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합심해 이룬 의지와 믿음의 산실(이동철, 유현순)

[가가도장]

광주상무도장에서 신앙을 하고 있는 이동철(48세, 종감), 유현순(46세, 도감) 도생 부부는 어려웠던 삶의 굴곡을 함께 사력을 다해 헤쳐 오면서 지금의 가정과 도방을 이룬 신앙인들이다. 아이들 셋까지 다섯 식구의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고난의 시절에 두 사람이 합심하여 진리적 감성을 바탕으로 생사를 건 초인적인 분투를 벌였고, 마침내 반전을 이루어 낸 불굴의 의지력을 가진 부부, 서로에 대한 신뢰로 굳게 결속된 부부가 바로 이들이다. 그래서 이번 가정도장 스토리의 주제는 ‘의지와 믿음’에 초점을 두고 구성되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추분秋分이 지난 9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후 시간, 취재진은 전남 영광군 영광읍 녹사리에 소재한 이동철-유현순 부부 도생의 도방을 찾아갔다. 아파트 10층에 마련된 도방 출입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소담스러운 태을주 액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안쪽의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쓰일 공간에는 천신단이 있는 전용 도방이 조성되어 있다.

도방으로 들어가는 입구 벽에 걸린 액자에는 ‘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 뜻이 있는 자는 반드시 성취한다는 후한서의 경구를 일러주신 상제님 말씀(도전 8:104)이 수려한 필체로 걸려 있다. 도방 내부에 중앙 벽면 대부분을 차지하며 큼지막하게 자리 잡은 천신단은 단연 이 가정의 중심 센터이자 생활의 중핵을 차지하는 공간이다. 여기에서 가정사의 모든 문제가 해소되고 영적인 충전이 이루어지며 가족들이 화합하고 질서가 바로 세워진다. 천신단은 어른 허리 이상의 높이로 단을 옆으로 길게 만들고 그 위 중앙에 상제님 어진과 태모님 진영을 모셨으며, 좌우로는 태상종도사님과 도모님의 존영, 태을주와 조상 선령의 위패들과 함께 각 신단마다 흰색 자기로 된 청수그릇을 단정하게 배치해 놓았다. 결코 작지 않은 규모에 정갈함까지 더해진 천신단은 가정도장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주역 역할을 하고 있다.


진리를 만나 입도하기까지


인연을 만나 진리 갈급증을 풀고
이동철 도생은 전남 영광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삶에 대한 근원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고 영적인 감수성도 갖고 있었던 그는 가정의 형편 등 여러 요인들로 인해 중학교 1학년 때 가출하여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직장에서 자동차 광택을 주업으로 하는 일을 하면서 열심히 생활을 했다. 자동차 업종에서 일을 하다 보니 관련되는 연관 직종 종사자들을 만나 교류하는 일도 많았는데, 그 과정에서 자동차 덴트라 불리는 외형 복원업에 종사하는 증산도 신앙인 유경훈 도생을 만나게 된 것이 상제님 진리로 들어서는 인연이 되었다. 광주상무도장에서 신앙하는 유경훈 도생은 평소 이 도생의 직장에 자주 들렀는데, 서로 알고 지낸 약 3년의 기간 동안 특별히 진리 관련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진리적 감수성을 갖고 있는 이 도생에게 꾸준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 후 이 도생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인의 도움으로 독립해 광택숍shop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덴트 관련 일로 출장을 다니는 유경훈 도생을 자주 보게 되면서 본격적인 친분이 쌓이게 되었다. 그렇게 광택숍을 시작한 지 9개월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이 도생은 점포 운영상의 경제적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 도생이 어려움 속에 고민하는 것을 목격한 유경훈 도생은 이 도생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천지성공』과 『생존의 비밀』이라는 진리서적 2권을 전달했다.

당시 어려운 시간들을 감당해야 했던 이 도생은 그 와중에 얻은 『천지성공』 책을 허투루 여기지를 않았다. 어릴 적부터 잠재되어 있던 근원 문제에 대한 진리적 감수성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천지성공』 책을 읽어 본 이 도생은 큰 충격을 받았다. 책을 보면서 눈을 뗄 수가 없어 다 읽고 나서 유경훈 도생에게 전화를 하여 진리 내용과 관련된 CD나 Tape를 구할 수 있느냐고 요청하였고, 이에 응한 유경훈 도생은 ‘천지성공’ Tape, 종도사님의 육성 전 주문 Tape, 태상종도사님의 ‘천지의 도 춘생추살’ CD를 구해 전달하였다. 그동안 진리에 대한 갈급증을 안고 살아왔던 이 도생은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진리를 만나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시련으로 이어진 연단의 시간
하지만, 진리를 만나기가 무섭게 이 도생은 일감 공급 부진 등의 사정으로 인해 광택숍의 문을 닫게 되었고 이후 경제적 곤궁으로 암흑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 도생은 가족인 아내와 아이들 셋을 부양해야 했는데, 당시 하루 벌어서 연명하던 때라 너무 힘이 들었다고 했다. 다른 곳에 숍을 열려고도 해 봤지만 모든 게 참 힘들고 어렵기만 했다. 다행히 동생이 서울에서 광택숍을 하고 있어 일단 동생에게 연락을 한 이 도생은 답답한 마음에 바람이나 쐬고 오겠다는 생각으로 상경을 했다. 반갑게 환대를 해 준 동생과 오랜만에 회포를 나눈 이 도생은 같이 동업을 하자는 동생의 제안을 받고 서울에서 동생과 광택숍 운영을 다시 시작했다. 어떻게든 이 고비를 넘기고 싶었던 이 도생은 직면한 어려움이 반드시 극복되리라 믿고 하루하루 전력을 다하였다.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탓에 가족은 영광에 있고 이 도생만 서울에서 거주하게 되었고, 영광에 남아 있던 부인 유현순 도생은 우유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정 경제에 힘을 보탰다.

반전의 기회를 잡다
이 도생은 그러한 삶의 굴곡 속에서도 진리적 감성을 잃지 않았으며, 서울에서 일을 하면서 차를 운행할 때마다 전 주문, 춘생추살, 천지성공 테이프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었다. 그렇게 동생과 일을 하며 9개월이란 시간이 흘러갈 무렵 광주에서 이 도생이 운영했던 광택숍을 인수하라고 연락이 왔다. 돈이 없다고 했더니 권리금을 다달이 나누어서 갚으라고 하면서 내려와 다시 하라고 지인분들로부터 전화가 계속 이어졌다. 과거 이 도생이 운영했던 가게는 광주 시내 자동차 관리 업계의 실력자 8인 위원회가 공동으로 광택숍 점포를 마련하고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구조였는데, 이제 이 도생에게 다시 운영을 요청해 온 것이었다.

고심 끝에 이 도생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누님에게 돈을 빌려 계약금을 걸고 광주에 내려가서 가게 운영을 재개하였다. 이 도생은 『천지성공』 책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일심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 하신 상제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겼으며, 힘이 들면 ‘일심’을 외치면서 여기에서 일어나지 못하면 죽는다는 각오로 아내인 유 도생과 함께 사업장 운영에 전력을 쏟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오직 가게 운영에만 매달린 부부는 거의 초인적인 의지 하나로 목숨을 내놓고 일을 했다. 휴식이나 여유는 사치에 불과할 정도로 그들은 사력을 다해 매달렸다고 한다. 그렇게 억척같이 일한 결과 1년 5개월이란 시간이 흘러 권리금을 갚을 수가 있었고 사업도 제 궤도에 올라서게 되었다.

드디어 입도를 하고
그렇게 자리가 잡히고 나니 유경훈 도생이 이제 도장으로 한번 가 보자고 했다. 어려운 고비를 극복하면서 늘 진리에 대한 믿음을 유지했고, 또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 것이 바로 상제님 진리였기 때문에 이 도생은 도장에 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아내와 의논을 했고, 아내인 유 도생은 도장 방문에 흔쾌히 동의를 해 주었다. 그런데 이 도생은 “우리 가족이 다 같이 가야 된다”고 주장했고 그 뜻 역시 아내가 수용을 하여 함께 도장에 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도기 141년 상무도장에서 입문을 했고, 입도는 광주오치도장에서 가족 5명 전원이 도기 143년 음력 5월 29일 대천제 때 하게 되었다.

부부가 만나게 된 인연
이 도생과 유 도생 부부는 이 도생이 28세 때 어머니 병간호를 하던 중에 친구의 친구로 만났다. 전북 고창병원에서 이 도생과 동생이 3년 동안 어머니 병간호를 하던 중 알게 된 친구였는데,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2년 후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이 도생의 생활 모습에 연민을 느낀 유 도생이 먼저 프로포즈를 해서 성사된 결혼이었다. “제가 아내를 만난 순간부터 모든 일에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조상님을 극진히 잘 모시는 사람입니다. 저를 늘 이해하고 챙겨줄 뿐만 아니라, 자식 농사에도 좋은 결실을 맺어 이렇게 2남 1녀를 두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이 도생의 모습에는 아내와 가족에 대한 애정이 충만해 있었다.

신앙 정착의 과정


포교의 열정을 쏟다
가족이 모두 도기 143년에 입도를 한 후, 의욕과 열정에 불탔던 이 도생은 입도하기가 바쁘게 천지성공, 생존의 비밀, 증산도의 진리 책 등을 구입하여 지인들 또는 친척들에게 막무가내로 책을 내밀고 잘 알지도 못하는 진리를 좌충우돌 전하는 체험을 했다. 진리를 전달하다가 막히면 사수인 유경훈 도생에게 전화로 도움을 청하여 전하고, 또 옆에서 듣고 공부하면서 그렇게 입도 초기를 보냈다고 한다. 지금도 잘 하지는 못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저 정성을 다해 진심으로 진리를 전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열정에 비해 대상자의 마음을 읽고 제 때에 적정한 관리를 하는 정성이 부족하고 서툴렀던 탓에 생각한 만큼 수렴을 하지는 못했다. 이제는 인사人事를 보는 눈도 키워 가고 있고 진리를 전하고서 제 시기에 단계별로 필요한 수렴의 방식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으며, 정성공부가 병행되고 집중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 등도 체득하며 꾸준히 발전해 나가고 있다.

영적체험을 통해 느낀 것들
이 도생은 선천적으로 기감을 잘 느끼고 영적 체험을 많이 하는 편인데, 입도 4개월 후 직선조 천도식을 올리고서 신도 체험을 많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번은 병든 조카에게 신유를 해 주다가 척신에게 무척 시달리는 경험을 하였는데, 밤이면 거칠게 달려들어 괴롭히는 척신 때문에 잠을 청하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잠을 자다가 척신이 발동을 해서 괴롭히면 일어나 수도복을 입고 청수를 모시고서 1시간 이상 태을주 수행을 해야 척신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또 어려운 일이 일어나는 경우 한 달 또는 15일 전에 꿈속에서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이 나오셔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던 체험도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이 도생은 천지일월 사체 하느님의 은혜 속에서 가족이 그간 숱한 여러 위기들을 겪으면서도 무사히 잘 넘길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가족들은 ‘보은報恩’이란 말을 무척 의미 깊게 받아들이고 있다.

유 도생은 최근 있었던 광주상무도장 이전치성 시 태을주 수행을 하던 도중 여러 신명들이 도장에서 꽹과리를 치면서 춤추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평소 수행을 하더라도 영적 체험은 거의 하지 못하던 유 도생은 그 모습을 목격하고서 많이 놀랐다고 했다. 또한 광주로 가게를 옮겨 개업식을 하고 난 후, 밤에 사람 모습을 한 하얀 영체靈體가 가게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이 CCTV에 잡힌 사실도 있었다고 말했다. 유 도생은 이러한 체험들이 신도 세계와 현실 인사의 관계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가정도장은 삶의 중심


가정 중심에 도방을 모시다
이 도생 가족은 주공 임대아파트에서 살다가 계약이 만료되면서 도기 146년 6월 4일 현재의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 도생과 유 도생은 새 집을 마련하면 반드시 신단을 모시는 도방이 제대로 확보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도생은 집을 마련하기 전에 집 구조부터 확인하고 싶어서 집을 소개하는 분에게 안방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안방에 도방을 꾸밀 수 있는지 먼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방 공간을 보니 천신단을 조성할 수 있는 좋은 공간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기쁜 마음으로 아내와 공유를 하고서 집을 사게 되었다. 이사 후 안방에는 제일 먼저 천신단을 모시고 아이들에게 방 2개를 내어 준 후, 부부는 거실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가정이라는 곳이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용도와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그 기본적인 역할 중 하나가 가족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거실에서 생활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는 문제인데, 이 부부 도생의 생각은 달랐다. 가정의 중심 공간인 안방에 천신단을 모시는 것이 진정으로 가족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천신단은 상무도장의 동료 도생 두 분이 와서 직접 공사를 해 주었고, 그 덕분에 이사를 오자마자 천신단에 조상님 신위와 청수를 모시고 치성을 간단히 올릴 수 있었다.

도방은 삶의 핵심 공간
그렇다면 이 도생과 가족들에게 도방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이에 대해 물었더니 이 도생은 많은 표현을 써 가며 도방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의 말을 정리해 보자면, 가정도방이란 천신단에 봉청수를 하면서 가족 모두가 영적 힘을 얻고, 지인들을 집에 초대해서 포교에 활용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도 훌륭한 매개체 기능을 하며, 유사시에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도장 역할을 할 수 있는 삶의 핵심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천신단을 모신 도방 공간을 그만큼 중요하고 절대적 의미를 지닌 장소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가족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도방이 꼭 필요했다고 한다.

보은의 마음으로 지역도장을 개창하고 싶어


도방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이들 부부에게 삶과 신앙의 소망에 대해 물었다. 먼저 이 도생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진중하고 차분하게 응답을 했다.

“저는 이렇게 가정도장을 집에 마련하고 집에서 봉청수와 수행을 할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거기서 얻는 힘과 기운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 힘든 생활을 이어가면서 오직 살아가기 위해 죽기살기로 견디기 힘든 과로를 해야 했던 때에도 가정도장과 아내의 존재는 저에게 강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주변 지인들을 초대해서 당당하게 저희 집 천신단을 보여 줄 수 있게 되면서 너무도 큰 자부심이 생기고 보은하는 마음이 자리를 잡는 것 같습니다.

제 꿈은 가정도방을 잘 활용해서 이 지역에 도장을 개창하여 영광 군민들을 많이 살리는 것입니다. 가정도방이 위치한 이 아파트 거주민들은 지역에서도 생활에 비교적 여유가 있는 분들입니다. 이들부터 반드시 상제님 진리로 인도하기 위해 주민 관련 모임에 최대한 참석하는 등 이모저모로 많은 공력을 쏟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시기에는 꼭 영광에 도장이 생기는 날이 올 것으로 봅니다.

천지일월 사체 하느님의 은혜로, 조상님의 음덕으로 증산도 도문에 입도하였으니 하루도 신앙의 근본을 저버리지 않는 도생이 되도록 노력하면서 육태을랑을 완성하고 영광에 도장을 개창하여 천하창생을 살리는데 인생을 바치려 합니다. 보은!!!”

이어 유현순 도생이 말을 이어 받았다. “저도 가정도장을 중심으로 온 가족이 모여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2주에 한 번씩 정읍에 계신 친정아버지께 다녀옵니다. 올해 86세로 홀로 계신 아버지의 수발을 들어 드리고 있는데, 아버지께서는 언젠가 ‘너희 이 서방은 선령신 도움으로 진리를 만난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자식이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응원하시면서도 우리 가정이 상제님 진리를 만난 것이 큰 인연이요 중요한 인생의 과정임을 알고 계신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진리를 계속 배우고 알아가고 있는 중이지만, 가정의 중심인 남편이 신앙에서 자리를 잡고 성공할 수 있도록 내조를 잘하고 싶은 것이 꿈입니다. 늘 그래왔듯이 우리 부부는 그 어떤 어려움도 함께 힘을 합해 이겨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영광에 지역도장이 생기는 경사가 현실로 성사되도록 열심히 기도하고 힘을 내겠습니다.”


포교활동과 봉직에 대한 단상


상황에 적합한 포교활동
이 도생은 신앙 경력이 3년 정도이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 도생이 영위하고 있는 자동차 광택업은 업종의 특성상 아침 6시 50분 출근에 퇴근은 정해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분주한 일이다. 특히 야근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마음과 달리 조직적 포교활동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가족과 지인 위주로 개별적인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따라서 사업장에서 거래처 또는 주위 사람들을 집중 포교대상자로 삼아 포교활동을 하고 있으며,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가족 포교에도 힘쓰고 있다.

그간 포교한 도생들과 함께 신앙의 참된 길을 걷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는데, 그 중 한두 명은 가정에 생긴 환란이나 어려워진 환경 요인 등으로 신앙 집중력이 저하된 상태가 되어 버려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들은 제반 상황들로 인해 난관을 겪고 있지만 마음을 다잡으면서 집에서 봉청수는 꼭 모시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고 한다. 이 도생은 그분들이 고비를 이겨내고 온전한 신앙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늘 생각하면서 기도에 집중하고 있다.

봉직하며 깨달은 사실
또한 이 도생은 인터뷰 과정에서 봉직 수행에 대한 감상을 밝히기도 했는데, 도장에서 포감이라는 보직을 맡다 보니 평범한 도생일 때는 몰랐던 것이 너무 많았고 늘 배우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야 함을 깨닫고 있다는 소감을 전했다. 도장에서의 보직이란 순수한 봉사정신이 없으면 맡은 바 소임을 집행할 수 없는 자리임을 잘 알고 있으며, 더욱 일심으로 상생과 보은을 실천하는 봉직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 도생과 대화를 하면서 느낀 사실은 그가 도장 봉직을 대하고 바라보는 시각이 한편으로 조심스럽고 신중하면서도, 집중력과 정성을 갖고 임하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굳은 신념과 긍정의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그가 입도 직전 강한 시련과 고통의 과정에 직면하면서 그것을 가족과 진리의 힘으로 극복해 넘었던 체험을 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우러나온 발상이라 여겨졌다. 그의 말이 단지 열심히 하겠다는 정도의 의례적인 수사가 아닌 진지한 고백으로 들렸던 이유가 그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번 가가도장은 삶의 현실에 닥친 크고 작은 시련과 고난을 강력한 의지와 부부의 합심으로 억척스럽게 이겨내고 그것을 신앙의 기초 자양분으로 삼고 살아가는 도방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이 부부는 모진 고통을 극으로 받으면서도 서로가 꼭 쥐었던 손을 놓지 않고서 힘을 모아 당면한 모든 장애를 물리쳐 이겨 냈다. “일심하면 안 되는 일이 없느니라”는 성구 말씀을 지렛대로 삼아 ‘목숨을 걸었다’고 표현할 만큼 사력을 다해 뛰고 또 뛰었다는 그들의 근성과 투지를 우리 도생들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개척 과정의 많은 장벽을 극복해야 하는 우리 도생들의 입장에서, 그것을 단지 생존을 위해 벌인 자구책 정도의 단순한 의미로 치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가족은 지금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 새 도방도 마련하고 지역도장 개창에 대한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것만으로도 이 가족은 축하와 격려를 받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새로 이사한 집의 안방 중심에 가족의 영성을 키울 전용도방을 규모 있게 모셔 놓고, 주변 지인들을 초대해 적극적으로 포교에 활용하는가 하면, 유사시에 효과적인 도장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 핵심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는 점 또한 아낌없는 박수와 성원을 받을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족의 결속과 화음의 조화 기운이 널리 펴져 나가 많은 지역 거주민 진리 수렴의 초석이 되고, 나날이 발전하는 도방으로 자리 잡아 가기를 천지일월 성신과 조상 선령신 제위께 깊이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