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4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

    [가가도장]

    함께 동행하는 믿음의 도방(부천도장 이승훈, 김명성 도생)



    상제님 진리를 신앙한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일대의 큰 축복이요 사건이다. 그것은 진리가 삶의 행로에 던져 주는 의미와 감성이 빛나고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저 한 번 사는 유한한 인생이라 여겼던 착각을 조상과 이어진 거대한 인연 속에 움직이는 목적 있는 삶이라는 확신으로 바꿔 놓는 힘이 증산도 진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늘 바른 길을 찾고 선택하도록 이끄는 선령의 가호와 이에 감응하여 굳은 심법으로 신앙을 다져 나가는 자손의 구도생활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신앙을 만나고 희노애락을 겪는 것도, 정성을 쏟아 도방을 만들고 가꾸는 것도 모두 자기 혼자만이 아닌 가족 및 조상과 더불어 상제님의 진리 속에서 함께 제대로 살아가는 삶의 과정들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이번에 만나는 도방의 사연은 그러한 진리의 명제를 삶 속에서 묵묵히 실천하는 가운데 서로를 든든히 챙기며 살아가는 부부 도생의 이야기다. 부천도장에서 신앙하는 이승훈(47, 교무종감), 김명성(43, 녹사장) 부부 도생은 어려서부터 삶의 근본에 심지를 두고 있던 중 구도의 첫발을 잘못 내디딘 경험이 같았고, 그것을 극복하고 함께 벗어나 부부로서 결합한 인연도 특별하며, 증산도 진리에 안착하는 과정에서 다가온 그릇된 난법의 유혹을 부부가 합심하여 영성과 심법으로 단호히 물리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더구나 두 도생 모두 영성이 밝고 가족과 세상 사람들을 포교하는 과정에서 겪은 흥미로운 체험담들을 들려주었으므로, 독자 여러분은 관심을 갖고 읽어 주시기 바란다.

    지난 3월의 첫 월요일 오후, 취재진은 인천시 서구 신현동에 소재한 이 부부의 가정도장을 찾아갔다. 아파트 13층에 있는 가정도장에 들어서면 아주 깔끔하면서도 뭔가 묵직한 느낌이 다가온다. 통로를 지나 거실로 들어가 밝은 모습으로 맞아주는 이 도생 및 김 도생과 인사를 나누고서 둘러보니 여기저기에 전문 소품으로 써도 좋을 화병이며 장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편안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멋이 드러나는 실내의 풍경은 이 부부의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천신단을 모신 도방은 집에 들어오는 입구의 오른쪽 첫 번째 방을 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도방 신단 정면에는 상제님 어진과 태모님 진영이 모셔져 있고 그 사이에 태을주 족자가 멋지게 세로로 걸려 있으며, 태상종도사님도 따로 단을 마련해 함께 모시고 있다. 왼쪽에는 부부의 양가 조상 선령 신위를 나란히 신단에 모셨고 위쪽 벽에는 천부경과 염표문 액자를 걸어 놓았다. 천신단에 인사를 올리고 거실에 두 분 도생과 마주 앉아 구도에 얽힌 인연과 신앙 과정을 들어 보았다. 주로 김 도생의 체험담이 주를 이루었고, 남편인 이 도생은 알려진 성품대로 아내를 따뜻하게 엄호하면서 이야기 전개 시 중심추 역할을 잘 해 주었다. 인터뷰 말미에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한 외아들 이동현 도생(15, 교무도감)도 합류해 한 가족의 밝은 모습을 카메라 앵글에 함께 담을 수 있었다.

    구도의 여정이 안착하기까지


    삶의 화두를 품고
    이승훈 도생은 대구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할머니께서 정한수를 떠 놓고 간절히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며 성장을 했는데, 그것이 자신에게 깊은 의미를 던져 주는 영력으로 작용하고 있었음을 나중에 상제님 신앙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늘 삶의 의미와 목적이 궁금했던 이 도생은 성장기에 동서 철인들의 예언을 접하면서 인간 삶의 미래와 방향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고 했다.

    아내인 김명성 도생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 인천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강원도에서 성장한 김 도생에게는 학창 시절 한 가지 화두가 있었다. 자신이 이 세상에 오게 된 이유와 이 세상에서 반드시 풀어야 하는 과제,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했다. 그 당시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윤회를 믿었고, 기독교라는 굴레에 사고가 갇혀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해내야 하는 과제를 풀지 못하고 생을 마치면, 똑같은 과제를 짊어지고 다시 태어날 것이란 강박도 갖고 있었다. 싯다르타, 공자, 예수 등 성인의 세계를 동경하고 수월스님을 존경했으며, 그 분들에 관한 서적을 탐닉하며 고매한 인격과 지혜를 통해 아름다운 인간상을 보고 그 향기에 취했다고 했다. 그들을 멘터로 삼아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성숙해 가는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의식의 성장과 변화 때문에 김 도생은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사색하는 시간을 즐기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구도의 길을 찾아서
    이렇게 남다른 성장기를 보낸 두 사람은 구도의 첫발을 내딛으며 같은 곳에서 운명적으로 만났다. 학창 시절에 갖고 있던 생각과 번민들이 김 도생을 종교적인 방향, 구도의 세계로 이끈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김 도생은 대학교 2학년 말 지하철역에서 포교를 하던 대순진리회 신앙인을 만났고, 인생은 뜻하지 않게 대전환을 맞기 시작했다. 진리에 대한 어떤 개념이나 논리도 없이 “당신의 순수한 구도의지, 그리고 부모님과 형제의 목숨이 당신 자신에게 달렸다.”는 대순진리회의 협박에 가까운 말들은 그때만 해도 세상 물정을 모르고 순수했던 김 도생을 대순진리회에 몸담게 하기에 충분했다. 사명감이 불타오른 김 도생은 부모님을 속이고 학교를 휴학한 채 대순진리회의 한 연락소에서 불고가사를 시작했다. 이후 3년의 세월 동안 평범하게 살았으면 겪을 수 없었을 많은 고초들을 겪으며 고단했으나 나름대로는 순수했던 구도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런 고초들이 몸을 쇠약하게 만들면서 결국 그 굴레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오는 구실이 되었다. 이 도생도 1998년 4월경 서울 건대역 앞에서 대순진리회 사람을 만나 상제님을 알게 되었고 유사한 과정을 거쳐 대순에서 신앙을 시작했다. 이 도생이 김 도생을 만난 것도 바로 그곳 대순 신앙의 틀 속에서였다.

    불의에서 탈출하다
    두 사람은 대순 신앙을 하면서 얼굴만 알고 지내던 사이였으나 서로 문자를 주고받으며 친해졌다. 김 도생은 불고가사를 하는 동안 대순진리회의 많은 비리와 부조리들을 알게 되었고, 신앙에 회의감을 느끼며 방황을 하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무술 유단자인 이 도생은 대순의 큰 축을 이루는 안동 방면 최고 선감의 밀착 경호를 맡고 있었는데, 그 역시 고위 간부들의 비리를 한눈에 목격하면서 대순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맡은 책임이 막중해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대순이 잘못된 곳임을 알게 된 이 도생은 일단 몸이 쇠약해진 김 도생을 설득해 그곳에서 빠져나오도록 계기를 만들어 대순에서 먼저 빼냈다. 그리고 이 도생 자신은 경호를 하던 안동 최고 선감이 병환으로 별세하자 책임에서 벗어났고 드디어 대순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특별한 과정을 함께한 것이 인연이 되어, 이 도생과 김 도생은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다가 2001년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김 도생은 3년간의 대순 구도 여정을 마치면서 그곳은 상제님의 진정한 진리가 있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굳혔다. 그러면서 동시에 분명히 다른 어떤 곳에서는 진정한 진리가 존재하고 개벽이 준비되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인생의 화두를 풀기 위해 험한 고초를 감내하며 걸었던 구도의 첫 여정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무산된 아쉬움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시 떠난 여정
    만 3년의 대순 신앙을 종료하고 결혼 생활을 하면서 김 도생은 다시 진리에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불교 조계종의 작은 포교원을 운영하는 스님과 인연을 맺고, 불교 신앙을 잠시 하였다. 그때 ‘감로화’라는 법명을 받았고, 백팔배례 백일 수행을 하며 아기를 가졌다. 하지만 뜻도 모르는 염불 수행은 어딘가 상당히 의구심이 일고 답답했다. 시댁 근처에서 살다가 남편인 이 도생이 직업을 바꾸면서 인천의 친정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그 스님과는 자연스럽게 결별을 하게 되었다.

    진리의 목마름은 어딜 가나 스토커처럼 김 도생을 따라다녔고, 이번에는 집 근처 천주교 성당을 찾아갔다. 천주교에서 진리를 찾기보다는 세상살이에 찌들지 않도록 영혼을 갈고닦고 마음을 돌아볼 어떤 조용하고 신성한 전당이 필요했다.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은 아니지만, 잠시 빌려 입을 만해서 베로니카라는 세례명을 받고 천주교 신앙을 시작했다. 세상과 잠시 떨어져 있는 수도 장소로 성당을 활용하면서도 마음속에는 진리 탐구의 여정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카발라’라는 서양 종교철학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중학생 시절 그렇게 좋아하던 헤르만 헤세가 카발리스트였다는 것을 그 당시 알게 되면서, 김 도생은 더욱 카발라에 빠져 공부를 했다. 그때 열중했던 카발라 공부는 증산도를 연결시키는 고리가 되었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김 도생은 1년여 천주교 신앙을 하며, 카발라 공부를 해 오다 카발라 책을 더 구할 목적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동서양 철학을 총망라하는 인터넷 카페 ‘레뮤리아’를 찾게 되었다. 거기에서 카발라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있었는데, 그 카페 운영자가 증산도인이었다.

    김 도생은 그 즈음 서울 강남에 종종 볼일이 있어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늘 나타나는 증산도 간판이 있었는데, 자꾸 마음이 끌렸다. 대순에 있었던 경험으로 증산도는 상제님 진리가 기독교와 결합된 사이비로 알고 있었기에 선뜻 다가설 수 없었고, 또 대순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될까 두려워 경계를 했다. 그러나 묘하게 끌리는 마음이 들어 간판에 기재되어 있는 전화번호를 외웠다가 잊어버리곤 했다. 그러던 중 레뮤리아 카페를 찾았고 익명으로 증산도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증산도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정말 반가운 마음에 증산도에 대한 여러 질문을 올렸다. 그런데 운영자는 본인이 부족하여 답변을 잘 할 수 없으니 『개벽실제상황』이라는 책을 구입하면 관련된 진리 도서 및 카발라 관련 서적도 보내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책을 좋아해서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김 도생은 며칠 후 택배로 큰 박스에 담긴 십여 권의 책들을 한꺼번에 받는 횡재를 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두꺼운 서적이 있었는데, 바로 『도전道典』이었다. 김 도생은 도전부터 읽기 시작했고, 그야말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몰입을 하게 되었다. 집중력이 생긴 김 도생은 밤을 지새우며 도전 삼매경에 빠져들었으며, 생생하고 감동적인 도전 내용에 웃고 울며, 그렇게 증산도 진리에 대한 감동에 젖어 들었다.

    입도, 그리고 가족포교
    김 도생은 증산도 진리에 관한 책들을 받아 읽으면서 어느 날 조심스럽게 남편에게도 운을 뗐다. 그러자 이 도생도 관심을 보이면서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순에서 받은 상처가 있어 증산도 진리를 거부하리라 생각했는데, 이 도생은 의외로 쉽게 진리를 받아들였고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확인 과정을 거친 이 도생과 김 도생은 138년 10월 26일 나란히 동시에 입도를 하게 되었다.

    김 도생은 남편이 비교적 쉽게 증산도를 받아들이고 입도를 했던 이유에 대해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제가 나중에 환단고기를 알고 공부하게 되면서 고성 이씨인 남편이 이맥李陌 선생님의 후손임을 알게 되었어요. 증산도 입도가 쉬웠던 이유가 고성 이씨 문중 조상님들의 공덕이 컸던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한민족 신교 삼신문화와 원형 역사관의 화신으로 칭송되는 이맥 선생의 위업을 생각해 본다면, 그 자손이 원시반본의 참 진리를 만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며 거기에 조상 선령의 음덕도 분명한 영향을 미쳤을 것임은 진리적으로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두 도생은 증산도에 입도한 후 가족포교를 위해 힘을 기울였다. 먼저 이 도생이 집에 방문하신 어머니께 상제님 태모님 말씀과 현재 세운의 상황 등을 비교 설명하면서 도담을 통해 진리를 전하기 시작했다. 김 도생도 옆에서 거들었고 우여곡절 끝에 시어머니 이상영 도생의 입도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70대의 이상영 도생은 한국전쟁 세대이면서도 사범대학을 다니시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서양식 사고를 익힌 분이라 신도 세계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 내외가 의기투합하여 함께 하나의 종교를 같이 시작했다는 것을 참 신기해하며 관심을 보이셨고, 논리적으로 증산도의 진리를 반박하기 위해 진리 공부를 하셨지만 반박의 거리를 찾지는 못했다. 거주하시는 지역과 가까운 대구수성도장 수호사님과 연결되어 진리 공부를 하셨고, 이 도생의 집에서 1주일간 머무시며 상생방송만 시청하시더니 입도를 결심하셨다고 한다.

    수행 체험도 없어 척신이 있으면 내 따귀라도 때려 보라고 하시던 분이셨는데, 도장에서 하루 세 시간씩 7일간 작심하고 정성수행을 시작하면서 결정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이상영 도생이 어린 시절에 선친은 6.25 전쟁에 소령으로 참전하셨다가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하셨는데, 아버지의 그 전사 장면을 수행 중 뚜렷이 목도하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너무도 충격을 받은 이상영 도생은 수행 도중 그대로 오열하며 한동안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 뒤로도 여러 신도 체험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신도 세계를 알게 된 이상영 도생은 지금은 도공 체험도 종종 하신다고 한다.

    가족포교의 완성을 향하여
    어머니에 이어 김 도생이 친정 오빠와 올케언니를 포교하기 시작했을 때, 오빠는 바쁜 직장생활로 시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도장에 와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빠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사이비에 빠졌다고 생각하여 구해 내고자 도장에 갔던 것인데, 진리 교육을 듣다 보니 진리에 감화되어 입도를 하게 된 사례이다.
    이 도생과 김 도생 부부 사이에는 외아들 이동현 도생(15, 교무도감)이 있다. 부모가 입도 당시 6세였던 이동현 도생은 아빠, 엄마를 따라 도장을 다니고 청수를 올리며 자연스럽게 증산도 신앙문화를 받아들였다. 순수한 어린 아이였기에 수행 체험도 빨라 청수 올리며 은하계를 보거나 상제님과 태모님, 태사부님 관련 꿈도 자주 꾸는 등 밝은 영성을 보여 주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입도를 해서 현재 중학교 2학년인데, 또래 아이들처럼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사춘기에 접어든 데다 워낙 숫기가 없어 도장 치성 참석을 힘들어 하는 면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종통관이 확립되어 있어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에 대한 요지부동의 확고한 믿음과 경외심이 뿌리내리고 있고, 개벽과 신도세계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음을 대화를 통해 종종 확인할 수 있다면서, 김 도생은 매일 불평 없이 수도복을 갈아입고 부모와 함께 청수를 올리는 아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한다.

    살릴 생生 자는 간절함과 의지의 실천 공부


    진리 감응이 부른 자연스런 포교
    김 도생은 처음 부천도장으로 인도되어 입도를 하고 신앙을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새로웠고 재미있었다고 한다. 특히 남편인 이 도생과 한마음으로 증산도 진리를 공부하고 서로 느낀 점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신앙적인 어떤 사안이든 서로 함께하며 상의해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개벽으로 많은 인류가 희생될 수밖에 없음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우울했으며, 어느 날은 TV방송을 시청하는 중 순수한 꼬마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며 갑자기 눈물이 터져 한참을 울기도 했다는 말을 했다.

    이렇게 감성적이고 충만한 진리 감성은 곧 포교로 이어졌다. 그 당시 신입신도로서 누가 포교를 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었지만, 진리에 감응되어 발심이 된 간절한 마음을 갖고 있던 김 도생은 포교라는 차원보다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려 주고, 태을주라도 전해 줘야겠다는 순수한 생각으로 출발을 했다. 그래서 자신이 운영 중인 정혈과 관련된 대체의학 연수원에 오시는 분들에게 진리를 전하고자 했다. 그때부터 가정도방에서 기도 수행을 통해 힘을 비축하고, 연수원 현장을 중심으로 실제적인 포교 활동을 진행하는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것만큼은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진리 내용들을 대강이라도 논리적으로 이어 말할 수 있을 정도로만 준비해서 연수원에 오는 회원들에게 우주1년을 이야기해 주고 태을주를 알려 주었다. 그런데 대상이 된 회원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뭔가를 더 기대하는 모습을 보이자 도장으로 인도하기 시작하면서 뜻하지 않게 포교로 이어지게 되었다. 진리 전달 시 부족한 부분은 하나하나 보충해 나가면서 도담도 충실해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포교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정말 신명나게 포교를 해 나갔다. 이제 포교 시 겪은 체험을 중심으로 몇 가지 사례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우리는 이제 살았어요!”
    김 도생은 포교를 하면서 사람을 살린다는 보람과 가치만으로도 충분히 기쁨을 느꼈다고 하는데, 포교를 반복하면서 알게 된 것은 진리 도담을 시작하면 어떤 경우에는 이를 방해하는 척이 발동된다는 사실이었다. 진리 전달이나 입도 과정에서 몸을 아프거나 힘들게 하여 괴롭히거나 크고 작은 사건을 일으켜 집요하게 입도를 방해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런 방해에도 불구하고 김 도생의 간절한 기도와 대상자의 굳은 의지로 입도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관련 사례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한 포교 대상자분이 진리 공부를 무사히 마치고 입도식을 하러 도장으로 오는 중 타고 있던 버스에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그분은 전혀 다치지 않았고, 입도식에 늦을까 봐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거의 입도치성 시간에 임박하여 도장에 도착했다. 도장에서 기다리던 김 도생은 교통사고 소식에 놀라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사히 입도를 하고 지금도 신앙을 잘 하고 계신 그 도생은 입도하기 며칠 전 돌아가신 시부모님께서 꿈속에 나타나 다정한 미소를 지으시며 자신을 바라보셨고, 시어머님이 옆에 앉아 계신 시아버님께 “우리는 이제 살았어요. 여보!”라며 기뻐하시는 영적 체험을 전했다고 한다. 도문에 들어오는 길에 척신의 방해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헤쳐 나가야 하는 당사자인 자손 못지않게 신도에서도 애타는 마음으로 염원하고 함께하는 조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개종으로 이끈 조상님#


    이번에는 조상들의 인도로 어려운 개종을 한 대상자의 사례이다. 그분은 당시 스님과 함께 전국 산중의 절들을 찾아 순회하며 정성을 드릴 정도로 불교를 신실하게 신앙하던 분으로 다니는 절에서 조상천도식을 앞두고 21일 정성기도를 하던 중이었다. 불교의 가치관에 깊이 젖어 있어 증산도에 대해 마음을 열기가 너무 어려운 상태라 진리 공부를 권하기보다, 일단 수행 체험을 유도해 갔다. 마침 도장 차원에서 준비한 세미나에 참석을 시켰고, 그 세미나를 통해 마음이 좀 더 열린 그분은 절에서의 정성기도를 다 마치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마음을 돌려 도장에서 수행을 해 보겠다고 했다. 아직까지는 마음이 많이 닫혀 있는 상태라 증산도 도생들과의 만남을 부담스러워 한 상태에서 21일 정성수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3일째 되는 날부터 도장에서 도생들과 부드럽게 대화를 시작하고, 부엌에 들어가 설거지를 하는 등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으며 수행을 다 마치고 나서는 입도를 결심하였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수행 중 자신의 뒤로 수십 명의 조상님들이 함께 수행하시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그렇게 조상님들의 인도로 어렵게 굳은 결심을 하고 불교에서 증산도로 개종을 할 수 있었다.

    다리 절단 위기를 태을주로 건지다
    특별히 소개할 사연은 입도한 지 1년쯤 된 신입신도의 포교 사례다. 당장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급히 태을주를 처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포교로 이어지게 된 경우이다. 모든 항생제가 무용지물이어서 절단밖에는 방법이 없는 ‘녹농균’에 우측 발이 감염된 남편을 휠체어에 태워 연수원을 방문한 부부가 있었다고 한다. 병원의 절단 수술을 거부하고 여기저기를 거쳐 수소문 끝에 연수원을 찾아온 경우였는데, 연수원에서 몇 차례 치료를 받은 후 상태가 상당히 호전은 되었으나, 환부에 단 한 마리만 남아도 다시 번식을 시작하는 녹농균을 마지막까지 완벽히 없애야 하는 문제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결국 태을주를 전해야겠는데, 함부로 전하면 거부감만 커질 뿐이어서 어떤 계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치료 중 환자인 남편이 어머니께서 정한수 떠 놓고 칠성님께 빌어 태어난 귀한 아들이었다는 얘기가 나왔고, 이를 계기로 상제님과 칠성, 태을주 등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가며 태을주를 읽으면 반드시 완쾌될 것이라고 당부했고, 환자가 마음을 열고 이를 받아들이면서 하루 종일 일심으로 태을주를 읽으며 치료를 병행했다. 김 도생은 상생방송 시청을 권유하고, 연수원에 올 때마다 1시간씩 우주1년을 비롯하여 증산도 진리를 함께 전했다. 그렇게 7회의 치료를 마친 후 병원 검진에서 완치 판정을 받았고, 정상인으로 다시 생업에 복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남편의 치료가 끝난 후 김 도생은 10년째 정성스런 불교 신앙을 하고 있는 부인에게 계속 증산도 진리 공부를 마저 해 볼 것을 권했다. 그분은 이에 동의했고 이후 7개월 동안 매주 만나 연수원에서 진리 공부를 했고, 환단고기 콘서트와 개벽 콘서트에 참석하였으며, 집에서는 도전을 봉독하고 상생방송을 시청함으로써 결국에는 모든 의식과 마음이 증산도에 기울면서 무사히 입도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분이 현재 부천도장에서 신앙 중인 김나순 도생이다. 치료를 받고 생업에 복귀한 남편은 김나순 도생의 신앙을 지지하고 후원해 주고 있으며 차후 여건이 되면 부인과 함께 신앙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포교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
    김 도생은 포교를 하는 중 대상자들이나 자신에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체험들을 겪어 오며 누군가 포교는 수도의 종합예술이라고 했던 말씀이 생각난다고 했고, 그간의 포교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이렇게 정리했다.

    “한 사람과 그 조상님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정성을 드리고, 마음을 끓이며, 척신의 발동을 함께 감내해 주면서 많은 신도체험을 겪게 됩니다. 상대의 마음을 파악하고, 어떠한 것도 수용하고 포용할 줄 알게 되면서 자기 수도의 과정을 거치게 됨을 알았습니다. 척신의 손에서 확 잡아끌기 위해 강한 면모도 보일 줄 알아야 하며, 입도를 하고 나면 절로 신앙인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 스스로 자립신앙을 할 때까지 길러 주는 정성이 또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기르듯 정성을 쏟고 부대끼면서, 나의 모난 부분들이 드러나고 깎이고 하는 그 과정 속에서 결국은 마음이 닦여 가며 진정한 수도가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도방은 함께 만드는 믿음의 조화 성소


    도방이 안겨 주는 유대와 안정감
    이 도생과 김 도생은 증산도 신앙을 한 뒤로 집을 구할 때 방 4개가 있는 집을 찾아다녔다. 4개의 방 중 하나는 전용 도방을 꾸미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방에 출입 시에는 항상 집이라도 외관을 갖추고 출입하였다. 가가도장 천신단을 마련하라는 종도사님 말씀이 있고 난 후에는 더욱 정성을 기울여 도방을 만들었다. 신단은 손재주가 많은 김 도생의 오빠에게 부탁해 주문 제작을 했다. 매일 봉청수를 올리고 수행을 하는데, 이 도생은 경찰이라는 직업적 특성상 당직이 잦아 여건이 가능할 때 함께 청수를 모시며, 그렇지 않을 땐 김 도생이 아들과 둘이 모시는데 종도사님 말씀을 받들어 수도복을 단정히 갈아입고 봉청수와 수행을 하고 있다. 가족이 함께 청수를 모시면 모두 한마음이 된 듯하고 더욱 친밀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가족이 한마음으로 정결하고 엄숙한 어떤 의식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이 그 유대감을 더욱 돈독히 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김 도생은 연수원 운영과 가정 살림을 겸하며 숨 가쁘게 일을 해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포교대상자를 위한 정성 기도나 다른 주제의 기도 수행을 드릴 때는 거리가 먼 지역도장에 가기보다는 가정도장에 의지하고 도방을 적극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앞서 포교 이야기를 전할 때 언급한 것처럼, 진리로 인도를 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여러 상황들이 종종 연출되었으므로 김 도생은 일단 대상자가 생기면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기도 정진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정성 기도를 드리거나 어떤 일을 끄르기 위한 주과포 제물치성을 올릴 때도 가정도장을 십분 활용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가정도장은 생활 속에서 가족을 가까이 하나로 묶어 주는 중심축의 의미로서도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도방 수행과 신앙의 은혜
    김 도생은 도방에서 수행을 하고 그 기운을 잘 갈무리해 두었다가 포교에 사용하는데, 영적인 체험이나 은혜를 받기도 한다고 했다. 연수원 운영과 관련하여 동양의학서 중 어떤 한의학 서적을 읽고 있었는데, 그 책의 한의학적 용어들이 생소하여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던 어떤 페이지를 펼쳐 둔 채 독서대에 놓아두었는데, 다음 날 일요치성 시 종도사님께서 도훈 중 갑자기 인체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그때 인체를 한의학적으로 상세히 설명을 하셨는데, 그 내용이 바로 이해가 잘 안 되어 펼쳐 둔 페이지에 해당하는 내용들이었다. 또한 바쁜 생활로 인해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방대한 진리 서적들은 거의 손을 대지 못해 진리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는데, 대상자들에게 열변을 토하며 도담을 할 때면 자신도 잘 모르는 용어를 사용하고, 설명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도담을 마치고 우주변화원리 등 진리서에서 그 해당 내용을 찾아보면 자신이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고 설명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 도생은 이를 ‘불현듯 깨달아지는 각성’이라고 표현하며, 진리 신앙의 은혜라고 말했다.

    이 도생도 입장은 다르지만 생활 속에서의 재미있는 체험을 얘기해 주었다. 최근 직장에서 승진시험이 있었는데 경쟁률이 너무 심해 합격하기기가 다른 해와는 다르게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다. 250명 정도 응시에 16명만 합격이 되는 시험이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일들로 시험 공부가 부족했던 이 도생은 마음이 많이 불안했다. 시험을 치르기 전날 도방에서 청수를 모신 뒤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 조상님 전에 기도를 간절히 올렸다. 작년, 재작년 두 해를 승진시험에서 낙방하였고, 이번이 3수째였다. “이번 시험이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반드시 합격을 해야 합니다. 16등은 너무 아슬아슬한 등수니까 꼭 15등으로 합격하게 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친한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전화기 너머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합격했어요, 가만히 보자 15등이네!” 순간 이 도생은 너무 기쁘면서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면서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고 한다. ‘와~ 진짜 15등이네’

    부부란 믿음으로 지켜 주는 도방의 동반자
    옳지 못한 난법 기운에 맞서 영적인 싸움을 벌여 이겨 내야 했던 김 도생은 마음에 내상을 입어 많이 힘들어했다. 이를 목격한 남편 이 도생은 그것이 척신에 의한 것임을 직감하고 도방에 아내를 앉혀 놓고 강력하게 운장주를 108독 읽어 주었다. 처음에 김 도생은 어떤 좋지 않은 기운에 눌려 앉은 채 힘들어했으나, 이 도생의 안정적이고 강력한 운장주 주송이 계속되자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영靈이 밝은 이 도생은 수행 중 난법의 원흉인 연맥 뿌리의 영기가 못마땅한 듯이 자신들을 노려보다가 운장주 기운에 밀려 뭔가에 쿡 찍히듯 천장 구석에 처박히는 것을 목격했다.

    이 도생은 이러한 일이 신앙의 동료이자 부부로서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며, 그 어떤 신앙의 위기가 있을 때마다 자신들은 끊임없는 부부간의 믿음으로 그것을 극복해 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김 도생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했는데, 아주 훈훈한 답변이 나왔다. 그 표현을 옮겨 보면 이렇다. “남편은 제 신앙의 동반자이며, 지지자이며, 후원자입니다. 저 또한 남편에게 그런 존재일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진리적 갈망으로 여러 종교들을 무리 없이 섭렵해 올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가치관이나 거부감과는 무관하게 아내인 저를 위해 항상 옆에서 후원하고 동행해 준 남편의 힘이 컸습니다. 그런 남편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렇게 가가도장은 우리 부부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가정의 중심입니다. 더불어 아이를 양육하는 정신적, 신앙적 가치가 응축되어 있는 장이기도 합니다.”

    하나씩 채우며 함께 성장하는 신앙으로


    많은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이 도생은 먼저 경찰이라는 직업에 종사하면서 도방을 대하는 심경이 다른 가정보다 좀 더 각별하다고 했다. 업무상 당직이 잦아 지역도장에 참석을 잘 못하는 일이 자주 있다 보니 그럴 때는 가정도장에서 배례로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신앙의 부족함을 새롭게 정성으로 채우고 집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도장이 있는 것이니, 그럴 때마다 가가도장을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가족과 함께 상제님 신앙으로 똘똘 뭉쳐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진정한 가가도장의 모습을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김 도생은 연수원을 운영하며 육아와 살림, 포교와 신앙생활을 하며 정말 쉴 틈 없이 살았고, 다른 환우를 돌볼지언정 자신을 돌보기가 힘든 일상이었음을 돌아보면서, 앞으로는 천천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을 하며 지금까지 손을 대지 못했던 방대한 진리 서적들을 공부하며 좀 더 진리의 깊이를 쌓아 가고 싶다고 했다. 진리 공부와 자기 개발로 사상 신앙의 깊이를 더해 가며 주춤거렸던 포교의 열의를 다시 다져 나가고, 도제들의 육임 포교에 성심을 다하여 조력 지원해서 그들이 당당히 태을핵랑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의지도 보여 주었다. 더불어 주어진 살릴 생生 자 사명을 이루어 나가면서, 자기 성숙의 길을 우보천리牛步千里 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져 가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또한 초립동이 아들에게 진리의 부름이 있는 그 날까지 진리적인 일꾼의 면모를 갖춰 나가도록 좀 더 심혈을 기울이겠다는 포부도 언급했다.

    “네가 어떻게 찾았느냐?”- 조부모의 구도 역정을 되찾은 손녀
    시어머니의 입도에 용기를 얻어 김 도생은 친정 부모님께 증산도 입도 사실을 알렸다. 부모님은 처음엔 몹시 놀라며 잘못되지나 않을지 걱정을 하셨으나 시어머니도 입도하셨다고 하니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그때부터 증산도 진리를 본격적으로 부모님께 전하기 시작했는데, 증산도 진리를 들으시던 아버지께서는 깜짝 놀라시며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김 도생도 생전 처음 듣는 얘기라 놀라고 당황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함경남도가 고향이신 김 도생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남쪽으로 내려와 강원도에 정착하며 구도의 삶을 사시게 된 이야기였다.

    당시 젊으셨던 할아버지께서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백발에 수염이 길고 흰옷을 입은 한 선인이 나타나 “남으로 가라”는 말씀을 하고 사라지셨다고 한다. 참으로 기이하기는 했지만 연고 하나 없는 타향으로 쉽게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었는데, 그 뒤로도 연거푸 같은 꿈이 세 번이나 반복되자 할아버지는 결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경위를 말하고 상의를 했으나 오직 증조할아버지만이 함께 가기로 결심을 하셨고, 맏아들이셨던 할아버지는 아내, 자식과 함께 증조할아버지를 모시고 목적도 없이 남으로 내려와 강원도에 집을 마련하셨다. 그 후 증조부께서 집을 알아 놨으니 고향에 다녀오마 하고 북으로 올라가셨다가 38선이 그어지면서 다시 내려오지 못하셨고, 할아버지 가족만 남쪽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느 날 강원도 함병산에서 한 도인을 만났고, 그 도인으로부터 책과 주문을 전수받아 수도를 시작했는데, 두 분이서 함께 옥황상제님께 청수를 모시고 주문수행을 하셨다는 것이다. 그 도인은 태풍이든 지진이든 천재지변을 정확히 내다보고 미리 피할 수 있게 알려 주었고, 앞으로는 “길에 비단을 깔고 다니게 된다.”고 했는데 후일 길에 아스팔트가 깔렸으며, “사람 위에 사람이 살고, 그 위에 또 사람이 살고, 겹겹이 살게 된다.”고 했는데 아파트가 들어섰다고 한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던 김 도생은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항상 도인에 관한 많은 말씀을 해 주셨고 그걸 그저 재미있는 옛이야기로만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했다. 또한 그 도인이 “100년 안팎 정도 되는 신흥종교 중에 답이 있으니 그 종교를 찾으라.”고 했다면서 할머니께서 새로 생긴 신흥종교들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조금씩 다니셨던 사실도 기억해 냈다. 결국 증산도를 찾지 못하시고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분명 천상에서 자신을 증산도로 인도 하셨으리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 도인이 전해 준 개벽에 대한 말씀을 아버지께 자주 전하셨고, 꿈속에서 “중앙을 찾으라”고 한 선인의 말씀을 화두로 10여 년을 수도하다가 “천지중앙은 마음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화두를 마치셨다고 한다. 또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정성어린 봉청수와 수행 기도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맏아들, 즉 김 도생의 큰아버지가 전장에서 일곱 차례나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서 같이 참전했던 동네 젊은이 중 유일하게 살아서 돌아오는 기적을 낳게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러한 집안의 내력을 말씀하시며 김 도생에게 “네가 어떻게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하시던 신앙을 찾았느냐?”고 물으며 놀라워하셨다고 한다.

    이상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조상의 구도 공력이 자손에게 전해지고 이어지는 인사의 배경과 현실을 이해할 수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현실 역사를 이면에서 조율하는 신도의 존재, 이理-신神-사事의 진리 법칙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사례인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집안이 상제님 신앙과 깊은 연이 있음을 알게 된 김 도생은 당시의 충격과 감동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 일이 있는 후 김 도생의 아버지보다 어머니인 황인분 도생이 먼저 입도를 하셨고, 아버지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의 개벽 신앙에 대한 회의와 상처가 있어 아직 입도를 원치는 않지만 적극적인 신앙 후원자가 되셨다고 한다. 도전을 모두 읽으셨고 태을궁 대천제에 몇 차례 참석하시면서 이렇게 우리 조상들의 민족 신앙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곳은 증산도밖에 없을 것 같다며 찬탄하셨다는 것이다.

    난법에 맞서 도심주道心柱를 지키다
    상제님 신앙을 하다 보면 사욕에 치우쳐 진리를 왜곡하고 오도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상제님께서도 일러주신 바처럼 우리는 이를 ‘난법’이라고 표현한다. 과거에 이런 잘못을 범한 사람 중 한 명이 이 도생과 김 도생 부부에게 수시로 전화를 하면서 몇 달에 걸쳐 신앙을 흔들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본래 거짓과 왜곡을 일삼는 사람일수록 본색과는 달리 그럴듯한 감언이설을 더 잘하는 법인데, 그 상대가 도의 연맥이었기에 괴로움을 무릅쓰고 한 번에 2시간 이상씩 전화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전화를 받을 때마다 김 도생은 종종 멍한 상태가 되었고, 통화 중 두통이 심하게 오거나 많이 어지러웠으므로 그 내용들이 옆으로 흘러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김 도생은 이를 “조상님이 귀를 막았다.”고 표현했다.

    난법자가 직접 찾아오기도 했었는데, 온갖 음해와 교설을 쏟아낼 때에도 수긍이 가기는커녕 마음에서 강한 거부감이 일었고, 지도자를 음해하는 말들을 쏟아 놓을 때에는 내가 믿는 지도자는 누구의 말을 듣고 절대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경계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도를 받은 구도자로서 배은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무엇보다 ‘그대로 남아야 한다’는 마음 속 누군가의 목소리가 강하게 들렸다고 했다. 더불어 당시 도장 책임자분이 사실을 규명하고 올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마음을 다해 주셨던 것에 깊이 감사한다고도 했다.

    이 도생도 난법자들이 지속된 문자 발송을 통해 신앙을 흔들고자 시도했던 상황을 겪었다. 하지만 오로지 상제님, 태모님,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으로 이어지는 종통 이외에는 모두 난법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들에게 접촉 시도를 하지 못하도록 강경한 발언으로 조치하였다고 했다. 또 한동안 신앙활동을 하지 않던 도제 한 분이 갑자기 연락을 해 왔는데, 상제님을 신앙하는 또 다른 유사 단체에 들어가 이상한 논리로 도전 해석을 하며 오히려 이 도생과 김 도생 부부를 그쪽으로 포교하려고 시도했다. 이에 그가 주장하는 이상한 교리에 대해 상대가 화를 낼 정도로 궁지에 몰아세우며 반박을 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도생은 그런 일들을 겪으며 증산도를 향한 마음을 더욱 굳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김 도생은 난법에 맞서 이겨 내는 과정에서 스스로 많이 힘들었고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이내 곧 자신이 도를 전해 준 도제들을 난법의 손길에서 차단하기 위해 애를 쓰며 단속을 해 나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이 고난에서 스스로 이겨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 또한 천지일월 사체 부모님을 제대로 도제분들의 마음속에 각인을 시키고 바른 신앙의 길을 인도해 주어야 하는 누군가의 사수이자 안내자였기 때문입니다.”
    김 도생의 이 말을 듣자니 ‘도심주道心柱’라는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읽히는 기분이 들었다. 신앙에 있어 참으로 중요한 것이 마음을 제대로, 바르게 쓰는 심법 문제라는 종도사님 말씀과 함께 말이다.


    이번 가가도장은 구도의 삶을 함께 걸어 온 도생 부부가 아픔과 성취를 함께하며 한 가족으로 사랑과 믿음의 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들이 만든 도방은 유대紐帶와 동행同行을 화두처럼 안고 살면서 늘 밝고 따뜻한 기운을 발하는 둥지 같은 곳이다.

    동행한다는 것은 조건이나 구분을 전제하지 않고 영육이 늘 안정을 누리도록 서로 배려하고 돕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뛰어넘어 내면의 영성과 의지가 기초인 신앙에 있어서도 모두가 함께 갈 수 있는 동행의 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상제님의 가르침을 순수 감성으로 읽고 자연법의 천지 이치로 도맥의 종통을 이해할 수 있는 바른 심지를 가졌다면, 구도자로서 진정한 동행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들 부부는 영성이 밝다. 그래서 진위를 구분하고 사리에 맞게 처사하며, 어떤 것이 용기이고 무엇이 사랑인지 감각적으로 이해할 줄 안다. 태을주를 숨 쉬듯 읽어 영성을 틔우고 조화로운 인간으로 갱생해야 할 모든 태을랑들이 이들의 동행과 유대의 방식을 주목해야 할 이유가 바로 그러한 영적 감수성 문제에 좋은 참고가 되기 때문이다.

    가족에 대한 신뢰와 애정, 사람들을 살리기 원하는 순수한 정서와 노력, 그리고 현장의 다양한 포교 사례들은 조상의 구도 여정을 되찾은 자손의 설렘만큼이나 우리에게 감동과 교훈을 안겨 준다. 그 아름다운 조화와 영성으로 사람 살리는 살릴 생生 자 기운을 세상에 가득 채워 가시기를 염원하며, 이승훈, 김명성, 이동현 도생 가족의 도방에 천지일월의 가호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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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04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