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 역사의 진실(2)

[종도사님 말씀]
道紀 145년 9월 13일(일), 『환단고기』 북 콘서트, 강화문예회관
[말씀요약] 동방 천자의 나라, 단군조선조의 역사는 2,096년이고, 마흔일곱 분 단군이 다스렸습니다. 단군조선 이전에는 열여덟 분 환웅천황이 1,565년 동안 다스린 신시 배달이었고, 배달 이전에는 환국 열두 나라 시대, 일곱 분의 환인이 3,301년을 다스린 무병장수 문명 시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한민족과 인류 황금시절의 원형문화 시대, 7천 년 역사문화 시대를 송두리째 다 잃어버리고 고조선은 완전히 신화의 역사로 부정을 당하는 역사 인식의 절망의 시기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단군왕검은 신교의 삼신문화, 신의 우주 창조 법칙인 3수 원리로 국가를 경영하고 통치하여 진정한 왕도문화를 세운 분입니다. 단군왕검의 국가 경영의 기본 시스템은 삼신우주관을 바탕으로 한 3수 원리로 영토를 셋으로 나눈 것입니다. 저 만주가 진한(중기 이후에 진조선)으로 수도는 하얼빈 아사달이고, 한반도 전체가 마한으로 수도는 평양 백아강이고, 그 다음에 요서 지역이 번한으로 수도는 안덕향, 바로 지난번에 대지진이 일어났던 당산이에요. 이것이 삼조선으로 수도가 셋, 삼경三京입니다. 삼한의 수도는 저울대(진한), 저울추(번한), 저울판(마한)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삼신관의 정신을 상징하는 단군조선의 세 수도 삼경의 균형이 지속되면 나라가 강성해지고 번영이 계속되지만 균형이 무너지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역대 단군 중 초대 단군왕검은 팔조 조칙과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을 축조했고, 3세 가륵 단군은 가림토加臨土 문자를 창제했으며, 11세 도해 단군은 ‘대시전大始殿’을 건축하고 「염표문念標文」을 창제 반포했습니다. 22세 색불루 단군부터 제2 왕조 시대인데 도읍을 송화강 아사달에서 백악산 아사달로 옮기고, 나라를 삼한에서 삼조선 체제로 바꿨으며, 고조선의 금팔조법을 선포하여 국가 경영의 법 체계가 정립됐습니다. 43세 물리 단군 때 일어난 우화충의 대반란을 평정하고 즉위한 44세 구물 단군은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대부여로 바꾸었는데 이것이 부여의 기원입니다. 마지막 47세 고열가 단군이 오가의 족장들에게 국권을 넘기고서 산으로 들어가신 후 6년 공화정 시대를 거쳐 해모수의 북부여가 단군조선을 계승하게 됩니다.

단군조선의 문화 업적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첫째, 환국 배달의 천지광명 역사관, 인간관, 신관, 우주관을 정리한 홍익인간의 광명의 도, 우주광명의 심법을 만세홍범萬世洪範 사상으로, 생활수칙 문화로 정비해 주셨습니다. 둘째, 환국 배달을 계승한 역법曆法(캘린더)으로 배달국 14대 치우천황의 스승인 자부선사紫府仙師가 완성한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이 완성되었습니다. 셋째, 단군조의 인류 문화사적 위대한 업적은 바로 우주 이법으로 한글의 근원이 되는 가림토 38자를 만든 것입니다. 이 문자 창제의 바탕 원리는 『환단고기』의 우주 창세 이법을 상징하는 삼신오제 사상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신화로 부정되고 있는 단군조선


본론의 두 번째 이야기인 동방 천자의 나라, 단군조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한민족 시원 역사와 문화의 근원이 제거당한 상징이자 우리 문화의 본래 모습이 ‘삼조선’입니다. 전체 단군조의 역사는 2,096년이고, 마흔일곱 분 단군이 다스렸어요.

단군조선 이전에는 환웅천황의 신시 배달이었는데 도읍은 신시이고, 나라이름은 ‘배달’, 밝은 땅이었습니다. 열여덟 분 환웅천황이 1,565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신시는 초기의 수도이고, 후기 14세 치우천황, 즉 자오지 환웅천황이 청구靑邱라는 곳으로 도읍지를 옮겼어요. 이를 기점으로 배달의 역사를 전기 신시 시대, 후기 청구 시대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또 배달 이전에는 천산 산맥의 동쪽, 바이칼 호수 오른쪽을 경계로 해서 펼쳐졌던 환국 열두 나라 시대, 일곱 분의 환인이 3,301년을 다스린 무병장수 문명 시대가 있었습니다.

환국 - 배달 - 조선 시대를 합하면 40년 부족한 7천 년이에요. 우리는 이 한민족과 인류 황금시절의 원형문화 시대, 7천 년 역사문화 시대를 송두리째 다 잃어버렸어요. 전 세계 모든 역사교과서에 고조선은 완전히 신화의 역사로 매겨져서 철저하게 부정을 당하는 서글프고 한심한, 역사 인식의 절망의 시기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단군왕검은 왜 신인神人 왕검인가


먼저 단군왕검은 어떤 분인가, 한번 간단히 정리를 해 보겠어요.

『환단고기』에 실린 행촌 이암 선생이 쓰신 「단군세기」 첫 페이지를 딱 넘기면 ‘야, 정말 이걸 다 믿을 수 있을까?’ 하고 의심이 들 정도로 단군왕검에 대한 역대기가 자세히 쓰여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단군왕검은 신묘년 5월 2일에 태어나셨다. 환웅천황이 백두산 신시에 나라를 세운 첫 개천절로부터 1,528년 되던 해다. 열네 살 때 임금을 보좌하는 비왕裨王이 되어 대읍국의 국사를 맡아 보았다.”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열네 살 때 비왕으로서 나라 정사政事를 돌보셨느냐? 바로 이것이 단군왕검의 통치력과 인간적 신성을 엿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대목인데요, 『환단고기』를 보면 “예전에 일산일수 위일국一山一水爲一國이라.” ‘물 하나 끼고 산을 하나 끼면 나라였다.’라고 했어요. 이것이 역사학에서 말하는 부족국가, 성읍城邑국가예요. 그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는 군장, 임금을 왕검王儉이라 불렀어요. 그래서 왕검이 수백, 수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동방에서 신인神人 왕검이 나타났다는 거예요.

그러면 신인 왕검이란 뭐냐? 우리 머릿속에 그려지는 단군조선 역사의 모습은 뭐냐?

쓰다 소키치가 “야, 너희 나라는 2천 년 전 전후에 지금의 한강 남쪽에 약 백 개의 작은 나라들이 있었다. 그게 평정돼서 고주몽의 두 아들 비류와 온조가 몇 사람을 데리고 미추홀(지금의 인천)로 내려와 공동체를 만들었다가, 한성에 수도를 정하고서 백제를 세운 게 한 4백 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렇게 수백 년 동안 평정을 해서 백제가 건국된 것처럼 삼국시대도 힘겹게 이루어졌는데, 그 전 역사는 무슨 얘기가 되느냐? 그건 역사도 아니다.”라고 했어요.

여기에 세뇌되어서, ‘단군조가 동북아 역사를 제패한 거대한 제국이었다.’는 건 우리 한국인들에게 완전히 소설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역사 유전자가 발동이 안 되는 거예요. 정통 사서를 읽고 역사의 진실을 접했다가도 덮고 나면 도로아미타불이에요. 개꼬리를 반듯하게 펴려고 대통에다 넣고 3년 있다가 뺐더니 도로 꼬부라지더라는 것처럼, 너무도 깊은 상처를 받아서 우리 역사 인식이 복원되는 데는 너무도 큰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신인 왕검’이란 ‘환국, 배달의 우주광명의 심법이 열린 왕검’이란 뜻이에요. 그만큼 심법과 영대가 통명通明이 됐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서 인근에 있는 나라 사람들이 그분의 신성함을 듣고 자발적으로 찾아와 가르침을 베풀어 달라고, 도덕을 내려 달라고 하며 단군조선에 합류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신인 왕검은 38세 때, 단국의 웅씨 왕이 전쟁에 나갔다가 세상을 떠나자 백성들의 인망을 얻어 왕으로 등극했는데, 그 해가 바로 무진년입니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지난 무진년(1988)에, ‘아, 단군왕검이 조선을 개창한 지 만 4,320년이 되었구나!’ 하고, 기념비적인 역사 시간대임을 가슴에 품으면서 추억에 잠긴 적이 있었습니다.

단군왕검은 인류 창세역사, 동방 시원문화의 정신인 신교의 삼신문화, 신의 우주 창조 법칙인 3수 원리로 국가를 경영하고 통치하여 진정한 왕도문화를 세운 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을 나무 이파리 옷을 입혀서 반 원시시대, 야만 시대 비슷한 문화수준에 살던 부족장처럼 모시고 있단 말입니다.

단군은 주제지장主祭之長,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을 주관하는 어른, 제사장이고, 왕검은 관경管境, 곧 국가 영토를 관장하는 군주를 말합니다. 단군이라는 말은 원래 하늘, 하느님, 신을 상징하는 말인 ‘뎅그리Dengri’ 혹은 ‘당굴레’에서 왔다고 해요. 몽골어로는 ‘텡그리Tengri’입니다.

그리고 단군조선의 원래 수도가 하얼빈인데, 하얼빈에서 조금 가면 불함산이 있습니다. 그런데 몽골 사람에게 물어보면 ‘불함’을 그쪽 발음으로 ‘불칸’이라고 한다고 해요. 광명, 신성을 상징하는 말이에요.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이라는 사론史論도 있어요.

서양문화의 근원, 기독교 문명의 원 고향은 수메르 문명입니다. 환국 사람들이 약 8천 년 전부터 천산을 넘어갔는데, 한 6천 년 전에 가장 많이 넘어갔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 수메르 사람들이 ‘텡그리’를 ‘딩기르Dingir’라고 했어요. 몽골어로 텡그리, 한국어로 뎅그리. 그게 하느님, 하늘, 신을 말합니다. 신인 왕검이란 바로 ‘이 하느님, 신 자체이신 분, 신성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단군왕검의 국가 경영 기본 시스템


단군왕검의 국가 경영의 기본 시스템은 3수 원리로 영토를 셋으로 나눈 것입니다. 저 만주가 진한(중기 이후에 진조선)으로 수도는 하얼빈 아사달이고, 한반도 전체가 마한으로 수도는 평양 백아강이고, 그 다음에 요서 지역이 번한으로 수도는 안덕향, 바로 1976년도에 대지진이 일어났던 당산이에요. 이렇게 삼조선으로 수도가 셋, 삼경三京입니다.

그런데 신라 때 오경五京이 있었어요. 대진국[발해]도 오경이에요. 그 근원은 무엇일까요? 『환단고기』를 보면 ‘조물주 삼신이 있고, 우주가 시간 공간의 구조를 가지면서 동서남북 춘하추동, 중앙을 다스리는 오제五帝가 있다.’는 우주의 창조 드라마가 나옵니다. 삼신과 다섯 제왕신[오제]의 시스템으로 우주가 열려서 지금 이 순간에도 둥글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삼신과 오제, 이것이 우주관으로 전개될 때는 삼신 오행五行입니다.

오행인 금, 목, 수, 화, 토도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단순히 자연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기본 요소가 아니에요. 우주의 다섯 성령[오령五靈]입니다. 그래서 인류 창세 문화의 원전 『환단고기』에서는 거기에다 클 태太 자를 붙였어요. 태금太金, 태목太木, 태수太水, 태화太火, 태토太土라고,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단군왕검은 신교의 우주관인 삼신 오령, 삼신 오제 사상으로 국가를 경영하면서 수도를 셋, 또는 다섯으로 나누어 다스리셨습니다.

단군조선 6세 달문 단군 때는 ‘서효사誓효詞’를 지어서 하늘에 고했는데요, 일명 ‘신지비사神誌秘詞’라고도 합니다. 이것을 중국의 도학자들이나 공부 좀 한 사람들이 가져다가 여러 가지 비결로 만들어서 유포했는데, 자 잠깐 아름다운 목소리와 함께 그 유명한 ‘서효사’를 들어보겠습니다. (서효사 영상)

‘삼신 상제님’은 하나님의 본래 호칭이에요. ‘서효사’는 한민족이 9천 년 동안 섬겨온 천지의 주관자이신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우주 창세 역사의 주제요 원형문화인 “신교 삼신 우주관으로 나라를 잘 다스려서 만세토록 영화, 평화가 깃들기를 축원하옵니다.” 하는 축문입니다.

이렇게 단군조선은 삼신 우주관으로 국가를 경영했는데, 여기 지도를 보면 삼한의 수도가 저울대, 저울추, 저울판으로 되어 있어요. 그 가운데 번한이 저울추인데, 저울로 무게를 달 때 추를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균형을 맞추잖아요. 가장 민감하지요. 그러니까 현실적인 정치 판도의 변화는 바로 요서 지역에 있던 번한, 후일의 번조선에서 일어났습니다. 중국에서 동북아 역사 침략을 할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결정적 관문이 왕검성이었어요. 번조선은 수도를 나중에 창려현 왕검성으로 옮겼지요.

저울판인 마한의 수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평양으로 유지되고, 만주의 진한은 수도가 하얼빈에서 백악산 장춘으로 해서, 세 번째 장당경 개원으로 점점 아래쪽으로 내려왔습니다. 동북아 역사의 심장부, 단군조의 원 사령탑인 이 하얼빈에서, 한민족의 역사를 영원히 말살하려고 했던 이등박문이 안중근 의사의 총탄 세 발을 맞고 넘어갔습니다. 바로 저 소밀랑 하얼빈이 저울대예요.

그러니까 삼신관의 정신을 상징하는 단군조선의 세 수도 삼경의 균형이 지속되면 나라가 강성해지고 번영이 계속되지만 균형이 무너지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백성들과 함께 각성하는 발원문이 ‘서효사’인데요. 고려 때 『김위제전金謂磾傳』에도 그 내용의 골격이 실려 있고, 또 조선시대 때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 ‘천지문’에도 그 내용의 일부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역대 단군의 주요 치적


자, 그러면 이제 역대 단군의 주요 치적을 간단히 정리해 보겠어요.

-초대 단군왕검
시조 단군왕검은 38세에 즉위하셔서 제일 먼저 ‘환국, 배달로부터 전수받은 우주광명의 홍익인간 심법을 어떻게 백성들이 생활 속에서 실현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제정한 팔조 가르침을 내려 주셨어요. 이 8조 조칙은 지금 우리가 직접 손으로 써서 안방, 거실 또는 냉장고, 아니면 운전대 옆에다가 붙여놓고 한번 읽어볼 만도 합니다.

일심을 가져야, 지극하고도 순수한 정성을 가져야 천지 부모, 천지의 주인이신 삼신 상제님과 한마음이 될 수 있다는 게 첫째 가르침입니다. 여기에는 하느님을 경배하려면 부모와 조상, 가족들과 어떤 마음으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늘의 도움을 받아 복록을 누릴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심법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 외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을 쌓게 하셨지요. 재위 50년, 서기전 2284년에 홍수가 범람하자 이듬해에 마리산에 참성단을 쌓고 천제를 올리신 거예요.

또 치우천황의 후손인 치두남을 저울추 역할을 하는 번한의 초대 왕으로 임명하셨고, 중국 대륙이 위기에 처했던 9년 홍수 때 맏아들 부루 태자를 보내어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을 중국(우나라 사공 우)에 전해서 치수를 하게 하여, 요순시대 다음에 하나라 왕조가 건국되는 운수를 열어주셨어요.

-2세 부루 단군
그 다음 단군왕검의 아들 부루 태자가 2세 단군입니다. 이분의 업적 가운데 가장 뜻 깊은 것이 ‘어아가於阿歌’를 지으신 겁니다. 알렉산더 대왕 이상으로 무용이 뛰어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군사들이 전쟁을 할 때 ‘어아가’를 불렀다고 하는데, 부루 단군이 ‘어아가’를 직접 작사 작곡을 하셨어요.

그 주요 내용은 “배달국 환웅천황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큰 조상님 대조신을 잘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추수감사절의 풍속인 업주가리 문화가 시작되었어요. 부루 단군이 붕어하신 뒤 백성들이 부루 단군의 공덕을 추모하여 제사를 지낼 때, 집안의 정淨한 곳에다 제단을 설치하고, 단지에 곡식을 담아 모셨어요. 이 업주가리 문화는 여기서 간단히 얘기할 수 없지만, 업주가리를 전계佺戒라고도 부릅니다. 전계란 뭐냐?

환국, 배달을 계승하여 단군왕검이 신인 왕검으로서 동북아 대왕조 역사의 문을 여셨어요. 천지 우주광명 인간, 홍익인간의 도를 깨친 사람을 한 글자로 환할 환 자, 환桓이라 합니다. 바로 그 우주광명 인간이 되는, 온전한 인간 환이 되는 생활 지침이 전계예요.

그러니까 부루 단군에 대한 보은 제천의식에서 ‘우주광명의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전계를 지키는 것을 내 인생일대의 유일한 삶의 목적으로 삼는다.’는 전계위업佺戒爲業의 문화가 열린 거예요.

다 함께 전계위업. (복창)

이것은 너무도 강력한 우리 한민족 한 사람 한 사람 삶의 근본 목적이요, 유일한 궁극 목적입니다. 부루 단군에 대한 제사 문화에서 시작된 ‘구도의 삶, 전계를 내 필생의 업으로 삼는다.’는 업주가리, 업신문화가 백성 한 사람, 한 사람뿐 아니라 민족 대동 문화로 이어져 온 것입니다.

-3세 가륵 단군
그 다음 3세 단군은 가륵 단군입니다. 이분은 삼랑三郞 을보륵에게 신神·왕王·종전宗佺의 도에 대해 얘기해 보라고 하여 ‘신이란 뭐냐, 왕이란 뭐냐. 또 종도란 무엇이고 온전한 우주광명 인간, 전이란 뭐냐.’ 이에 대해 가르침을 내려 주셨습니다. 삼랑이란 화랑 문화의 근원으로, 삼신을 모시는 제관입니다.

그리고 더 값진 업적은 동북아 최초로 우주의 이법에 따라 가림토加臨土 문자 서른여덟 자를 창제하게 한 거예요. 이것이 한글의 원형인데, 잠시 뒤에 다시 살펴보기로 하죠.

또 서양은 물론 지구촌 역사를 흔들어 놓은, 동북아 유목민족 가운데 가장 강력한 흉노匈奴의 시조를 내셨어요. 흉노는 본래 훈족인데, 중국에서 폄하하여 ‘흉악한 노예 같은 위인들이다.’ 해서 흉노라고 하는데요, 가륵 단군이 삭정을 약수 지방에 유배했다가 나중에 사면을 하고, 그곳 훈족의 시조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지 고설에게 명하여 배달의 역사를 기록한 『배달유기』라는 책을 편찬하게 하셨어요.

-4세 오사구 단군


그 다음 4세 오사구 단군은 아우 오사달을 몽고리한蒙古里汗, 지금의 몽골 왕으로 임명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4,100여 년 전에 몽골의 시조 왕이 탄생한 겁니다. 이것도 아주 놀라운 역사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위서론자들은 “야, 그걸 어떻게 믿냐? 『환단고기』는 조작한 책이야.”라고 합니다. 믿을 수 없는 내용이 많으면 역사의 진실을 가리기 전에 무조건 못 믿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환단고기』 역사를 이야기하면 “환빠다.” 즉 ‘『환단고기』에 빠져 미친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오사구 단군 때 매년 3월 16일에 기린굴에서 조의가관皂衣加冠의 예를 행했습니다. 고구려 때 조의선인皂衣仙人이 있었는데, 지금도 어떤 지역을 가 보니까 거기에 조의선인의 풍속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요. 숲속에 아주 거대한 절을 지어놓고 조의 비슷한 옷을 입고 수련을 하는, 한민족의 고대 전통 풍속을 그대로 행하는 구도 집단이 있습니다. 다음에 한번 소개를 해 드리려고 합니다.

당시 마한 왕이 6세 근우지인데, 오사구 단군의 명으로 상춘, 지금의 만주 장춘에 들어가 구월산에서 삼신께 제사 지내는 일을 도왔다고 합니다. 이 구월산이 내려와서 지금 황해도 구월산이 된 겁니다. 거기에 삼성사가 있어 지금도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고 있잖아요.

-5세 구을 단군
5세 구을 단군을 보면, 단군이 장당경을 순행하여 삼신단을 쌓고 환화桓花를 많이 심으셨어요. 환화는 본래 우리 민족의 꽃입니다. 환화가 무궁화다, 진달래다 하는 여러 주장이 있지만, 지금 우리는 무궁화를 나라의 꽃으로 섬기고 있지요.

한마디로 한민족의 국가 통치와 경영의 바탕은 삼신 신교문화입니다. 우주의 조화주 하나님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면서 서원한 것이 동방 나라 창업의 역사, 그 번영의 도요 비결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단군조와 같이 2천여 년 동안 역년이 지속된 왕조가 별로 없어요. 신라도 천 년 왕국이라고 하잖아요.

흔히 로마와 이집트의 역사를 2천 년 왕조사라 하는데, 우리 환국이나 조선처럼 제대로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11세 도해 단군
그 다음 11세 도해 단군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대시전大始殿’을 지었어요. ‘동방의 유구한 9천 년 역사 문화 정신을 복원하겠다.’ 해서 큰 대 자, 비로소 시 자를 썼습니다. 큰 나무를 신단수로 정하고 그것이 ‘환웅님의 성체다.’ 해서 환웅 천황을 받들어 모시는, 웅상雄常 문화의 전통을 다시 세우신 거예요. 이렇듯 ‘대시전’은 본래 ‘환웅전’인데 뒤에 불교가 들어와 불교도들이 석가불을 모시면서 ‘대웅전’으로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그렇게 도해 단군은 환국, 배달의 시조를 섬기는 문화를 크게 부흥시켰고, 또 환국, 배달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천부경』과 배달의 삼신문화에 대한 가르침, 곧 하늘과 삼신 상제님의 천상 궁전, 세계, 그리고 인간에 대한 가르침을 베푼, 366자로 이루어진 「삼일신고」 등을 근거로 해서 환국, 배달의 경전을 완성하셨어요. 바로 「염표문念標文」을 창제하여 반포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염표문」 창제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바르고 정확하게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중국의 하나라 왕조에 ‘이렇게 나라를 다스려라.’ 하고 국훈國訓을 전수했다는 기록도 나옵니다.

-12세 아한 단군
자, 그 다음, 12세 아한 단군은 순수관경비를 세웠고, 13세 흘달 단군은 소도蘇塗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天指花를 심었다고 했는데, 소도 제천행사를 다시 한 번 크게 부흥시키셨어요.

우주의 조화주 하나님인 삼신 상제님을 모시는 제관을 삼랑, 또는 국자랑, 천왕랑이라고도 했는데, 여기 강화도 마리산에 삼랑성이 있잖아요. 바로 국자랑을 양성하고 그들을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 했어요. 천지화란 ‘하늘에서 이것이 너희 나라꽃이다.’ 하고 지적을 했다는 의미예요.

본래 화랑은 ‘꽃을 머리에 꽂고 다니는 젊은이’라는 뜻입니다. 천지화를 꽂고 다녀서 화랑이라 한 것이니 화랑의 원래 말은 천지화랑입니다. 이것을 알려 주는 곳도 『환단고기』 「단군세기」밖에 없어요! 『환단고기』는 화랑문화의 뿌리를 밝혀주는 유일한 사서입니다.

그리고 이때 중국 하나라 성탕으로 하여금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을 치고, 상(은)나라를 세울 수 있도록 군대를 지원한 사건이 있었어요.

-15세 대음 단군, 16세 위나 단군, 21세 소태 단군
15세 대음 단군 때는 “나라의 세제를 80분의 1로 개혁했다. 그리고 아우 대심을 남선비국 대인으로 봉했다.”고 합니다. 선비족, 선비문화의 원형과 근원도 여기서 살펴볼 수가 있어요.

16세 위나 단군 때는 영고탑寧古塔에서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셨어요. 위서론자들은 “『환단고기』가 조작된 위서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이 영고탑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아는 영고탑은 명나라, 청나라 후대에 만들어진 것인데 『환단고기』 「단군세기」에 3,600년 전에 있던 사건으로 나오니까요.

그러나 부여의 영고제迎鼓祭라는 제천문화 풍속이 여기에서 온 것입니다. 영고탑은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지내던 ‘소도 제천단’이자 그곳 지명으로, 영고제는 단군왕검 이전부터 내려오는 조물주 삼신 하나님을 맞이하는 천제요 대동 축제였어요. 그런 유구한 전통을 받아들이지 않고 시비를 거는 거예요. 단지 자기들의 식민 역사관의 틀에다가 꿰맞추기 위해서, 자기들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그 주장에서 벗어나는 건 모두 전부 비합리적이고 조작된 역사 이야기라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위나 단군은 단군왕검을 모실 때 환인천제, 환웅천황, 치우천황(자오지 환웅천황)까지 네 분을 모시는 제사문화의 전통을 세웠어요. 그리고 이 때 『천부경天符經』을 노래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21세 소태 단군 때는 은나라 21세 소을 왕이 사신을 보내서 조공을 바쳤다고 했어요.

중국의 역대 하나라, 은나라, 그리고 주나라도 초기까지 우리 조선에 사신을 보내어 문화 교류를 하면서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이 「단군세기」 여러 곳에 나와 있어요. 은나라 22세 무정 왕이 군사를 일으켜서 우리 제후국인 귀방을 물리치고 삭도와 영지 등을 쳐들어왔다가 소태 단군에게 대패하고서 조공을 바쳤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뒤 재위 52년에 우현왕 고등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고등의 손자 색불루가 우현왕을 계승한 뒤 22세 단군으로 즉위합니다.

-22세 색불루 단군, 23세 아홀 단군, 25세 솔나 단군, 27세 두밀 단군, 33세 감물 단군, 35세 사벌 단군
22세 색불루 단군부터 제2 왕조 시대입니다. 색불루 단군은 도읍을 송화강 아사달에서 백악산 아사달로 옮기고, 나라를 삼한에서 삼조선 체제로 바꿨어요. 그리고 중국 사서에도 나오지만, 고조선의 금팔조법을 선포했습니다. 지금 세 가지만 나오는데, 법 사상의 근원이 되는 전체 맥은 잠시 뒤에 말씀을 드릴 텐데요, 색불루 단군 때 국가 경영의 법 체계가 정립됐습니다.

23세 아홀 단군 때는 아우 고불가로 하여금 낙랑홀을 다스리게 했다고 합니다. 낙랑은 역사의 기원이 매우 오래 되었어요. 5,400년 전 태극기 팔괘를 만드신 태호복희란 분이 낙랑과 진의 땅을 거쳐 산동성 왼쪽으로 진출하셨다는 기록이 『환단고기』 「태백일사」에 나와 있습니다.

그 다음 25세 솔나 단군 때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들어서는데, 문왕과 그 아들 무왕이 은나라 마지막 주왕을 벌하고, 동이족 재상 강태공의 보필을 받아 새로 주나라를 세운 거예요. 이 때 은나라의 기자가 서화에 와서 은둔생활을 했다는 기록도 나옵니다.

이를 보면 중국이 주장하는 기자조선은 명백한 허구입니다. 「단군세기」 25세 솔나 단군조를 보면, 기자는 한반도 조선 땅에 온 적이 없습니다.

27세 두밀 단군 때는 수밀이국, 양운국, 구다천국 등 여러 나라가 사신을 보내와 방물을 바쳤다고 했어요. 환국 열두 나라에 속해 있던 때의 이름이 그대로 지속된 나라들이에요.

33세 감물 단군 때 영고탑 서문 밖에 삼성사를 세우고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고, 35세 사벌 단군 때는 장군 언파불합을 보내어 해상의 구마소, 즉 일본의 웅습熊襲을 평정했다고 합니다.

-36세 매륵 단군
그리고 이제 진짜 중요한, 36세 매륵 단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일본 창세 역사 시조, 일본 건국 왕 이야기.

매륵 단군은 재위 39년 12월에, 협야후 배반명을 보내어 해상의 적을 토벌하게 하셔서 삼도(큐슈, 혼슈, 시코쿠)를 평정했습니다.

본래 초기 단군 시절에 이쪽 춘천의 우두국牛頭國 소시모리가 반란을 일으켜서 단군왕검이 참수를 했어요. 그 후손 가운데 배반명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건국의 시조인 신무神武 왕이 됐다는 얘기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지금도 ‘옛날에 춘천에 소머리 나라(우두국)가 있었다.’ 해서 우두산에 참배를 하고 있어요.

-43세 물리 단군, 44세 구물 단군
43세 물리 단군 때 우화충의 대반란 사건이 일어났어요. 백민성 욕살(지방 장관)인 구물이 천명을 받들어 병사를 일으켜 장당경을 평정합니다. 이듬해 홍수로 도성이 물에 잠기자 역적들이 들끓었는데, 이에 구물이 그들을 토벌하고 장수들의 추대를 받아 3월 16일에 천제를 올린 뒤, 새 수도 장당경에서 44세 단군으로 즉위를 합니다. 이때 나라 이름을 바꾸었어요. 이때는 나라가 실질적으로 망해서 병권이 한반도의 말(막)조선, 만주의 진조선, 요서의 번조선, 셋으로 나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라이름을 조선에서 대부여로 바꾼 겁니다. 이것이 부여의 기원입니다.

『삼국유사』에서 단군왕검이 1,908세를 살았다고 했는데, 이것은 한 분이 그렇게 오래 사신 게 아니라, 단군조선의 나라 존속 역년이 정확하게 1,908년입니다. 44세 단군부터 47세 고열가 단군까지 188년은 대부여의 역사 시대예요. 그러나 단군조선의 기본적인 시스템인 삼신제도로, 삼한, 삼조선으로 굴러갔기 때문에 대부여 역사 188년도 단군조선에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이 44세 구물 단군은 삼신 영고제를 올리고 삼육대례를 올렸다고 합니다.

-46세 보을 단군, 47세 고열가 단군
46세 보을 단군 때 기후가 번조선 궁에 진입해서 “내가 번조선 왕이요!” 했습니다. 그러자 단군이 “그래 네가 한번 해 봐라.” 하고 인정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기씨의 후손 가운데 여섯 사람이 번조선의 왕이 됩니다. 기후가 70세 왕이고 그 다음 기욱, 기석, 기윤, 기비, 그리고 마지막 75세 왕이 기준(준왕)입니다.

그런데 기자의 후손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번조선의 여섯 왕 때문에 조선 전체를 기자조선이라고 얘기한다는 건 우습잖아요. 기자의 후손 여섯이 왕으로 있었으니 기자조선이다, 과연 그렇게 이야기할 수가 있겠느냐 말입니다. 또 위만이 준왕을 쫓아내고 번조선을 차지해서 손자 우거 대까지 이어진 것을 위만조선이라 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마지막 47세 고열가 단군은 단군왕검의 사당을 백악산에다 세우고, 유사有司로 하여금 사계절마다 제사를 지내게 하셨어요. 단군은 1년에 한 번 제사에 참석하셨습니다.

고열가 단군은 서력전 238년 계해년에, “나는 도저히 나라를 경영할 수가 없다. 이제 그만 물러나겠다.” 하고 나라 살림을 맡은 오가의 족장들에게 국권을 넘기고서 산으로 들어가셨어요. 이후 6년 공화정 시대가 열립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전 해인 임술년(서력전 239)에 해모수가 웅심산에서 나라를 세우고 북부여라 했습니다. 그러나 단군의 옥새를 전수받는 데까지는 약 7년의 세월이 걸렸어요.

그리하여 서력전 232년에 본격적으로 단군조선을 계승한 북부여 왕조 시대가 정통 역사 시대로 출범하게 됩니다.

단군조선의 문화 업적


단군조선의 문화 업적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첫째, 환국, 배달의 천지광명 역사관, 인간관, 신관, 우주관을 정리한 홍익인간의 광명의 도, 우주광명의 심법을 만세홍범萬世洪範 사상으로, 생활수칙 문화로 정비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동서고금의 인류 법 문화의 원조가 만세홍범 사상입니다. 그것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단군조선 초기에 8대 강령이 있었고, 22세 색불루 단군 때 여덟 개의 법 조항이 있었고, 44세 구물 단군 때 구서지문九誓之文, 아홉 번 맹세를 하는 글이 있었어요.

둘째, 환국, 배달을 계승한 역법曆法[캘린더]이 완성되었습니다.

지금은 캘린더를 365와 4분의 1일로 쓰고 있는데, 환웅천황 때 이미 삼일신고를 366자로 구성해서 가르침을 내려 주셨듯이, 한민족 최초의 역법이 배달국 때 나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중국 한족의 역사 시조인 황제 헌원에게 도를 내려준 동방의 천자, 배달국 14대 치우천황의 스승인 자부선사紫府仙師가 완성한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입니다.

칠회제신력은, 7일에 걸쳐 주기적으로 일곱 신에게 천제를 올리던 데서 유래된 책력으로, 일곱 신은 천신天神, 월신月神, 수신水神, 화신火神, 목신木神, 금신金神, 토신土神입니다. 환국과 배달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 문명의 근원인 이라크 남부의 수메르 문명에도 칠요 제도가 있었어요.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캘린더 시스템이 그것입니다. 일, 월, 화, 수, 목, 금, 토.

최근에 방영된 인기 서양 드라마 <왕좌의 전쟁>에서도 결혼을 맹세할 때 일곱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데, 거기에는 아주 재미있는 일곱 신이 나와요.

그 다음, 배달 시대 자부선사의 후손 창기소蒼其蘇가 그것을 부연해서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을 만들었어요. 9년 대홍수로 중국 대륙이 붕괴 위기에 처했을 때 단군왕검이 부루 태자를 통해 <오행치수법>과 『황제중경皇帝中經』을 우나라 사공 우에게 전수해 주었지요. 『황제중경』은 배달 시대 황부黃部의 성경聖經입니다. 중국을 멸망의 위기에서 건져준 것도 우주의 역법 시스템이란 말입니다.

25세 솔나 단군 시절, 중국의 상(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창건될 때, 기자가 자기 고향 땅으로 돌아가기 전에 문왕의 아들 무왕에게 오행치수법이 담긴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전했다고 합니다.

공자가 존주대의尊周大義, 춘추대의春秋大義를 외치며, 자기가 진정으로 본받아야 할 군자 나라의 표상이 주나라 문왕과 무왕이라 했는데, 그 문왕과 무왕의 국가 통치, 경영의 핵심 주제가 홍범구주, 아홉 가지 주요 덕목인 거예요. 홍범구주, 아주 유명한 말이지요. 지금 범주(동일한 성질을 가진 부류나 범위라는 뜻)란 말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그 다음 셋째, 단군조의 인류 문화사적 위대한 업적은 바로 우주 이법으로 한글의 근원이 되는 가림토 38자를 만든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정인지의 「훈민정음 서문」을 보면 “기자방고전其字倣古篆”이라, ‘이 글자는 옛 전자를 모방했다.’고 했습니다. 3세 단군 때 만든 가림토 서른여덟 자와, 훈민정음 스물여덟 자를 보면 자음은 서로 같거나 비슷하고, 모음은 완벽하게 똑같아요. 그리고 문자 창제의 바탕 원리가 『환단고기』의 우주 창세 이법을 상징하는 삼신오제 사상입니다.

『태백일사』의 첫째 권 「삼신오제본기」에 나오는 ‘삼신오제의 이치’, 보통 우리가 ‘삼신 오행의 원리’라 하는 그 원리로 만든 겁니다.

‘만물을 낳고, 기르고 깨닫게 하고 다스리는 조화, 교화, 치화! 조물주 삼신의 자기현현인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삼신!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고, 하나 될 수 있고, 교감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조물주 삼신은 바로 하늘과 땅과 인간이다.’ 이게 『천부경』의 가르침이잖아요!

그러니까 한글은 인류 문화사의 최초의 경전, 제1의 경전인 『천부경』의 우주 원리로 만들어진 문자인 것입니다.

ㆍ아래아는 하늘을 뜻합니다. 이건 조화예요. 그냥 점을 찍는 것입니다. 이 대우주의 신성과 무궁한 생명과 무궁한 시간과 공간을 점 하나로 딱 찍는 거예요. 얼마나 멋있어요?

그 다음 ㅡ는 어머니 땅이고 ㅣ는 사람이에요. 하늘과 땅과 인간, 살아 있는 조물주 삼신을 근거로 하는 ㆍ ㅡ ㅣ와 그것을 조합해서 모두 열한 개의 모음을 만든 거예요. 이 열한 개라고 하는 숫자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이 일태극一太極 십무극十無極 사상인데, 십일성도十一成道라고,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원리가 응축된 것이거든요.

세계적인 석학들이 한글에 대해 말하기를 “한글은 가장 독창적이고 훌륭한 음성문자다.”(영국의 제프리 샘슨 교수),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는 바로 한글이다.”(미국의 재러드 다이어몬드 교수)라고 했어요.

더 멋있는 얘기가 있어요. “한국의 전통 철학과 과학 이론이 결합된 세계 최고의 문자다.”(독일 함부르크대학교의 한양대 석좌교수 베르너 삿세)라고, 아주 극찬을 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