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인도로 태일 인간이 되는 참 진리를 만나다 외(김경규, 황치만, 이서영, 이영수, 김명오, 위성숙, 조규환, 이수현)

[입도수기]
조상 인도로 태일 인간이 되는 참 진리를 만나다 외(김경규, 황치만, 이서영, 이영수, 김명오, 위성숙, 조규환, 이수현)


조상 인도로 태일 인간이 되는 참 진리를 만나다


김경규(33, 남) / 서울잠실도장 / 147년 음력 4월 입도

“훔치 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훔치 훔치 태을천...”

휴대폰에 저장된 태을주 합송 녹음된 것을 들으며 이렇게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갑니다.

저는 사실 20대에 조울증이란 정신 질환을 판명받고 사회적으로 보면 정말 실패한 인생으로밖에 안 보이는... 그런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 중간에 스님이 돼 보겠다고 조계종에 지원했으나 안 받아 주었습니다. 우울하던 시기에는 자살 시도도 몇 번 했었습니다. 그렇게 20대를 어떻게 보면 처절한 실패자의 인생으로 아니, 30대 초반까지 그렇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약 27세부터 직업을 오래 갖지 못하고 계속 바꾸면서 지내 왔습니다. 종교는 불교였는데 왠지 스님들이 쓴 책이 평소 마음가짐이나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많이 읽었고 불교 경전도 특이하고 심오한 것 같아서 그쪽으로 관심을 많이 두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께서 불교 계통의 한 선원禪院에 다니시며 수행을 하셨고 저에게도 권유하여 선원에 따라다녔습니다. 그곳에서 수행을 익히던 중 7시간 동안 철야로 절을 했는데 꽃향기가 나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점점 수행에 빠져들었고 그곳에서 숙식하며 봉사도 잠깐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먹는 약을 끊으면서 점점 마음의 평정을 잃으며 조울증이 심해졌고, 여러 가지 문제들이 다시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런 제 모습에 걱정이 되신 어머니의 수차례 권유에 의해 저는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퇴원을 하고서는 제 나름대로 ‘세계평화운동’이라는 취지를 내걸고 ‘페이스북Facebook’을 운영하며 친구들을 늘려 나갔고, 그 당시에 다니던 선원에서는 더 이상 깨달음이 없다고 생각하여 나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신천역을 지나다가 운명적으로 ‘홍산 문화 사진전’을 하고 계시는 송 포정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포정님을 처음 만나 역사 특강을 들으며 「환단고기 가이드북」을 읽어 나갔습니다.

『환단고기』를 읽으면서 우리 민족과 저 자신에 대해 자부심이 생겼고 바른 역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부분까지 다 읽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환단고기』의 내용 자체가 저에겐 충격적이었지만 우주와 하나 되는 태일 인간이 되자는 종도사님의 말씀이 너무도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그 뒤로 포정님께서 도장으로 방문하게 해 주시고 진리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 주셨습니다. 특히 그때 끌렸던 것은 우주도 계절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주가 순환한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자세한 생장염장의 이치가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러면서 포정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의 노고로 수행법을 익히며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돌이켜 보면 부모님께 제대로 효도 한번 해 드린 적 없고 방탕하며 게으른 생활을 일삼았던 제가 증산도를 만나게 된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 봅니다. 제가 어릴 적부터 남을 잘되게 하려는 마음이 약간은 있었기 때문에, 제 부모나 자식만을 위하는 그런 마음이 아닌 남도 잘되게 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조상님들께 선택받은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페이스북에서 아무리 불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근본 뜻이 같다고 외쳤어도 아마 세상의 평화는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제가 우주의 참 하느님이신 상제님의 대도 진리를 만난 것은 정말 제 자신이 뒤돌아봐도 운명적인 것 같습니다. 선천의 모든 종교를 아우르고 초월하는 가르침인 증산도를 만난 뒤로는 제 페이스북도 상제님 진리를 알리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목숨만 걸면 안 되는 일 없고 내 목숨을 바치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한 어리석은 ‘나’를 벗어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잘 계발하고 수행하여 가을개벽을 넘어서고 나처럼 소중한 타인들에게도 진리를 전하고 저의 모든 것을 증산도에 걸겠다는 다짐을 얼마 전부터 해 왔습니다.

좋아서 하는 것은 이유라는 것이 필요 없듯이 제가 증산도를 믿는 데도 이유가 없습니다. 굳이 이유를 든다면 증산도의 진리가 정말로 참 진리이기 때문에 저의 직관이 이 길을 원하고 그래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증산도의 수행으로 많은 신비한 체험을 하였는데 한 가지만 말씀 드리자면 다른 도생님의 천도식 때 그분의 조상 신명을 본 것입니다. 사실 천도식 당일 날 아침, 성전에서 그 도생님의 조상 신명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태을주를 주송했습니다. 그렇게 주송을 하는 도중 점점 얼굴 모양 같은 것이 상 위에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얼굴에 거무튀튀한 얼룩 같은 게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뒤 천도식 때에 도생님이 조상분들의 사연에 대해 설명하시는데 그 중 한 분이 노숙을 하다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조상님의 얼굴도 모른다는 도생님의 얘기를 듣고 제가 본 것이 그분의 조상 신명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수행을 할 때 저 자신을 위해 할 때도 물론 있지만 남을 위해서 할 때도 많은데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왜 ‘초립동이 도수’라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저는 사람은 겸손도 해야겠지만 배포는 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제님께서도 그걸 바라시고 일부러 초립동이에게 져 주신 것이겠지요.

비록 저희가 상제님만큼의 권능을 쓰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세상을 위해 나도 상제님의 마음과 그 정신만큼은 닮아서 큰 뜻을 품어야 저희 일꾼들이 이루는 일도 크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상제님께서 저희 일꾼들에게 바라시는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얼마 전에 직장을 다니다가 다시 증산도에 전념하기로 마음먹고서 직장을 그만두고 요즘은 수행과 진리 공부, 봉사, 포교를 열심히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도 종도사님의 삶을 본받아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끝으로 저를 정말 저희 어머니만큼이나 걱정해 주시고 챙겨 주시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는 포정님께 너무나도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 포정님의 큰 은혜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보은! 보은!! 보은!!! 감사합니다.

나 홀로 신앙의 병폐를 깨닫게 한 도장 수행


황치만(59, 남) / 마산도장 / 147년 음력 4월 입도

저는 어려서부터 도를 닦는다는 말을 좋아했던 거 같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싶었지만 그런 걸 물어보거나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만난 김정빈의 『단』이란 소설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 소설의 주인공인 우학 도인을 만나고 싶었지만 지방에 살던 관계로 차일피일하다가 만나지는 못하고, 당시에 서점에서 나오는 단전호흡에 관한 책들을 혼자서 독학으로 연구해서 나름대로는 도를 닦는 걸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회사도 다니던 중, 회사에 같이 다니던 대학 선배로부터 도 닦는 데 같이 가 보자는 한마디에 들어섰던 곳은 30년 전의 마산도장이었습니다. 태을주 주문 수행을 한번 해 보라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한 수 배운다는 생각으로 주문을 읽게 되었고 그 이후로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여기는 무언가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역시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입도를 하고 수행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태을주 수행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체험들이 저의 삶에 큰 의미로 다가와서 꾸준하게 수행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약 1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도장의 책임자를 하고 있던 분이 큰 병에 걸려서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사람 몸에 생긴 병 하나 치료를 하지 못하는 도가 무슨 소용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점차 도장과는 멀어지게 되었고 발길을 끊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가정에서 하던 수행 생활도 점차 횟수가 줄어들게 되고 도장보다는 유명한 사찰을 방문하거나 무속인들의 삶은 어떤지도 궁금하여 무속인들과 여러 산천을 함께 다니기도 하였는데 무언지는 모르게 제 몸에서 본래의 기운들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다른 것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는데 크게 아쉬워하지도 않았던 거 같습니다.

도장을 멀리한 지 십수 년이 지난 어느 날, 제 몸에서 힘이 많이 빠지고 하던 일도 잘되지 않아서 힘들게 지내고 있던 어느 날, 신묘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키가 크고 절에 가면 보살들이 입는 신의를 입고 계신 어떤 분이 뒤를 비스듬히 보이면서 바위 위에 작은 구멍으로 졸졸 흘러나오는 샘물 옆에 서 계신 것입니다. 저는 너무 지치고 목이 말라서 물을 먹을 생각으로 샘물로 다가가니, 그 보살님께서 저에게 책망을 하시면서 물을 먹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난감했으나 반드시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눈치를 보면서 다시 먹으려 하니 굳이 제지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날 일어나서 곰곰이 생각하니 내가 곧 크게 아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은 아픈 데가 없었기에 병원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그 이후 약 5개월이 지난 후에 한밤중에 실려 간 응급실에서 제가 오랜 B형 간염으로 인한 간경화가 심해져서 수술조차 불가능하고 간암으로 진행되는 의심이 든다는 진단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내가 본래부터 병을 가지고 있었나?’란 생각과 함께 이전의 선몽에서 나타나셨던 선인과 샘물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불현듯 부산에서 새로운 물을 개발해서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 생각이 뇌리를 스쳤고 그 친구의 물이 바로 그 샘물일 거라 생각하고 병원 처방과 함께 먹기로 하였습니다.

과연 그 물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암 수치의 진행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있다는 생각이었고 위험한 고비는 넘기게 되었지만, 그 물을 끊으면 건강이 서서히 나빠지는데 이러다 평생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이대로 그냥 천천히 죽어가는 건 아닌지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약 5년의 시간이 흘러서 아이들이 전주 한옥 마을을 가고 싶다고 해서 가족들과 함께 다녀오게 되었는데, 마침 근처에 있는 금산사 미륵전에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들르게 되었습니다.

미륵전에 들어서서 사배를 올리고 유심히 미륵님을 관찰하여 보니 5년 전의 선몽에서 뵈었던 그 옷자락과 거의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치는 생각, ‘아~ 그분이 미륵부처님, 즉 상제님이셨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수없이 되뇌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동안 제가 상제님을 몰라뵙고 엉뚱한 곳에 정신을 팔았습니다. 상제님은 저를 잊지 않으시고 챙겨 주시는데 불초한 소인은 몰라봬서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집에 돌아오는 즉시 다음 날 아침부터 제대로 준비는 안 되었지만 그대로 청수를 떠놓고 사배심고를 하고 태을주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젊었을 때는 하루 10분만 읽어도 온갖 조화가 생기는데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어서인지 아침에 30분을 읽어도 그때만큼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역시 도 닦는 것은 젊을 때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했던 것이 아들에게 도장에 나가길 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과는 달리 아들은 흥미를 가지지 않아서 일단은 도장에 안 가도 좋으니 태을주 주문은 읽으라면서 방법을 알려 주었는데, 계속 집에서 태을주 수행을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기회가 되면 도장으로 인도하여 정식 수련을 하게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다시 6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보니 서서히 악화되던 모든 수치들이 정체 또는 조금씩 호전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도장에 다시 발길을 돌리는 데는 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들에게는 도장에 나갈 것을 권유했었지만 제가 다시 도장에 나가는 건 한 번 그만 둔 전력이 있는데 괜찮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집에서 혼자서 수행을 하는 것도 나름대로는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생방송을 보면서 『도전』이 새로 나왔다는데 어떤 내용이 새로 들어가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였습니다. 『도전』을 구하려다 보니 서점에는 책이 없다기에 마산도장으로 전화를 하게 되었고 직접 찾아가서 윤 수호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도장에서 수호사님과 첫 수행을 하던 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집에서 나름대로 혼자 하던 수련에서 큰 문제점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다른 것으로 채워졌던 저의 마음속에 마魔의 기운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계속 혼자서 수행했다면 알 수 없었던 사실인데 도장에 나와서 수행을 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그날 저녁 저는 집으로 돌아와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앞으로 내 남은 삶의 기간에는 증산도 도장을 포기할 수는 없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증산도 도장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꿈에서나마 미륵부처님, 즉 상제님을 비스듬한 뒷모습이라도 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영광스럽습니다. 저에게 선몽을 하신 것은 제가 무언가 상제님을 위한 일에 해야 할 임무가 있다는 뜻으로 알고, 상제님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심을 다해 상제님의 도를 받들 것을 다짐합니다. ◎

상생방송의 가가도장 사례를 보고 마음이 움직였어요


이서영(65, 여) / 수원영화도장 / 147년 음력 4월 입도

저는 어려서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숭상하던 집안에서 자라서 관음 신앙이 투철했습니다. 물론 우리 토속 민속 신앙인 칠성, 산신, 용신을 함께 모시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냥 무조건 믿고 살았습니다. 시댁에서 시모가 기독교 교회 집사님이라 새벽 기도도 나가고 했으나 종교는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로 설득을 해도 제 마음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저는 어려서 돌을 두어 달 앞두고서 토하고 열이 펄펄 나는 증세로 시달렸는데 고치려고 애를 썼으나 백약이 무효라서 하는 수 없이 죽으라고 밀쳐 두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칠성님께 명을 올리고 빌어보자고 하신 할머니가 칠성님께 기도해서 저를 살려 내셨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하며 집안에서 천금같이 키운 저여서인지 다른 종교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칠성님 관세음보살님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천부경」과 「삼일신고」 등을 우리나라 “하늘의 계시록”이라고 하시고 많이 읽고 닦으라 하시며 주신 적이 있어서 「천부경」은 외우고 있었습니다. 깊은 뜻을 더 알려고 해도 안 되었는데, 수원에 와서 살면서 모친의 뇌경색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어느 날 우연히 불교방송을 틀다가 ‘상생방송’이라고 쓰인 방송에서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보게 되면서 많은 감명을 받고 매일 시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태상종도사님께서 내려 주시는 말씀이 나오는데 처음에 저는 그분이 상제님인 줄로 잘못 알았습니다. 방송에서 “가는 해를 멈추게 할...”이라는 도전 성구를 보고, 태상종도사님이 그렇게 하신 줄 알고 마침 대순진리회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던 터라 저분이 “미륵”이라고 자칭하고 “상제”라고 거들먹거려 중생을 도탄에 빠뜨린 사람인 줄로 착각하고 방송을 안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작년에 어머님과 아버님이 두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나셔서 눈물로 49제를 지내 드렸습니다. 꿈에 아버님이 “너를 인도할 곳이 있어서 왔다” 하시면서 생시같이 거실로 들어오시는 꿈을 꾸고 해몽을 못해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있다가 어느 날 채널을 돌리다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모든 장면이 마음에 와닿는 것이었습니다. 도전 말씀은 이해를 못했고 조상 천도제를 지내는 것을 보고 아! 하는 생각에 우리 조상님도 저렇게 모셨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증산도 신도들의 가가도장 사례를 시청하게 되었는데 보고 나서 ‘이건 내가 생각한 그런 혹세무민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한번 상담을 받아 보고 저기를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방송국에 전화해서 수원 지역의 도장을 안내받고 수원영화도장을 찾아가서 포정님과 포감님 두 분과 상담을 했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상담을 나누면서 신기하게도 ‘아버님이 여기로 인도를 해 주시려고 선몽을 하셨구나.’ 하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제가 그리도 찾던 증산 상제님이 바로 하느님이고 칠성이고 미륵존불이란 걸 알고서 주저 없이 입문을 결정하고 “21일 정성수행 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기도 중에 많이 울었습니다. 『도전道典』도 밤새 읽으면서 마음이 저리고 아파서 펑펑 울면서 읽었습니다. 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가 살면서 지은 죄를 사해 주소서.” 하고 참회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하고 죄 많은 제 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죽을힘을 다해 상제님 진리를 죄 많은 중생들에게 전해서 죄를 사함을 받고 살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생명을 주신 천지일월에 보은하겠습니다. ◎

전통 신앙의 종맥 증산도 진리에 감명을 받고


이영수(49, 여) / 안성봉산도장 / 147년 음력 4월 입도

제가 증산도 진리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한 지인을 통해서였습니다. 조현곤이라는 분이 참 나를 찾을 수 있다며 『신과 나눈 이야기』라는 책을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투덜거리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어느 순간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을 느꼈고 공자 석가 예수도 아닌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과 내가 직접 소통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머리 중앙에서 회오리바람이 돌며 책에 자석이 붙은 것처럼 빠르게 읽혀졌습니다. 이 신비한 체험을 그분께 말했더니 백회 차크라가 열렸다고 했습니다. 그 후 그분을 통해서 전쟁이 나면 전염병이 돌면서 전쟁의 종지부를 찍고, 지축이 23.5도로 틀어진 타원 궤도에서 정원 궤도로 바뀌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또한 그분은 이러한 현상을 “개벽”이라 하는데 『생존의 비밀』이라는 책에 그런 내용이 다 들어 있으니 읽어 보라고 책을 빌려 주었습니다. 그 책은 그분이 대순 신앙을 하시는 어머니로부터 받아 읽은 것이라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땐 부모님들과 <전설의 고향>이란 프로를 즐겨 보았는데 안 좋은 일이 있거나 소원을 빌 때는 항아리 위에 청수를 놓고 비는 장면을 보았고 어른들의 말씀도 종종 듣곤 했습니다. 『생존의 비밀』을 읽으면서 우리의 토속 신앙이 뭔지 알았고 옥황상제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조현곤 씨가 태을주 주문을 가르쳐 주며 저에게 리듬을 타며 주문을 여러 번 읽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잠을 자는데 돌아가신 엄마가 나타나서 태을주를 저에게 읽어 보라고 했습니다. “훔치 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 도래”를 해야 되는데 혀가 꼬여 잘 되지 않자 엄마가 엉덩이를 한 번 치고 꼬집으며 다시 하라고 했습니다. 정신을 바르게 하고 태을주를 읽은 후에 엄마에게 이제 잔다고 말씀드렸는데 깨어 보니 꿈이었습니다.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생존의 비밀』 책 뒷면에 있는 『도전』과 『이것이 개벽이다』책을 언젠가는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연하게도 아파트 문에 상생방송 홍보지가 붙여져 있었고 책을 무료로 빌려준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바로 전화를 해서 『이것이 개벽이다』와 『도전』을 받아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도전』을 읽으면서 다른 저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와 최고의 신이 아니면 감히 할 수 없는 천지공사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3개월이 지난 후 도장을 방문해 21일 동안 아침 수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면 할수록 이것이 참 진리이고 참 종교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전통 신앙의 종맥을 이어 갈 수 있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제가 지금까지 쌓아 왔던 모든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상제님의 무극대도를 만나게 해 주신 조상 선령님들에게 감사하며 상제님의 천지일꾼이 되어 원시반본하여 군사부일체하는 거룩하신 상제님의 대도를 일심으로 잘 닦아 괴로움에 신음하는 억조창생을 널리 건지고 의통성업을 이룩하는 큰 일꾼이 되겠습니다. 저를 안성봉산도장에 인도해 주신 추유림 성도님과 포정님을 비롯한 모든 성도님께 감사드리며 상제님의 자녀로 거듭 나겠습니다. ◎

상생방송에 출연한 포정님의 이야기에 감동하다


김명오(61, 남) / 정읍연지도장 / 147년 음력 4월 입도

저는 1남 2녀를 둔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아내는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였습니다. 아들과 큰딸은 장성하여 결혼을 하였습니다. 막내는 호주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은 주위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행복한 가정입니다.

저는 2014년 4월에 조기 퇴직(우체국)을 하고 양봉업과 밭농사를 하고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일도 도와주며 열심히 살고 있으나, 마음 한구석이 항상 비어 있고 공허하여 그 때문에 술도 마시고 방탕한 생활도 해 보았지만, 그래도 허전한 마음을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상생방송을 보았고 2016년 4월에 도장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새벽에 도장에 나갔는데 수호사님이 북을 치면서 도생들이 도공을 하는 모습을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증산도는 도 닦는 곳이라 앉아서 조용히 주문 읽고 참선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내가 잘못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수행을 중단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수행을 해야 하는데 뭔가 닦아야 하는데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제가 전에 ‘파룬궁法輪功’에서 수련을 하였는데 그때 수련 과정에서 빛도 보고 어렴풋이 눈앞에 펼쳐지는 여러 가지 상象을 본 적도 있었습니다. 그 수련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질병 때문이었습니다. 파룬궁은 병이 발생을 하여도 병원에 가지 말라고 하는데, 제가 ‘쯔쯔가무시scrub typhus’ 병에 걸려 열이 펄펄 나는 심각한 상태가 되어 1주일 정도 지나서 병원 치료를 받게 되면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저는 어떤 것을 하여도 마음이 허전하고 채워지지 않는 답답한 삶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를 닦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생활하였습니다.

2017년 3월 1일, 저는 정읍 우체국 앞에서 정읍연지도장 포정님을 만나 『천지성공』과 『생존의 비밀』, 〈월간개벽〉 책 각 1권씩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3월 중순부터 도장에 찾아가서 수행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도 시간만 자꾸 흘러가고 있었는데, 4월 6일 아침에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에 나가서 TV를 켰는데 마침 상생방송이 나왔습니다. 그때 본 프로그램이 〈우리들의 살릴 생자 이야기〉였는데, 마침 거기에 정읍연지도장 포정님이 출연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습니다. 순간 이제 도장에 가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 도장으로 바로 전화해 그날 오전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상한 것은 제 아내는 가게에 절대로 상생방송을 틀어 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어찌하여 상생방송이 틀어져 있었는지 지금도 이상합니다.

제가 도장에 나와서 21일 정성수행을 시작하고 3일째 되는 날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어떤 남자 둘이 저를 잡고 “너는 전기고문으로 죽어야 된다.”고 하면서 전기 스위치를 틀었고 저는 온몸에 전기가 찌릿찌릿 오면서 죽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잠깐만요, 뭔가 잘못되었어요.”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러 차례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갔습니다. 이런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제게 벌어진 일과 신앙이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는 도장에 방문하기 전에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단백뇨蛋白尿(단백질이 오줌에 섞여 나오는 병)라고 나와 정읍에서 재검을 받았습니다. 재검 결과 자세히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하여 전주에 있는 대학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대학 병원에서는 다발성 골수종(혈액 암의 일종)이 의심되니 골수 검사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더불어 병원에서는 입원 날짜를 받으라고 하였으나, 저는 이를 보류하고 도장에 와서 포정님과 상의를 했고 ‘치병치성’을 권유받았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났는데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골수 검사를 받았습니다. 결과는 다발성 골수종은 맞는데 다른 곳으로 전이가 안 되어서 치료가 필요 없이 관찰만 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항상 도를 닦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제가 인간으로 태어난 목적을 잊고 방황하고 시간만 보내니 조상님들이 이번에는 상제님 진리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몰고 가느라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게 하신 것 같습니다.

공부하다 보니 참 하나님이신 상제님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으며 지금 국내외적인 상황을 볼 때 천지공사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열심히 수행하고 염념불망 태을주 읽고 제 병도 고치고 상제님 진리를 전하여 사람도 살려서 천지일월 부모님께 보은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끝으로 “너의 조상이 제1의 하나님이니라.” 하신 태사부님 말씀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저는 입도식과 천도식을 함께 하려 합니다. 제가 입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포정님께 감사드립니다. 보은! ◎

‘페이스북’을 통해 받은 책, 『개벽 다이제스트』


위성숙(60, 여) / 나주남내도장 / 147년 음력 4월 입도

굽이굽이 사연 없는 사람 없고 상처 없는 사람 없듯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오직 나를 믿고 살아가야 하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하며 사는지도 모릅니다. 많은 것을 기대하며 살다가 기대가 채워지지 못하면 언제든 돌아서고 마는 존재입니다. 그 예가 바로 저의 신앙생활이었습니다.

저희 시댁은 대대로 조상신을 모시는 무속인 집안이라 저 또한 그 범주 안에서 열심히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믿으면 믿을수록 제 남편에게 이상 징후가 하나씩 나타났습니다. 알고 봤더니 남편도 법사의 길을 걸어야 할 운명의 사주팔자를 타고났다는 것입니다. 저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고민하다 결국엔 시누이와 의절하고 여기저기 사찰을 다녔습니다. 그러다 우연찮게 대순진리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순이라는 말은 하지 않고 미륵님을 모시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열심히 치성도 모시고 백일기도도 드리며 새로운 신앙생활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 무얼 물어보면 대답을 회피하고 열심히 치성만 드리라 하면서 숨기는 게 많았고, 그러다 보니 의구심은 더 늘어만 가고 서서히 회의가 생겼습니다. 사실 남편은 진작부터 못 다니게 하였지만 제 고집으로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개벽 다이제스트』라는 책 한 권을 가져와 읽어 보라며 책상에 놓고 갔습니다. 무슨 책이냐고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 주고 그냥 한번 읽어 보라기에 책장을 넘기다 보니 여기에서도 태을주와 같은 주문이 나왔습니다. 호기심이 생겨 단숨에 끝까지 읽고 남편에게 다시 물었더니 “사실은 페이스북 그룹에 친구로 되어 있는 분이 증산도 본부에 계시는데, 증산도에 대해 글을 올리시기에 궁금한 것이 있어 좀 물어봤더니 책을 보내 주셨네”라고 얘기하며 이왕이면 상생방송도 함께 보라며 권하였습니다. 그렇게 증산도를 만나게 되었고 나주남내도장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식당이 도장과 5분 이내의 거리라 식당이 한가한 틈을 타서 21일 동안 매일 도장에 나와 청수를 모시고 수행을 한 후 팔관법 진리 공부를 하였습니다. 남편은 바쁜 일이 있어 일단 저부터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신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고 개벽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참 진리를 만나게 되었고 그동안 고생했던 삶은 진리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론 삶이 힘들어서 조상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마음을 가졌던 것이 너무 죄송스럽고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면서 참 진리를 만나게 해주신 조상님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지금 저는 그동안 대순에 인도해서 입도시켰던 포교 대상자들을 다시 증산도로 인도하기 위해 포교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입도 후에도 지금처럼 도장에 나와서 꾸준히 정성 수행을 하면서 사람을 많이 살리고 싶습니다.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 진리를 믿고 따르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천진교天眞敎에서도 들어 왔던 상제님의 진리


조규환(82, 남) / 태전도안도장 / 147년 음력 4월 입도

제 고향은 강원도 원주입니다. 아버지가 천도교의 한 갈래인 천진교天眞敎를 신앙하셨고 저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21세 때부터 함께 신앙을 했습니다. 그러다 6.25 사변(한국전쟁)이 일어나 피난을 한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아버지를 따라 계룡산 신도안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여러 단체들이 신앙촌을 이루어 살았고 천진교 신도들도 본부 건물을 중심으로 모여 양잠업을 하며 모여 살았습니다. 그러다 전두환 대통령 때 군부대가 입주하기로 결정되면서 신도안에 있는 종교 단체 철거령이 내려져 본부 건물이 헐리고 신도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 때 가족들을 데리고 대전으로 와서 지금까지 살게 되었습니다. 신도안 철거 후에 천진교는 본부가 없어지고 신앙은 개별적으로 집에서 주문을 읽는 정도로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아침저녁으로 시천주 주문을 읽으면서 일상생활을 하였습니다. 저는 도솔산으로 자주 산책을 다닙니다. 3월에 산책을 나갔다가 혼자 앉아 단주를 돌리며 시천주 주문을 속으로 읽고 있었는데 증산도 태전도안도장의 이명례 포감이 다가와서 전단지를 전해 주고 상생방송과 태을주 주문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도안도장에서 세미나가 있다는 말에 함께 참석해 보기로 약속했습니다.

3월 23일 도장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을 했는데 내용이 좋아서 다음 세미나도 참석을 했습니다. 한번 진리 공부를 해 보자고 해서 4월부터 도안도장에서 진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진리 내용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졌고 천진교 신앙을 할 때부터 들었던 내용들도 있었습니다. 진리 공부가 끝나면서 신앙을 하기로 마음먹고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이도 많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적지만 도장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신앙하겠습니다. ◎

‘고교 역사 특강’이 맺어 준 증산도와의 인연


이수현(20, 남) / 태전유성도장 / 147년 음력 3월 입도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역사 특강을 듣게 되었습니다. 증산도 학생회에서 한 강의였는데 그 당시 저는 왜곡된 역사 현실에 반신반의했습니다. 후에 대학교에 진학하여 증산도 학생회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역사 특강의 내용이 생각나 깊게 배워 보고자 하여 거의 매일 동아리방을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게 되었고, 오랜 전통이었던 신명 문화와 우주 변화 원리, 개벽 소식에 대한 것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수행과 진리 공부를 이어 가며 증산도에 대해 계속 알아 가던 도중에 저는 증산도 기본 사상이자 이념인 원시반본의 사상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부모님을 최고로 모시고 잘 섬기라는 말이 그동안의 저를 반성하게 만들기도 했고 앞으로의 행동에 있어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 하나의 가르침이 그동안 갖고 있던 증산도에 대한 선입견을 해소시켜 주었고, 수행과 공부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 죽을 때에 살자는 일이요, 남 사는 때에는 영화와 복록을 누리자는 일이다.’라는 말은 제가 입도를 결심하게 된 도전의 한 구절입니다. 공부를 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개벽기에 일어날 충격적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가을개벽 추살 기운에 희생이 되는데 증산도의 목표는 다가올 개벽기에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살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도 이 일에 동참하고 싶었기에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입도를 결심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오롯이 저의 의지로 결정한 것이니만큼, 수행과 공부에 많이 힘쓰겠습니다. 증산도 진리를 배우며 전보다 더 성숙해지고 발전된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며, 제가 맡은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