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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가도장]

    인터뷰 | 도전道典은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1. 반갑습니다. 두분이 어떻게 만나시게 되었나요?


    한(한복철 성도)- 제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2000년도 2월에 천록포감으로 순천도장에 발령이 났을 때입니다. 신앙을 통해 만나게 되었기에 신앙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합니다. 읍배하고 사배심고 드리는 모습이었는데, 누가 들으면 웃을 수 있겠지만 저에게는 그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율동으로 보였습니다. 하늘과 땅과 혼연일체가 된 인간의 모습, 천지인이 하나가 된 율동이 우리의 반천무지 절법이 아닙니까? 그런 좋은 첫 인상이 신앙이 얼마 안 되고 어려웠던 신앙을 이끌어주는 과정에서 차츰 인간적인 정으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만난 지 5년 후에 결혼하여 지금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둔 부부로 함께 상제님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내조를 해주는 덕에 저는 일심 개척단에서 상제님 천하사 일꾼으로 봉직하고 있습니다.

    이(이형금 성도)- 처음 한포정님을 만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제가 막 증산도에 입도했을 때였어요. 그 때 순천도장에서 2개월 정도 천록포감으로 봉직할 때 저를 상제님 신앙과 진리적으로 많이 이끌어주셨어요. 이후 졸업하고 취업하면서 1년간 도장을 못 나오게 되었는데 그 때 적극적으로 관리를 해 주신 게 참 고마웠습니다. 제가 20살부터 23살까지 청소년부 포감과 집정 역할을 하면서 순천도장에서 봉직했는데 그 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증산도 신앙이 개척 신앙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많이 지치고 힘든 고비가 오잖아요. 그런 상황이 왔는데 가정적으로도 안정을 찾고 싶고 뭔가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때 한 포정님이 다가왔고 제가 또 신앙적으로 의지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기에 자연스레 결혼까지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상제님 신앙을 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신앙을 일심으로 하게 되면 천지조화로 일이 끌러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결혼도 그렇게 극적으로 성사가 된 것 같아요.

    2. 이 성도님은 도장에서 간부로도 봉사하셨는데, 도장봉직과 육아 중에 어느 것이 더 힘드나요?


    이- 천록포감을 할 때는 여러 성도님들을 관리해야 하고, 재정관리와 포교활동 등 도장 살림살이의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하잖아요. 또 열심히 한 만큼 성과가 바로바로 나타나지 않고 장기적인 일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는 더 힘든 것 같아요. 봉직생활 하면서 도장에서 다소 불협화음이 생기는 경우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대방의 장점을 보기보다는 단점을 가지고서 그 사람을 평가하고, 좋지 않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어요. 서로의 장점만 볼 수 있다면 서로서로 좋은 일이 더 많이 일어나겠죠.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려고 할 때 힘을 모아 일이 잘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 셋을 키우는 것은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보살펴야 되는 부분은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도장에서 봉직할 때보다 힘들진 않는 것 같아요. 육체적으로 조금 힘든 것은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렇게 크게 힘들지 않거든요.

    3. 한 성도님, 지금 고성에서 열심히 활동 중인데 어떤 각오로 개척활동을 하시나요?


    한- 저는 갑오년 2월4일에 일심포교개척단으로 명을 받았습니다. 일심개척단은 24시간 자나 깨나 살릴 생生자 포교에 임하는 일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건 특별히 개척단에만 해당되는 부분이 아니라 전 신도에게 해당되는 사항이라고 봅니다. 특히 계사년 갑오년 맞이 동지치성 때 사부님께서 갑오년을 ‘의통구호대 원년’으로 선포하셨기에 저는 의통구호대를 조직하는 최선봉장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을 안고 봉직에 임하고 있습니다.

    제가 2월 27일부터 4월 18일 현재까지 고성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가 선천의 모든 종교가, 정치가, 공무원, 사업가, 자영업자 등을 진리적으로 무장해제시키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증산도 상생방송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있고 책을 기증받아 읽고 있어요. 활동을 하면서 그런 사람들과 만나 도담을 나누다 보면 세상에서 다 익은 사람들이 들어올 때가 임박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3변도운에서 의통구호대를 완결해야 하는 사오미개명 시간대이면서 60만 동학군이 일어난 갑오동학혁명 2주갑을 맞는 올해 갑오년부터 전인류를 대상으로 수십만 참동학 증산도를 외치는 일꾼들을 포교하는 도화선이 되고자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경남 고성은 환단고기를 편찬 전수하여 한민족과 인류의 뿌리 문화, 시원 광명문화를 보존 전수해주신 고성 이씨 가문의 고향입니다. 환단고기의 고향 고성에서 일심포교개척단을 중심으로 의통구호대 구축을 위한 출정의 첫 포문을 열고자 합니다.

    4. 가정에서 제물치성을 많이 올린다고 하는데, 제물치성하시면서 체험이 있나요?


    이- 지금까지 상제님 신앙을 하면서 재정적으로 힘들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제물치성을 통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끌러낸 경우가 많아요. 또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가정불화가 있으려고 하거나, 건강이 안 좋을 때는 제물치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극복을 하면서 현재까지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증산도 신앙을 하면서 느낀 것은 신앙은 정말 제대로 잘해야 천지에서 복을 준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도장치성 참석 잘 하고, 월성금 헌성 잘 하고, 그리고, 마음으로 항상 포교를 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신앙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5. 한 성도님 도전을 보니까 참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도전에 대한 첫 인상이 어떠했고 도전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먼저 저의 신앙 배경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부터 종교와 역사 ,수행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천주교 모태신앙을 했습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천주교 신앙 단체인 광주광역시 살레시오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사비오집(고등학교 3년간 지낸 카톨릭 재단 기숙사) 4층 기도실에서 새벽 5시까지 날을 지새며 하느님에게 기도하던 때도 있었구요. 학창시절에 시골집에서 TV를 보는데 지리산 청학동 삼선궁에 대한 프로가 방영된 것을 보면서 지리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봐야겠다는 동경도 해보았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광주 충장로에 있는 삼복서점에서 수행서적을 읽다가 서점에 포교하러 온 사람을 통해 OO진리회에 갔다가 그들의 연락소 모습을 보고 무서운 생각이 들어 도망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2시간을 걸어서 기숙사에 늦게 들어와 당시 수사님께 심하게 꾸중을 들었던 게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여하간 종교서적도 읽고 TM명상, 단월드, 택견, 태권도, 태극기공도 접하고 배우면서 개인적으로 수행서적에 심취해 있었고 혼자 수행한다고 다락방에서 수행 자세를 잡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다 저는 1994년에 인천광역시 십정동에 있는 동암역에서 패널포교를 하는 대학생 분들과 만나면서 증산도를 접했습니다. 패널을 보고 안내 성도님에게 태을주 수행에 관심이 있어 질문을 했는데 인도자는 우주관을 중심으로 수행을 얘기해서 호기심이 발동하더군요. 도장이 어딘지 한번 가보자고 했더니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당시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위치한 인천 남부도장을 그날 오후에 바로 방문하였습니다. 그날이 마침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그날 여러 대학생 신도들과 몇십 분 정도 짧은 수행을 하면서 하단전에 강하게 기운이 뭉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여기는 뭔가 다르구나 한번 배워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이날부터 인도자를 통해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회사를 오가면서 버스 안에서, 회사 쉬는 시간에 틈틈이 도전을 10페이지, 20페이지씩 읽어가면서 상제님과 태모님 말씀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도전 내용이 생소하고 낯설었으나 생장염장 말씀 테이프, 사부님 8관법 테이프 39개짜리를 항상 가지고 다니며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잠을 자면서도 말씀 테이프를 들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근 20년 간을 말씀과 함께 해왔습니다. 그리고 입도 후 3개월부터 처음 패널 포교를 할 때에도 매일 목욕재개하고 정성수행하면서 도전 말씀을 활용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는 고독할 때도 외로울 때도 말씀과 함께 했고, 방황할 때도 1시간, 2시간씩 몸에서 자신감이 생기고 의기가 발동할 때까지 도전 말씀과 도훈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시절의 저를 돌아다보면 추억 속에서 진리에 대한 열망, 영적인 목마름 같은 것이 잔잔한 파도처럼 일렁입니다. 그때 1994년 초 여름 세속의 적막이 드리워진 어느 늦은 밤, 자취방 앞에서 인도자와 저는 이런 얘기를 했어요. 도전을 보면 상제님께서 이렇게 완벽하게 천지공사라는 프로그램을 짜놨는데 너무도 신비롭다고. 그때 저는 상제님 도전 말씀이 법조문처럼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선언문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때 저는 순수한 어린아이가 처음 사물을 볼 때 그 마음으로 아무 의심없이 있는 그대로 본 것 같습니다.

    도전을 보면서 먼저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단순히 안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안다는 것을 말이죠. 모든 성인들의 가르침을 보면 이번 가을개벽철에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상제님은 더더욱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지만 말이죠. 그럼 왜 모두 목숨을 잃게 되는 걸까요? 저는 상제님을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봅니다. 상제님을 알면 살 기회가 있고 모르면 그 기회를 놓치는 거죠. 그래서 그 당시 제가 포교할 때 많이 쓰는 성구가 바로 “선지후각”이라는 말씀과 “너희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만 하여도 반도통은 되었느니라“ 라는 3편 18장 말씀이었어요. “선지후각”은 먼저 제대로 알아야 나중에 깨닫는다는 말이죠.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만 하여도 반도통은 되었느니라”는 바로 상제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도전을 접하고 읽는다는 의미는 상제님을 알고 깨닫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포교할 때는 다음 성구 말씀을 항상 마음 속에 떠올리고 선포하는 마음으로 포교에 임하고 있습니다. “나의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 하느니라. 들을 때에 익히 들어두고 내어쓸 때 서슴치 말고 내어쓰라.”

    그리고 8편 87장에 있는 맹자의 한 구절은 상제님께서 제 인생에 대해 일러주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2편 130장 11절에 있는 최창조 성도가 죽어가는 자식을 업고 있는 여인에게 말씀을 전하는 내용 “우리 선생님은 하늘님이오. 시답잖게 듣지 말고 꼭 하시오“라는 말씀에서는 전율을 느끼면서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상제님에 대한 확신을 느낍니다. 온 우주의 모든 생명체가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그럼 마음으로 느껴집니다.

    3편 213장 4절 말씀에 박공우 성도가 상제님을 모시고 정읍 과교리를 지나는 중에, 목메인 소리로 대답하되 “어쩐 일인지 부지중에 울음이 나오고 전날 고생했던 일들이 낱낱이 생각되어 능히 그치지 못하겠습니다.” 하거늘, 5절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잘되게 하여 주리니 그만 그치라.”하시매 울음을 곧 그치니라. 이 말씀을 접하면서, 저와 모든 일꾼들이 그동안 인생과정과 신앙과정에서 가족 및 주위 사람들로부터 받은 냉대와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극복하는 해답은 상제님을 온전히 믿고 우리를 맡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방황할 때 이 말씀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졌던 때도 있었습니다.

    4편 15장 7절에 “나는 추상같은 절개와 태양같이 뜨거운 충의를 사랑하노라”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10년 이상을 사배심고 할 때 “항상 대인대의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라는 각오를 다지고 메모지나 노트에다가 ‘대인대의’라는 문구와 ‘충의’를 즐겨 썼습니다. 1편 43장에 전봉준 장군이 흥선대원군을 만나서 “제 흉중에 품은 뜻은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한번 죽고자 하는 마음뿐이오.” 하신 말씀을 생각할 때면 항상 가슴이 뛰고 영웅의 심법을 느끼게 되며 제 마음이 위축이 되고 힘들었을 때 제 의기를 불태워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전을 이렇게 정의해 보고 싶습니다.

    도전은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도전를 통해 생사관이 정립되었습니다.
    도전은 제 삶의 전부입니다.
    도전은 나와 조상님들의 모든 원한을 풀어주고 나와 가족, 조상님들의 생명의 길잡이임을 깨달았습니다.
    도전은 전 인류와 인간으로 다녀간 모든 신명들의 구원처임을 확신합니다.
    도전은 천지와 더불어 영원히 함께하는 전 인류의 고향입니다.

    6. 이 성도님, 주부신도로서 자기개발은 어떻게 하시나요?


    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매일매일 청수모시고, 전 주문을 읽고 기본수행을 하려고 최대한 노력합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따라 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더 빠지지 않고 수행을 하려고 합니다. 수행을 하면 확실히 긍정적인 마인드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 수행을 안 하게 되면 갑자기 세속적으로 마음이 떨어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시간을 제때에 내서 자기계발을 한다는 것이 조금 힘들지만 그래서 저는 틈틈이 시간날 때 도전도 보고, 환단고기도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죠. 시간 없다, 형편이 안된다라는 게 일단은 자기합리화를 위한 핑계인거 같아요.

    7. 마지막으로 사오미 년을 맞는 각오를 부탁드립니다.


    한- 이번에 전남 진도 앞 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사건을 통해 슬픔 속에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무력함, 운명, 지도자의 중요성 그리고 앞으로 전 인류와 우리 민족에게 닥칠 운명을 가늠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고 여객선이 침몰되는 시간은 불과 몇 분이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드라마들이 있습니다. 살고자 하는 승객들의 몸부림, 그속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적막한 어둠과 차가운 바닷속에 갇혀 영원히 가족들과 생이별하는 모습, 차가운 주검을 앞에 두고 오열하는 모습들, 그리고 가슴속에 한과 멍울을 안고 평생을 살아야만 할 가족들을 보며 저와 온 국민들은 눈시울을 적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구조자는 살릴 수 있는 때를 놓쳐서 살릴 수 없었고, 죽은 자는 바로 그 때를 놓쳐서 살 수 없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다른 어떤 것보다 때, 기회의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때를 놓치지 말자. 때를 놓치지 말자. 절대 때를 놓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거 1999년 8월에 대만에서 지진이 일어나 참담한 현실이 되었던 그때 매스컴을 통해 어느 교사가 이런 말을 한 게 기억납니다. The just five seconds everythings changed. 단 5초 만에 모든 게 변했어요. 그렇다면 이 사오미 시간대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The just three years everythings changed. 단 3년 만에 모든 게 변했어요. 저와 모든 일꾼들이 선천 5만년을 마감을 짓는 사오미 개명 시간대라는 각오를 가지고 염념불망 태을주, 오매불망 호법신장주를 바탕으로 3년 만에 의통구호대를 모두 완결하는 일꾼이 되기를 천지일월 사체 하나님과 모든 조상님 전에 간절히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동안 신앙과정 속에서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천지일월 사체 하나님과 조상님께 제대로 보은하지 못한 점을 깊이 참회하고, 20년 간 신앙을 하면서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받은 성도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또한 저의 실수와 부족함으로 상처를 준 성도님들이 있다면 용서와 화해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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