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방송과 함께 자리 잡은 성찰과 극복의 생활신앙(유영근, 이재순)

[가가도장]

서울강남도장에서 신앙을 하고 있는 유영근(38세, 녹사장), 이재순(43세, 녹사장) 도생 부부는 매사에 긍정적인 자세로 신앙과 생활을 무던하게 영위해 가는 사람들이다. 성격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은 조용한 듯하면서도 강인한 심성을 가진 알짜배기이고 서로가 좋은 반려자로서 제 몫을 성실히 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닮은 구석도 많다. 그래서 이 부부는 타고난 연분이자 잘 어울리는 도반道伴이라 표현해도 무리가 없는 특별한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상제님 진리와 인연을 갖게 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진리를 만나고 신앙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사연과 삶의 굴곡을 겪었다. 하지만 그것을 원망과 불운으로 돌리지 않고 진리적 감성과 영적 감화를 통해, 그리고 내면의 자각과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끈끈하면서도 다부진 ‘신앙인’으로 거듭났다. 부포정인 유 도생은 도장의 부책임자로 중추적 도정 실무를 담당하고 있고, 포감으로 봉직하고 있는 이 도생은 여러 제약 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뛰면서 도인으로 잘 사는 법을 나름대로 터득해 가고 있다.

이번 호의 도방 이야기는 진정한 신앙인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부부 신앙인의 도방 이야기이다. 중년이 되어 아이들을 기르며 살아가는 표준적인 도생의 이야기라 할 수 있지만, 알고 보면 매사를 진리의 기준으로 바라보고 풀어가는 우리 자신들의 숨은 이야기이고 신앙의 지혜와 힘이 느껴지는 체험들을 나누어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하다.

추운 겨울에 들어선다는 입동立冬을 나흘 앞둔 11월 첫 주 목요일 오전 시간, 취재진은 서울 서초구 신원동에 소재한 유영근, 이재순 부부 도생의 도방을 찾아갔다. 근래에 들어선 신축 아파트에 속하는 이곳은 말끔하고 산뜻한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며 권내 주변 환경도 자연과 적절히 조화를 이룬 곳이다. 아파트 5층에 마련된 가정도장에는 이 두 사람의 부부 외에도 일곱 살 먹은 딸 정인이와 네 살배기 아들 지상이가 오순도순 살고 있다.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진입해 보면 밝은 거실과 함께 창밖으로 외부 자연 경관이 바라다 보이는 환하고 화사한 느낌을 받게 된다. 거실의 소파도 중후한 느낌을 주는 색깔이 아니라 밝은 톤의 붉은 색상이라 생동감이 느껴진다. 소파 맞은편 벽면 상단 중앙에는 청룡언월도를 든 관운장 모습이 액자로 모셔져 있고 아래쪽에 있는 TV에서는 늘 상생방송이 켜져 있다. 주방쪽으로 놓여 있는 책장에는 빼곡히 진리 관련 서적과 자료들이 꽂혀 있다.

거실과 벽을 두고 마주하고 있는 안쪽의 전용 도방은 크지는 않지만 부부와 아이들이 청수를 모시기에 알맞은 아담한 천신단이 조성되어 있다. 신단 벽 위쪽에는 상제님 어진과 태모님 진영 및 태을주 족자가 함께 자리를 잡았고, 아래로는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 그리고 조상선령 신위가 모셔져 있다. 그 앞에는 네 개의 청수그릇이 번쩍거리며 가족들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이 분명히 계신다


진리를 찾아 방황하던 소년
유 도생은 화목하고 순하다는 뜻을 지닌 전남 화순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귀엽고 재기 있는 성장기를 보내던 유 도생은 중학교와 고교 시절에 또래들과는 달리 인생에 대한 고민이 많은 편이었다. ‘나는 왜 태어났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며 당장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다면 뭐가 달라지는 건가’ 등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사춘기적 방황을 넘어서는 깊은 번민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삶의 궁극적인 해답을 찾고 싶어 자율학습 시간에 공부는 안 하고 학교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바라보며 보낸 시간들도 많았다.

그러다 어느 한 대학생을 통해 불교에 대해 접하게 되면서 공즉시색 색즉시공에 대한 놀라운 소식을 듣고 진리를 찾았다는 기쁨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 대학생 형이 기독교로 개종을 했고 유 도생 또한 그 영향을 받아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열심히 찬송가를 부를 때는 너무나 즐겁고 온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고 함께 신앙하는 친구들이 착하고 봉사하는 모습들은 좋았지만, 한편에는 진리적인 관점에서 성경 말씀에 모순을 느끼는 측면들이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부분이나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내용들이 큰 진리의 틀에서 모두 한 부분씩 쓰임이 있고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으나 교회에 다니는 그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나쁜 짓을 하던 좋을 일을 하던 오직 하나님만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고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위해 필요한 거지 진리와는 별 관계가 없으며 하나님의 진리를 만나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일단 하나님께서 분명히 존재한다는 믿음은 확고했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해서도 교회에는 꾸준히 나갔다.

그 후 군에 입대하여 군 생활을 하면서 선임과 후임들의 대화나 행동 속에서 많은 실망을 했고, 오히려 종교인들이 더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데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과연 세상이 이렇게 어지럽고 인류가 방황하도록 두시지는 않을 거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속에서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고 선을 긋고 지켜왔던 신념과 믿음을 놓아버렸다. 그리고서는 어차피 사는 거 다른 사람들처럼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뭐든 하고 보자는 조금은 치기 어린 생각도 하며 인생의 방향을 그렸다.

그렇지만 마음속 밑자리에 하나님에 대한 진리의 희망은 품고 있었던지 친구를 통해 받은 ‘이것이 개벽이다’라는 책을 쉽게 외면하지는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책에 대한 설명과 정성스런 심방을 해 준 친구의 정성에 마음이 움직였고, 전해 준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고민해 왔던 내용들이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완성되는 희열을 느끼면서 마음은 점점 증산도 진리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뉴스를 통해 일어났다. 2001년 미국 뉴욕에서 터진 9.11 테러 사태는 자신의 상식으로는 전혀 믿기지 않는 사건이었다. 강대국 미국의 자존심이자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테러에 의해 무너졌다는 뉴스는 이전까지 결코 상상도 못해 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책에서 본 바대로 ‘개벽’이라는 진리적 관점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세계 질서가 무너지는 신호탄과도 같은 이런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 도생은 하나님이 분명히 계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서 결심을 굳혔고, 131년 9월 입도를 하였다.

친근하게 다가온 상제님 진리
그렇다면 아내인 이 도생은 어떤 성장기를 보냈을까?

전북 고창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출생한 이 도생은 가정 사정으로 인해 어려서부터 동기 형제들과 같이 살지 못했다. 중학교 때에는 할머니와 따로 살면서 살림을 도맡아 하며 지냈다. 때문에 늘 고독하고 쓸쓸한 시간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자연과 벗하며 지내거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일기를 쓰며 스스로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자연 속에서 마음을 달랠 때면 마치 누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감응을 할 때가 많았고 하느님이 계시다면 나는 차라리 하느님과 연결된 딸일 거라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세상에는 하느님과 진리에 대해 다룬 이런저런 책들이 많은데 그런 책들을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서 어디엔가는 분명 하나로 통합된 하느님과 진리에 대한 책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었다고 한다.

좀 더 성장을 한 고교 시절에는 어땠느냐고 물었더니, 고교 시절에는 고창읍으로 진학을 하며 홀로 자취생활을 했는데 여전히 외로움의 정서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감수성이 한참 예민한 성장 시기에 자신을 안정시키기 어려웠던 환경 요인은 자칫 부정적인 원망과 좌절을 가져다주기가 쉬운데 이 도생은 오히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중하는 마음을 갖고 살았다. 이는 달리 말하면 세속적 가치보다는 진리적 인연에 더 가까운 심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더불어 이 도생은 고교 시절 국사 선생님께서 어느 날 ‘우리의 역사는 바르지 못한 역사이며 다시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인류가 살아 온 역사와 문화가 결코 진리와 무관치 않은 것이 사실이고 이 때문에 올바른 역사관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범국민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지금을 생각해 보면 고교 시절 스승의 이 한 마디 말씀은 어쩌면 이 도생이 진리를 향해 진입할 수 있었던 하나의 촉매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이 도생은 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인이 되어 밝고 적극적으로 열심히 생활했다. 하지만 아는 언니와의 사업 관계로 친구와 마찰이 생기면서 많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낮에 직장에서 근무할 때에는 밝은 모습으로 지냈지만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버스만 타면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리곤 했다.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하다가는 탈이 나겠다 싶어 종교를 하나 가져 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던 중 증산도 신앙을 하던 친구의 권유를 받았다.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21일 동안 증산도에 대해 한번 알아보라는 친구의 말이 왠지 미덥고 위로가 되었던 이 도생은 권유한 그대로 해 보자는 생각에 진리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까지 종교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만 있는 줄 알았던 이 도생은 도장을 방문하던 날 상제님께서 인간으로 오셨다 가셨다는 말과 함께 사배심고를 가르쳐 주는 것을 배우면서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더불어 수행을 따라 하면서 평소에 엄청 아팠던 어깨가 치료되고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태을주로 사람을 살린다는 말씀이 거짓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릴 적에 자연과 순수하게 감응하면서 느꼈던 기억과 몸으로 직접 체험한 수행의 효과가 결합되면서 증산도 진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또한 태사부님과 사부님의 변함없는 가르침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재밌기도 하고 어렵기도 해서 이 공부 한번 끝까지 해봐야겠다 싶어 129년 4월 무사히 입도를 하게 되었다.

신도의 감응으로 평생의 인연을 맺고


결혼 전후의 신도 체험
유 도생은 광주에서, 이 도생은 서울에서 입도를 했고 입도 시기도 달랐던 두 사람은 몇 차례의 과정을 거쳐 서울강남도장에서 신앙을 같이하게 되면서 만났다. 다들 진리와 신앙에 충실한 사람들이라 도장 내에서 보직도 맡고 있었고 맡은 바 역할 수행을 하면서 서로 돕기도 하고 격려도 하는 가운데 든든한 동료 이상의 감정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유 도생에게는 이 도생이 평소 그리던 결혼 대상자로서 이상적인 스타일이었다. 이 도생은 당시에 몸도 아프고 마음도 힘들 때여서 결혼을 하고 신앙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번씩 해 보던 때였다. 심신을 정비하기 위해 100일 정성수행을 끝낸 이 도생은 다시 21일 정성수행을 시작하면서 유 도생과 수행을 함께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이 도생은 “제가 결혼이라는 마음을 갖고 살펴보니 이 사람은 종통관도 확실하고 성실해 보였습니다. 앞으로 함께 살면 신앙은 끝까지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2009년에 지금 남편과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다소 간단하지만 아주 분명한 이유로 결혼을 하게 된 셈인데, 어디 결혼이라는 것이 그리 단순한 문제던가. 신도의 작용 속에 인륜지대사로 맺어지는 결혼에는 때때로 신비하고 깊은 이야기들이 내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이 도생은 결혼 전 흰옷을 입은 할머니가 나타나 “어서 오너라.”고 하시며 고기도 구워 주고 하는 꿈을 두세 차례나 꾸었다. 결혼 후에는 시어머니께서 나타나 큰 기와집에 함께 부적을 붙였는데 그곳에 돌아가신 모든 분들이 모였고 시어머니는 일일이 “막내며느리”라며 그분들에게 이 도생을 소개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이 도생은 수행 시 영적 체험을 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결혼 전후에 이러한 영적 메시지를 생생하게 체험한 것은 지금 돌이켜 보아도 무척 의미가 깊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기적처럼 구한 가정도장
결혼 초기에 이 부부는 경제적 난관이 많았다. 집에서 도움을 주신 덕에 신혼집을 마련한 후 두 사람은 열심히 봉직과 직장생활 등을 하며 바쁜 일상을 보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던 데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커 나가면서 집을 새로 알아봐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 도장에서 봉직하면서 유 도생은 천도식 제물 준비차 서초구 신원동 지금의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을 자주 오가게 되었는데, 당시에 막 건축을 시작하던 아파트 공사 현장을 바라보면서 “저곳은 내 집이다. 저기 내 집 짓는 것 좀 보라.”라고 말하곤 했다. 농담처럼 꺼낸 말이었지만 실은 기도와 염원을 실은 말이기도 했다. 주문을 걸 듯 습관처럼 말했던 그 소원은 기적과 같이 실현되어 지금은 완공된 그 아파트 5층에 들어와 살고 있다. 두 사람은 마치 꿈처럼 집을 마련했고 그곳에 아름다운 가정도장을 가꾸고 있다. 집 밖에는 자연과 어우러진 쾌적한 공간도 존재한다. 일심만 가지면 못 될 일이 없다는 상제님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되돌아보고 극복해야‘사람’이 된다


유 도생은 입도 후 도장 중심 신앙으로 신앙을 했기 때문에 신앙 정착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도생은 결혼 후 아기가 태어나면서 도장 치성 참석만 겨우 할 정도이고 포교나 다른 것은 생각할 수가 없게 되면서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상처가 되었고 마음이 많이 위축되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우울증까지 겪게 되면서 이렇게 살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작년 동지부터 1,000일 정성공부가 시작되었고, 이 도생도 마음을 정비하고 분발에 나섰다. 상생방송을 계속 시청하고 정성수행도 하면서 신앙을 다잡게 되었는데, 그간 크고 작은 신앙의 위기가 있을 때마다 배례를 하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면서 이를 극복하여 왔다고 했다. 유 도생과 이 도생은 모두 자기극복에 능한 사람들이며, 그것이 내면의 강력한 신앙력을 형성했다. 물론 그 바탕에는 배례 등을 통한 자아성찰이 전제된 것이었다.

유 도생은 자신의 ‘평범한’ 신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앙을 하다보면 어려움이 주기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상제님께서 저의 마음을 담금질하시려고 보내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배례를 통해 제 자신의 문제로 저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됩니다. 태사부님께서는 늘 ‘사람이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천지일월 부모님께서 저를 진정한 가을의 태일 심법을 갖춘 인간으로 길러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상황이 닥치더라도 항상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입니다.”

유 도생은 또한 보은의 기본 정신을 잊지 않고 포교활동에도 실천하고 있다. 과거 서울에서 처음 열린 코엑스 환단고기 북 콘서트가 종도사님의 크신 은혜로 개최되었을 때 그 은혜에 꼭 보답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홍보활동을 하다 청담역에서 전단지를 전한 한 시민을 콘서트에 인도하고 입도를 시킨 사례가 있었다. 그는 포교 활동을 할 때마다 천지일월께 감사하는 마음, 꼭 보은하겠다는 간절한 생각으로 집중할 때 입도가 되는 경우를 여러 번 체험했다고 술회했다.

모두가 성공하는 도장과 도방을 서원하며


끝으로 이 부부에게 차후에 이루고 싶은 꿈, 포부나 각오 등을 물었다. 유 도생은 “우리 가정에 밝은 빛을 비춰 주는 아내 이 도생이 무엇보다 건강을 잘 챙기기를 바랍니다. 저는 도장의 부책임자로서 책임자를 잘 보필하고 강남도장의 모든 도생들이 성공하는 태을핵랑이 될 수 있도록 모시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또 성직자 가정으로서 아이들 양육을 잘 해서 나중에 쓰임을 받는 일꾼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이 도생은 도방 운영과 활동에 대한 계획을 전했다. “이곳 집에 이사를 온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봉사를 하면서 어머니들과 친해지고 있습니다. 도서관 한쪽에는 증산도 관련 서적을 비치해 두었습니다. 이곳에서 반드시 인연 있는 분을 많이 만날 거라 생각합니다.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고 최선을 다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자리가 잡히면 도장에서 활동 영역을 꼭 넓히고 싶습니다. 예전처럼 열심히 뛰며 원 없이 한번 움직여 봐야지요.”

도방은 의미를 싣고 실속 있게 관리해야 할 곳

내가 부여한 의미 그대로의 도방
결혼 후 진심어린 기도와 정성으로 마련한 가정도장은 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자리 잡고 있을까? 유 도생은 가정도장이 지역도장의 연장선이라고 말한다. 도장에서 봉직하고 생활할 때도 늘 신앙 리듬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일에 신경을 쓰는 것처럼 가정도장도 신앙의 바탕을 갈고 다지는 데에 필수적인 터전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도장은 지역도장에 못 나가는 경우 능히 치성을 대신 봉행할 수 있는 성소로 관리되어야 하고, 방문자나 지인들이 찾아올 때는 신앙을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기에 더더욱 의미 부여를 하고 스스로 도방 정비를 잘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봉청수부터 수행과 기도까지 늘 도인의 생활과 함께하는 곳이고, 네 명의 가족뿐만이 아닌 조상선령께서 아주 가까이 함께하고 계시는 공간이므로 뭔가 다른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가정도방을 소개할 때 표준적인 도생의 도방 이야기라는 표현을 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늘 항상심과 평정을 유지하며 표준적으로 살기는 오히려 어렵다. 그렇더라도 늘 꾸준한 마음과 성찰로 순수한 신앙 본질을 추구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이 부부가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누구나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취재 전에 유 도생은 “그저 평범하게 살고 있어서 드릴 말씀이 별로 없다.”며 겸연쩍어 했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기본이 중요한 법이다. 스스로 엄격하게 바탕을 관리하고 다질 줄 알아야 다양한 적용도 화려한 변용도 가능한 것이다.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완벽한 이상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겉만 화려하고 내실이 없다면 무슨 의미를 찾겠는가. 상제님께서도 “남이야 어떻게 알든 실속만 있으면 되느니라.”는 가르침을 주신 바 있다. 우리 도생 모두는 그 신앙의 기본을 한 번쯤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상생방송과 함께 자리를 잡다
도방의 하루는 아침 봉청수와 수행으로 시작된다. 아침 6시 상생방송과 함께하면서 수행을 하고 수행이 끝나면 도공을 한다. 저녁에는 유 도생 부부가 아들과 딸아이랑 함께 수행을 하는데,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집중해서 수행은 못하지만 아빠 엄마를 따라 배례를 하고 눈을 꼭 감은 채 주문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보면 기특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한다.

이 가정도장은 상생방송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도방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상생방송의 든든한 지원과 활용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딸 정인이가 친구나 동생들을 가끔씩 집에 데려오면 어머니들이 함께 따라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도생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어머니들과 상생방송을 자연스럽게 함께 시청하고 도담을 나누기도 한다. 옆집에 사는 태엽이 어머니는 집에 자주 오는 편인데, 상생방송을 보더니 자기도 증산도 도장에 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증산도가 아니라 대순진리회에 다녀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도생은 잘못 알고 있는 태엽이 어머니에게 양자의 차이점을 알려주고 증산도에 대한 책도 대여해 주었다. 상생방송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증산도 진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태을주 수행도 알려 주는 일은 이제 이 도방의 평범한 일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상생방송을 자주 시청하다가 보니 증산도에 대해서 우호적이 되는 점은 당연히 따라오는 부수적인 결과이다. 태엽이 어머니는 정인이가 함께 도장에 가자고 하면 아들인 태엽이도 함께 갔다 오라고 허락할 만큼 증산도 신앙 문화에 많이 개방이 되어 있다. 정인이랑 지상이는 밖에 외출할 때나 집에 들어와서는 제일 먼저 상제님 태모님께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라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다.




이번 가가도장은 도장에서의 봉직 경험을 바탕으로 신앙의 바탕을 쌓고 체화시켜, 가장 평범하면서도 내실을 단단히 갖춘 가정도장을 구축한 부부 신앙인을 만나 보았다. 성장기와 구도의 과정에 있어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목말라 하고 영혼의 아픔을 치유해 주는 진리를 애타게 찾다가, 상제님의 존재를 가슴 깊이 받아들여 진리와 함께하겠다는 평생 신앙을 결심했고, 다시 한 길을 걷는 부부로 결합을 했다.

이들의 강점은 그 어떤 외재적 시련과 위기 상황을 맞더라도 그것을 신앙 속에 끌어안아서 자기 성찰과 자아 극복의 방식으로 풀어 가는 내면의 메커니즘이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마음자세는 이 부부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축복임과 동시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앙 자산으로 자리를 잡았다. 도방을 운영하는 것에 부담을 갖지 않고 상생방송을 적극적 원군으로 활용할 줄 아는 노련함도 배워야 할 점이다. 애써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가정도방을 그야말로 효율적인 ‘도장’으로 승화시킨 운영의 묘수를 우리는 평범하고 표준적인 이 가정도장의 사례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가정도장이나 신앙의 비결을 묻는 곤란한 질문을 받게 되면 이내 ‘기본’을 얘기한다. 그것이 얼마나 실속 있게 운영되느냐의 문제만 각자의 역량으로 남을 뿐이다.

이 부부 도생과의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취재진은 내내 평범한 신앙의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미에 정리하면서 생각해 보니 그 속에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고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할 신앙의 기본 요소들이 가득했다. 그것을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현해 내는 이 부부는 그런 점에서 보면 차라리 원숙한 프로에 가까웠다. 어려운 일을 쉽게,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것이 달인의 덕목이라는 말이 있다. 유 도생과 이 도생의 신앙력은 일선 도정 집행의 경험과 성찰 속에서 형성되고 깊어진 것들이다. 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평정과 기본에 충실하며 묵묵히 신앙의 길을 걸을 것이고 봉직으로 봉사하는 삶도 지속할 예정이다. 유영근, 이재순 도생과 정인이, 지상이의 가정도장에 천지일월 성령의 축복과 아름다움이 충만하기를 기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