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7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

    [이달의 성구]

    이달의 성도 | 이종移種 도수의 주인공 월곡 차경석


    ●본관: 연안
    ●족보명: 관순
    ●자: 윤홍
    ●호: 월곡月谷
    ●가족: 부-자치구, 모-밀양 박씨 / 4남1녀 중 장남
    ●출생: 1880년 전북 고창군 부안면 호암리
    ●순도: 1936년(57세)
    ●입도: 1907(정미)년 5월(28세)
    ●직업: 동학총대(대표자) / 일진회 전라도 순회관
    ●심성: 병판감, 만인대적, 몸이 외쪽 문으로는 못 다니고 양쪽 문으로 다닐 정도로 퉁퉁하고 컸다. 말도 그냥 으근으근하고 동네가 울릴 정도였다. (차경석 성도의 재종손녀인 차봉수 증언)

    동학전투에 참가


    3월 20일에 무장(茂長)에서 기포(起包)한 동학 농민군은 백산으로 본진을 옮기고 전명숙을 동도대장(東徒大將)으로 추대한 뒤 호남창의대장소(湖南倡義大將所)의 깃발을 올리니라. 이에 전라도 감영의 관군이 동학군 본진을 향해 진군하매 황토현(黃土峴)에서 양 진영이 맞닥뜨려 대치하니 이 때 태인 강삼리(江三里:강삼마을)에 사는 열여섯 살 소년 문남용(文湳瀧)과 정읍 대흥리에 사는 열다섯 살 소년 차경석(車京石)이, 각기 접주인 중형(仲兄) 문선명(文善明)과 아버지 차치구(車致九)를 따라 이 전투에 참가하니라. (도전 1:46:1~3)

    덕으로만 처사하기는 어려우니


    상제님께서 항상 성도들에게 참는 공부를 가르치며 말씀하시기를 “남에게 분한 일을 당할지라도 대항하지 말고 자기의 과실을 잘 생각하여 끄르라.” 하시므로 성도들이 항상 그와 같이 닦으니라. 그 뒤에 하루는 차경석(車京石)의 집에 계실 때 경석의 종형(從兄)이 술에 취하여 와서는 경석에게 무수히 패설을 퍼붓되 경석이 상제님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하여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고 탄하지도 아니하니 더욱 기세를 부리며 거침없이 주정을 하다가 한참 뒤에 스스로 지쳐서 돌아가거늘 상제님께서 경석에게 이르시기를 “네 기운이 너무 빠졌으니 좀 회복하라. 덕으로만 처사하기는 어려우니 성(聖)과 웅(雄)을 합하여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2:117:1~6)

    차경석을 만나심


    5월 17일에 상제님께서 형렬의 집을 떠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길이 길행(吉行)이라. 한 사람을 만나려 함이니 장차 네게 알리리라.” 하시고 용암리(龍岩里) 물방앗간에 머무르시다가 그 앞 주막에서 정읍 사람 차경석(車京石)을 만나시니 당년 28세로 구척장신에 용모가 준수한 젊은이라. 원래 경석은 동학 신도로서 일찍이 일진회 전북 총대(總代)를 지낸 일이 있더니 이 날은 재산 문제로 송사하러 정읍에서 전주로 가는 길이더라. 경석이 용암리 주막에서 점심을 먹고 떠나려 할 즈음 상제님께서 대삿갓에 풀대님(바지의 대님을 매지 않고 그대로 터 놓는 일) 차림으로 김자현 등 두어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시거늘 경석이 상제님을 뵈니 의표(儀表)는 소탈한 가운데 씩씩한 기운을 띠시고 언어동지(言語動止)는 순진하고 꾸밈이 없으시며 안광(眼光)이 사람을 쏘는 듯하여 감히 똑바로 볼 수가 없더라. 사람을 대하여 정겹게 말씀을 나누시면 마치 봄바람이 온 들에 가득 찬 듯하고 일의 사리를 밝히심에는 대하(大河)가 물결치듯 풀어놓으시고 말씀의 운치는 너그럽고 크시어 천둥이 구르는 듯하며 모든 행동하심이 호호탕탕하여 폭 잡을 수가 없는지라. 경석이 절로 마음이 끌리고 상제님의 기품에 취해 말씀을 청하니 상제님께서 온화하게 대답하시고 술을 드시다가 닭국 한 그릇을 경석에게 권하시니라. 경석이 받으매 어디선가 벌 한 마리가 날아와 국에 빠지거늘 경석이 수저를 멈추고 혹 상서롭지 못한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벌은 규모 있는 벌레니라.” 하시니라.

    경석이 여쭈기를 “무슨 업을 하십니까?” 하니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의원 노릇을 하노라.” 하시고 경석이 다시 “어느 곳에 머무르십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나는 동역객(東亦客) 서역객(西亦客) 천지무가객(天地無家客)이로다.” 하시니라. 대저 경석이 상제님의 거주지를 여쭌 것은 뒷날 찾아뵈려 한 것인데 이렇게 말씀하시니 다시 찾기가 어렵겠으므로 떠나지 않기로 결심하고 이왕에 상제님의 지식을 시험하고자 하여 다시 “어떻게 하면 인권(人權)을 많이 얻을 수 있습니까?” 하고 여쭈니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폐일언(蔽一言)하고 욕속부달(欲速不達)이니라.” 하시니라. 이에 경석이 아뢰기를 “자세한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아서 일찍 내이나 늦게 내이나 먹이만 도수에 맞게 하면 올릴 때에는 다 같이 오르게 되나니 이르고 늦음이 사람의 공력에 있느니라.” 하시니라. (3:180:1~22)

    경석아, 집을 크게 짓지는 말아라


    상제님께서 대흥리에 머무르실 때 경석을 데리고 네 차례 비룡산(飛龍山)에 오르시어 공사를 행하시니라.
    그 뒤에 경석의 집 벽에

    千古春秋阿房宮(천고춘추아방궁)이요 萬方日月銅雀臺(만방일월동작대)라

    라고 써 붙이시며 경석으로 하여금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않게 하시고 또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경석아, 집을 크게 짓지는 말아라. 그러면 네가 죽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3:187:1~4)

    경석에게 농바우 장군 도수를 붙이심


    10월에 하루는 경석에게 돈 30냥을 마련케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경석아, 이것은 너를 위한 일이니라. 내가 오늘은 너와 함께 순창에 가려 하노라.” 하시며 어떤 법을 베푸시고

    溪分洙泗派(계분수사파)하고 峯秀武夷山(봉수무이산)이라
    活計經千卷(활계경천권)이요 行藏屋數間(행장옥수간)이라

    이곳 시내는 수사(洙泗)의 흐름을 갈라 받았고
    봉우리는 무이산보다 빼어나구나.
    살림이라곤 경서가 천 권이요
    몸 둘 집은 몇 칸 뿐이로다.

    襟懷開霽月(금회개제월)하고 談笑止狂瀾(담소지광란)이라
    小子求聞道(소자구문도)하니 非偸半日閒(비투반일한)이라

    가슴에 품은 뜻은 환히 갠 달 같고
    담소는 미친 물결을 그치게 하네.
    제가 찾아온 것은 도를 듣고자 함이요
    한나절의 한가로움을 뺏으려 함이 아니외다.

    하고 고시를 외워 주신 후에 경석을 데리고 순창 농바우 박장근의 집에 이르러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대세를 회문산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의 형세에 붙여 돌리나니 네게 한 기운을 붙이노라.” 하시니라. 이어 장근에게 이르시기를 “너의 머슴을 불러 어젯밤 무엇을 본 일이 있는지 물어 보라.” 하시거늘 장근이 머슴을 불러 물으니 머슴이 대답하기를 “어젯밤 꿈에 한 백발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농바우를 열고 큰칼과 투구와 갑옷을 꺼내는데 장검은 서릿발이 돋은 듯하고 갑옷과 투구는 빛이 나서 눈이 부셨습니다. 신선이 칼과 투구와 갑옷을 저에게 주면서 ‘한 장군이 명(命)을 받들고 여기에 올 것이니 이것을 그 장군에게 주라.’ 하므로 제가 그것을 받아서 두었사온데 그 자리가 바로 저 자리입니다.” 하며 경석이 앉은 쪽을 가리키는지라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네가 꿈을 옳게 꾸었도다. 농바우의 전설이 허망한 말이 아니로다.” 하시고 다시 장근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공사의 증인이니라.” 하시니라. 대저 그 지방에는 농바우 속에 갑옷과 투구와 긴 칼이 들어 있는데 ‘장군이 나면 내어가리라.’는 말이 전하여 오니라. (3:207:1~14)

    내 일은 수부가 들어야 되는 일


    말씀하시기를 “천지공사에 수부(首婦)가 있어야 일이 순서대로 될 터인데 수부를 정하지 못한 연고로 도중에 지체되는 일이 허다하도다. 지금 수부 책임하의 중대한 공사가 산적해 있느니라. 내 일은 수부가 들어야 되는 일이니 네가 참으로 내 일을 하려거든 수부를 들여세우라.” 하시니라. 이에 경석이 상제님을 모시고 돌아와서 이종누님 고부인(高夫人)을 천거하매 11월 초사흗날 상제님께서 고부인을 맞아 수부 도수를 정하여 예식을 올리시니라. (3:209:3~7)

    도운의 천맥 도수


    정읍 대흥리에 계실 때 하루는 성도들에게 “정읍에 천맥(阡陌:논밭사이에 남북으로 난 길을 ‘천’, 동서로 난 길을 ‘맥’이라 한다.) 도수를 붙인다.” 하시고 공사를 행하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여기가 못자리니 이것이 천하파종(天下播種) 공사니라.” 하시니라. (6:48:1~2)

    경석은 만인지장의 대재 격


    기유(己酉 : 道紀 39, 1909)년 정월에 상제님께서 정읍에 계실 때 상제님을 의병(義兵)으로 오인하여 헌병 수십 명이 문전에 이르매 상제님께서 경석을 불러 “네가 저 사람들을 보내겠느냐.” 하시니 경석이 명을 받들고 나가서 무사히 헌병들을 돌려보내고 들어오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경석은 대재(大才)요 만인지장(萬人之長)이 될 만하다. 너한테 일극(一極)을 주노라.” 하시니라. 이후에 상제님께서 ‘왕자포덕 도수(王者布德度數)를 정읍에 둔다.’ 하시더니 뒷날 경석이 교도 수백만을 두니라. (3:291:1~4)

    초패왕 도수를 붙이심


    하루는 형렬과 경석을 데리고 순창 장군암(將軍岩)에 가시어 공사를 행하실 때 경석을 장군바위에 앉히시고 상제님께서는 형렬과 함께 바위 아래에 서시어 말씀하시기를 “오늘 너에게 초패왕(楚覇王) 도수를 붙이노라. 모든 일에 선으로써 행사하라.” 하시고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공사의 증인이니라.” 하시고 돌아오시니라. (5:180:1~4)

    동학 역신 해원 공사


    경석이 십이제국을 말하니 이는 스스로 청함이라. 이제 경석에게 동학 역신 해원의 삼태육경(三台六卿) 도수를 붙이리라.” 하시고 “그 부친이 동학 접주로 그릇 죽었고 경석도 또한 동학 총대(總代)였으니 오늘부터는 동학 때 한 맺힌 신명들을 전부 경석에게 붙여 보내어 이 자리에서 왕후장상의 해원이 되게 하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춘치자명(春雉自鳴)의 설화(說話)를 들어 보라. 배짱이 그만하면 능히 그 책임을 감당하리니 뒷날 두고 보라. 경석이 금전도 무수히 소비할 것이요, 사람을 모으는 것도 갑오년보다 훨씬 많게 될 것이니라. 경석에게 밥주걱을 맡겼나니 경석은 제왕(帝王)만큼 먹고 지내리라. 이렇게 풀어놓아야 후천에 아무 일도 없으리라.” 하시고 두루마리에 글을 써서 대공사를 처결하시며 외인의 출입을 금하시니라. (5:205:3~16)

    천자를 꿈꾸는 월곡의 속마음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에게 장차 운수를 열어 주려 하나니 각기 뜻하는 대로 나에게 말하라.” 하시거늘 경석이 “십오(十五) 주시기를 원하옵니다.” 하고 아뢰니 상제님께서 문득 표정을 바꾸시며 “도적놈이로다.” 하고 꾸짖으시니라. 한 성도가 상제님께 여쭈기를 “시속에 십오수를 진주(眞主) 도수라 이르거늘 경석이 제 분수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니 탄식하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끄는데도 끝내 개심(改心)하지 못하면 그 또한 경석의 운이니 어찌할 수 없노라.” 하시니라. (5:257:1~5)

    십일전 상량 공사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있는 기운 그대로 풀어 버릴 수밖에 없다.” 하시고 경석에게 백목(白木)을 가져오라 하시어 상량 공사(上樑公事)를 행하시다가 “백목이 부족하다.” 하시며 경석으로 하여금 더 가져오게 하시어 공사를 마저 마치시니라. 이어 경석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천자 소리를 듣기는 듣는다만 집을 지으면 죽으리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는 이따금 경석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주인’이라 부르시니라. (5:343:1~5)

    서전서문을 많이 읽으라


    상제님께서 경석을 남달리 사랑하시어 “허물을 깨닫고 덕을 닦으라.” 하고 거듭 당부하시니라. 하루는 경석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조정(朝廷)에 설 사람은 서전서문(書傳序文)을 많이 읽어야 하느니라. 너는 만 번을 읽으라. 대운(大運)이 그에 있느니라.” 하시니라. 이에 경석이 상제님의 명을 좇아 바깥출입을 일절 금하고 조용히 앉아 밤낮으로 서전서문을 읽으니 상제님께서 친히 밥상을 가져다주시고 궂은 일을 손수 하시며 어린 자식을 품에 안고 기르듯 정성을 쏟으시니라. (6:45:1~5)

    도운 개척의 병권 공사


    하루는 상제님께서 황극수(皇極數)를 돌리시며 여러 성도들에게 각각 소원을 물으시고 다시 차경석에게 소원을 물으시니 경석이 열지(裂地)를 원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병부(兵部)가 마땅하리라.” 하시니 경석이 불쾌히 여기는지라 이에 말씀하시기를 “직신(直臣)이 아니면 병권을 맡기기 어려우므로 이제 특히 너에게 맡기노라.” 하시니라. (6:85:1~4)

    너희들이 나를 믿느냐


    또 잠시 후에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천지신명 공판에서 정읍 차경석을 잘 선정하여 실수가 없으니 내가 사람을 잘 알아서 썼다.” 하시니라.(10:26:7)

    나도 공부를 해 보리라


    밤이면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시던 집 앞 버드나무 아래에서 날이 새도록 골몰하고 낮이면 일찍이 상제님과 함께 올랐던 대흥리 서쪽 비룡산 상봉에 올라 하늘을 우러러 “옥황상제님, 옥황상제님!” 하고 부르짖으며 대성통곡을 하더니 하루는 비룡산 상봉에 올랐을 때 뜻밖에 등 뒤에서 “경석아!”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거늘 급히 돌아보니 꿈에도 그리는 상제님이신지라 경석이 깜짝 놀라 엎드려 절을 하니 말씀하시기를 “내가 죽지 아니하였노라.” 하시고 “내려가서 모든 일을 잘 처리하여라. 이후에 올 날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홀연히 보이지 않으시니라. 이로부터 경석이 상제님의 어천을 의심하지 않고 앞일을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를 생각하니라. (10:86:6~11)

    차경석의 욕심과 성도들과의 불화


    차경석은 상제님의 명에 따라 태모님을 자기 집에 모시고 있어 도장의 안팎일을 통틀어 살피며 찾아오는 신도들을 응접하더니 태모님께서 경석과 수뇌급 간부들에게 교리(敎理)와 도무 진행 방침을 정하여 주시고 도덕적 진리와 인도상의 정리(正理)와 수행 시 지녀야 할 계율에 대한 조항 등을 일일이 말씀하시거늘 경석이 겉으로는 태모님 말씀에 응하는 듯하나 속으로는 받아들이지 아니하더라. 또한 경석은 기국이 워낙 커서 다른 성도들과 품은 뜻이 다르더니 마침내 교세를 움켜쥘 욕심을 갖게 되니라. (11:37:1~5)

    차경석의 교권 장악


    치복의 본소 이전 운동을 저지한 경석은 이 해 동지절에 통교권(統敎權)을 장악한 다음 김형규(金炯奎), 문정삼(文正三) 등 심복 신도 스물네 사람을 24방주(方主)로 임명한 뒤에 각 지방으로 파견하여 신도들을 수습하고 교권(敎權)을 집중시키니라. (11:39:1~3)

    선도 오세요 악도 오세니라


    태모님께서 공사를 행하실 때 성영에게 물으시기를 “경석이 이제 상제님을 배반하고 수백만 신도의 앞길을 그르치니 어떻게 조처함이 옳겠느냐?” 하시므로 성영이 아뢰기를 “‘배은망덕만사신(背恩忘德萬死身)’이라 하였사오니 죽어야 마땅할까 합니다.” 하니라. 또 물으시기를 “수백만 신도의 피를 거두어 지어 놓은 것이 마침내 허사로 돌아가니 어떻게 조처해야 좋겠느냐?” 하시니 성영이 대답하기를 “허사로 돌아갈진대 뜯어 버림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매 태모님께서 세 번씩 물어 다짐을 받으시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선도 오세(五歲)요 악도 오세니라.” 하시며 발로 성영의 다리를 차시니 성영이 엎어지니라. 이로부터 5년째 되는 병자년에 차경석이 죽고 이어 십일전(十一殿)을 비롯한 보천교의 큰 건물이 모두 뜯겨 버리니라. (11:319:3~9)

    월곡 차경석의 회한과 죽음


    병자(丙子 : 道紀 66, 1936)년 윤3월 10일에 차경석이 가족들과 60방주를 비롯한 많은 신도들을 불러 모으고 말하기를 “내가 신도들에게 몹쓸 짓을 했다. 600만 교도들, 저 불쌍한 사람들, 내 사람들…. 내가 없어져야 한다.” 하더니 잇몸을 찔러 피를 내고 마약을 입에 넣은 뒤에 얼마 후 숨을 거두니 시각은 오후 두 시경이라. 이 때 곁에서 임종을 지켜 본 사람은 경석의 아내 이씨와 그 아우 윤경과 윤덕, 아들 용남, 봉남, 계남, 봉용, 사위 노영한과 이석래, 당질 순옥, 당질부 손승례, 재종손녀 봉수 등이더라. 장례는 9일장을 치르는데 600만 신도들이 모두 상복을 입으니 마치 국장과 같거늘 18일 탈상 때는 대흥리에서 삼산리 고직동(三山里 庫直洞)까지 장지(葬地)로 가는 길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니라. (11:320:1~6)


    [종도사님 도훈]
    당시 상제님은 무려 13일 동안 밤낮으로 함께 생활하시면서 당신의 큰 일꾼으로 차경석 성도를 무릎 꿇리셨다. 상제님은 당신께서 필요로 하시는 성도는 직접 포교를 하셨다.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할 때 그들을 어떻게 인도하는지 포교의 정법을 몸소 보여 주신 것이다. (도기 135년 1월 9일 증산도 대학교)

    [종도사님 도훈]
    이게 보통 신비스러운 게 아니다. 하늘에 있는 신선이 내려와 “갑옷과 투구와 칼을 저 장군에게 내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상제님의 천지 기운이 차경석 성도에게 응감하는 걸 보여 주신 것이다. (도기 131년 11월 28일 전주 순방군령)

    [종도사님 도훈]
    차경석車京石 성도는 상제님의 5만 년 역사를 개척하는 위대한 영웅으로, 그 이름자가 주춧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경京’은 ‘크다’는 뜻이 있다. 경京 자 석石 자가 5만 년 역사의 중심돌, 주춧돌이란 말이다. (도기 134년 5월 17일 조례)

    [종도사님 도훈]
    상제님이 맨 처음 차경석 성도에게 붙인 도수가 있다. 역신 해원도수다. 과거 동학혁명 때 동학에 종군하다가 억울하게 죽은 신명들을 해원시켜 주지 않으면, 앞으로 상제님 일이 성사되어 후천선경을 연다 해도, 그 신명들이 역도로서 도정에 끼어들어 화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상제님이 미리 그것을 해소시켜야 한다고 하셨다. 동학의 역신 해원 도수의 두령자가 차경석 성도다. (도기 130년 1월 9일 증산도 대학교)

    [종도사님 도훈]
    지난 증산도 100년 역사에서 위대한 개척사를 연 전도의 큰 인물, 유불선 기독교 등 선천 종교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포교대왕이 누구인가. 상제님이 자식처럼 애지중지하시고 큰 기운을 열어 주신 차경석 성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도기 139년 8월 30일 태을궁 입도식)

    [종도사님 도훈]
    상제님께서는 차경석 성도를 후천 오만 년 새 역사의 첫발자국을 떼는 인물로 쓰셨다. 어찌 보면 가장 험난하고, 너무도 처절한 탄압을 하던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상제님 역사의 대부흥기를 여는 가장 적절한 인물, 하나님 사업에 가장 크게 사역할 수 있는 일꾼으로 차경석 성도만 한 인물이 없었던 것이다. (도기 135년 6월 4일 증산도대학교)

    [종도사님 도훈]
    보천교의 세력이 방대해지자 일제가 비상한 눈으로 지켜보다가 교주인 차경석 성도가 세상을 뜨자 민족종교 말살령을 내리고 ‘저 본부부터 건물을 뜯어서 없애 버려라.’ 해서 건물이 다 헐려 버렸다. 그때 얼마나 가혹한 탄압을 받았는가. 지하로 숨고, 소리 내서 주문도 못 읽었다. 잡히면 죽는 것이다. 유교, 불교, 기독교, 가톨릭 등 세계화된 종교는 지구촌 여론이 있으니 어쩔 수 없고, ‘조선의 문화 토양 속에서 자생한 신앙은 아주 다 뿌리를 뽑아라.’라고 아예 법으로 정해서 공표를 했다. 그로부터 우리 한국인이 자신의 신앙문화, 영성세계를 미신화하고 저급하게 여기는 풍토가 생겼는데, 거기에 또 일제가 환국과 배달과 조선, 북부여까지 근 7천여 년 우리 역사의 근원을 파괴함으로써 그러한 풍토는 더욱더 악화되었다. (도기 144년 7월 2일 수요치성)

    [종도사님 도훈]
    우리 도의 뿌리는 태사부님이고, 그 근원에는 상제님 태모님이 열어주신 월곡月谷 차경석 성도가 있다. 태사부님은 상제님께서 “나는 천지로 몸을 삼고 일월로 눈을 삼는다.”는 말씀에서 일월의 달(月)이다. 그러니까 월곡은 달이 뜨도록 계곡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서 태상사부님이 보천교에 몸담고, 어린 아들을 위해 의금을 내 주시며 데리고 다니신 것이다. (도기 145년 5월 3일 증산도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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