그은 십자형(十字形) 자국이 눈에 뜨이므로 이상히 여겨 그 오려진 네 각(角)을 떼어 보니 한 자 길이나 되는 큰 날 일(日) 자가 씌어 있더라.

    며칠 후 다시 약방을 방문하여 둘러보는데 약방 동편 문 상인방(上寅方) 위 벽지에도 십자형 칼끝 흔적이 나 있거늘 또 떼어 보니 그 이면(裏面)에 ‘십봉명개훈(十奉命開訓)’ 다섯 자가 가로로 씌어 있더라. 의경이 집에 돌아와 저녁에 청수를 올리고 태을주를 외우니 문득 신안이 열리고 이어서 무수한 기적이 나타나거늘 마침내 ‘태을주를 읽으면 신의 감화가 내린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므로 성도들도 이로부터 태을주를 읽는 것으로 수련을 행하기 시작하니라. 이로써 일찍이 상제님께서 “경학의 집에 대학교(大學校)를 설치한다.” 하시고 “학교는 이 학교가 크리라.” 하신 말씀이 응험되니라. (10:90)

    김경학 성도 등의 수련 공부를 돌봐 주심


    9월 7일에 김경학(金京學)과 김영학(金永學)이 태모님을 찾아와 뵙고 여쭈기를 “저희들이 모악산 수왕암(水王庵)에서 수련을 행하던 중에 상제님의 성령이 나타나시어 수십 년 동안 사모님과 막혀 지낸 것을 꾸짖으시고 ‘이 길로 가서 너희들의 어머니를 모셔다가 지난 모든 일을 풀고 이전 정의(情誼)를 다시 계속하지 않으면 화(禍)가 있으리라.’ 하고 말씀하시므로 저희 두 사람이 일동을 대표하여 왔사오니 저희들의 이전 과실을 깊이 용서하시고 함께 가시어 앞으로 사흘 동안 수련 법석(法席)을 주재하여 주옵소서.” 하며 회오(悔悟)의 눈물을 흘리는지라.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난 일은 한갓 꿈과 같을 뿐이나 칠십 노인이 멀리 와서 이렇듯 간곡히 말하니 내가 비록 건강이 허락지 않을지라도 멀리할 수 없노라.” 하시고 두 사람과 함께 수왕암에 가시니라. 이 때 박공우가 주창(主唱)하여 김경학, 김영학, 이성영, 김수응, 이중성(李重盛) 내외 등이 모여서 수련 공부를 하는데 태모님께서 공부를 주재하시매 김수응이 신력을 얻어 풍운조화를 자유자재로 일으키니라. (11:384:1~7)

    [종도사님 도훈]
    김경학 성도는 상제님을 만나기 전에, 동학에서 90일 동안 시천주 기도할 때 천상 옥경에 가서 상제님을 직접 뵌 분이다. 아마 동학 역사상 상제님을 친견한 사람은 김경학 성도 한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도기 132년 6월 2일 증산도 대학교)

    [종도사님 도훈]
    김경학 성도의 성姓인 김金은 음양오행 법칙으로 말하면 뭐예요? 봄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기운인 목木이고, 여름철은 모든 것을 기르느라고 기운을 발산하는 뜨거운 화火이고, 가을은 거두는 거거든요. 생명의 수기를 뿌리로 돌려 열매를 맺게 해 주는 가을 기운을 금金이라 합니다. 김 씨는 가을 금이에요. 글자가 똑같잖아요. 그리고 이름을 보면 서울 경京 자에 배울 학學이에요. 그러니까 상제님 대학교는 가을철 새 세상을 여는 새 진리를 가르치는 학교인 것입니다. (도기 145년 1월 11일 어린이 청소년 포교회 겨울수련회)

    [종도사님 도훈]
    이 말씀은 단순히 백만 명에게 직접 포교하라는 뜻이 아니다. 이 말씀은 육임조직을 창출해 내는 도생들이 대학교 교육을 받아서 이 세상 어떤 사람이라도 능히 감당을 하고, 그 사람의 정신을 깰 수 있는 역량과 그릇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상제님 천지사업을 위해 모든 걸 다 바칠 수 있는 큰 일꾼의 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도기 137년 12월 22일 동지치성)

    [종도사님 도훈]
    육조六曹로 말하면 이부吏部는 인재를 양육하고 인재를 선택해서 쓰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상제님 대학교는 바로 인재를 양육해서 후천 오만 년 지구촌 문명 조직에 뽑아 쓰는 사령탑이다. (도기 145년 5월 3일 증산도 대학교)

    [종도사님 도훈]
    상제님은 금산 미륵불에 의지해 계시다가 8월 1일에 천상으로 돌아가신다. 바로 그날, 김경학 성도가 상제님을 뵌 것이다. 그때 김경학 성도가 “죽을랍니다.” 한다. 그러자 “안 된다.”고 하신다. 그렇게 죽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너희들이 내 도를 받아 역사에 뿌리내리는 개척 단계로 들어가야 하는데, 내가 먼저 떠났다고 죽는다니 말이 되느냐!” 상제님께서 이런 뜻을 내보이신 것이다. (도기 133년 2월 9일 증산도 대학교)

    [종도사님 도훈]
    ‘기왕에 천상에 올라가 우주의 절대자 조화주 하느님, 천궁의 상제님을 직접 친견했는데 무얼 못 하냐?’ 하고 태을주를 읽은 것이다. 한참 읽다 보니까 어머니의 몸이 움직이고 숨소리가 들린다. 기적이 터졌다. 일찍부터 동학을 믿으면서 천상에 올라가 상제님을 뵈었던 기적이 세 번째로 터져서 김경학 성도의 대학교 문명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도기 145년 5월 3일 증산도 대학교)

    [종도사님 도훈]
    김경학 성도가 처음 태을주 읽어서 포교한 건 상제님이 어천하신 지 8개월 후다. 경술(도기 40)년. 이 40이란 숫자가 대단히 중요한데, 도기 40년 음력 2월 이후부터 상제님의 포교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상제님 일꾼들은 도운道運의 이 역사 정신을 잘 알아야 한다. (도기 131년 6월 13일 부산 순방군령)

    [종도사님 도훈]
    십봉명개훈, 상제님의 무극대도를 문화사적으로 받드는 것은 바로 김경학 성도에게 맡기신 대학교 도수로 이루어진다. (도기 145년 5월 14일 태모님 성탄치성)

    [종도사님 도훈]
    상제님 성도들 가운데 김경학 성도가 가장 먼저 깨어나 방황에 종지부 찍고 상제님 도를 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요 성도들이 김경학 성도를 따라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수도 생활로 들어가는데, 마지막으로 제동을 걸고 사태 수습을 한 이가 누구인가? 바로 태모님이시다. (도기 131년 6월 13일 부산 순방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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