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교를 뿌리 내린 백제의 문화 역사 정신과 인류 새 역사의 지평(3)

[종도사님 말씀]
道紀 146년 11. 13(일), 환단고기 북콘서트, 광주 김대중컨벤션센
[말씀요약] 이제 우주의 창세 원형문화인 신교를 뿌리내린 대백제 문화의 근본정신, 백제 왕국의 실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백제는 고주몽의 둘째 부인 소서노가 두 아들을 데리고 서기전 18년에 한성 백제 5백 년 역사 시대를 열었습니다. 고두막의 아들, 북부여의 마지막 단군 고무서의 사위가 된 고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했고, 고주몽의 친아들 온조가 백제를 건국했으며, 신라도 북부여 5세 고두막 단군의 외손자가 건국을 했어요. 이처럼 고구려, 백제, 신라는 북부여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입니다. 이것을 알 때 우리 사회, 역사 속에 누적된 갈등의 모든 어둠을 아주 말끔하게 씻어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환단고기』 「고구려국본기」를 보면 백제가 한때 요서遼西, 진평晉平뿐만 아니라 산동성과 강남 땅도 점령해서 거기에 어떤 왕, 제후를 두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 중국 『송서宋書』등 여러 사서에도 자세하게 나옵니다. 백제의 전체적인 역사과정에서 보면, 245년에서 580년대까지 한 340년 정도 ‘대륙 백제 시대’가 있었고, 이 시기에 중국 동쪽에 있었던 배달국, 단군조선 때의 영토를 복원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대백제의 역사정신, 강력한 우주적인 문화 통치정신 복원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담로제檐魯制입니다. 백제에는 광양태수, 오서군, 진평군, 청하태수, 서하태수 등등과 저 아래 광서성과 오키나와 유구국, 대만과 필리핀, 인도네시아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에 걸쳐 22담로가 있었습니다. 『환단고기』에는 6세 달문達門 단군 때 상춘常春에서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렸을 때 크고 작은 나라 22개국이 와서 천제를 같이 올린 기록이 있는데, 22개 담로의 기원을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대백제국은 중국의 동부와, 중부 일부 지역, 남부지역, 그리고 동아시아 전체를 통관하는 대국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본론 셋째의 결론은, 신교문화의 우주 열매, 태일문화가 바로 백제 땅 호남 함평咸平에서 완성됐다는 것입니다. 지난 9천 년 역사 문화의 주제를 크게 보면 한 글자로 ‘우주광명 환桓’입니다. 이 우주광명 문화의 종통이 고구려, 신라보다도 이 호남 백제권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옛 백제의 땅, 이 호남과 충청 문화권인 함평咸平에서 한 구도자가 50년 동안을 하루 같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기도를 해서 도통을 받아 나타난 태을문화, 우주의 광명문화, 신교문화의 진리 열매가 바로 태을주太乙呪입니다. 이러한 태일문화 사상의 근원인 천부경 이후 복희·문왕·정역 팔괘는 참동학 증산도의 ‘우주 일 년’을 통해 선후천 개벽사상으로 완성되어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그동안 배운 역사학은 ‘죽음의 역사학’이요 ‘패망의 역사학’입니다. 이 백제 땅 호남 충청은 지구촌을 대동세계, 천지 낙원으로 만들 수 있는 위대한 9천 년 광명문화 역사의 힘, 지혜, 저력을 품고 있는 곳입니다. 근대 역사의 동학혁명, 개벽운동이 이곳 백제의 땅에서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이 잘못된 역사관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문화 대혁신, 인류 문화 혁명의 근본 주제인 광명 인간, 태일의 새 역사 창조의 심법을 우리가 참동학을 통해서 다 함께 새롭게 각성해야 하겠습니다.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이라는 말씀과 같이 옛 백제 땅에서, 우주광명 문화의 복원이 진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참된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


신교를 뿌리내린 백제의 문화 역사 정신



자, 본론 둘째로 들어가서 이 #우주의 창세 원형문화인 신교를 뿌리내린 대백제 문화의 근본정신#은 무엇인가? 백제 왕국의 실체는 무엇인가?

백제 왕조의 역사


백제 왕조 성립사
백제 왕조 역사의 성립을 한번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백제 왕조 성립사에서 그 시조는 형인 비류沸流와 그 아우인 온조溫祚입니다. 온조가 한성, 지금의 서울에서 백제를 건국하고 약 5백 년간 한성 백제 시대를 계속하다가, 고구려에게 공격을 당해서 웅진熊津(공주)으로 내려왔습니다.

이 백제 시조 온조는 본래 그 아버지가 고주몽高朱蒙 아니에요? 『삼국사기』에서는 비류와 온조를, 고주몽이 부여 왕의 딸과 혼인해서 낳은 아들이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다른 설을 소개하여, 과부가 된, 대상大商 연타발延陁勃의 딸 소서노召西弩가 북부여 왕 해부루解夫婁의 서손庶孫인 우태優台와 결혼해서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온조를 우태의 아들로 기록하여 백제 건국자가 고주몽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한 것은 천륜을 깬 것입니다. 『삼국사기』는 신라는 종통으로 갖다 놓기 위해서 모든 게 신라사 중심으로 기록되었어요. 그래서 고구려 역사도 비하해서, 중국에 붙어먹으려 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황제국 고구려를 모독하는 망발을 했어요. 대진국大震國(발해) 역사는 전혀 기록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백제 시조를 고구려와 단절시켜 백제를 폄하한 것을, 『환단고기』가 체계적으로 잡아주고 있습니다.

고구려 창업사의 숨은 진실
이 고주몽은 누구인가? 고주몽은 임인년 5월 5일 날 태어나셨는데, 서기전 79년이죠. 고주몽의 혈통의 비밀, 그 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것은 『환단고기』 「고구려본기」에만 나옵니다.

해모수解慕漱의 아들 모수리慕漱離는 북부여 2세 단군입니다. 그런데 해모수의 작은아들 고진高辰이 위만과 싸워 공을 세워서 고구려 제후, 지방 왕이 되었어요. 이 고진의 아들 이름은 빠져 있고, 그 손자가 불리지弗離支입니다. 이 불리지가 압록강 쪽에서 아름다운 한 여인, 유화柳花 부인을 우연히 만나서 고주몽을 낳았습니다.

유화 부인의 아버지는 하백河伯인데, 하백은 원래 천신을 숭배하고 물을 다스리는 신이었습니다. 단군조선 때부터 왕비가 이 하백에서 나왔어요. 환웅천황 때는 왕비들이 웅녀熊女 집안에서 나왔어요. 홍산문화에서 웅족(bear clan)은, 곰을 수호신으로 섬기는데, 인디언 문화에서도 곰들이 북두칠성 형상으로 행진하는 모습이 있었죠. 그 웅족, 신성神聖 민족은 방대한 시베리아 전역에도 많습니다.

이 고주몽의 어머니가 집에서 쫓겨나서, 동부여 왕 밑에 가서 아이를 길렀어요. 그런데 고주몽의 아버지가 해모수로 왜곡되어 있어요. 북부여 건국자 해모수는 고주몽의 고조할아버지입니다. 도통한 안함로安含老가 쓴 『삼성기』 상편을 보면 마지막 문장이 바로 “사해모수祠解慕漱 위태조爲太祖”, 해모수를 태조로 삼아서 제사를 지냈다고 했습니다. 나라를 창건한 시조가 태조太祖입니다. 이 우주의 창업의 역사를 여는 진정한 도통군자는 태일太一 인간이에요. 이 태일이 될 때, 궁극으로 인간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진리의 저 우주 바다, 조화 바다로 넘어갑니다. 우리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인간 몸을 받아가지고 이 순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고주몽이 해모수를 태조로 삼아서 제사를 지냈으니까, ‘내가 세운 이 나라의 실제 시조 할아버지는 해모수다’ 이겁니다. 그러면 역사가 어떻게 잘못됐느냐? 지금 우리 『삼국유사』, 『삼국사기』에는 북부여와 동부여가 비벼져 있고, 고주몽의 아버지가 해모수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도 그렇게 되어 있어요.

단군조선 말기에 중국의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이 동북아를 진정으로 대통일하는 진명천자眞命天子, 천지의 궁극의 진명을 받은 천자가 될 야망을 갖고, 북쪽 흉노를 핑계대고 쳐들어왔는데 그때 나라가 진정 멸망당할 위기에 누가 일어났느냐? 북방의 이순신 장군 같은 고두막한高豆莫汗이라는 서압록 사람이 일어났어요. 아마 이 양반도 북부여 왕족 계통 인 것 같은데 한무제를 몰아내고서, 북부여 5세 단군으로 즉위하려는 해부루解夫婁에게 보좌를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쫓겨난 해부루는, 재상 아란불阿蘭弗이 ‘동쪽에 가섭원迦葉原이 있는데 아주 자연 환경이 좋습니다. 그쪽으로 가시죠’ 해서 나라를 옮겨서 동부여라 했습니다. 수도가 가섭원이니까 가섭원 부여라고도 하죠. 이 북부여와 동부여, 가섭원 부여의 역사를 완전 복원한 분이 바로 이 호남 전라도 나주羅州에서 오신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입니다.

이분이 『진역유기震域留記』를 쓴 이명李茗과, 여섯 분 임금을 모신 고려 말 공민왕 때 재상을 지낸 이암李嵒과 더불어서, 9천 년 역사의 문서를 종합해서 경기도 천보산天寶山 암자에서 인재를 기다리던 소전거사素佺居士에게서 고기록을 전수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 분이 우리 역사를 복원을 하기로 결의혈맹을 했어요.

소전거사는 인류 창세 문화 역사를 복원한 아주 중심적인 인물입니다. 이분들을 도성덕립이 되면 대왕님으로 받들어 드려야겠다고 기도를 하고 있어요.

이 고주몽의 역사를 우리가 정리해 보면, 당대 신라의 천재 최고운(崔孤雲, 857∼?)이 당나라에 가서 충격 받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구려 역사는 9백 년 역사라는 것입니다. 중국 『신당서新唐書』에 기록되어 있는데, 가언충賈言忠이 당 고종에게 말하기를 “예전부터 고구려는 9백 년을 넘지 못하고 우리나라 노장老將에게 멸망당한다고 했습니다.”라고 했어요. ‘고구려는 9백 년이다’ 이겁니다.

고주몽의 고구려 건국 이야기
고주몽이 동부여에서 크다가 예씨禮氏 부인을 맞이해 가지고 거기서 아들을 하나 낳았어요. 이 아들이 유리琉璃 태자로서 훗날 고구려 2세 황제가 됩니다. 고주몽이 동부여를 떠날 때, 칼을 부러뜨려서 유리에게 주면서, ‘나중에 나를 찾아오면 너를 태자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동부여의 대소帶素와 그 측근들이, 주몽이 활을 잘 쏘고 인물이 비범하므로 왕권을 뺏길까 봐 죽이려 하자, 달아나면서 엄리대수, 송화강松花江을 건널 때 자라가 다리를 놓아줬다는 이야기가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에도 있습니다.

고주몽이 북부여를 찾아갔는데, 그때는 북부여 5세 단군 고두막高豆莫을 이어서 그 아들이 6세 고무서高無胥 단군이었어요. 고무서 단군은 딸밖에 못 낳아서 대가 거기서 끊어지는데, 고주몽이 고무서 단군의 둘째 딸 소서노召西弩를 맞이해서 사위가 되어 북부여를 계승했습니다. 이것은 고구려 역사의 비밀인데, 오직 『환단고기』에 실려 있고, 역사의 유물 광개토대왕 비문에도 나와 있습니다.

광개토대왕 비문에 이렇게 나옵니다. “아시황천지자我是皇天之子”, ‘나는 황천皇天의 아들이다. 삼신상제님의 아들이다’ 이런 말이 나오고, 그 다음에 “환지십칠세손還至十七世孫”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대대로 왕위를 계승해서 17세를 내려와서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 광개토廣開土, 널리 영토를 열었다는 것입니다.

아들 장수왕長壽王이 아버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서 이 비석을 세웠는데, ‘우리 아버지 광개토호태열제, 광개토대왕님은 원 창업 시조로부터 17세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고주몽으로부터 치면 13세손밖에 안 됩니다. 그러면 네 분이 빠진 겁니다. 지금 『삼국유사』 기록을 보면 그렇게밖에 안 돼요. 그런데 『환단고기』를 보면 해모수가 있고, 그 아들 고진이 있고, 고진의 손자 불리지가 있고, 거기서 고주몽이 나왔으니 해모수의 17세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개토대왕 비문이 바로 고구려 건국 9백 년 역사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북부여 6세 고무서 단군의 사위 고주몽은 스물한 살 되던 해, 서기전 BC 58년에 북부여 단군을 계승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42세 되던 해, 서기전 37년에 나라 이름을 고구려로 바꾸었습니다.

신교문화를 도통한 고주몽 성제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는데, ‘고구려’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환단고기』를 보면, 자기들의 태조 할아버지 해모수의 고향 땅 이름이 고구려라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것은, 대백제국의 역사 정신입니다. 백제국 역사의 실체, 그 문화 정신의 위대함을 깨치려면 백제 시조 온조의 아버지와, 동방의 최초의 여왕으로 등극한 어머니 소서노, 특히 아버지 고주몽의 역사의식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아야 합니다. 고주몽, 이분은 신교문화를 대도통한 성인 제왕입니다.

잠깐 고주몽 성제의 유훈遺訓을 한번 들어볼까요?

“『대변경大辯經』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고주몽 성제께서 다음과 같은 조칙을 내리셨다.

하늘의 신(삼신)이 만인을 한 모습으로 창조하고 삼진三眞을 고르게 부여하셨느니라. 이에 사람은 하늘을 대행하여 능히 이 세상에 서게 되었다. 하물며 우리나라의 선조는 북부여에서 태어나신 천제(상제님)의 아들[天帝之子]이 아니더냐!

슬기로운 이는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하며 계율을 잘 지켜 삿된 기운을 영원히 끊나니, 그 마음이 편안하고 태평하면 저절로 세상 사람과 더불어 매사에 올바르게 행동하게 되느니라. 군사를 쓰는 것은 침략을 막기 위함이며, 형벌의 집행은 죄악을 뿌리 뽑기 위함이니라.

그런고로 마음을 비움이 지극하면 고요함이 생겨나고, 고요함이 지극하면 지혜가 충만하고, 지혜가 지극하면 덕이 높아지느니라. 따라서 마음을 비워 가르침을 듣고, 고요한 마음으로 사리를 판단하고, 지혜로 만물을 다스리고, 덕으로 사람을 건지느니라.

이것이 곧 신시 배달 시대에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인간의 마음을 연 교화의 방도이니, 천신을 위해 본성을 환히 밝히고, 뭇 창생을 위해 법을 세우고, 선왕을 위해 공덕을 완수하고, 천하 만세를 위해 지혜와 생명을 함께 닦아[智生雙修] 교화를 이루느니라.”

고주몽 성제의 이 유훈을 읽다 보면 그 내용이 모든 종교의 성자들의 가르침 못지않고, 어떻게 보면 그보다 더 근원적이기 때문에 놀랍기도 합니다. ‘이게 조작된 문서가 아닐까? 그러면 조작을 한 그 사람은 공자·석가·예수보다 더 위대하냐?’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조작된 것이라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유훈을 보면, 아주 심원한 깨달음의 도통 경계에서 전하는 우리 역사 문화의 근본 주제, 인간의 창조론에 대해서 ‘균부삼진#均賦三眞’, ‘하늘이 고르게 만인에게 한 가지 상으로 삼진을 부여하셨다’고 했습니다. 세 가지 참된 것을 조물주의 그 신성과 광명, 우주의 지혜를 고르게 다 주셨다는 겁니다.

우리들 내면에서는 우주의 조물주의 삼신이 100%, 순도 100% 그대로 작동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위대하며 이토록 숭고한 존재란 말입니다. 인간은 영원의 생명, 불멸의 생명을 담고 있는 지존의 신비로운 존재인 것입니다.

‘부여’라는 나라의 계보
우리가 북부여의 역사를 놓고 보면, ‘부여夫餘’라 하는 나라가 한 여덟 개 정도 있어요. 부여라는 국호는 단군할아버지의 막내아들 ‘부여扶餘’에서 기원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단군조가 실제로 망한 것은 바로 44세 구물丘勿 단군 때 실제 쿠데타가 일어나가지고 거기서 역사가 완전히 다 무너졌어요. 그래서 삼한, 삼조선이 각각 병권을 가지면서 독립된 개별 국가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나라 이름을 그때 ‘대부여大夫餘’로 바꾸었습니다.

백제 26세 성왕聖王이 공주에서 부여로 옮기면서 나라를 ‘남부여南夫餘’로 바꾸었습니다. 성왕 당시의 역사 경영과 국제정세를 알면, 대백제가 문화 융성의 극치에서 어떻게 무너졌는지 느낄 수 있다고 봅니다.

단군조선은 진조선이 먼저 망하고, 번조선과 말조선(한반도)은 그대로 있었어요. 그런데 번조선 마지막 75세 준왕準王(기준)이 위만의 침략을 받아 왕검성에서 쫓겨나서 이 군산 어래산御來山으로 와서 익산益山 금마에서 조그만 나라를 열었습니다. 진조선보다 훨씬 후대에 망한 이 번조선의 준왕을 지금의 강단사학에서는 단군조선의 마지막 왕으로 보는 겁니다. 또 준왕의 본명이 기준箕準이니까 기자의 후손이고, 기자조선箕子朝鮮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자조선이 일시에 있었다는 설은 윤내현 교수와 그 제자들이 주장하지만, 사실 번조선은 기자조선과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기자의 후손들 가운데서 69세부터 75세까지 몇 분의 왕이 나온 것입니다.

단군조선 말에 해모수가 만주를 차지하고서 북녘 북北 자를 놓아서 ‘북부여北夫餘’라 했습니다. 그것은 단군조선의 마지막 왕조 대부여를 계승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후 한나라 무제가 쳐들어오자 동명왕東明王 고두막한高豆莫汗이 나오는데, 이 동명왕이 고주몽으로 왜곡이 되어 있어요.

그러고서 북부여에서 ‘동부여東夫餘’가 나왔습니다. 동부여는 해부루解夫婁, 금와金蛙, 대소帶素로 이어지는데, 대소가 전쟁터에서 고구려 장수 괴유에게 단칼에 죽고서 동부여가 망했습니다. 대소의 아우가 ‘갈사부여曷思夫餘’를 만들고, 대소의 종제가 ‘연나부 부여椽那部夫餘’를 세웠어요. 연나부 부여는 저 위쪽에 있다가 왼쪽으로 가서 ‘서부여西夫餘’가 됩니다.

이 서부여의 마지막 왕이 의려依慮이고 그 아들이 의라依羅입니다. 그때 모용외慕容廆가 쳐들어와서 나라가 망하는데 서진西晉이 도와줘서 그 아들이 나라를 회복했어요. 그 전에 백제 고이왕古爾王이 요서지역을 점령했으므로, 모용외가 침략했을 당시 의려 왕을 탈출시켜 백제 땅에 있게 했다가, 일본에 보내어 오진(應神) 왕이 되게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일본 최초의 통일 왕조 야마토(大和) 정권이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북방 기마민족이 내려와서 야마토 정권을 연 것이 아니라, 사실은 서부여와 대륙 백제와 여기 본 백제가 연합해서 연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해야 그 연대나 인물, 국제정세와 일치되는 총체적인 해석이 된다고 봅니다.

백제의 건국 과정
고구려 고주몽 성제의 아들 유리琉璃가 찾아와서 2세 유리명열제琉璃明烈帝가 됩니다. 유리가 동부여에서 찾아오자, 두 아들을 낳은 고주몽의 둘째 부인 소서노 입장에서 보면 미래가 불리하니까 아들을 데리고, 따로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곳이 패대浿帶 지역, 옛 대방帶方 땅이라 하는데, 대릉하와 난하 유역입니다. 그때 고주몽이 소서노에게 ‘어하라於瑕羅’라는 왕의 호칭을 내려주었어요.

여기서 초기 나라를 열었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큰아들 비류沸流가 계승해서, 인천 미추홀 지금 문학산 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땅이 습해서 이쪽 하남 위지성慰支城으로 와서 서기전 18년에 백제를 세워 한성 백제 5백 년 역사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주장했습니다. 쓰다 소키치, 오타 료, 그리고 환국을 제거하여 우리 역사의 근원을 말살한 이마니시 류가 주장한 것인데, 백제는 4세기 중엽 이후인 13세 근초고왕近肖古王(346~375) 때 가서 왕국이 실제로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그 이전의 역사는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초기 기록, 1세에서 12세까지 백제 왕의 역사는 다 거짓말 역사라는 겁니다.

이러한 잘못된 고대사 인식이 이병도를 통해서 전수되어서,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나오는 8세 고이왕古爾王(234~286) 때 와서 백제가 나라 노릇을 했다고 주장했고 이러한 설이 미국의 자연사 박물관 한국관에도 그대로 기록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어이없게도 1600여 년 전부터 나라 노릇을 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백제·신라는 형제국
이 백제 건국의 이야기에서 결론은 무엇인가? 지금 한반도에서 남북분단의 대결구조, 영호남의 보이지 않는 갈등, 불신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우리들의 마음을 하나 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북방의 고구려나 남쪽의 신라, 그리고 이 호남 백제는 다른 뿌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두막의 아들, 북부여의 마지막 단군 고무서의 사위가 된 고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했습니다. 고주몽은 북부여 시조의 5세손이므로, 혈통으로 보면 종통 적자입니다. 바로 그 고주몽의 친아들 온조가 내려와서 지금 서울 땅에다가 백제를 건국했습니다. 신라도 북부여 5세 고두막 단군의 외손자가 건국을 했어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는, 『환단고기』에 나와 있듯이 북부여를 계승한 고두막 단군의 따님의 아들입니다. 고두막한이 북부여 왕조를 위협해서 단군 자리를 빼앗아서 고두막 단군이 되었는데, 그 딸이 연애한 남자, 박혁거세의 아버지가 아마 북부여 왕손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멀리 가장 남쪽 땅 경주로 왔고, 육촌장六村長 가운데 소벌도리蘇伐都利가 모신 것으로 봅니다.

이처럼 고구려, 백제, 신라는 북부여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입니다. 이것을 알 때 우리 사회, 역사 속에 누적된 갈등의 모든 어둠을 아주 말끔하게 씻어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백제 역사의 대체적 흐름
백제의 역대 왕이 온조溫祚(재위, BC 57~AD 4)로부터 2세 다루왕多婁王(AD 28~ AD 77), 3세 고이왕古爾王(234~286)을 거쳐서 역사의 강건한 모습을 보인 13세 근초고왕近肖古王(346~375)으로 이어 왔는데요. 중국 동부의 옛 영토를 회복한 근초고왕은 평양에 쳐들어서 고국원왕故國原王을 잡아서 살해해 버렸어요. 그렇게 고구려의 왕을 죽임으로써 극단의 대결구조를 이루어서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이 쳐내려 왔을 때 21세 개로왕蓋鹵王(455~475)이 아차산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25세 무령왕武寧王(501~523)과 그 아들 성왕聖王(523~554), 그 다음에 마지막 의자왕義慈王(641~660)의 아버지 무왕武王(600~641)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 공주에 가보면 25세 무령왕의 유물을 볼 수 있는데, 무령왕은 대왕, 천자라 그랬어요. 무령왕의 아버지가 24세 동성왕東城王(479∼501)인데 이 동성왕 살해사건이 대백제가 무너지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어요. 그 다음 성왕을 거쳐서 동양에서 가장 큰 미륵불 사찰, 익산 미륵사를 지은 꿈이 마지막 의자왕에 와서 허망하게 무너집니다.

의자왕은 아버지를 잘 모시고, 형제간에 우애 있고, 아주 지혜로운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라를 쳐들어가서 642년에 경남 합천군에 있던 대야성大耶城의 성주인, 김춘추金春秋의 사위 김품석 부부를 죽였어요. 그래서 김춘추가 하루 종일 꺼이꺼이 울면서 ‘내가 반드시 백제를 멸망시키겠다’고 맹세를 했습니다. 신라의 김유신金庾信은 전생이 고구려의 신령한 점쟁이였다고 하는데, 고구려 왕비가 사통한 것을 점으로 은유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때 죽으면서 ‘내가 반드시 신라의 장군으로 태어나서 고구려를 멸망시키겠다’고 했습니다. 김유신 장군은 천상에서 칠성별을 타서 여기에다 찍어가지고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원한이 합작이 되어서 백제가 멸망당한 겁니다. 이 원한 관계에 의해서 결국은 신라가 당나라군을 끌어다가 멸망을 시켜 버려서 백제 역사가 허무하게 무너졌어요.

백제가 중국 동방지역 고토를 회복함


백제와 중국의 대외관계
백제가 한때 요서遼西, 진평晉平을 점령해서 거기에 어떤 왕, 제후를 두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환단고기』 「고구려국본기」를 보면 “백제이병百濟以兵으로 평정제노오월지지平定齊魯吳越之地하고 설관서設官署하야 색적민호索籍民戶하며 분봉왕작分封王爵하야 둔수험새屯戍險塞하며 군정부조軍征賦調를 실준내지悉準內地러니”라는 내용이 나와 있어요. 사실은 백제가 요서, 진평뿐만 아니라 산동성에 있는 옛날에 공자의 조국 노魯나라, 그리고 강태공의 제齊나라가 있었던 땅을 다 점령을 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고구려국본기」를 보면 강남 땅도 지배했다는 겁니다. 강남江南은 어디인가? 저 유명한 오吳나라, 월越나라입니다. 월나라의 구천句踐, 오나라의 부차夫差가 원수지간이라고 그러잖아요. 그 오월吳越의 강소성과 절강성까지 다 점령을 했다는 것입니다. 강남에 있는 월주越州에는 산음山陰, 산월山越, 좌월左越이라는 현이 있었는데 여기도 지배했습니다.

백제가 중국의 동부지역 특정한 몇 곳을 점령한 게 아니라, 지도를 보면 단군조선 때에 지배했던 저 위로부터 아래까지 거의 다 지배를 한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중국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양직공도梁職貢圖」라든지, 『양서梁書』, 『남사南史』, 『통전通典』, 『자치통감資治通鑑』, 또 청나라 때 나온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 자세하게 나옵니다.

이것을 전체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는 그냥 한반도 남부, 호남을 차지하다가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에게 멸망당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한반도의 백제 땅보다, 한반도보다 훨씬 더 큰 ‘대륙 백제’가 중국의 오른쪽, 동부지역을 거반 다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고주몽이 내세운, 단군조선의 영역을 복원한다는 그 강건한 다물주의多勿主義 역사통치 정신을 그대로 이은 것입니다. 26세 성왕 때 나라 이름을 남부여로 바꾼 것은 ‘우리는 부여다. 우리의 근원은 북부여다’라는 의식의 표현입니다. ‘남부여’라는 국호는, 고주몽의 다물주의에 따라서 반드시 옛 단군왕검의 번한, 번조선의 옛 영토를 되찾는다는 의지의 발로인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식민지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런 역사를 잘못 해석하고 잘못 기록하면 안 됩니다.

백제가 요서·진평으로부터 지금 산동성의 제나라, 월나라, 강남에 있는 월주, 이곳을 다 회복하여 대륙 백제를 이루어 대백제大百濟를 건설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단군조선 땅을 회복하는 고구려 다물주의의 꿈을 바로 이 호남, 충청 옛 백제의 성왕들이 완전히 실현한, 그 꿈을 성취한 주인공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중국의 『남제서』 「백제전」을 보면 ‘매라왕, 벽중왕, 불중후, 면중후’ 같은 왕과 제후, 즉 백제의 천자가 임명한 왕후王侯의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구당서舊唐書』나 『신당서新唐書』에 ‘백제왕은 동서 두 성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사기』 「열전列傳」 ‘최치원’에 보면, 당나라에서 상관上官에게 올린 그 글에 ‘고구려, 백제는 강성할 때 백만 대군을 가지고 남쪽으로는 저 오월을 침략하고, 북쪽으로는 유주幽州, 연燕나라, 제齊나라, 노魯나라를 소란케 해서 중국의 큰 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최고운도 그 사대주의 정신이 있어요. 왜 백제가 좀벌레인가요?

백제의 전체적인 역사과정에서 보면, 백제가 245년에서 580년대까지 한 340년 정도 ‘대륙 백제 시대’가 있었고, 이 시기에 중국 동쪽에 있었던 배달국, 단군조선 때의 영토를 복원했습니다.

백제 담로제


그러면 백제의 영토 복원이라는 것은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담로제檐魯制입니다. 이 ‘담로’는 무엇인가? 이것을 알 때 대륙 백제, 옛 대백제의 역사정신, 강력한 우주적인 문화 통치정신 복원력을 우리가 온몸으로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송서宋書』 원가元嘉 27년(451년) 조에, ‘서하西河(산서성 하동도 임분현) 태수에 백제가 풍야부馮野夫를 멋대로 임명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중국 사람들이 감정을 가지고 기록을 한 겁니다. 자기 나라 땅이었는데 백제에서 제후를 멋대로 임명했다고 한 것인데, 백제가 그 땅을 점령하여 옛 땅을 복원을 했으니까 그런 기록을 했어요. 요서뿐만 아니라 나머지 지역에 분봉지分封地가 있었고, 부용국附庸國을 거느렸습니다. ‘반파탁, 다라, 전라, 사라, 지미마련, 강시문, 하침라’ 같은 부용국, 제후국인데 지금 우리가 알 수도 없는 이름입니다. 24세 동성왕(479~501)과 25세 무령왕(501~523) 때에는 이 담로와 같은, 거점據點 성城이 발달했는데, 이런 것이 중국 역사 기록에 있어요.

「양직공도」에는, 이 담로는 중국의 군현郡縣과 같다고 하고, 국가를 통치하는 큰 성은 고마固麻라 한다고 했습니다. ‘읍邑을 담로라 하는데 중국의 군현과 같다’는 말은 『양서梁書』 「백제전」에도 나옵니다.

그러니까 동성왕과 무령왕 때,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중반까지 왕후를 임명할 지방행정 군현 조직이 대륙 백제 땅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호칭이 바로 담로입니다.

자, 지도를 볼까요? 백제의 22담로가 있었는데 여기 광양태수, 오서군, 진평군, 청하태수, 서하태수, 성양태수, 광릉태수가 있던 곳에 담로가 있었습니다. 저 아래 광서성에도 담로가 있었어요. 그런데 담로는 오키나와 유구국에도 있고, 대만과 필리핀에도 있고, 인도네시아까지 그 여러 나라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홍콩에서 수백 킬로를 가보면 거기 광서성에 백제역, 백제 마을, 백제 행정구역이 지금 그대로 다 있다는 겁니다. KBS에서 얼마 전에 이것을 취재해서 보여준 적이 있어요.

여기 보면 일본에는 담로도, 인도네시아 같은 데는 담수항, 저 위에 담수장, 저 말레이시아, 필리핀 같은 데도 담로문화가 있었습니다. 이 백제는 동아시아에서 국제무역을 한 해양 대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광서성 옆 광동성 같은 데에서는 ‘아빠담로’라는 말을 씁니다. 우리말하고 똑 같아요.

담로제의 기원은 『환단고기』에서 그 근거를 찾습니다. 6세 달문達門 단군 때 상춘常春, 지금의 장춘長春 구월산九月山에서 관경管境 내 모든 제후를 모아서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린 기록이 있습니다. 그때 폐백을 바친 자는 대국이 둘, 소국이 스물, 읍락이 3,624곳이었습니다. 크고 작은 나라 22개국이 와서 문화 종주 단군조에 조공을 바치고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같이 올렸습니다.

그래서 22개 담로의 기원을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대백제국은 역사 광복, 문화 복원 다물주의의 강력한 의지를 단군조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처럼 대백제국은 중국의 동부와, 중부 일부 지역, 남부지역, 그리고 동아시아 전체를 통관하는 대국이었습니다. 대백제는 삼신문화, 삼한문화 통치방식에 따라서, 한반도보다 몇 배 더 큰 대륙 백제에 우현왕右賢王을 두어 통치하고, 일본은 15세 응신 왕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야마토 정권 당시 나라(奈良) 이쪽 지역에 좌현왕左賢王을 보내어서 일본을 통치했습니다.

백제 문화의 정수


신교의 종통 계승과 완성
백제 문화는 우주광명 원형문화 신교의 종통을 계승하고 그것을 크게 성숙시켰습니다. 신교문화의 근원은 천상 북두칠성에 있는 우주의 수도 옥경玉京 문화입니다. 그 옥경에는 상제님의 궁전 광한전廣寒殿이 있는데 그 광한전을 여기 남원南原에다가 갖다 놨어요. 저 남원에 있는, 춘향전의 배경이 된 광한루廣寒樓는 천상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를 지상에 베껴 놓은 것입니다.

또 하남시河南市에 가보면 이성산성二聖山城이라든지 교산동 토성土城 같은 데에 북두칠성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백제는 신교문화의 중추신경이라 할 수 있는 삼신오제三神五帝 문화를 계승했습니다. 백제는 온조왕 때부터 천제를 지냈어요. 2세 다루왕 때도 남쪽 제단에서 천제를 지냈습니다. 또 오제五帝를 신앙했는데, 우주의 동서남북 중앙 오제와 천신에게 사중월四仲月, 한 계절의 중간 달인 2월, 5월, 8월, 11월로 1년에 네 번씩 제사를 지냈습니다. 삼신상제님과 오방위 천신들에게 제를 지내는 것은 문화의 종주에서만 행할 수 있는 큰 제사문화인데요. 서양문화에는 이런 우주관이 없어서 이런 문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환국에서 문화가 제대로 넘어가지 못했어요.

백제는 민중 미륵신앙의 세계 중심지
백제는 미륵신앙의 세계 중심지입니다.

우리가 불교 중심으로 보면 우주광명 부처, 법신불이 인간으로 화한다고 하는 미래의 부처, 미륵불이 인류 역사를 근본적으로 개벽하고 인류의 마음을 부처님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중심이 지금의 김제 금산사金山寺입니다. 여기에 진표眞表 스님이 와서 미륵전을 세웠습니다. 이분이 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아주 혹독한 방법으로 참회를 하면서 결국은 미륵님으로부터 직접 도통을 받았습니다.

익산의 미륵사지彌勒寺址는, 미륵님의 천상 용화낙원을 완성한다고 하는 상징으로, 가서 보면 장엄합니다. 여기에 9층 석탑이 있고, 3탑과 3금당이 있어요. 미륵은 3수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3회 설법을 해서 인류를 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고, 미륵님이 원래 도솔천 천주님으로 인류의 원형문화, 삼신문화의 원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동빈呂洞賓이라는 분이 도를 통해서 천상에 가보니까 도솔천의 원주인이 바로 하나님이고 삼신상제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불가에는 그렇게 깨달은 사람이 문헌에 없습니다. 그런데 있기는 있어요. 왜냐? 절에 가보면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문화가 있어요. 석가불보다 더 높은 지존의, 우주의 궁극의 부처님 말입니다.

백제 무왕武王이, 앞으로 오시는 미륵님의 꿈을 이루려는, 미륵님의 대행자 전륜성왕轉輪聖王, 샹카대왕을 자처했습니다. 26세 성왕聖王은 일본에 미륵불 문화를 전했습니다. 광륭사廣隆寺에 있는 미륵반가사유상#彌勒半跏思惟像은 일본의 국보 1호입니다. 지구촌에 억만 개의 문화재가 있지만, 이 불상은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가 말했듯이 ‘진실로 완벽한 인간 실존의 최고 경지’를 보여줍니다. 인간이 정말로 우주의 진리의 인간, 태일 인간이 된 모습을 보여주는 유일한 조각품입니다.

신라 최초의 절로 미륵불을 모신 흥륜사興輪寺가 있었는데, 제가 그 공업고등학교 마당에 가보니까 절터가 그런대로 남아 있더라고요. 그리고 백제에는 미륵불을 모신 익산 미륵사彌勒寺가 있어요. 미륵사에는 처음 세웠던 9층 목탑을 근거로 해서 9층 석탑을 세웠는데, 이 석탑이 석가탑의 기원이 됐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백제의 예술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금동대향로金銅大香爐를 보면 아래에 용이 있고 위에 봉황새가 여의주를 딛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악사樂士들이 있고, 그 악사들의 아래 문양과 연꽃이 3단으로 돼 있는 데, 사실은 이것이 아마 지구의 예술의 극치일 것입니다. 또 백제의 왕이 일본에 전해 준 바둑판을 제가 일본에 가서 보니 참 놀라웠습니다. 백제의 조각품이라든지 문화 예술품은 지구에서 정상, 극치를 달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 동방 신교, 우주 문화를 전수한 과정
백제는 일본에 동방 신교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민족은 오히려 패망을 당하고, 35년 노예생활을 하면서 약 8백만 이상이 무참하게 죽고, 그리고 역사 뿌리가 말살됐습니다.

그런데 백제 좌현왕이 일본을 통치했습니다. 50세 간무(桓武) 천황은 우주광명 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일본 역사 뿌리를 내린 사람입니다.

한반도에서 백제 사람들이 얼마나 일본에 건너가서 살았는가? 『속일본기續日本紀』를 보면, 기내畿內 지역의 인구는 80~90%가 백제 사람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기내 지역은 일본 조정이 있던 나라(奈良), 오사카(大阪), 교토(京都), 효고 현(兵庫縣) 일부입니다. 효고 현에는 치우천황의 문화가 들어갔어요. 아스카 문명의 발상지인 다카이치 군(高市郡) 즉 나라 현도 80~90%가 백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 고대사의 실체는 단순히 그냥 문화를 전수받은 것이 아니고, ‘백제 사람, 한반도 한국인들의 이민의 역사’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일본에 문화를 전한 백제계 왕들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가타카나, 히라가나 언어를 만든 분은 이 전라도 호남에서 간 왕인 박사王仁博士입니다. 일본에 문화를 전한 왕인과 아직기阿直岐가 다 왕족인데, 제가 아직기 왕자를 찾아 일본을 가보니까 그 신사가 텅텅 비어 있고, 실제로 모시지 않아요. 일본에는 백제왕을 모시는 신사도 있고, 왕인 박사를 섬기는 신사, 무덤도 있는데 사람들이 전혀 가지 않아서 그 신사가 초라하고 조금 있으면 폐사가 될 지경입니다.

29세 흠명欽明(539~571) 왕은 일본인이 아닙니다. 백제 성왕이 50명 특공대를 가지고 신라군과 싸우다가 잡혀서 죽은 걸로 알려져 있지만, 변복을 하고 일본에 가서 흠명 왕이 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학자가 그런 주장을 하고 홍윤기 교수님도 주장하는데, 이 흠명 왕이 백제에서 불상을 받아서 일본에 처음으로 불교를 보급했습니다.

그리고 미륵반가사유상은 신라의 진평왕眞平王이 전했다고 하지만, 그 기술은 백제 기술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 나무는 강원도 태백산에서 나는 홍송紅松이라 하는데, 지금 일본에서는 자기 나라에서 나는 나무이고, 자기들 기술로 만든 것이라고 거짓말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30세 민달敏達(572~585), 비다쓰 일본 왕은 백제 사람입니다. 일본의 『일본서기日本書紀』와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 기록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 책 원본을 가지고 있는 우에다 마사아키라는 분을 홍윤기 교수가 직접 만나서 그 원본을 읽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말씀도 들었어요.

비다쓰 왕은 백제 관복을 입고 백제 말을 했으며, 신하들도 전부 백제 관복을 입었습니다. 백제 궁궐을 짓고 ‘대정大井’이라는 백제 우물을 파고, 장례식도 백제 장례식으로 치렀어요.

33세 추고推古(592~628) 왕은 아스카 문화를 크게 열었는데, 이복 오빠인 민달왕의 황후였어요. 34세 서명舒明(629~641) 왕은 백제궁과 백제대사百濟大寺를 짓고 9층탑을 세웠습니다.

37세 제명齊明(655~661) 왕, 사이메이는 백제가 멸망당할 때 백강구白江口 전투에 군사 2만7천 명, 선박 4백 척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패망을 당하자 그 일본 군사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는 이제 영원히 조국, 아버지 나라에 올 수가 없다’고 했다는 전설과 기록이 있습니다.

40세는 천무天武(673~686), 텐무인데 조선시대 수양대군首陽大君 같은 사람입니다. 천무는 자기 형의 어린 아들을 죽여버리고 천신과 약속을 합니다. ‘내가 왕권을 잡으면 당신을 우리나라 국조신國祖神으로 받들겠다’고 했는데 그 신이 유명한 여자 신명,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가미’입니다. 그래서 일본 국조신이 40세 천무 때 나왔어요.

50세 환무桓武(781~806)는 환桓의 정신을 부활시켜 헤이안(平安) 시대를 열었습니다. 환무는 광인光仁(770~781) 왕의 아들인데, 백제 성왕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고 백제계가 분명합니다. 49세 이후 지금 125세 왕까지 전부 백제계입니다. 일본의 왕은 백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아주 확실하게 역사의 진실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일본 왕이 ‘우리 먼 어머니의 계열은 화신립和新笠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화신립은 누구인가? 바로 광인 왕의 왕비입니다. 일본에 순타 태자純陀太子(?~514)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백제 무령왕의 아들이고, 이 순타의 딸이 화신립和新笠, 야마토노 니이가사입니다. 야마토 왕조의 대화大和 사상은 바로 윗대 조상들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우주광명 문화, 대화가, 하나의 생활실천 사상으로 나온 겁니다.

제가 화신립이라는 환무의 어머니 무덤에도 한 번 가봤는데, 청룡·백호도 없고 시원찮았어요.

백제에서 일본으로 전수된 문화·문물
일본의 문화 역사에서 보면, 놀라운 것이 무엇인가? 백제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칠지도七支刀가 있습니다. 일본 18대 전지腆支 왕 때 전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선세先世 이래 이와 같은 무기가 없었다’고 하면서 왜왕에게 하사한 하행下行의 외교문서는 백제와 일본의 종속관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칠지도는 홍산문화에서 나온 옥검玉劍과 그 형상이 유사해요. 칠지도는 칠성문화를 근거로 해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일본의 문화에서 크게 좀 깨우쳐야 되는 게 ‘사무라이 문화’입니다. 고구려의 조의선인皂衣仙人, 신라의 화랑花郞, 백제의 기사도 무절武節과 같은 삼국의 신교 무사 집단이 일본에 들어갔습니다. 일본 요시노산(吉野山) 금봉산사金峯山寺는 수험도修驗道의 본부인데, 거기를 가보면 수험도를 닦는 사람들이 고구려 조의선인처럼 검은 옷을 입어요.

일본에는 지도에서 보듯이 여러 곳에 수험도 도장이 있습니다. 규슈에 가보면 영언산英彦山에 환웅상桓雄像을 모신 곳도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동방 기사단으로서 여러 곳에서 각기 고구려적인, 백제적인, 신라적인 낭가郎家 문화를 열었습니다. 이처럼 일본의 사무라이, ‘칼잡이 문화’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동방 원형 기사단 문화를 융합한 것입니다.

일본 내 백제계와 신라계의 싸움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지배한 이 이등박문伊藤博文은 원래 빈천한 집안 출신인데 귀족 명문 집안에 양자로 가서 교육을 받고 유학도 가고 했어요. 안중근에게 총 맞아 죽은 이등박문은 동아시아를 다 삼키려 했던 자인데, 이 사람이 본래 사무라이 가운데서 닌자(忍者)였습니다.

일본의 명치明治(1867~1912)의 아버지 효명孝明(1846~1866)은 워낙 완고했기 때문에 일본의 개화파들이 명치의 아버지를 제거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일부에서 그런 정보가 책으로도 묶여져 나왔지만, 우리나라에 초대 통감統監으로 온 이등박문伊藤博文이 그때 닌자, 자객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효명 왕이 화장실에 올 때, 칼을 가지고 그 아래 들어가서 항문을 찔러서 급사시켰다는 일본학자의 글이 있어요.

일본에 명치유신明治維新(1868)이 일어나기 전에 조슈(長州) 번藩에서 변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의 무사 계급을 대표하는 성씨가 두 가지가 있는데, 신라계는 겐지(源氏)이고 백제계는 헤이씨(平氏)입니다. 겐지는 흰색 깃발을 들고, 헤이씨는 붉은 깃발을 세우고 싸웠어요. 이 두 집안의 싸움을 겐페이노 다다카이(源平の戦い)라 부르는데, 겐지냐 아니면 헤이씨냐 해 가지고 막부幕府에서 정권을 주고받았어요.

일광 동조궁과 에도시대
임진란 때 쳐들어 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죽기 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내 아들이 커서 그릇이 되면 네가 보필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네가 천하를 가지라’고 했다는 말이 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가 20대가 되어서 오사카 성에서 도쿠가와와 맞장을 떴습니다. 한 달 이상 싸우고 물러갔다가 해가 바뀌자 또 쳐들어왔는데 그때 히데요리가 무참하게 죽잖아요. 그 어머니는 아들 배를 찌르고, 히데요리는 자기 어머니 배를 찔렀다고 합니다. 제가 30년 전에 답사했을 때는 그 위패가 오사카 성 벽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그러고서 도쿠가와가 후세를 기약하면서 자청해서 동경東京으로 가서 부임을 했는데 그게 에도(江戶)시대의 시작입니다. 일본은 역사 대세가 조국의 고향에서 자꾸 떨어져서 동쪽으로 가는 과정이에요. 중국도 서방에서 자꾸 동쪽으로 가는 과정이죠. 그런데 중국은 원래 고향으로 가고 일본은 고향에서 멀어져 갑니다.

이렇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를 차지한 이후 그 손자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가 할아버지를 워낙 존경해서 대궁전을 확장해서 참 멋지게 세웠습니다. 그게 ‘닛코(日光) 동조궁東照宮’입니다. 닛코는 일광입니다. 태양 광명, 우주의 광명이에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나를 닛코에 묻어다오’ 이렇게 유언을 해서 거기에다 사당을 지었는데, 그것을 대궁전으로 복원을 한 겁니다. 궁전을 복원할 때 만5천 명 장인과 4백5십만 명의 인력을 동원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동조궁을 가는데, 껍데기만 보고 와요. 『환단고기』의 9천 년 문화 역사가 바로 여기 닛코산, 닛코 동조궁에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용봉, 도깨비가 그냥 꽉 들어차 있어요.

왕은 허수아비이고 실제로 쇼군(將軍)이 왕 노릇을 했습니다. 이 막부에서 265년을 다스립니다.

덕천가강의 묘가 뒤에 있다고 해서 가 보았는데, 수백 년 된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계단을 타고 올라가 보니 그 산의 풍광이 정말 멋있어요. 거기에 철제를 씌워 놨는데 그게 팔각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백제에는 8대 성씨가 있고, 팔각형 문화가 있었습니다. 이 8수 문화는 우주광명의 영원불멸 신선문화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금동대향로도 연꽃 문양이 3단으로 되어 있고, 그 조각된 것이 셋과 여덟으로 되어 있어요.

일본은 동경 에도시대를 열고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 이후로 자기들이 자생自生 왕조사를 씁니다. 그래서 초대 신무(神武)로부터 100대 고코마츠(後小松) 왕까지 해서 저 유명한 『대일본사』 397권을 250년 동안 써서 1906년에 완성합니다. 이때 조선은 멸망을 당했습니다. 역사의식에서 패망당한 겁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와 조슈 번
일본의 역사 운명은 저 유명한 세키가하라(關ケ原) 전투에서 결정되었습니다. 그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서군과 동군이 그 들판에서 붙었어요. 우리가 역사 답사를 가서 겨울날 찬바람을 맞으면서 세키가하라 넓은 들판에서 벌어졌던 역사 이야기를 박물관에서 자세히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리 밑에 있었던 장수 하나가 배반을 했어요. 모리 테루모토라는 자가 동군과 짜고 ‘싸움에 참여하지 않을 테니까 나중에 승리를 하면 나의 거대한 영지를 보존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당시에 130만 석을 추수했다고 합니다. 그랬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한 뒤에 그 영지를 몰수해 버리고 조슈(長州) 번藩 조그만 귀퉁이를 줬어요.

그래서 대대손손 원한이 축적이 되어서 나중에 조슈 번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명치유신의 주역들이 전부 여기서 나오는데, 이등박문도 여기 출신이에요. 이등박문이 영국에 유학을 갔는데, 조슈 번에서 혁명이 준비됐으니까 빨리 오라고 했어요. 그때 명치의 아버지 효명 왕을 제거하는 일을 맡아서, 어릴 때부터 궁궐에서 효명과 같이 큰 토모미와 짜고서 명치 아버지를 죽였는가 봅니다. 안중근安重根(1879∼1910) 의사가 이등박문을 제거할 때 내세운 열 가지 죄목 가운데 하나가, ‘명치의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라는 것입니다.

백제 땅에서 완성된 신교문화의 우주 열매


신교 우주광명 문화의 인간 주제, 태일


오늘 말씀에서 본론 셋째의 결론은, 신교문화의 우주 열매, 태일문화가 바로 백제 땅 호남 함평咸平에서 완성됐다는 것입니다.

지난 9천 년 역사 문화의 주제를 크게 보면 한 글자로 ‘우주광명 환’입니다. 살아있는 우주의 신의 참모습이 자연수 이치로 드러난 것이 천일, 지일, 태일 즉 하늘과 땅과 인간입니다. 인간은 하늘땅 천지부모와 하나 되기 위해서, 천지의 꿈과 이상세계를 건설하는 진정한 역사의 주인, 주체로 살기 위해서, 북녘 하늘의 하나님의 별 칠성에서 몸을 받아서 내려왔습니다. 그 칠성에서 모든 조상들이 우리를 지금 이 순간 지켜보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목적은 바로 큰 마음을 가진 태일이 되는 것입니다. 서양 학자들은 태일을 grand one, great one, 또는 ultimate one이라 하는데, 한 여성이 특이하게 the ultimate big one이라고 기가 막히게 번역하고 있어요.

우주광명 문화는 이미 한 세대 전에 홍산문화에서 드러나서 인류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어요. 크게 보면 5천 년에서 9천 년 전까지의 동북아 역사문화 시대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환국과 배달과 조선 문화의 신교, 삼신문화의 원형입니다. 이것이 해석이 안 되니까 총묘단塚廟壇이 무엇인지, 왜 원형 천단인지, 왜 무덤이 사각형인지 모른단 말입니다. 본래의 원형 역사 문화의 주제가 신교이고, 하늘과 아버지를 모든 인간 만물의 생명의 큰 부모님으로 모셔서 천지부모의 마음의 본성을 기하학의 상징으로서 원방각圓方角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은 천지부모 사상의 문화정신, 문화 상징입니다.

태일은 바로 천지 꿈을 이루는 진정한 문화의 주인입니다. 북녘 하늘에는, 인간이 몸을 받아가지고 오는 하나님이 계신 상제님의 별 칠성이 있고, 그 칠성이 모시고 있는 북극성이 있습니다. 태일은 천문에서 이 북극성 곧 태일성을 말합니다.

태을문화, 우주광명 문화의 진리 열매 태을주
지금 전라도 남원南原의 선국사善國寺에 가보면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가 있어요. 석가 부처를 이 세상에 내려 보내신 삼신상제님과 함께 도통을 결정짓는, 우주의 조화권을 쥐고 계신 분입니다. 도통은 한 분이 주는 게 아니고, 삼신상제님의 도장 위에, 북극성의 그 하늘을 ‘태을천’이라고 하는데, 이 ‘태을천太乙天 상원군上元君’님의 천지조화권 도장이 찍혀서 도통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동방 전통 수행문화의 경전의 비조鼻祖라 하는 그 유명한 책, 천지일월법天地日月法으로 공부하는, 『참동계參同契』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 주석에, 도성덕립道成德立이 되면 “태일내소太一乃召”라, ‘도통 받기 직전에 태을천에서 너를 부른다’ 이겁니다.

도통 받기 직전에, 너의 도와 덕이 무르익으면, 그런 그릇이 돼서 꽉 찰 때가 되면 태을천에서 영신을 불러서 도통을 준다는 사인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치성광여래입니다. 치성광여래의 원본이 보스턴 박물관에 가 있어요. 거기 보면 앞과 뒤에 열여섯 분이 있습니다.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때 사실은 백제 우주광명 문화정신의 근본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광명 문화의 종통이 고구려, 신라보다도 이 호남 백제권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옛 백제의 땅, 이 호남과 충청 문화권인 함평咸平에서 한 구도자가 50년 동안을 하루 같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기도를 해서 도통을 받았어요. 그렇게 해서 태을문화, 우주의 광명문화, 신교문화의 진리 열매가 바로 태을주입니다. ‘훔치 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입니다.

태일사상의 근원, 「천부경」
태일문화, 태일인간론, 태일 도통 인간의 문화사상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9천 년 전에 삼신상제님이 내려주신 「천부경天符經」에 있습니다. 천부경 읽는데 20초도 안 걸려요.

자, 원본을 볼까요?

다 함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석삼극 무진본析三極無盡本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天一一地一二人一三 일적십거 무궤화삼一積十鉅無櫃化三”, 여기까지가 상경입니다.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天二三地二三人二三 대삼합육 생칠팔구大三合六生七八九 운삼사 성환오칠運三四成環五七”, 이것이 중경입니다.

하경은, “일묘연 만왕만래一妙衍萬往萬來 용변부동본用變不動本 본심본태양 앙명本心本太陽昻明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현토를 한번 붙여볼까요?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이요 석삼극析三極 무진본無盡本이라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이니 일적십거一積十鉅라도 무궤화삼無櫃化三이라 천이삼天二三 지이삼地二三 인이삼人二三이니 대삼합육大三合六 생칠팔구生七八九하고 운삼사運三四 성환오칠成環五七이니라 일묘연一妙衍 만왕만래萬往萬來하야 용변부동본用變不動本하니라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 앙명昻明하니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하야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이니라.”

여기서 ‘용변부동본用變不動本’을 번역하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기존 번역을 다 뒤집어서, 전통 해석과 종통 해석이 융합된, 개벽 우주의 미래적 해석, 그것이 진정한 창조적 해석입니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하나에서 나왔다, 우리 모두는 하나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나와 이 온 우주가 하나에서 나왔으면, 그 ‘하나’는 무無라고 하는 그 태극의 근본, 일태극一太極의 근본인 무극無極의 조화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석삼극무진본析三極無盡本’, 바로 이 하나 속에는 그 셋이 들어있다는 겁니다.

하나 속에 셋이 있다, 그래서 이 하나가 셋으로 드러난 것이 삼극三極입니다. 세 가지의 가장 지극한 실재, 생명의 실재 그것이 하늘과 땅과 인간, 천극·지극·인극입니다. 이것을 천일·지일·인일, 인일을 다른 말로 태일이라 합니다. 하늘은 양의 근원, 어머니 땅은 음의 근원, 사람은 천지 음양의 합입니다. 이 3이라는 수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도 우주의 삼신의 수평적인 세 손길, 조교치造敎治 삼신이 몸에 자리 잡을 때는 수직으로 해서 성性과 명命과 정精입니다.

동서 종교와 우주 사상의 원천: 우주 일 년
근대사에서 참된 선언은 ‘다시 개벽이 온다. 십이제국에 괴질병이 온다’는 말씀입니다. 남을 정복하고, 강권과 온갖 권력으로써 억압하는 이 선천 상극 문화는 앞으로 남녀노유 할 것 없이 한 번 총체적으로 인간 씨종자가 정리된다는 것입니다. 지구촌에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이 함께 온다는 말씀입니다.

동학의 ‘다시 개벽’은 바로 참동학에서 후천개벽 사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동학이나 주역에는 선후천 개념이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동경대전』 어디에도 선천·후천 개벽이라는 말이 없어요. 정역正易에도, 주역에도 없는 겁니다. 이것은 참동학 증산도에서 체계적으로 실제적으로 ‘우주 일 년 사상’으로 나오는데요. 천부경 이후 복희·문왕·정역 팔괘가 선후천 개벽사상으로 완성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결론은 무엇인가? 지금은 우주 일 년 129,600년으로 사계절이 열려서, 인간이 우주 봄철에 다 함께 태어나고 우주 여름철까지 성장을 해 나갑니다. 이제 이번 우주 일 년에서 봄여름 선천이 끝나고, 후천 가을을 맞이합니다. 모든 인간은 반드시 살아야 하는 두 개의 하늘이 있습니다. 그것이 선천과 후천입니다. 지금은 여름 불의 계절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입니다. 이 선후천 교역, 하추 교역, 선후천 개벽 사상으로 인류 역사, 인류 문명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 대세를 총체적으로, 종합적으로 지혜의 눈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역사, 문명 해석의 근거가 되는 올바른 지평이 바로 이 우주 일 년입니다.

이 우주 일 년은 참동학에서 처음 나온 것입니다. 참동학 초기 보천교는 그 신도가 6백만에 달했습니다. 미국 국무성 ‘뮬러 보고서’라든지 조선총독부 기록에 6백만인데, 7백만이라는 설도 있어요. 태사부님이 10대 때 도인들이 집에 와서 ‘소강절邵康節, 129,600년, 앞으로 오는 개벽, 원형이정, 오행’ 이런 것을 말했고, 그때 머리에서 이 우주 일 년이 그려져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사부님이 해방 후 20대 때 이걸 그려주신 겁니다.

이제 앞으로 이런 대변혁, 개벽이 옵니다. 2세기 전에 동학에서 ‘다시 개벽 아닐런가, 부재래지不再來之 운수로다’라고 했습니다. 최수운 대신사가 남원에서 외쳤던 그 위대한 칼노래에 나오는, ‘다시 만날 수 없는 큰 운수’가 이 우주에 꽉 차 있습니다. 그것은 가을 우주의 운수, 후천개벽의 운수입니다.

천부경에서 이미 우주의 진리 선언의 최종 결론으로서, 인간주의 원형사상 ‘천일, 지일, 태일’이 함평 땅에서 완성이 됐어요. 초나라의 위대한 시인 굴원屈原이 노래한 초사楚辭 가운데 ‘구가九歌’의 첫 부분에 ‘동황태일東皇太一’이 나옵니다. 동황태일이 무엇인가?

이것을 보통 단군왕검이라 해석하지만, 사실은 ‘동방의 임금님, 황제들은 태일’이라는 것입니다. 동방의 본래 문화 전통은 천지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게 원래 왕王이라는 글자의 뜻입니다. 하늘과 땅과 인간을 꿰뚫었다 이겁니다. 이홍범 박사도 『아시아 이상주의』에서 그걸 언급했어요. ‘동방 광명민족이 우주 광명문화를 열고 흰 옷을 즐겨 입는다’는 그 흰 백白 자에다 임금 왕王 자를 쓰면, 황皇 자가 됩니다. 이것은 중국문화가 아니에요. 우주광명 신교문화, 인류 원형문화의 종주인 한국의 조상이 바로 동황東皇입니다. 환국의 안파견 아버지 환인과, 배달의 커발환 환웅과, 단군조선의 신인왕검 이분들이 ‘동황’이고, 이분들이 ‘태일’입니다. 천지와 한마음으로 역사를 창조하고 백성을 다스린 분이 동황태일입니다. 단군왕검으로만 보는 것은 역사의 큰 틀을 못 보는 것입니다.

태일 광명 인간이 되는 길: 태을주 수행


태일문화, 천지와 하나 되는 그 마음을 열어주는 신령한 글, 천상의 우주의 노래가 태을주太乙呪인데요. 우리들을 진정한 도통문화로 이끌어 주는 주문입니다.

이 주문을 정의한 말씀이 있습니다. ‘만사무기萬事無忌 태을주.’ 이 세상의 어떤 장벽, 나를 못살게 구는 어떤 어둠의 세력, 주변 인간의 어떤 조직의 장애, 또는 자기 자신의 인간적 한계, 지혜 부족 같은 영적, 물리적인 모든 장애를 극복하게 해 주는, 천지조화로 그것을 다 제어하는 해 주는 천지 법력이 있다 해서 ‘만사무기 태을주’입니다.

그리고 ‘소원성취 태을주’, ‘만병통치 태을주’입니다. 올바른 정신을 갖고 하면 소원을 이룹니다. “내가 천지의 조화의 생명수 수기水氣를 이 주문에다 다 붙여 놓았다. 내가 천지의 약기운을 태을주에다 다 뽑아놓았다.”는 상제님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태을주는 약주문’입니다. 제가 40년째 답사를 하고 있는데, ‘태을주는 약 주문이다’ 하는 증언 말씀이 상제님의 후손에게서 한 1~2년 전에 나왔어요.

그래서 태을주는 ‘무궁무궁無窮無窮 태을주’, ‘만사여의萬事如意 태을주’입니다. 만사가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의주如意呪는 태을주, 태을주는 여의주’입니다.

이 태을주는 ‘5만 년 운수 탄 사람이나 읽는 주문’입니다. 그래서 “죽는 세상이 아니면 전해 주기가 아까우니라.”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후천개벽으로 우주광명의 새 세상이 열린다
장차 ‘다시 개벽’이 가을 우주를 여는 것은, 우주론으로 말할 때 후천개벽을 말하는 것입니다. 동학에서 우주론이 실제로 정리가 안 돼서 ‘다시 개벽’이 무엇인지, 개벽의 그 속 내용이 무엇인지 지금 이 순간까지 대한민국의 각 분야의 기라성 같은 박사님, 교수님들이 제대로 정의해 놓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이 지구촌에 가을 우주가, 가을 천지가 열리는 그 시간의 경계선을 지금 사회학자, 미래학자 들이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임팩트 존Impact Zone 등 여러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제가 이번에 미국을 가서 저녁에 미국 텔레비전 H채널, 히스토리(역사) 채널을 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어떤 종교보다도 열 배, 백 배 강력한 종말론을 특집으로 틀어주고 있었습니다. 지구촌 인류가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는 인간 멸종의 가능성 열 가지를 정리했는데, 제목이 ‘둠스데이Doomsday’, 종말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둠스데이의 부제는 ‘인류가 멸종당하는 열 가지 가능한 이야기’인데, 히스토리 채널 들어가서 한번 꼭 보세요. 제가 다섯 가지를 보다가 그냥 자버렸는데 거기 보면 외계별이 떨어지는 것, 전쟁, 핵전쟁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동학에서 선언한 병란, 이름을 알 수 없는 병이 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미국에서 1930년대 중반부터 보여주는 게 좀비 문화예요.

1960년대 중반에 좀비 문화의 명화가 나온 게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좀비 문화가 나왔는데 그게 뭔가요? ‘부산행’이죠. 또 일본에서 나온 것으로 최근에 한국 사람들도 많이 본, ‘나는 영웅이다(I am a Hero)’는 잔인무도한 게 아주 기가 막히죠. 이 좀비 영화는, 앞으로 병란이 와서 인간이 말할 수 없는 병적 인간, 악마로 변질된 것을 보여주잖아요. 서로 잡아먹고, 옮기고, 막 파괴할 때 인간의 삶과 문화, 역사, 전쟁사에서 가장 잔혹한 극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드라큘라, 흡혈귀의 진정한 속편은 앞으로 오는 병란을 예고합니다.

이런 테러 또는 대지진, 화산폭발, 또 자동차 사고 같은 숱한 재난을 극복하는, 모든 재앙을 극복하는 천지조화의 노래가 태을주입니다. 태을주를 잘 읽으면 전쟁에 나가서도 살아오고, 자동차가 몇 번 굴러도 크게 다치지 않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지난 1백 년 동안 숱한 증거가 있습니다.

새 역사 창조의 심법으로 참된 주인공이 되자
우리는 조상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다 파괴되고, 왜곡, 말살, 조작되어서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 역사로 시작되었다고 배웠습니다. 기껏해야 한 2천 년, 길게 잡아도 2천7백 년밖에 안 된다고, 강단사학자들이 여러 가지 잘못된 근거를 대기도 합니다.

오늘 개벽의 땅, 동학혁명의 땅, 우주 광명문화의 태일사상의 완결지인 함평을 끼고 있는 백제의 땅, 인류 새 문화의 성지, 이 지구문화의 중심 성지에서 반성해 볼 때, 우리가 그동안 배운 역사학은 ‘죽음의 역사학’입니다. 자기 부정의 역사, 희망이 아닌 패망의 역사학입니다. 이 백제 땅 호남 충청은 지구촌을 대동세계, 천지 낙원으로 만들 수 있는 위대한 9천 년 광명문화 역사의 힘, 지혜, 저력을 품고 있는 곳입니다. 근대 역사의 동학혁명, 개벽운동이 이곳 백제의 땅에서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이 잘못된 역사관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문화 대혁신, 인류 문화 혁명의 근본 주제인 광명 인간, 태일의 새 역사 창조의 심법을 우리가 참동학을 통해서 다 함께 새롭게 각성해야 하겠습니다.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 일만 나라 인류를 건져내는 새 문화의 법방, 새 진리 법방은 조선의 남쪽 땅에서 나온다는 말씀과 같이 옛 백제 땅에서, 우주광명 문화의 복원이 진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참된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 드리면서 오늘 말씀을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