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

    [입도수기]

    철학적 성장에서 수행을 통한 존재의 성장으로 (송현우, 김주리, 김지동, 정일평)

    철학적 성장에서 수행을 통한 존재의 성장으로


    송현우(남, 18) / 부산동래도장 / 146년 음7월 입도

    2016년 18살이 된 해, 이때는 제 스스로 제 인생의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라 자부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공부라는 것의 즐거움과 행복을 알게 된 한 해이며, 둘째는 존재하는 사물 간의 관계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끼고 그에 맞는 다양한 경험들을 해 본 해이며, 마지막으로 증산도를 만나게 된 해인데 이것이 가장 의미가 컸습니다.

    사실상 증산도를 만나게 되면서 위의 모든 성취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증산도의 기본적인 교리와 후천개벽사상은 실제 도생 분을 만나기 몇 개월 전부터 이미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증산도 단체의 외부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정보습득에 있어서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당시의 저는 단순한 지식 습득의 수준에서 증산도를 받아들였기에 수행에 대해서는 제대로 공부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냥 가끔 노트에 적어 둔 태을주와 관운장주, 칠성경을 몇 번씩 읽어 보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2016년 7월, 제가 다니는 고교 앞에서 저는 한 증산도 도생분(김주리 포감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역사찾기운동을 하시는 분들 중 한 분이셨습니다. 포감님께서는 저에게 증산도와 역사의 관계에 대하여 설명해 주셨습니다. 몇 주 후 그분이 마련해 주신 자리를 통하여 한국에 뿌리박힌 식민사관과 그 심각성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 큰 충격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날 강의를 하시며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셨던 포감님의 진정한 교육자로서의 태도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일로 인해 증산도 동래도장을 방문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포감님께선 21일 정성수행과 동시에 증산도 교리 강의를 들어 볼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우연히 몇 개월 전 꿈속에서 실제로 포감님께서 저에게 이것을 권유하시는 모습을 보았던 저는 ‘무언가 분명히 있을 거다’라는 생각으로 진짜 공부에 발을 디뎌 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저는 그동안 정말 공부하기를 갈망했었던 장대한 ‘우주의 진리’와 ‘신의 세계’ 등에 대하여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입시와 제 인생철학이 충돌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배우고자하는 큰마음만 있으면 그 과정이 가시밭길 같더라도 웃으며 산책하듯 배울 수 있다는 철학을 확립하였습니다. 저는 공부의 즐거움이 이끄는 내면의 성장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이 있었는데, 저에게 강의를 해 주셨던 강은진 포감님께서는 제가 김 포감님을 만나기 전날에 저의 조상님으로 추정되는 한 할머님께서 꿈에 “내 자손이 동인고등학교에 있는데 왜 여길 오질 않는 거야! 얘는 꼭 살려야 한다”라는 말씀을 애절한 진심의 감정을 담아 하셨다고 합니다. 또 제가 강 포감님의 강의를 듣게 된 당일에도 또 다시 포감님의 꿈속에서 “내 자손 송현우 꼭 살려야 한다.”라는 당부의 말씀을 전해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때 정말 조상신들께서 항상 저를 위해 주시고 지켜 주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행을 할 때면 언제나 그분들에게 감사함과 존경심을 느끼려 노력했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신 포감님께서도 저에 대한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계신데, 그분께서는 존경하는 동래부사 송상현 장군님의 자손을 도제로서 가르치고 싶어 1년 8개월의 긴 시간 동안 간절히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난 것이 바로 실제 송상현 장군님과 본가가 같은 저입니다. 어쩌면 저와 증산도, 그리고 포감님들과는 상당한 인연이 있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 사연들을 들은 이후로, 지식 습득과 간접적인 신명의 경험 등을 통해 전 1차적 성장을 시작했습니다. 1차적 성장이 지식의 갈망에서 비롯된 철학적 성장이었다면, 2차적 성장은 수행을 통한 나라는 존재 자체의 성장이었습니다. 배례수행, 주문수행, 도공수행 등을 하면서 저 자신을 비롯한 주변의 인간관계, 대우주 자연, 그리고 저의 조상 신명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 예로 저는 도공수행 중 전생체험으로 추정되는 체험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몽고군과 전쟁을 하게 된 튀르크 제국의 일파인 ‘룸 셀주크제국’의 기마병 모습이었는데, 당시 일선에서 말을 타고 한 손에 무기를 든 채로 돌격을 하던 저로 추정되는 병사는 돌격 도중 싸워 보지도 못한 채 왼쪽 어깨에 몽골군의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습니다. 실제로 이 전투에서는 군사적으로 룸 셀주크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 속에서 군주의 어리석은 전략으로 몽골군으로부터 대패를 당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체험은 평소 터키, 이슬람 문화에 관심이 많던 저의 관심사와 연관이 되어 있어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는 남아메리카의 공산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와 가까웠던 , 그의 마지막 볼리비아 해방 전투에 참전한 게릴라 부대원이었습니다. 볼리비아 정부군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그를 보고 분노했던 그때의 저로 추정되는 인물은 그 자리에서 일어서 총을 난사하다가 적군의 총을 맞고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당시 전투 전에 ‘우리 반드시 인민들을 위한 남아메리카를 만드세’라고 말하며, 저의 왼쪽 어깨에 손을 올리고 결단의 표정을 굳게 지은 그의 혁명적인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도공 수행 중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눈물을 흘렸던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이것이 정말 저의 전생인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학문 공부 도중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끼친 루소의 인문주의 사상과 마르크스, 레닌의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 신선한 흥미로움을 느껴본 경험과 학교 내부 권력층의 부조리와 비리에 대항하여 학생운동을 주도하고자 하였던 저의 경험과 연결되었습니다. 저는 과거의 이 혁명가들의 혁명정신을 본받아 다가오는 후천선경 건설을 위해 큰 사명감을 가져야겠다는 다짐도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체험해 본 것은 놀랍게도 신명 체험이었습니다. 21일 정성수행의 마지막 날이자 수요치성 날, 도공수행을 할 때 암흑 속에서 폭이 넓은 하얀 한복치마를 입으시고 도공 수행을 하는 저의 옆을 가로질러 가시는 신명 한 분을 뵐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유 없이 행복을 느끼며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수행 후에 포감님들께 여쭤 보니, 저의 조상님을 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런 수행의 과정 속에서 겪은 체험들이 진짜 체험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런 체험을 통해 제 자신과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 대해 사유하게 되었고, 일상 속에서 너무나도 당연시 여겼던 자연물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자연과 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형제관계라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사상과 상당히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덕분에 새벽에 시간이 날 때면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수행을 하게 되는 좋은 습관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증산도를 통해 정말 제 삶에서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들을 얻게 된 저는, 곧 영광스러운 입도식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좋은 경험들을 하게 되어 증산도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입도를 하게 된다면 항상 신과 우주에 대한 경건하고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고, 일심으로 나라를 지키는 군인같이 충성을 다하는 천지의 일꾼이 될 것을 다짐하고 맹세합니다. 보은! ◎

    내 자손을 꼭 살려 달라는 메시지를 받고


    김주리(여, 29) / 도감, 부산동래도장

    제가 동인고등학교 2학년 송현우라는 친구를 만난 것은 제 신앙생활에서 기억에 길이 남을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2014년 상반기에 개인적으로 직장 문제와 집안 문제로 악재가 겹쳐 신앙이 지치고 힘들어진 탓에 치성 참석을 위해 도장에 가야 하는데 딴 곳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때 올라갔던 복천박물관과 동래읍성에서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 맞서 싸운 송상현 장군님과 장군님이 남긴 ‘전사이戰死易 가도난假道難(싸워서 죽는 것은 쉽지만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이라는 글을 만났습니다. 송상현 장군님의 ‘내가 목숨을 잃는다 할지라도 절대로 지킨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혼을 느꼈는데, 순간 ‘나도 어떤 고난이 와도 내 신앙의 길을 내줘서는 절대로 안 된다. 내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잡고 도장으로 간 경험이 있습니다. 「동래부순절도」 앞에서 반성을 하며 눈물을 흘렸던 그 순간 머리가 탄산수 맞은 것처럼 굉장히 시원했고 그 이후로는 신앙의식이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을 잡는 데 큰 도움을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마침 어느 성도님이 황희 정승의 후손을 살리고 싶어서 항시 생각하고 기도와 정성을 드리다가 정말 황희 정승의 후손을 만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 은혜를 잊지 말자는 생각에 카카오톡 배경화면에 송상현 장군 사진으로 도배를 해 놓았습니다.

    때마침 박기숙 청포포감님으로부터 하루에 15번 기도를 하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을 들었기에 하루 15번 송상현 장군의 자손을 살릴 수 있도록 인연을 닿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이것도 뭔가 약한 것 같아서 아예 노트 한 권에 하루하루 15번 반복해서 기도 내용을 적는 것을 시작하였습니다. 1년 8개월 정도 하면서 활동을 하고 움직였지만 만나지지는 않았는데 지금 이렇게 만나고 있는 대상자들도 인연이 깊으니 너무 연연해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2016년 6월에 그동안 역사광복 활동을 하면서 학교별로 전부 돌았지만 유독 동인고등학교를 집중적으로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사수이자 청년부 포감이기도 한 강은진 도생에게 “동인고 활동을 한 번도 한 적 없으니 하러 가자”고 하였고, 사직여고와 맞물리는 중간에서 하기보다는 동인고를 정말 집중으로 해야 한다는 마음에 아예 택시를 타고 교문 앞까지 가서 역사광복 홍보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날 강은진 청년부 포감으로부터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꿈에서 하얀 옷을 입은 할머니께서 나타나 “왜 동인고에는 활동을 하러 오지 않는 거냐?”는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 체험을 하며 굉장히 놀랐습니다. 함께 활동을 하러 가면서 많은 기도를 하고 언덕을 올랐습니다. 그때 송현우라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호기심과 설렘이 가득 찬 눈동자로 성큼 다가와 다짜고짜 “증산도시죠? 개벽이 언제 올 거 같나요? 우리 대전에서 만나요.”라고 했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난법인가 싶기도 했지만 너무도 순수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본 순간 이 사람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 붙잡고 증산도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괜찮다면 이후에라도 개벽관과 역사에 대해 알려 주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알고 봤더니 작년 역사 동아리 활동을 하려고 신청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나오지 못했던 친구였습니다. 그 주 토요일에 부산대학교 앞 ‘토즈’에서 만나 역사왜곡과 민족관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고, 개벽관에 대해 제대로 잡아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송현우 예비도생 또한 증산도 도장이라는 곳에 꼭 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도장으로 갈 약속을 잡았습니다. 도장에 와서 독립운동사와 보천교, 그리고 증산도를 소개하였는데 송현우 예비도생이 세계사와 우리 민족사에도 큰 관심이 있는 게 느껴져 가르치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스펀지와 같이 잘 받아들였으며, 궁금한 것은 바로바로 질문을 했습니다. 답을 얻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탄하고 정리를 해서 자기 것으로 새기려는 모습은 참 건강한 콩나물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부산중앙도장 김선영 포감도 와서 함께 진리의 정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해 주었습니다. 다음 날 다시 도장을 방문하여 21일 정성수행을 바로 시작했습니다. 태을주와 운장주를 알고는 있지만 의미와 뜻을 잘 모르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정성수행을 하면서 청수모시기의 중요성과 태을주, 오주, 운장주의 뜻을 함께 알아 가며 도공수행도 같이 하였습니다. 폭염 주의보가 발령되는 한 주였는데 송현우 예비도생은 오후 2시와 3시 사이에 와서 함께 수행을 하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점점 살은 타들어 가고, 무더웠지만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굉장히 대견해 보였습니다. 도장에 오지 못하는 날에는 집에서 몰래 정성수행을 하고 인증샷을 찍어 저에게 공유를 하였습니다. 천지공사와 개벽관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에 도전 5편의 천지공사 부분을 집중적으로 많이 읽었으며, 우주의 주재자이신 상제님과 태모님에 대해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도록 1편부터 11편까지 정독으로 읽고 있다고 말하여 오히려 제가 묵은 기운을 반성하고 새롭게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7월 말에 본부 간부들과 함께 만화 디자인 답사차 일본 도쿄에 가게 되었을 때 박은형 천록포감이 중앙도장에서 동래도장으로 세 차례 방문 교육과 더불어 수행도 함께 해 주었습니다. 도쿄에서 답사를 하고 있을 때 송현우 예비도생이 카카오톡으로 도장에 수행을 하러 왔는데 아무도 없어 집에 가야겠다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그때 저는 바로 강은진 포감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수행과 교육을 부탁했는데, 이와 관련된 신비한 체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강은진 포감이 그날 오후에 잠깐 눈을 붙였을 때 그전에 만나 뵈었던 흰 한복을 입으신 할머님이 또 나타난 겁니다. 꿈에 “내 자손 송현우를 꼭 살려 달라”는 말을 듣고 몇 시간 뒤에 저한테 국제전화를 받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신도神道와 인사人事는 정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하였습니다. 21일 정성수행을 하는 도중에 송현우 도생이 도공수행을 하면서 체험한 전생과 조상님을 만나 뵌 체험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막둥이도수 시간대로 들어서면서 순수하고 열정적인 일꾼들이 기운을 갖고 도문으로 들어온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들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겸허하게 마음을 다지고 송현우 예비도생이 가진 삼생의 인연이 잘 열매를 맺고 육임을 완수하여 천명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자 결심하였습니다. 원력으로 인연을 만나고 포교가 이루어진다는 태사부님의 정성에 대한 소중한 말씀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기며, 태을랑으로서 최선을 다하여 살릴 생자 공부의 본분을 다할 것을 서원합니다. 보은! ◎


    김지동(남, 58) / 울산옥현도장 / 146년 음7월 입도

    아주 오래전부터 제가 하는 일들이 무언가에 의해서 계속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을 알았습니다. 안정적이던 회사도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부도가 나 버리고, 호적등본이 필요하여 동사무소에 신청하고 대기하던 중 제 차례가 되면 전산이 갑자기 다운되어 발급이 안 된다고 내일 오라고 하는 등의 일들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또 무슨 일이 생길까?’라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와 함께 앞으로 십 년 후, 이십 년 후 나이가 들면 어떻게 살아갈까?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세계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생존 경쟁은 더 치열하고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고 이기주의에 분쟁과 전쟁 그리고 테러까지 더욱 빈번하여 안전지대가 없어 보였습니다. 불안한 미래에 대해 암울한 생각에 미래에 대한 기록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예언자들의 예언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격암유록과 탄허스님의 예언을 보았습니다. 정역의 원리, 후천, 간방, 지축정립, 개벽 등의 새로운 내용들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이곳저곳을 검색하다 관련 책자를 무료로 보내 준다고 해서 연락처와 주소를 남겼습니다. 다음 날 처음 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모르는 전화번호는 받지 않는 제가 덥석 받아 통화하니 어제 남긴 연락처를 보고 인터넷 관리자가 책을 보내 주겠다며 여러 가지 질문과 상담을 30분가량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개벽실제상황과 천지성공 책 두 권을 받아 기대와 호기심으로 차근차근 읽어나갔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내용들이라 신비의 보물 상자를 여는 것 같았습니다. 내용 하나하나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너무도 궁금해 가슴에만 묻어 둔 수많은 질문들의 답이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책 내용 구구절절이 흔히들 말하는 천기누설이 아니라 천지알림이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인간 세상에 오신 옥황상제님. 그것도 우리 대한민국 우리 국민으로 오신, “강증산”이란 이름으로 오신 하나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요한 내용은 노트에 기록하며 한 장 한 장 개벽실제상황을 다 읽고 나니 대우주 속 지구에 수십억의 인간이 태어나고 죽고를 반복 하였을 텐데 지금 현재 제가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게 행운 중에 행운이요, 축복 중에 최고의 축복이라 생각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맨 뒷장을 넘겨 보니 ‘증산도주요도장안내’라고 있고 도장 명칭과 연락처가 있었습니다.

    울산옥현도장과 통화되어 방문을 하였습니다. 김재오 수호사님의 친절한 상담으로 증산도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대우주 통치자이신 상제님의 일꾼이 되기를 결심하고 그동안 해 왔던 대리운전을 바로 그만두고 2016년 7월 3일부터 새벽수행과 증산도에 대한 팔관법, 개벽실제상황 정리교육을 매일 오전 2~3시간씩 한 달간 이수하였습니다. 또 상제님 어천치성, 자체 수요치성, 일요치성에 참여하며 여러 절차를 거쳐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도생님과 수호사님은 이미 몇십 년 전에 증산도를 알고 일생을 바친 분들이었습니다.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나는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너무 늦게 증산도를 알게 된 것을 자책했지만 “나중 난 뿔이 우뚝할 수 있느니라. 오로지 일심으로 닦고 혈심으로 일하는 자가 큰 복을 받으리로다”라는 상제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선배 도생님들과 함께 부끄럽지 않은 신앙인이 되겠습니다. ◎

    “일평이가 동아줄이니 일평이를 잡소”


    정일평(남, 59) / 목포옥암도장 / 146년 음7월 입도

    아! 입도에 즈음한 이 마음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제 나이 정유생丁酉生, 60살에 철들었다고 말하면 남에게 코웃음, 비웃음을 받겠지만 어쩌란 말입니까. 입도수기를 계기로 60인생을 반추해 봅니다. 남해안의 조그마한 섬(완도군 청산도)에서 4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신 부친께서는 당시에 꽤 규모가 되는 어업에 종사하신 할아버지를 도와 살림을 꾸리고 계셨습니다.

    부친은 다른 두 숙부와는 다르게 백부님과 함께 자식이 없는 고통 이외에는 비교적 넉넉한 살림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일평日坪과 일영日英으로 이름을 지어 놓으시고 양가의 씨종자 하나씩만을 바라시며 해마다 이루어지는 당산제 담당을 수년간 아버지가 맡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들 하나만을 소원하던 중 아버지 44세, 어머니 40세에 자식을 보았습니다. 어머니께서 두 이름 중에 일평으로 선택하셔서 할아버지께서 제 이름을 일평으로 하시고 다음 해에 태어난 사촌동생은 일영으로 하셨습니다. 두 이름을 미리 지어 놓으셨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부모님의 자식 교육 열정으로 저는 12세에 목포로 유학을 와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청년기에 접어들어 저는 그야말로 유랑객처럼 한군데에 정착하지 못하고 직업을 찾아 광주, 부산, 서울, 안산 등을 유랑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지독히도 정성스럽게 교리에 얽매여 생활하는 기독교 교파의 효심 있는 처자를 만나 결혼 생활을 하던 1989년 어느 날 후배로부터 ‘다이제스트 개벽’ 책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여러 가지 복잡한 일로 3년이 채 되지 못한 기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또다시 유랑의 객이 되었습니다. 1992년 광주에서의 사업부도로 2000년경 경기도 안산으로 거처를 옮겨 조그마한 개인사업을 하였습니다. 그때 사무실 건물의 5층에 있는 증산도 안산중앙도장의 문을 두드려 다시 한 번 개벽에 관련된 책자를 구하여 보았습니다. 책을 읽는 중 진리의 갈급증에 인터넷을 뒤지다가 현재 청주우암도장 이재룡 수호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전에 계시던 이재룡 수호사님을 바로 만나기를 청해 식사를 하고 안산상록수도장으로 인도되어 2008년 3월에 입문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 마음은 학문적으로만 증산도를 접했고 본질은 뒤로한 명목상의 증산도인이었습니다. 그 후 어머니가 연로하여 4년 전에 다시 목포로 거처를 옮겨 마지막으로 택한 직업이 결실을 맺어가던 2016년 6월 말경이었습니다. 저는 직업상 매일매일 상품을 선택해야 하는데, 도저히 제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한계를 느끼면서 참마음으로 수익이 좋은 상품 종류를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 위해 수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재룡 수호사님 뵙기를 청했습니다.

    2016년 7월 12일 이 수호사님과 목포옥암도장 수호사님을 뵙고 난 후 7월 13일부터 21일 새벽정성수행을 결심하고 정진하였습니다. 정성수행 중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오셔서 온화한 얼굴로 “먼 길 돌아 오느라 고생 많았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그동안 3, 4번 꿈에 보이셨을 때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21일 정성수행을 마치고 다시 100일 정성수행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입도를 결심하고 수호사님과 진리공부를 하면서 조상님 천도식을 올려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상님 천도식을 올리겠다고 마음먹은 그날 밤 다시 아버지께서 오셨습니다. 제가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돌아가신 양모님의 손을 잡고 건너편 계단을 내려와 저의 집 방향으로 걸어가시면서 아버지께서 양모님께 하시는 말씀이 또렷이 들렸습니다. “일평이가 동아줄이니 일평이를 잡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옆을 서성이던 5, 6세 정도의 소녀가 있었는데 정체가 궁금하여 누님에게 물어봤더니 제가 태어나기 1년 전에 돌아가신 누님이 계신다고 하여 제적등본을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저로서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평소에 꿈을 꾸지 않던 제가 새벽정성수행을 하면서 돌아가신 조상님 여러 분들을 뵙게 되어 신도세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도세계! 그토록 한 번쯤 경험해 보고 싶었지만 한편으로 두렵고 또 한편으로는 신기한 마음으로만 여겼던 신도세계와 신인합일神人合一을 생각해 볼 때, 실로 저와 함께 호흡하고 계시는 선령님들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2016년 병신년 8월 28일(음력 7월 26일) 입도와 조상천도식을 함께 준비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 봅니다. 앞으로 상제님 일꾼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일심一心, 일심一心, 일심一心이 변하지 않도록 더욱 새벽정성수행에 정진하겠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후천선경을 향해 6임을 완수하는 진정한 태을랑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성경신을 다하여 태을주 수행을 하고 의통조직의 일원으로 임무를 다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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