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환桓의 기운으로 열린 가가도장

[가가도장]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난 이건전 성도님은 일찍 아버지를 여읜 탓에 장남으로서 많은 부담과 책임감을 감내하며 생활해야 했다. 불우한 환경속에서도 자신을 일으키게 해주었던 힘은 작은아버지(보령동대도장 이대행 성도님)와 작은어머니(보령동대도장 이혜경 성도님)의 격려 덕분이었다. 아버지 대신으로 늘 자신을 지켜주시던 작은아버지는 이건전 성도님에게 상제님 신앙을 권유하였고, 이 성도님은 자연스럽게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건전 성도님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돌아가신 아버지. 그렇게 아버지를 존경하는 이 성도님에게 정 성도님은 호감을 갖게 되었고, 장애를 극복한 밝은 에너지에 감동을 받아 결국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어쩌면 이 둘을 이어준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통해서 이 둘의 인연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가정을 이루고 가가도장을 이루기까지의 지난 얘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가족에 얽힌 사연


Q1 성도님의 신변과 가족 이야기를 들었으면 합니다.
이(이건전 성도)- 저는 태어날 때 장애를 갖고 있었습니다. 일명 ‘클럽 풋’이라고 하는데 발목이 이렇게 휘어있는 병이죠. 당시 저희들 집터가 기가 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 곳의 기가 너무 강해서 이겨내지 못하면 병이 나거나 죽는다고 했는데, 뒷집에 사는 분도 꼽추셨어요. 가족들에게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다리야 지금은 어린시절에 여러 차례 수술을 하여 이렇게 교정이 되었는데, 아직도 오래 서 있다거나 걸음을 걷다 보면 가끔씩 불편하기는 합니다.

저의 아버지는 1988년 겨울에 차량 뺑소니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범인을 제보해 준다면 택시 1대를 준다고까지 하여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했던 사건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애를 썼지만 이미 사건 공소시효가 다 지나버린 상태에서, 우연치 않게 범인을 알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과의 대화를 통해 가슴은 아프더라도 그냥 묻어버리기로 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증산도를 신앙하는 이로써 상제님의 해원 상생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저희 집은 어린 저희 형제조차도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려울 만큼 매우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할아버지 할머니께 맡겨져 성장하였고, 성장 과정에서 작은아버지께서 아버지를 대신해주셨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작은아버지께 의지를 하였습니다.

정(정은영 성도)-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대구에서 물리치료과를 전공했어요.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아무 연고도 없는 공주로 왔습니다. 뭔가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어서요. 2006년 5월에 결혼을 하였고, 현재 딸, 아들과 함께 시흥에서 살고 있습니다.

진리와 만남의 시작


Q2 두 분은 처음에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이- 2003년 11월 경 세이클럽이라는 인터넷 채팅 메신저 ‘타키’를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되었어요. 당시 저는 전산팀장이라서 서버 운영을 하고 있어서 항상 로그인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인터넷으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정- ‘50문 50답’이라는 자기소개 프로필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에 가장 존경하는 분을 묻는 질문이 있었어요. 남편의 그 항목 부분에 ‘아버지’라는 답변이 적혀 있었는데, 그것이 저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서로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진리에 대한 흥미가 생겼습니다. 우주일년 등 증산도에서 얘기하는 진리가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같은 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서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Q3 생소한 내용이었을 텐데 쉽게 받아들이셨네요.
정- 대학교 재학시 단학에서 운영한 바숨 동아리에 가입했었어요. 전공학과가 물리치료학과라서 과선배들이 이 동아리에 많았어요. 단학에서 얘기하는 것들이 증산도에서 얘기하는 것과 많이 비슷했어요.

Q4 남편분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정- 저는 평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었어요. 제가 물리치료가 전공이라서 그런 것도 같아요. 첫인상이 환했어요. 몸에 장애도 있고, 아버지도 없는 불우한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밝은 인상에 끌린 것 같아요. 신랑이 모닝콜을 해준다는 약속을 실행하면서, 그걸 계기로 인간적인 만남이 지속된 것 같아요. 아가씨(남편 여동생)가 공주에 있어서 잠깐 동안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더 가까워졌습니다.

결혼과 가족신앙


Q5 결혼과 가족신앙을 이룬 사연과 과정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 아내가 부모님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하였습니다. 가족을 가장 우선시 하는 저로서는 자신이 번 돈을 어머니께 보내고, 언제나 입버릇처럼 부모님을 염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정도로 부모님을 생각하는 사람이면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정- 전부 다 보낸 건 아니에요. 사실 다 드렸다기보다는 도로 받아오는 거니 적금을 든 셈이죠(웃음).

이- 저는 처음부터 가족 신앙인 관계로 신앙인이 아니면 배우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저에게는 신앙이 우선이었습니다. 아내는 쉽지 않았지만 그런 제 뜻을 받아들였고, 많은 난관을 헤치고 진리 공부와 입도를 통해 지금처럼 가족 신앙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정- 저는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마음과 거짓이 없는 태도가 좋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가지 많은 경험을 해서 그런지 힘든 상황도 잘 극복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잘 헤아려 주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신앙 및 포교활동


Q6 도장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적응에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정- 처음 도장을 방문했을 때는 무서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도장분위기 자체가 너무도 엄숙해서 맘대로 행동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도장 성도님의 친절한 태도에 이내 도장생활에 적응했고, 입문교육과 입도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2004년 2월에 저는 교직원 임용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리고 시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여동생에게 아내의 신앙교육을 부탁했어요. 당시 공주도장의 분위기도 한몫했습니다. 아내는 입문을 하였고 이내 입도를 하였습니다. 아내는 대구로 다시 직장을 구해 내려갔습니다.

Q7 신앙을 결심하고 틀을 잡게 된 계기가 있었다면서요?
정- 처음에는 남편과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함께 들려오던 태을주 소리가 생소하여 무서운 느낌이 들어 꺼 달라고 할 정도로 경계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일상적인 대화 중에도 진리와 연결을 지어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곤 해서 증산도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씩 싹텄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태어난 것은 조상신명님들께서 60년의 공덕을 쌓아 어렵게 이루어진 일이라는 말이 많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렵게 받아난 몸으로 어찌 헛되이 보낼 수 있으랴’ 하는 상제님 말씀에 모든 것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진리에 대한 깊은 호기심으로 정식으로 입문 과정을 밟을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리공부가 체계적으로 이어져가면서 주문에 대한 거부감도 사라지고 지금은 가가도장 개창까지 이어지도록 조상신명님들께서 이끌어 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대구에서 『우주변화의 원리』라는 책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그때 많은 도움을 받아 사상신앙의 틀이 잡힌 것 같아요. 항상 배움에 대한 갈급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Q8 신앙 과정에서 어려운 일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정- 결혼을 하고 전혀 연고가 없고 당시만 해도 다소 낙후되어 있던 시흥으로 올라오게 되면서 신앙생활에도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우선 신앙의 불모지이다 보니 도장을 이웃의 안산이나 부천으로 다녀야 했고, 시간 역시도 대중교통으로 1시간을 훌쩍 넘어가다 보니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이동하기에는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특히 익숙하지 않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곱지 않은 시선을 주는 주변 사람들 앞에 떳떳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위축되고 외로움에 시달리던 저는 언제나 태을주를 마음속으로 읽으며 의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힘든 생활이 이어져 갔지만 주문수행을 하는 시간 역시 늘어만갔고, 어느새 하나하나 해결되어 갔습니다. 지금은 일하는 곳 직원들에게 진리를 떳떳하게 전하게 되었고, 주변 분들의 저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 상제님 신앙을 하면서 제가 다른 사람들의 덕으로 살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위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아시는지 제 주위에 있는 분들이 모두 저에게 잘해주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살릴 생生 자 공부’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Q9 포교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이- 같은 학교에 있는 선생님을 중심으로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마침 역사찾기 운동과 맞물려서 좋은 호응을 얻고 있어요. 교감선생님에게 환단고기를 소개해주었더니 반가워하셨습니다. 교내 정보부장을 맡고 있어서 학교업무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선생님들이 이런 제 모습을 좋게 보고 있으니 일단 지인들에게 호감을 주고 차츰차츰 진리를 전할 생각입니다.

정- 이번에 태전지역에서 소개된 거치대를 3개 정도 신청했어요. 1개는 제 집 주위에 또 하나는 같은 도장 성도님 집 주위에, 나머지 하나는 시내 번화가에 두어 관리를 할까 해요. 이렇게 꾸준히 활동을 하다 보면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전망


Q10 앞으로 가가도장 운영 계획은 어떻게 잡고 계신지?
정- 저에게는 가 족포교가 우선입니다. 누구보다 가족을 상제님 도문으로 인도하고 싶어요. 이 가가도장이 저의 부모님과 친정식구들을 상제님의 도문으로 인도해 줄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또한 저는 교리로 포교를 하기보다 분위기로 포교를 하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 집을 얻게 되었습니다(최근에 부부는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이렇게 넓고 깨끗한 집을 얻은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당당한 시흥 지역의 가가도장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상제님의 도문으로 인도하고 싶습니다.

Q11 해원이와 준현이의 신앙은 어떻게 지도하실 생각인가요?
정-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이에게 ‘해원’이라는 이름을 지었을 만큼 우리 아이는 신앙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태교시절부터 도전과 주문 수행을 자주 하면서 교감을 했고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율려 CD도 함께 들으며 지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주문은 물론 심고문과 율려 CD에 수록된 노래들은 곧잘 따라 하고, 배례와 의전을 따라 하는가 하면 도공에도 심취하는 등 주위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은 글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이야기 도전』을 재미나게 읽고 있습니다. 갈수록 상제님에 대한 질문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상제님 진리 문화에 젖어들기 시작했으니 체계적으로 상제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신앙 지도를 해가려고 합니다. 특히 도장에 또래 아이들이 늘어나게 되면서 어포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니 도장 차원의 도움도 받아가며 하고자 합니다.

Q12 시흥도장을 개창할 생각도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 현재 부천상동도장에는 6명의 시흥 지역 성도님이 계십니다. 저희 가가도장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늘려 갈 생각이에요. 3배가 정도가 되면 자연스럽게 도장이 개창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희 구역 포감님이신 이한근 성도님이 시흥에 살고 있는터라 여기에 대한 의지가 많이 강해요. 사실 이 집도 이 포감님의 기운으로 얻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랍니다(웃음). 집에다 진리서적과 홍보물, 포스터와 패널 등 홍보물품을 비치하여 시흥 지역 도장개창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생각입니다.

Q13 좌우명처럼 여기는 성구를 말씀해주셔요.
이/정- 상제님께서 『맹자』의 정수를 한 마디로 정의해 주신 “천장강대임어사인야天將降大任於斯人也인대, 필선노기심지必先勞其心志하고 아기체부苦其筋骨하고 고기근골餓其體膚하고, 궁핍기신행窮乏其身行하여 불란기소위拂亂其所爲하나니, 시고是故는 동심인성動心忍性하여 증익기소불능增益其所不能이니라”(道典 8:87:3) 하신 말씀과 “춘무인春無仁이면 추무의秋無義라”(8:34:1) 하신 말씀입니다. 어떠한 역경이라도 내 스스로가 노력하지 않고 되는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참고 이겨내면 언젠가는 뜻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확신과 의지를 갖도록 해주는 성구입니다.



신앙체험
이- 제가 신앙을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습니다. 처음에는 진리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서 그런지 수행할 때 기운이 조금 느껴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체험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에 입학하여 증산도 학생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수행을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2층 침대를 썼는데, 같이 사는 선배가 1층을 쓰고 제가 2층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꼭 새벽 3시만 되면 아래층의 선배가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 소리를 내는 거예요.

하루도 빠짐없이 그런 날이 이어졌는데, 어느 날인가는 저녁을 먹고 선배가 쓰는 밍크이불 담요의 촉감이 부드러워 보여 침대에 누워 담요를 덮고 있다가 그만 1층 침대에서 잠이 들게 되었습니다.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제 등으로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검은 손이 쑥 들어오는 것이 보이는 겁니다. 음산한 기운에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그 손을 휘어잡고서 운장주를 외웠습니다.“ 천하영웅 관~” 운장주의 첫마디를 외우기도 전에 그 손이 달아났습니다. 선배가 저의 신음 소리에 놀라 저를 깨우길래 눈을 떠 보니 그때가 새벽 3시였습니다. 이 일이 있은 이후로 그 선배는 단 한 번도 가위에 눌리지 않았습니다. 운장주의 신권이 놀라웠습니다.

정- 2012년에 직선조 천도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천도식에 정성을 들이는 배례와 수행 공부를 하면서 작은 기적들을 체험했습니다. 저에게는 어린 고모님이 계셨는데, 이 분이 제가 정성을 들이는 동안에 저와 같이 하셨습니다. 남들에게는 소소한 체험일수 있지만, 저에게는 하늘에서 주는 성령의 선물이었습니다. 천도식을 계기로 영적인 깨달음을 느낀 저는 신앙의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제야 상제님 신앙인으로서 비로소 기본을 이루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