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7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

    [입도수기]

    상제님 신앙의 종갓집을 만나다 외 (오봉남, 김태형, 이영옥, 윤상기, 이민화, 박봉남, 이인섭, 정수연, 이동준, 권영근, 김범석)

    상제님 신앙의 종갓집을 만나다


    오봉남(92, 남) / 서귀포동홍도장 / 147년 음력 5월 입도

    저의 증조부님은 제주도 성산 일출봉 앞 오조리에서 사셨습니다. 증조부님은 어린 아버지를 데리고 선도(보천교)에 입도하셨습니다. 마을에는 친척들이 많이 살았는데 친척과 이웃들이 길에서 마주치면 ‘선도쟁이는 떠나라.’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점점 정도가 심해져 못 견디고 신흥리로 이사하여 신앙을 계속 이어 나가셨습니다. 저는 1926년 병인생으로 신흥리에서 태어나 보천교의 맥인 ‘명도암 무극대도’(제주시 봉개동 명도암에서 개창) 신앙을 70년 가까이 했습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무렵 제주도에서는 ‘묻지 마 갑자생’이란 말이 돌 정도로 18세가 되면 건장한 남자들은 모조리 태평양, 필리핀, 미얀마 등 일본의 전쟁터로 보내졌고 그보다 어린 청년들은 노역장으로 끌려갔습니다. 1943년 제 나이 18세 때 모슬포에서 미국의 공습에 대비하기 위해 바닷가 절벽에 굴을 파는 곳으로 끌려갔다가, 20세 때 그만 폐병을 얻어 생명이 오늘내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다음 해인 1946년, 초기 보천교 신앙을 하였던 용강 강승태 선생이 무극대도를 창립하자 과거에 보천교를 믿었던 신도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아버지도 폐병에 걸린 저를 용강 선생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용강 선생이 7가지 약재를 달여 20첩만 먹으면 폐병이 낫는다고 하였는데 약을 먹고 기적처럼 폐병이 나아서 아버지와 저는 무극대도에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용강 선생은 1937년 무렵 공공연하게 일본 왕과 일본 군대에 대한 비방을 서슴지 않았는데 장차 일본은 장광 팔십리가 불바다가 되어 참혹하게 망하고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고 정도령이 나와 우리나라가 세계를 주도하는 나라가 된다고 선동하여 일제에 의해 검거되었습니다. 1940년 광주지방법원에서 1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는데 그로 인해 신도들의 동요가 많았습니다. 신도들이 면회를 가면 “내가 곧 나간다.”고 하였고, “그게 언제입니까?”라고 물으면, “을유년(1945년)까지만 기다려라.” 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1960년 용강 선생이 돌아가시고 이듬해 종통 문제로 세 교단으로 갈라졌고 저는 종통 계승자인 김승례 선생을 따라 명도암을 떠나 서귀포 서홍동에 ‘홍로교(후에 동도법종금강도)’라는 간판을 걸고 새 출발을 하였습니다. 김승례 선생은 첫 치성 때 신도들을 모아 놓고 ‘우리 일을 헤쳐 나가는 데 너무 험난하다. 불길 속을 넘어가야 하는데 넘어가지 못하겠구나.’ 하며 눈물을 흘렸다 합니다. 후에 홍로교당 건물이 화재로 소실되었을 때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불길에 돌아가셨습니다.

    증산도와의 인연은 도전 답사팀이 제주도에 와서 상제님 말씀에 대한 증언을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수차례 증언을 하면서 종도사님의 인품과 상제님 대업에 대한 열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종가집인 증산도 신앙을 생각하고 있던 차에, 5월 초 서귀포도장 포정님과 포감님이 집에 찾아와 입도를 권유했을 때 흔쾌히 입도를 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5월 28일 입도식을 사흘 앞두고 꿈에 한 남자가 나타나 “증산도에 가지 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증산도에 죽어도 가겠습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남자가 또다시 “증산도에 가지 마라.”고 하였고 저는 또 “나는 증산도에 죽어도 가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또 “증산도에 가지 마라.” 하기에 세 번째에도 죽어도 가겠다는 대답을 하였는데 다음 날 오후에 바람을 쐬러 마당으로 내려서다 제 손에 지팡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만 몸이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하고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간신히 기다시피 하여 방으로 들어왔는데 숨이 가빠지고 온몸이 부서질 듯 통증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포정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포정님께서 간밤에 꿈자리가 이상하다며 별일 없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당에 나갔다가 넘어졌는데 거동도 못 하고 있어 아무래도 입도식에 못 갈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몇 시간 후 ‘원방청심원’ 두 병을 사 가지고 오셨습니다. 바로 한 병을 마시고 이튿날 한 병을 마셨는데 막힌 곳이 뻥 뚫린 듯 기운이 나고 통증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점심때가 되어 연동도장 수호사님과 포정님 등 여러 도생님들이 오셔서 집에서 입도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금잔디가 깔린 마당에서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날 밤 꿈에 죽은 누이동생이 나타나 “잃어버리지 말고 OOO도생에게 전해 달라.”며 한자가 써진 종이를 제 손에 쥐어 주었는데 꿈에서 깨어 꽉 쥔 손을 펴 보니 종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동생이 보여 준 종이의 글자를 알아내려고 기억을 더듬어 보았으나 앞의 네 글자는 기억이 나는데 뒤의 대여섯 글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皆道合義 OOOOOO”

    92세가 되어 증산도에 정식으로 입도하게 되어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젊은 시절 죽음의 고개도 여러 번 넘었습니다. 4남 3녀의 자식 중 큰아들이 저를 따라 제주선도를 열심히 신앙하였는데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도 큰며느리와 손자가 가끔 집에 찾아와 주어 항상 고마움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제 신앙의 시조인 증조부님께서 보천교에 아버지를 입도시키실 때 “우리 손자 길을 찾아 주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셨다는데 저 또한 손자들에게 길을 찾아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과거 신앙인들이 꿈꾸었던 그 세상을 지금의 도생님들이 꼭 이루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리 탐구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다


    김태형(20, 남) / 태전유성도장 / 147년 음력 5월 입도

    지난 3월, 충남대 철학과에 입학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시기였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길을 걸어가다가, 학생회관 앞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증산도 동아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중에 한 분이, 설문조사 참여를 해 달라고 해서 흔쾌히 참여를 하였습니다. 설문을 받은 분이, 인도자인 김 도생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역사 왜곡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 주었고, 동아리방에 한번 꼭 와 보라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느낌이 들어서 그 다음 날 바로 동아리방으로 찾아갔습니다.

    며칠 동안 매일 동아리방에 찾아가서, 역사와 하도낙서, 우주 원리, 개벽 소식에 대한 증산도의 진리를 들었습니다. 김 도생은 저에게 『한민족과 증산도』 책을 주었고, 찬찬히 독서해 가며 시간 나는 대로 동아리방에 찾아갔습니다.

    ‘이 세상에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철학과를 진학한 저는 한 학기 동안 대학 수업을 들으며 ‘중, 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을 조금 더 어려운 말로 다시 배우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제게 김 도생이 해 준 한마디가 생각이 납니다. “진짜 철학 공부를 하려면 증산도를 알아야 한다.” 『한민족과 증산도』, 『개벽 실제상황』을 읽고, 동아리방에서 진리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리 갈급증을 풀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었습니다.

    처음에 사배심고와 수행을 종교의식은 싫다는 이유로 거부했었는데, 공부를 해보니 수행 문화가 인류의 원형 문화고, 단순한 종교의식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고 배례와 수행도 점차 해 나가면서, ‘태을주를 제대로 읽으려면, 천지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 과정이 입도다.’라는 말을 듣고 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좋아하였는데, 상제님의 진리를 만나는 과정에서 느낌과 감성에 의지하는 제 자신을 보고, 진리라는 것이 이법 공부만이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진리공부와 수행에 힘쓰겠습니다.

    상생방송을 보고 태을주를 읽다


    이민화(74, 여) / 인천송림도장 / 147년 음력 4월 입도

    2015년 6월 29일 어느 날 STB 상생방송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종도사님의 <환단고기 북 콘서트> 프로그램을 통해 말씀과 자료와 현장을 실감하고 느끼며 몰랐던 역사 의식에 공감하였고 이후 자주 방송을 시청하였습니다.

    진리 방송을 시청 중 인류 최초의 성씨인 강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사랑하는 어머니의 성씨가 진주 강씨라는 점과 그 어머니께서 장독대에 항상 깨끗한 모습으로 청수 기도를 정성껏 드리던 모습이 떠올랐고, 이러한 연고로 친밀감이 느껴졌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큰 오빠가 강제징병으로, 작은 오빠는 탄광으로 끌려간 절박한 상황에서 간절한 어머니의 정성기도가 응감되었던지 두 오빠는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오빠가 스릴 넘치는 탄광 탈출 이야기를 재미있게 쏟아내며 이야기할 때 재미있게 듣고 웃었던 어린 시절의 순간들이 떠올랐고, 그때부터 태을주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기도문을 처음 접하면서 전철 기다리는 시간, 좀 외진 곳에서도 열심히 읽었고 붓글씨를 써 보기도 했습니다. 그 후 아랍에미리트에 사는 딸 집에 3개월 가 있으면서도 아침 청수 수행을 한국 동쪽을 향해 빠지지 않고 해 왔으나 어쩌다 이렇게 늦게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아랍 여행 중 자벨 자이스Jabel Jais(산악) 여행과 페르시아의 청정 해역, 바다가 산이 된 광경과 무지개 떡시루같이 바닷속에서 솟아오른 수십 개의 산맥을 감상하면서 천지개벽이 실감되었고, 탄성이 터졌으며 상제님의 이 거대한 작품을 직접 눈으로 접했다는 것이 신비롭고 감사했습니다. 귀국 후 상생방송 시청이 일상화되고 천지 이치와 상제님, 고수부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사계절, 물, 불, 바람, 공기 등 하늘님과 땅님이 세상에 펼쳐준 자연을 보며 불만이 많았던 생활을 반성하고 보은의 생활에 성심을 다해야 함을 다짐 또 다짐합니다. 보은.

    진리에 확신을 갖게 해 준 상생방송



    이영옥(49, 여) / 태전대덕도장 / 147년 음력 4월 입도

    결혼을 하며 오랜 천주교 신앙을 하던 시댁을 따라 천주교에 다니던 저는 가정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성당을 나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어렵긴 했지만 신앙을 계속하리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직장 동료가 어딜 가고 싶은데 혼자 가기 어렵다며 같이 가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흔쾌히 허락하고 둘이서 간 곳은 OO진리회였습니다.

    함께 간 직장 동료는 이미 OO진리회에 다니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OO진리회라는 것을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방문한 곳에서 조상님에 대해 말을 하면서 치성을 올려 드리자는 말에 하고 싶은 맘이 들어 당일 치성을 드렸는데, 앞으로도 ‘계속’ 방문하여 정성을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곳에 계속 방문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고 거절을 했지만 치성을 드리고서 많은 체험이 있었기에 이 단체가 뭐 하는 곳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상제님에 대한 이야기는 충격적이긴 했으나,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공부할 수 있는 자료는 없었으며 『전경』을 주겠다고 돈을 가져갔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받지 못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행위들에 여기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그만두게 되었지만 상제님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체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해답을 얻고 싶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증산도’라는 곳이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확신이 없어 여러 가지 서적이나 종교 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불교방송을 보며 왠지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불교 대학을 가게 되었고 참선을 오래 하신 스님과 인연이 되어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참선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정된 생활과 더불어 마음에 흔들림이 적고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상제님에 대한 궁금증이 계속 들었습니다. 방송을 통해 ‘상생방송’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증산도에 대해 궁금했지만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익산에서 살던 저는 2011년 대전으로 오고 싶은 마음에 형편이 어려움에도 대전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대전에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상생방송 시청을 하고 버스정류장 가판대에 증산도 관련 서적이 있어 가져오긴 했으나, 연락이 오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 저는 연락처를 남기지 않고 『천지성공』이라는 책자를 가져왔습니다. 빨리 읽고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려고 했으나 쉽게 읽어지지 않았습니다. 읽으면서도 종교에 대한 합리화일 거라는 생각이 들고 정말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상생방송에서 방영된 ‘환단고기 북콘서트’ 종도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자동으로 눈이 커지고 집중하며 보게 되는 저를 발견하였습니다. 증산도는 거짓이 아니라는 생각에 『천지성공』을 읽고 『환단고기』 책자도 샀지만, 무엇보다 『도전』이 보고 싶어서 세종문고에서 책을 구입하여 읽었습니다. 증산도가 참 진리라는 확신이 들면서 빨리 가서 공부하고 싶어졌고, 가판대에서 가져온 책자를 돌려줄 생각에 세종문고에 가서 도장 위치와 전화번호를 여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마침 대덕도장 포정님께서 세종문고 2층 상생문화센터에서 교육 중이라고 하였고 잠시 후 포정님을 직접 모시고 오셨습니다.

    다음 날 방문 약속을 하고 도장에 찾아갔고 진리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태모님 성탄치성에 참석하였으며, ‘24시 태을궁 철야수행’에 참여하기 위해 서둘러 입문을 하였습니다. 이후로도 포정님 및 도장 성도님들과 자시 수행을 태을궁에서 하였는데 몸이 피곤하기는 했지만 정신이 맑고 몸도 치유되는 느낌이었습니다. ‘21일 태을궁 자시 수행’이 끝나고 갑자기 세종문고에 찾아가기 전날 꿈이 생각났습니다. 와 보지도 않은 태을궁에서 몇몇 도생님들과 함께 도공을 하고 있었는데, 종도사님께서 관리자 같은 분들과 말씀을 나누신 후 저에게로 오셔서 머리와 어깨를 잡아 주시며 수행을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다음 다시 밖으로 나가시는 꿈이었습니다. 저는 꿈을 깨고 나서 왜 밤에 수행하는 꿈을 꾸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도 더 지난 그 꿈 내용이 지금 하고 있는 수행과 같다는 것을 알고 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미리 꿈을 꾸는 것일까? 현실로 벌어지는 일이 신도 세계에서 선행됨을 꿈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천지와 더불어 조상님께서 만들어 주신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 조상님, 천지신명께 보은하는 마음으로, 상제님 참 진리 안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보은!

    “사람 되게 해 주십시오”


    윤상기(71, 여) / 서울동대문도장 / 147년 음력 5월 입도

    상생방송을 4년이나 보고서...

    몸과 마음에 많은 상처를 입고서야 70살이 넘어서 상제님을 찾아온 미련한 사람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내 힘으로 해 보겠다고...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고 혼자 어떤 수고도 아끼지 않고 해결해 온 그런 생각, 행동 때문에 빨리 상제님께 찾아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32살 때부터 급성 류머티즘과 당뇨를 앓게 되어 40년이란 세월을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좌절하지 않고 죽을 것 같으면 단식을 하고, 온몸이 차가워지면 쑥뜸을 반복하면서 오늘까지 살았습니다. 몸이 아프면 약이 있지만, 마음이 아프면 약이 없습니다. 작년 재작년부터 이어져 온 부부간의 갈등으로 너무 지쳐서 저도 모르게 도장을 찾아와서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21일 정성수행을 시작하던 날 저녁에 도장에 앉아 있는데 상제님 태모님 모습을 뵈니 저절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TV에서만 보던 분들을 직접 뵈니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제가 갈망하는 일들이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제가 평생 수행하며 살아야 될 곳이 이곳임을 생각하니 너무나 감개무량했습니다.

    도공 2일째 밤에 너무 많은 기운을 받아서 놀랐고, 도공 중에 부모 형제가 감응하여 한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너무나 보고 싶고 그리운 부모 조상님. 한 번도 천도식을 해 드리지 못했는데, 천도식 해 드릴 생각을 하니 빨리 그날이 기다려졌습니다.

    입문하기 전 꿈에 제가 귀신 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도저히 벗을 수가 없었습니다. 옷이 쇠처럼 무겁고 딱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하고 염불을 해도 벗어지지 않아 평소에 알고 있던 태을주를 3번 읽으니 그 옷이 벗겨졌습니다.

    또 저에게는 유산된 아이가 둘이 있는데 그 애들을 처리하는 과정을 꿈으로 보게 되어 저에게 죄가 많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1일 정성공부’ 중에 제물치성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도장에서 봉직하시는 재정님 앞에 유산된 두 애들이 나타나 억울하다고 울어서 재정님이 눈물을 참느라고 힘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잊고 살았는데, 그 애들은 항상 저를 따라다니며 그들의 억울함을 호소했던 것입니다. 미련한 저는 그것도 모르고 보이는 세상일에만 매달려 살았었습니다. 제가 도장에 온 것을 알고 도장에 따라와서 재정님께 억울함을 호소했다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입도 전 정성공부 기간 중 일어난 며칠간의 사건으로 인하여, 제가 저 혼자만의 몸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제님이 저를 늘 살피시고, 조상님이 지켜주시며, 자손들이 부모인 저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은 채 함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20년 전 제가 도봉산에 있는 한 절에 갔다가 엄청난 폭우와 함께 산사태가 나서 주위 사람들이 다 죽는 큰 사고가 있었는데,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쾅’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 보니 누군가 저를 천막으로 싸서 강아지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작은 구멍에 집어넣은 것 같았습니다. 되돌아보니 상제님과 조상님들의 보호였음을 더욱더 알게 되었습니다.

    상제님 진리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상제님 앞에서 말과 행동을 상제님 보시기에 좋은 것만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지나온 세월 동안 모두 남의 잘못으로 내가 불행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모두 저의 잘못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나온 세월은 할 수 없고 앞으로는 저의 언어와 행동을 조심하겠습니다.

    평생 구해 본 것이 없는데 이젠 상제님께 구할 것이 많습니다. 먼 옛날 배달국이 세워질 때 웅족과 호족이 ‘사람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한 그 말의 뜻을 이제야 깨닫고, 제 기도의 첫 번째는 “사람 되게 해 주십시오.”로 시작됩니다.

    세상에 어떤 곳에서도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상제님 진리를 만나게 해 주신 상제님과 부모 조상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신앙생활 하는 데 변함없이 잘 하도록 끊임없는 보살핌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상제님 부모 조상님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생명과 바꾼 고귀한 진리


    박봉남(39, 남) / 안산상록수도장 / 147년 음력 4월 입도

    저는 어려서부터 가정불화로 인해 마음고생이 많았습니다. 부모 자식 사이도 별로 안 좋고 가족들이 질병에 시달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달아 일어난 교통사고로 식구들 모두 경제적 육체적 심리적 고통도 겪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중국 길림성 연길시에서 살 때 중화양생일지공(단전호흡)을 하면서 진리 공부를 조금 했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나은 삶을 살아 보려고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왔습니다. 어머니는 저희 두 아들의 편한 삶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셨습니다. 그런데 한평생 고생만 많으셨던 어머니께서 불행하게도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식 된 도리로서 생명이 경각을 다투는 어머니에게 해 드릴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만 보면서 마음 아프고 괴롭고 슬펐습니다.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병간호를 해 드릴 뿐이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병이 너무 깊어 질병의 고통을 안고 하늘 나라로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운명하시기 며칠 전 증산도에 다니는 이모님을 따라 안산상록수도장에 다녀온 후, 저희 두 자식을 보고 “나도 건강이 좀 나아지면 증산도를 다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형과 저는 병석에 누워 계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이모님과 함께 증산도 진리 공부를 해서 어머니를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입도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시작해서 보니 이전에 중국에서 알고 있었던 것보다 인생과 우주에 대해서 엄청난 진리를 더 깊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형과 함께 입도를 결심하였습니다. 어머니의 고귀한 생명과 바꾸어 알게 된 상제님 진리를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태을주 수행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결코 어머니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어머니의 소원이 태을주 수행을 통해 이루어지게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형과 힘을 합쳐 어머니 49재를 기해 조상님을 천도해 드려서 큰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상생방송과 도전 말씀으로 길을 찾다


    이인섭(57, 남) / 안양만안도장 / 147년 음력 5월 입도

    나이가 들면서 종교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작년 여름 말복 때쯤 TV 종교 방송을 돌리다가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말씀하시는 분(종도사님)이 보통 사람 같지 않게 강의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매우 흥미로웠고 호기심도 느껴져 꼭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시간이 될 때마다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0월 말경 친구들과 같이 대둔산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역사찾기 서명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서명을 하였습니다. 그때 안내해 주던 한 분이 『천지성공』이라는 책을 보내 주어서 읽어 보았는데 내용이 가슴에 와닿고 새로운 진리를 알아 가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책을 보내 준 그 분이 틈틈이 핸드폰 문자로 상제님 말씀을 보내왔습니다.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서점에 가서 『도전』을 구입해 읽게 되었습니다. 읽으면서 빨리 증산도에 찾아가고 싶어 친구에게 같이 가 보자고 했더니 그 친구는 관심은 있지만 책을 더 읽어 보고 가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직업이 포클레인 기사로 경제 활동상 주로 지방을 많이 다녀야 하는 관계로 자주 만나 얘기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닙니다. 그래서 금년 4월, 책 뒤편에 전국 도장 전화번호를 보고 안양만안도장에 전화를 하였고 수호사님을 만나 상담을 한 후 입도 공부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삼생의 인연과 조상의 음덕으로 상제님 진리를 만난 것에 무한 감사를 드리며 가족과 친구들을 꼭 많이 살리는 일꾼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보은.

    나의 가치관과 맞았던 증산도


    정수연(19, 여) / 진주도장 / 147년 음력 4월 입도

    저는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천안에서 약 13년 정도 살다가 2년 전 진주로 이사 왔습니다. 저는 처음에 진주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여 친구 덕운이와 반은 달랐지만 방송부를 같이 하는 것을 계기로 친해졌습니다.

    저희는 만나면 말이 잘 통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친구들 중에서 제일 친해졌습니다. 속 깊은 이야기도 곧잘 꺼냈고 우주 얘기와 ‘신’에 관한 얘기 등도 많이 했습니다. 덕운이와 얘기를 하다 보면 항상 그런 주제들에 대한 가치관이 참 잘 맞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덕운이로부터 ‘우주1년’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듣고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항상 해 왔던 우주에 관한 생각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항상 신을 믿어 왔습니다. 교회의 하나님도 아니며 불교의 부처님도 아닌 그 어떤 분이 꼭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 어떤 분을 믿어 왔습니다.

    그러던 중 덕운이를 통해 ‘증산도’에 대해 알게 되었고 상제님과 우주1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증산도가 매우 궁금해졌고 덕운이를 따라 도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태을주’를 알게 되었습니다.

    태을주를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고 도장에서 다 같이 읽을 땐 제가 굉장히 작아지고 저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커지는 신비한 경험도 했습니다. 또한 꿈에서도 태을주가 나와서 제가 저를 보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신비한 경험들은 더욱 저를 증산도로 이끌었고 제 일상 속에 태을주를 깊숙이 집어넣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저는 증산도의 한 부분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동시에 증산도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증산도에 입도를 하게 되면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상제님의 진리에 대해 공부하고 신앙을 해 볼 생각입니다. 다른 도생님들은 몇십 년을 찾다가 증산도를 만나게 되었다고 하시는데 저는 10대의 나이에 이렇게 쉽게 증산도를 만나게 되어 정말 행운이며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청수를 마시며 체험한 치유의 기적


    이동준(82, 남) / 전주경원도장 / 147년 음력 5월 입도

    저는 본래 기독교를 20여 년을 신앙해 온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의 친절함과 세심한 배려 속에 오래도록 교회를 다니며 기독교 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저는 대학에서 침술과 한방에 대해서 공부를 해 왔고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동양의학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기독교를 신앙하면서도 기독교 진리의 허구와 모순, 부족한 부분을 많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3년 전에 우연히 TV를 보다가 ‘상생방송’을 시청하게 되었고 방송 프로그램 중에서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의 ‘대도 말씀’과 안경전 종도사님의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꾸준히 시청하면서 지금까지 기독교를 신앙하며 풀리지 않았던 진리 의문들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저는 집에서 3년여 시간을 꾸준히 상생방송을 같이 시청하게 되었고 방송을 보고 태을주를 따라 읽기도 하였습니다.

    3년 전 저의 아내에게 파킨슨병이 찾아왔습니다. 매일 새벽 기도를 하면서 아내의 병이 낫길 간절히 기도했지만 병에 차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저의 안식구가 청수를 올리고서 수행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청수를 각자 모시고 상제님, 조상님을 찾으며 기도를 하고 수행을 한 후에 청수를 마셨습니다. 그랬더니 신비스럽게도 손발이 흔들리는 증세도 줄어들고 지금은 거의 정상인에 가깝게 좋아지면서 증산 상제님이 진정한 참 하느님이구나, 내가 찾는 참 하느님이 증산도의 강증산 상제님이 맞구나 하는 확신을 더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집에서 아내와 저는 꾸준히 상생방송을 시청하는 가운데, 청수 올리고 수행을 하면서 언젠가 도장에 나가 상제님 신앙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늘 기독교에 과연 진짜 참 하느님이 계신가? 참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에 대한 의문을 늘 간직하며 기독교 진리의 모순을 알면서도 오래된 목사님과의 인간적인 정 때문에 정리를 하지 못하고 교회를 계속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주경원도장 포정님께서 가끔 전화와 문자를 주시면서 도장에 방문을 권유하였지만, 차일피일 미룰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과의 오래된 친분과 인간적인 배려로 교회에 발걸음을 끊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차에 교회 담임 목사가 올해 2월에 바뀌게 되면서 교회에서의 신앙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전주경원도장에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래 미루다가 도장에 방문하자 포정님께서 환히 맞아 주셨고 친절한 안내로 21일 정성수행과 입도 공부를 같이 해 볼 것을 권유하여 진리 공부와 수행, 도공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도장에 꾸준히 나가며 21일 태을주 정성 수행과 팔관법 공부를 통해서 증산도에 대해 더 체계적으로 알게 되었고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상생방송을 몇 년을 봐도 정리가 안 되던 부분이 도장에 나와 팔관법 진리맥 공부에 집중해 보니 며칠 만에 진리의 맥이 환히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포정님께 웃으며 말을 합니다. “혼자 상생방송 보며 독학 몇 년 하는 것보다 며칠간 집중해 팔관법을 이렇게 개인 교습 받게 되면 빨랐을 걸 그리 미뤄왔으니 후회스럽다”고 말입니다.

    나이가 많이 든 탓에 이렇게 상제님 진리를 늦게 만난 것이 많이 아쉽습니다. 오랜 시간 앉아 있기도 불편함이 있고 활동력이 예전 같지 않지만 꾸준히 도장에 나와서 포정님의 말씀을 잘 받들고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하자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해 봅니다. 비록 늙고 부족하지만 도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입도할 수 있게 도와주신 포정님과 경원도장 도생님들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입도를 허락해 주신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 그리고 조상님께 보은하는 참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덧없는 인생에서 나를 건진 최고의 진리


    권영근(53, 남) / 춘천중앙도장 / 147년 음력 5월 입도

    저는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도 별 관심 없이 그냥 그렇게 10대 시절을 보냈고, 20대 후반에 친하던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과 존경하던 선배 형의 교통사고사, 동거녀의 죽음 등으로 인해 죄책감과 인생의 덧없음을 겪으면서 ‘종교와 신은 과연 있는 건가. 있다면 무엇을 나에게 전해 줄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친구가 찾아와 성경을 공부해 보자며 기독교 계통의 한 곳으로 저를 인도하였습니다. 별다른 관심도 없었고 장삿속 같다는 일정한 선입관도 갖고 있었지만, 6개월간 초등, 중등, 고등 교육을 받고 시험을 거쳐 OOO예수교 춘천교회에 입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공부한 바로는 ‘요한계시록’이라는 그 어렵고 난해하여 이 지구상에서 제대로 손도 못 댄다던 예언서를 비유와 말씀의 짝을 찾아 이렇도록 이치에 맞게 푼다는 것에 대해 놀랐습니다. 또한, 내 자신이 성경 2,000년사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에 1998년부터 2005년까지 교회 봉사자로 근무하면서 강사후보생 교육도 이수를 받고 대기 발령 상태로 신앙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도를 못 하는 그 내면의 쓰라린 아픔 속에서 갈등에 억눌려 있었고, ‘나도 견디기 힘든데 누구를 데려와 희생시킬 것인가’에 대한 갈등으로, 말씀은 맞는데 재직자들의 도덕성과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내 길이 아닌 모양이다, 나에게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그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죄책감과 더불어 제 인생의 불쌍한 말로로 인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술과 억지로 살며 인생을 구걸하는 삶을 보냈습니다. 어머니에게 마지막 효도나 하고 나머지 인생을 산속으로 들어가 덧없이 살다 가자는 생각으로 3~4년 동안 어머니 병 수발을 하며 함께 지내다가, 작년 6월에 모친이 작고하신 후로는 이별의 아픔에 술을 낙으로 삼고 지내던 중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방송 프로그램 가운데 특히 ‘북콘서트’에 관심을 갖고 시청하였는데 뭔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2~3달 정도 관심 있게 시청하던 중에 춘천시 공지천에서 포교를 하시던 도생님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 책 두 권을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받은 지 일주일 후 도생님의 연락으로 도장을 찾았고, 교육을 통해 ‘내가 기독교 내에서 가장 숭고한 지구상 최고의 진리를 알고 있었는데’라는 고정 관념이 일순간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여태까지 왜 몰랐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이것은 지구 역사상 마지막 대개벽이구나’ 하는 놀람과 황홀함에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권영근 인도자 수기

    말씀과 기도를 통해 만난 인연


    김범석(남, 36) / 춘천중앙도장, 교무종감

    지난 몇 년 동안 학교 공부를 계속해 오면서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직장 생활을 함께 병행하여, 물리적인 시간은 물론이고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마음의 여유도 전혀 없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정유년을 맞이하며 어떤 이유로 학교 공부를 잠시 중단하게 되었고, 그동안 쌓여 온 정신적인 스트레스 등이 몸에까지 영향을 미치어 건강도 매우 안 좋아지게 되면서, 심신이 조금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의 건강을 위해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여태까지와 같이 일주일에 이틀만 직장을 다니면서 몸을 회복시키게 되었는데, 정신적인 부분은 회복이 쉽지 않았습니다.

    지난 몇 년간 시간도 부족했거니와, 심신이 너무 지쳐 도장에도 잘 나가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태을랑으로서도 활동이 매우 미진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중 춘천중앙도장에 수호사님이 새로 오시면서 도장 분위기도 바뀌게 되었고, 저도 그 바뀌는 기운을 잘 받아 내어 우선 몸의 건강보다 정신 건강을 회복시키자는 생각으로 수행과 도전 봉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도전을 읽던 도중에 “나를 따르는 자에게는 모든 마가 먼저 발동하나니 능히 시련을 받고 나야 복이 이르느니라. 고생을 복으로 알고 잘 받으라. 만일 당하는 고생을 이기지 못하여 애통히 여기는 자는 오는 복을 물리치는 것이니라.”는 2편 25장 말씀이 어찌나 마음에 와닿는지, 제가 30대 중반까지 고독하게 살아오면서 행복했던 날이 언제였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난 고생들이 물밀 듯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상제님 말씀을 몇 번씩 생각하며, ‘내가 지나온 삶들이 힘들었던 것은, 내가 후천에 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이다. 조상님들과 내가 쌓아 온 전생의 원한과 과오가 청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 원한과 과오가 정리가 안 되고 어떻게 후천에 가게 되겠는가. 수많은 조상님들께서도 선천 상극의 세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삶을 사시면서 원한과 빚을 지게 되셨을 텐데, 내가 자손 된 도리로서 당연히 그 원한과 빚을 갚아 내야지! 원한 맺힌 신명들도 자손인 내가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원한이 조금은 풀어졌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니 정신이 차분해지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이래서 상제님께서 어설피 믿다 뒈지려거든 아예 믿지를 말라고 하셨구나. 어설피 믿다가 고생만 하는 것보다 아예 믿지 않으면 선천에서 안락은 누리다 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수행을 하니, 수행이 잘 되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것이 회복되고 몸도 건강해졌습니다.

    몸과 마음이 좋아지면서 3월부터 포교 활동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4월 15일 토요일에 벚꽃 보러 오시는 분들이 많으니 도장 도생님들과 함께 소양강댐으로 활동을 나갔습니다. 사람들 많이 다니는 곳에서 오전에 1시간 반 정도 홍보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관리하시는 분이 오셔서 이곳에서는 활동을 할 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여 할 수 없이 춘천의 ‘공지천’이라는 유원지로 활동 장소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약 1시간 정도 되었는데, 자전거 타고 지나가시던 분이 상생방송 홍보 소리에 멈춰 서서 다가오셨습니다. 그분이 이번에 입도를 하신 권영근 도생이십니다. 상생방송을 들어보셨는지 여쭤 보니 꾸준히 시청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한번 방문을 부탁드리려고 도장 위치를 말하려는데, 위치도 이미 알고 계셨으며 건물 입구까지 갔다가 들어가기까지는 용기가 안 나서 되돌아갔다고 하셨고, ‘상생방송’을 시청하면서 나도 한번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을 하시길래, ‘이분을 만나려고 소양댐에서 쫓겨나서 이곳에 이 시간에 오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화를 하면서 『한민족과 증산도』라는 책을 전해 드리고 연락처를 받은 후에, 딱 일주일 후인 태모님 성탄 대치성일 오전에 전화를 드렸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반겨 주셨고, 받아 온 책자는 이미 다 읽었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어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증산도에 큰 행사가 있어서 대전에 내려가게 되어 도장에 아무도 없으니 내일 방문을 부탁드린다고 했더니 흔쾌히 수락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분은 다음 날 약속 시간인 오후 2시에 도장을 방문하였고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꽤 오랜 시간을 ‘신OO’라는 종교에 있었는데 그곳이 자신과 매우 안 맞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고 난 후 약 10여 년 동안 힘든 생활을 하다가, 서로 의지하며 지내던 어머니께서 작년에 작고하신 뒤 올해부터 이상하게 ‘상생방송’을 시청하게 되었으며, 증산도에 대해 관심이 계속 가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던 중에, 공지천에 우연히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 홍보 활동을 하는 것을 보았고, 자신은 본래 내성적이라서 누구에게 다가가서 말 건네기가 힘든데 마침 세련된 사람이 아니라 인상이 편한 사람이 홍보 활동을 하고 있어서 다가가기가 더 편했다고, 여러 가지 시간이나 상황이 만나고 다가가기가 쉽게 된 것이 신기했다고 하셨습니다.

    수호사님께 약 2시간여 동안 전반적인 교육을 받는 도중에도 열의가 매우 컸으며, 나도 한번 꼭 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육을 마치고, 함께 계셨던 포정님과 함께 네 명이서 태을주를 100독 합송하게 되었는데, 힘들면 무릎을 펴고 앉아서 수행해도 된다고 말씀드렸는데도 불구하고 무릎을 꿇은 채로 100독을 함께 하시는 모습을 보니 굳은 의지가 저에게도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수호사님과 다음 날부터 팔관법 교육을 각 관법마다 최소 4시간 이상씩 교육을 받기로 약속을 하고 『이것이 개벽이다(하)』를 빌려 드렸습니다.

    권 도생님이 귀가하시고 나서, 죄송한 말씀이지만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속이 울렁거리고 눈앞이 조금 깜깜해지는 것이, 약간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운장주를 계속 읽으며 집으로 가면서, 저의 사수이자 오랜 친구인 이재운 도생과, 이재운 도생의 도제이자 친구인 이원선 도생에게 전화를 걸어 권 도생님의 간지와 성함을 알려 주고, 기도와 수행 시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달라고 부탁하니 모두들 흔쾌히 대답을 주었습니다. 후에 입도식이 정해지고 두 도생에게 전화를 하니 꾸준히 기도와 수행을 해 주었다는 답변을 듣고는, 사수와 도제들 간 도맥의 기도 힘도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 도생님은 팔관법 교육 첫날 약속 시간 30분 전에 도착하여 밤새워 다 읽은『이것이 개벽이다』 책은 돌려주시고 『개벽실제상황』책을 다시 빌려 가셨으며 차근차근 정독하고 돌려주기로 하셨습니다.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던 중 4월 30일 원주에서 도공 순회 교육이 있었는데, 권 도생님에게는 도공이라는 것이 처음이라 미리 전날에 도공 관련 태사부님 사부님 말씀을 위주로 하여 설명을 드린 다음 도공 순회 교육에 함께 참석하였습니다. 도공이 시작되면서, 도공법사님이 북을 치고 소리를 치니, 기운이 크게 내려오면서 주변 도생들의 소리도 커지고 동작도 커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광경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걱정이 들어 도공을 하면서 중간중간 살펴보았는데, 처음에는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는 손을 흔들면서 함께 도공에 참여하는 모습에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도공이 끝난 후, 약간의 걱정되는 마음으로 도공을 직접 해 보신 소감을 물었더니, 체험 등은 없었지만 처음으로 해 보는 것이라 어색해서 잘 안됐으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5월부터는 홍보 활동도 함께 나가, 자동차에 상생방송 전단지도 꽂고, 테이블을 펴고 대한역사 바로 찾기 서명운동과 함께 책자 홍보도 같이 하였습니다. 인상이 깊었던 점은 땅에 떨어진 상생방송 전단지들을 모두 주워 오시는 모습이었습니다. 홍보 활동을 그냥 함께 나온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함께 하고 싶어서 나오신 것이고, 신앙을 정식으로 시작하면 정말 잘하실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후로도 팔관법을 지속적으로 교육받고, 정기 치성과 홍보 활동에도 동참하면서 입도식 날짜를 잡게 되었고, 드디어 지난 5월 28일에 도장 도생님들의 축하를 받으며 입도식을 거행하여 천지에 상제님 일꾼으로 거듭나게 되셨습니다.

    저는 이번 포교가 처음입니다. 이미 준비가 되신 너무 좋은 분을 만나게 되어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된 것이라서, 노력이 많이 부족한데도 무엇을 이룬 것 같아 어느 한편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저는 새벽 수행이나 포교하러 나가기 전에는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춘천의 주 산신이신 대룡산신 신명님과 춘천 기지신 신명님을 비롯한 춘천에 계신 대신명님들께 기도드립니다. 아직 진리에 관심은 없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덕을 베푸는 따뜻하고 밝고 좋은 춘천 사람들을 춘천에 계신 대신명님들께서 더 잘 지켜보고 계셨을 겁니다. 그들에게 복을 주시려거든 이번에 닥쳐올 대개벽기에 살 수 있는 복을 나누어 주시옵소서. 그 좋은 사람들이 증산도의 태을주를 잘 전수받을 수 있도록 저희가 포교 활동을 나갔을 때, 그곳으로 잘 인도하여 주시어 책자를 받아 가서 읽고, 상생방송을 시청하게끔 잘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 어떤 일반 사람의 조상님들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도와주려는 많은 신명님들께서 저희 도생들에게 연결시켜 주는 것 같고, 이상하게 활동을 나가면 테이블을 펴자마자 30분 동안 꽤 많은 분들이 연락처를 남기고 책자를 받아 갔고, 좋은 분들, 상생방송 시청하신 분들도 만나게 됐던 것 같습니다.

    또한 이번 포교를 하면서 교육과 기도를 함께 해 주신 수호사님을 비롯해서, 일이 바쁘고 몸도 피곤할 텐데도 입도 교육 시 긴 시간 동안 함께 있어 주시고 새벽 수행 등으로 기운도 도장으로 몰아주는 도장 도생님들의 모습을 보고, 빚진 기분이 들어 항상 그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도장에 더 봉사함으로써 갚아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더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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