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히로부미를 만나시는 상제님의 행적

[입도수기]

이토히로부미를 만나시는 상제님의 행적


박요자(61) / 서울잠실도장 / 144년 11월 입도

제가 상제님 진리를 만나게 된 과정을 말씀드리자면 먼저 제 인생 이야기를 먼저 들려 드리는 것이 순서일 듯싶습니다. 저는 재일교포 3세로 1954년에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다만 어렸을 적부터 잠을 잘 때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다리를 잡아당기는 체험이 성인이 되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혼자 자는 것이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서 인정하고 살아왔습니다. 제가 결혼하기 전 대학생 때 야마구치 현으로 여행을 갔을 적에 남녀의 그림이 그려진 장식품을 사다 놓은 적이 있습니다. 몇 년 동안 잊어버리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영감을 받아서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는데 다 그리고 보니 지옥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 뒤에 일어났습니다. 그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사진에 하얀색 실선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내가 모르는 신이한 기운이 있다는 것을 그때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한국 정부에서 재일교포 중고등학생 200명을 초청했었는데 그때 한 달간 한국에 견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국어랑 문화랑 역사도 배우고 청와대에도 갔었습니다. 그렇게 한국 문화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전부터 제 스스로 나는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 누가 ‘조센징’이라고 저를 욕하면 엄마가 욕을 한 사람에게 ‘조선족이 뭐가 나쁜 거야! 일본인들에게 쌀 한 톨도 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왜 뭐라고 그러냐!’라고 따진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어머니의 영향으로 저는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았습니다. 저는 평소에도 한국 저고리 치마를 입고 일본 백화점을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어떤 재일교포 누구도 저처럼 한국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도 일본식 이름이 아닌 한국식 이름 ‘박요자’를 썼습니다. 다들 이상하게 봤지만 저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제팬 에이젼시’란 이름으로 회사를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광고라는 개념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절이라 광고계는 거의 불모지와 다름없었지만 저는 각 방송 미디어와 각종 행사광고를 의뢰 받으면서 튼실한 광고회사로 키워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유명한 도자기를 소장하고 있던 친구가 도자기를 보여주겠다고 초대한 자리에서 서채원 씨를 소개받았습니다. 한국의 순천고등학교를 세운 서채원씨는 조선통신사 병풍을 가진 재일교포 1세로, 당시 일본에 개인적으로 소장된 한국 문화재를 다 한국에 돌려줘야 된다는 생각으로 사재로 구입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서채원 씨의 초대로 순천도 가보고 조선통신사 중앙박물관에서 조선통신사 유물을 전시했을 적에도 가보았습니다. 당시 동행했던 역사학자 이진희 선생도 저에게 한국문화를 소개해주고 공부를 더 해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그후 일본에서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광고사업에 한국 측 학자 및 일본 관계자들의 요청으로 한두 번 사업차 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그 뒤에 조선통신사 관련 광고 및 문화행사를 여러 차례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본 내에 조선통신사 문화를 널리 알리고 춘향전 등 다양한 한국문화도 널리 소개하였습니다. 당시 국내외 정치인, 종교인 등과 교류를 맺으며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한번은 오카야마 비젠의 어떤 집안에서 400년간 모셔오던 코무덤 상자를 한국 학자가 처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박상중 스님이 위령제를 해줄 사람을 찾았는데 지인이 저를 소개시켜 줘서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사이다이지(西大寺)에서 위령제를 올렸습니다. 난징 위령제 및 다양한 위령제를 주최하면서 많은 혼백魂魄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해로 희생된 한국인 2만명의 원혼을 기리며 진행했던 위령제를 마지막으로 올려드리고 나서 삶의 무상함을 크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진리를 찾기 위해 2000년 1월부터 주변 삶을 정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해 8월에는 회사도 정리하여 동생에게 넘겨주고 저는 수행생활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동양사상, 불교수행, 주역, 가톨릭, 통일교 등을 공부하였습니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항상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천도天道’라는 종교를 만나서 이곳이 진리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 자동서기(계시를 받아 글로 적는 행위)를 받았는데 그 내용은 ‘천도는 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였습니다. 허탈함 속에서 천도를 접고 집에서 혼자 향을 꼽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저는 늘 기도하며 참하나님의 진리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다 딸과 함께 4년 전에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어, 한자, 한국무용, 역사 등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한자공부를 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집에서 개롱역까지 걸어갔었는데 그날따라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 다 알고 있는데도 아무 이유 없이 옆에 계신 한 여성분에게 “이 버스가 개롱역 가요?”라고 물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때 그 여성분, 저의 인도자인 김은정 성도님도 그날따라 이상하게 오전에 집에서 나와야 되는데 늦어져서 그 시간에 정류장에 있었다고 합니다. 만날 인연이었나 봅니다. 그날 같이 한자공부를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에 김 성도님으로부터 『환단고기 역주본』을 받았는데 너무 놀랐습니다. 제가 평소에 천부경과 한국의 역사, 특히 고대사에 대해 알고 싶었는데 역주본 속에 다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김 성도님을 만나 제가 한국에 온 뜻이 있으면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 그럼 도전을 한번 읽어보라고 하면서 도전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도전을 펼친 곳이 5편 365장에 상제님께서 이토 히로부미를 만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인간이 아니시구나, 뭔가 나와 인연이 있구나, 증산도에 대해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장에 방문하고 나서부터 잠을 잘 때 가끔씩 태을주 소리가 귀에서 들렸습니다. 제가 평소 목이 아팠는데 도공을 세 번째 할 때부터는 아프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진리공부와 역사이야기 등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다 보니 상제님 진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14년간 공부를 해오며 진리를 찾아왔는데 이제 그 결실로 이렇게 상제님 진리를 만나 입도까지 하게 되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많은 일본 사람에게 상제님 진리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할 진리, 상생방송


장영원(51) / 증평중동도장 / 144년 음10월 입도

현 사회의 문란한 도덕관에 안타까워하며 마음속으로 진리에 대한 갈급증을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하게 보게 된 증산도 상생방송이 제 인생의 탈출구이자 현 사회문제를 해결할 진리로 제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상생방송의 역사프로그램을 통해서 지금까지 알아왔던 한국사가 전혀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것을 알게 되면서 허위虛僞로 50년을 살아왔던 지난날들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왔는가 하는 자기 성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사를 다시 공부하면서 『환단고기』도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TV를 1년 전에 없애버렸기 때문에 집에서는 상생방송을 볼 수 없었는데 마침 근무하는 곳에 스카이라이프 방송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태상종도사님 대도말씀을 접하는 와중에 ‘나도 『도전』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상생방송에서 증산상제님의 탄강일을 묻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 문제를 맞추면 혹 『도전』을 주지 않을까’하고 전화를 걸어 문제를 맞추었습니다. 선물이 도착할 날을 기다려 『도전』을 비롯한 증산도 여러 소개 책자를 받았습니다. 받은 『도전』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12일, 증산상제님 144주 성탄절 천제에 포감님의 안내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천제에 참가해 느낌도 새로웠고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천제 참석 후 분명히 저의 모습은 달라졌습니다. 청수를 아침과 저녁으로 올리기 시작하였고 21일을 작정하고 증평도장에 나갔습니다. 도장에서 포정님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수행을 배웠습니다. 수행을 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하루하루를 수행하면서 아직 집에 제단은 마련하지 못하였지만 일심을 향한 노력을 계속해 가고 있습니다. 한단 한단을 쌓아 거대한 산을 만들 듯이 증산상제님과 태모고수부님의 유능한 일꾼이 되고 도구가 되기 위하여 매일 청수를 올리면서 정성을 쌓고 있습니다. 미래에 유능한 지도자로 거듭나기를 기원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계속된 공부인연 끝에 만난 증산도


홍종영(54) / 안산상록수도장 / 145년 음10월 입도

저는 2남 3녀의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은 아버지께서 신탄진 전매청의 공장장으로 재직하셨으므로 비교적 부족함이 없이 유복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잘생기고 멋쟁이셨던 아버지의 외도로 집안은 늘 싸움이 잦았고 어머니의 눈물 훔치시는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늘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저는 그런 환경이 싫어 빨리 결혼을 해서 집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였습니다. 이왕이면 교육자 집안으로 시집을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술 먹고 바람피우지 않는 남편을 만나 아이들도 잘 키울 수 있겠다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소개로 운명처럼 교장 선생님의 막내아들이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모든 꿈은 사라지고 고생이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은 사업을 한답시고 친정 재산을 다 갖다 날리고 생활비 한 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남편 대신 제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억척같이 피눈물 나는 고생을 하며 세 아이를 키웠습니다. 세 아이와 먹고 살기 위해 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돈, 돈, 돈 버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친정 여동생의 소개로 산후 도우미를 파견하는 회사의 프랜차이즈 안산지점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뚜렷한 직업 없이 놀고 있는 남편이 출산하는 산모들을 대상으로 작명作名하는 일을 하면 돈을 벌겠다 싶었습니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천부경의 비밀〉이라는 다음 카페를 발견하고 남편에게 500만원을 주고 천부경과 역학을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며칠 공부하다가 안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돈이 아까워 제가 천부경 역학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몇백만 원씩 돈을 쓰고 천부경 기도를 열심히 해보았지만 모두 장삿속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러다 같이 공부하던 지인의 소개로 경기도 양평에 있는 부용사라는 절에서 호흡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절에서 천도제를 해야 된다고 해서 또 돈을 내고 천도제를 올렸는데 결국 그곳도 장사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쯤 절에서 같이 공부하던 사람 중에 철학과 풍수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만나 다시 풍수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공부인연이 이어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하도 많이 내려서 집에서 TV를 보다가 우연히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배웠던 모든 공부들이 다 나오는 것을 보고 하루 종일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흠뻑 빠져서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가 사는 안산에도 증산도가 있는 것을 알고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솔직히 도장에 가기 전에는 앞뒤가 꽁꽁 막힌 늙수그레한 할아버지들이 앉아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였습니다. 막상 가보니 깔끔하고 반듯하게 생기신 수호사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함께 공부를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쁜 사업을 핑계로 공부를 지속해서 하지 못하고 있던 중, 알고 지내던 동생이 오랜만에 갑자기 연락이 와서 저희 샵에서 만났습니다. 대화 중에 20년 전 자기의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이 앞으로 20년 후에는 한류열풍이 불 거라고 했는데 지금 그게 딱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둥, 그 선생님의 종교가 이상한 종교였다는 둥 여러 얘기를 하면서 그 종교가 뭐였더라고 하길래 제가 증산도 아니냐고 했더니 맞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증산도를 아느냐고 묻기에 “나도 인연 따라 그곳에 가서 공부를 하다가 중단한 상태인데 지금 같이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다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도장을 갔을 때 수호사님께서 21일 정성공부를 먼저 해보고 정성기도가 끝나면 8관법 공부도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가정과 직장생활로 바쁘지만 열심히 시간을 내서 입도공부도 끝냈습니다. 이번 동지 대천제를 맞이해서 입도를 하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입도를 권유하셔서 다시 21일 정성기도를 하게 되었고 이번 동지날 입도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입도를 하게 되면 신도5대수칙을 열심히 실천하면서 도전, 환단고기를 바탕으로 진리공부를 잘 하고, 상생방송도 열심히 시청하겠습니다. 또한 천지일월 부모님과 조상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바쁘시고 힘드실 텐데도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수호사님, 수석포감님, 포감님과 도장의 모든 식구들에게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