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하는 태을 신앙의 길을 가고파 (손말숙, 김나은, 이옥경, 전영렬)

[입도수기]

보은하는 태을신앙의 길을 가고파


손말숙(여, 73) / 계룡도장 / 146년 음6월 입도

어려서부터 기독교인으로 살다


저는 전기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8~9세쯤에 먼 친척 되시는 여 전도사님의 인도로 기독교 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건물도 없을 때라 마당에 멍석을 깔고 초롱불을 밝혀 놓고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기독교인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다른 종교는 알지도, 듣지도 못했기에 교회 다니는 것이 그냥 좋았습니다. 싸움이 없다는 천국을 생각하며 열심히 60대 중반까지 교회를 다니다 보니 권사라는 직분도 맡게 되었습니다.

50대에 닥친 가정사


저는 시어머님을 모시고 아이 셋을 키우며 남편 그늘에서 사는 보통 주부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니 남들만 겪는 일들인 줄 알았던 어려운 일들이 50대 중반에 저에게도 닥치더군요. 7년 넘게 치매를 앓고 계신 시어머님과 병무 중인 두 아들, 혼기를 앞둔 딸까지 남겨 두고 남편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살던 제가 가장이 된 것입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고 싶은 마음에 신앙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른 채 열심히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였습니다. 제대를 한 두 아들은 대학 공부를 마치고 사회 생활을 하게 되면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밖에 연이은 시련과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남편의 빈 자리가 크기만 했습니다.

마음을 비우는 공부를 하다


무언가 풀리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불운에 힘들어도 도움 받을 곳이 없었기에 정말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고 있던 차 우연히 불교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과因果 법에 대한 설법에서 현생의 고통은 전생의 업보이며 빚을 갚는다고 생각하고 참회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좋아도 붙잡을 수 없고 싫다고 내칠 수 없는 것이 인연법이라는 설법이 마음속에 와 닿았습니다. 저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집에서는 불교방송을 시청하며 마음을 다스려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음이 불교 쪽으로 끌려 한 보살님을 따라 절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불교 공부를 하면서 마음이 조금씩 비워졌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길을 추하지 않게 맑은 정신으로 아이들과 작별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지막 희망을 가지며 마음 비우는 공부를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새로 산 TV에서 상생방송 채널이 나와


그러던 금년 5월에 막내아들(이송일)이 TV를 바꾸어 주었는데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채널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 중 상생방송을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태을주를 들었고 모두가 흰옷을 입고 상제님께 절을 올리는 장면을 보면서 증산도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는 종교인이 아니라도 모두들 알고 있는 종교인데, 저 종교방송이 혹 사이비 아니냐고 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이 하는 말이 “사이비 같으면 방송까지 할 수 있겠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꾸 보니까 다른 종교는 부녀자들이 많고 남자들이 적은 반면에 상생방송에는 남녀 학생들도 많이 보이고 젊은 사람이 많은 것이 정말 신심 있게 보였습니다.

가르침이 왜곡될 수 없겠구나


증산도 진리를 알고 싶은 마음에 상생방송 시청자상담실에 전화를 하였고 그곳에서 보내 준 『도전』을 받아 읽어 보았습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11편까지 읽고 나니 도장이란 곳에 가보고 싶어 도장에 연락을 드리고 방문하였습니다. 첫 방문 시에 포정님이 반겨 주시며 우주일년 인간 농사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처음 수요치성, 일요치성에 참석하면서 상제님, 태모님 말씀과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말씀이 전국 도장에 동시에 송출되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치성과 도훈을 듣는 체계를 통해 가르침이 왜곡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저녁이면 도장에서 입도 정성기도와 팔관법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포정님으로부터 신앙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체계적 지도를 받고 있습니다. 증산도 진리인 상제님의 가르침을 알아 갈수록 확실한 증언으로 입증된 상제님 진리를 만났으니 헛되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입도를 하고 공부와 수행을 깊이 있게 해서 보은하는 태을신앙의 길을 가겠습니다. 상생방송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상생하소서. ◎

조상님과 자손 간의 풀리지 않는 문제


김나은(여, 53) / 구미원평도장 / 146년 음6월 입도

옥황상제님을 향한 아버지의 기도


저는 경북 김천시의 한적한 산골에서 1남 5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서 잦은 아픔으로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건강의 소중함을 일찍이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같이 아버지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받으면서 어머니는 하루하루를 보내셨습니다.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실 때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기도처에 차려 놓고 옥황상제님을 찾으면서 기도를 올리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제가 어려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들었는데 증산도 관련 여러 책을 읽으면서 놀란 점은 그때 아버지께서 기도문을 통해 많이 찾았던 그 분이 바로 상제님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제사를 모시면 아이들이 아파


이후 저는 성장하고 결혼을 해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번갈아 가며 자꾸 아프기 시작하였습니다. 집안의 조상님 제사를 모시고 난 후에 아이들이 아프고, 다른 집 조문을 갔다 와도 아팠습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니 남편은 남의 집 조문 가는 것조차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어머니는 저에게 절에 다닐 것을 권유하셨지만, 저는 ‘절을 다니며 부처님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다를까? 내 자신이 바른 맘으로 정직하게 살아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버님 묘 이장 날 죽어가던 딸아이


그렇게 세월이 흘러 작은아이가 10살이 되던 해에 아버님의 묘를 이장해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장 날짜가 정해진 날부터 작은아이는 아프기 시작했고 급기야 묘를 이장하는 날 작은아이의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였습니다. 구미에 있는 종합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더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해서 앰뷸런스를 타고 무작정 대구에 있는 종합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병원에서 여러 가지 진단을 받고 나자 의사 선생님이 담담한 표정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은 삭발까지 하면서 딸을 살려달라고 애절한 몸부림을 쳤습니다.

20일 이상 굶던 아이가 살아나


어느 날 언니가 마지막 방편으로 굿을 해 보자고 하여 남편에게 말을 했더니 처음에는 반대하였으나 설득 끝에 결국 굿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믿기지 않는 현상이 제 앞에서 일어났습니다. 작은아이가 눈을 뜨면서 엄마를 찾았고 밥도 달라고 하였습니다. 20일 이상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던 아이가 이른 아침에 컵라면과 밥 한 공기를 다 먹었습니다. 저는 감사하다는 말을 수 없이 반복하면서 아이를 돌보았고, 며칠이 지나 병원에서 퇴원을 하던 날 담당 의사는 “아직도 너의 병명을 모른다. 너는 네 스스로 나아서 퇴원하네.” 하면서 기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아이의 몸은 계속 좋지 않아 절을 찾게 되었고 천도제를 몇 번 지냈습니다.

조상님께 사죄하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문득 ‘왜 아이의 몸은 계속 아플까? 조상님이 계신다면 어찌하여 자손이 힘든 것을 헤아려 주시지 않고 계속 대접만 받으려고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정 조상님이 계신다면 자손이 죽게는 놔두지 않겠지,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세요’라는 생각에 이르자 그때부터 한동안은 절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길을 가던 중 저 자신도 모르게 “조상님! 잘못했습니다.” 라고 조상님께 사죄를 한 후 다시 조상님을 찾고 절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딸아이의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밴드 대화방에서 만난 친구


어느 날 네이버 밴드BAND 어플의 띠별 모임 대화방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김해장유에 사는 김원식이라는 친구가 인사를 건네 왔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전화 통화를 하다 보니 뭔지 모르게 친구의 대화 내용 한마디 한마디가 믿음이 갔고 직관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게 되었고 많은 대화 속에서 꼭 찾고 싶은 진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증산도 관련 여러 권의 책을 선물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친구와 대화를 할 때마다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상제님은 틀림없는 하느님


그러던 어느 날 김원식 도생이 저를 증산도 구미원평도장에 인도하였습니다. 도장에서 수호사님의 수렴교육을 받고서 입도를 결심하고 다음 날부터 8관법 공부에 들어갔습니다. 수호사님께서 먼저 우주1년과 생장염장의 원리를 교육하실 때 우리가 생각 없이 무심코 지나치던 세월이 어찌 이렇게 우주1년의 틀에 짜여진 법칙대로 흘러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인류의 미래는 이미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로 짜 놓으신 틀대로 돌아간다는 것이 경이롭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증산 상제님은 틀림없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공부와 행동으로 사람 많이 살릴 수 있도록 생활을 정리하고 증산도에 일심할 수 있는 길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증산도 신앙으로 인도해 준 김원식 포정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증산도에 보은을 하는, 실천하는 신앙인이 될 것을 약속합니다. ◎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상제님의 말씀


이옥경(여, 53) / 김해내외도장 / 146년 음6월 입도

27세에 만난 미륵부처님


제 나이 27살 되던 해에 미륵부처님 절에 가서 정성을 드려보자는 말에 대순진리회에 입도하였습니다. 당시는 결혼하여 아이가 돌 무렵이었습니다. 대순에서는 아이를 키울 시간이 없으니 집안에서 반대하면 가정을 버리고 도를 닦아서 아이를 살려야지 아니면 다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가출도 하고 결혼 때 받은 패물도 팔고 보험을 해약하는 등 집안에서 돈 되는 물건을 찾아 팔며 대순신앙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대순이 분열되는 과정도 보았지만 한 번도 대순이 거짓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고 27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다니던 대순에서 주문이 바뀌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제가 정성이 부족하여 의심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책을 하는 편이었습니다.

태을주 주문이 엉뚱하게 바뀌다


그런데 주문이 바뀌면서 태을주 주문 또한 엉뚱하게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태을주는 수기 저장 주문이니 병이 범치 못하느니라. 내가 이 세상 모든 약기운을 태을주에 붙여 놓았느니라. 약은 곧 태을주니라.”는 상제님 말씀을 어기는 것에 의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상제님의 참 진리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며 마음속으로는 상제님 참 진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심고를 드렸습니다.

상생방송을 보다


대순에 있을 때 증산도는 선천종교와 다름없다고 들었기에 증산도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곳도 상제님을 신앙하는 곳이니 상제님 말씀이라도 들어 보자는 생각에 상생방송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상생방송을 보다가 궁금증이 생겨 인터넷 검색으로 증산도 김해내외도장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하였습니다. 도장에 처음 방문하였을 때 태모님 진영을 보고 조금은 놀랐습니다. 대순에서는 태모님을 모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신단에 봉안된 조상님 위패를 보고


그리고 천도식을 모신 조상님의 위패가 상제님과 같이 천신단에 봉안된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도전』에 조상은 제1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증산상제님 말씀을 되새겨 보니 이치가 맞았습니다. “조상은 아니 위하고 나를 위한다 함은 부당하나니 조상의 제사를 극진히 받들라. 사람이 조상에게서 몸을 받은 은혜로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느니라.”는 도전의 말씀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상제님 말씀이었습니다. 그날부터 도전을 읽고 공부하면서, 대순에서 읽은 『전경』은 상제님의 말씀 중 일부분이고 오류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경』은 오류가 많다


처음에 증산도 도장을 방문할 때는 ‘어떤 진리가 있을까?’ 하며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찾아갔지만 갈수록 재미가 있고 대순에서의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 완전 해갈되다 보니 하루 3시간 이상을 저녁도 거르고 진리말씀을 들어도 힘든 줄 몰랐습니다. 입도를 마음먹었지만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이 있어 포정님께 입도를 다음 달로 미루면 안 되겠냐고 상의를 하였더니, 진리가 맞지 않다면 어쩔 수 없지만 진리가 맞다면 미루지 말고 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도장에서 감명을 받아


입도수기를 쓰면서 그동안 애써 주신 포정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늦게까지 식사도 못 하신 채 열정적으로 교육해 주시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잘 들어 주시면서 해결방안도 현명하게 제시해 주시는 것을 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를 버리지 않고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조상님께, 자손으로서의 도리는 상제님 신앙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일심과 정성을 갖고 천지일월 사체 하나님과 조상 선령신께 보은하는 천지의 일꾼이 되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

10년 만에 다시 찾은 상제님 말씀


전영렬(남, 52) / 전주경원도장 / 146년 음6월 입도

『개벽실제상황』을 반복해서 읽고 충격을 받아


10여 년 전 우연찮게 만난 분으로부터 『개벽실제상황』이란 책을 소개 받았습니다. 하지만 먹고 살기에 바빠서 크게 신경 쓰지 못한 채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고속도로 입간판에 큼지막하게 걸려 있는 광고를 보고 ‘도대체 저 책은 무슨 책이길래 저렇게까지 광고를 하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났습니다. 비로소 과거에 그 책을 소개해 주며 역사와 관련 있다고 얘기해 주던 그분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집 근처의 서점에 들러 문제의 『개벽실제상황』 책을 사서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구입해서 첫 장부터 읽어 내려가는 중에 지금까지 알 수도 없었고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놀라운 사실에 온몸의 근육이 긴장이 되고 머리털이 곤두서는 듯했습니다. 지금도 그 놀라운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았어도 나름 어느 누구와 이야기해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던 제 자신이 그렇게 초라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역사는 극히 일부분이고 그것도 이상하게 왜곡된 역사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동안은 정신없이 『개벽실제상황』책에 푹 빠져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고 2번, 3번 반복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도전』에서 ‘상제’라는 낯선 단어에 걸려서


그리고 『도전』을 구입해서 단숨에 읽어 가던 중 한 가지 제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게 만드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저는 ‘상제’라는 낯선 단어를 도저히 제 마음에서 수용하기 힘들었습니다. 기독교와 천주교 신앙을 해 왔던 저에게는 상제라는 낯선 그 언어가 너무나도 큰 거부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제대로 진전을 하지 못하고 『도전』을 한쪽으로 밀쳐놓고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맘을 비우고 『도전』을 정독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 거부감이 들던 상제라는 낯선 단어가 익숙해질 때까지 도전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증산 상제님께서 인간으로 오신 참뜻과 수많은 이적과 인간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조화권능을 마음대로 쓰시고 병든 지구를 뜯어고쳐 새로운 신천지를 이 지구상에 건설하려 오셨다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포정님의 적극적인 안내에 힘입어


그런데 대순진리회나 증산도나 다 같은 부류가 아니겠냐는 생각에 도장에 들어가서 신앙하는 것을 거부하고 먹고사는 데 급급해 하며 또다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3년 김현주 포정님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지속적인 관심의 끈을 가지고 말씀을 정리해 주시고 저를 응원해주셔서 입도까지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증산도 3자를 알게 해 준 박현정 성도님과 도장 수호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김현주 포정님의 꾸준한 관심과 적극적인 안내로 도장에 와서 21일 정성수행과 팔관법 공부를 하면서, 기성종교에서 찾지 못했던 2% 부족한 그 마음을 상제님의 말씀 속에서 다 찾게 되고 저의 몸에 딱 맞는 옷을 이제야 찾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상제님 태모님 말씀대로 살아가고 인류 구원하는 일에 작은 힘이라도 될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