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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도수기]

    진리를 만나는 기쁨 | ‘치우천황’ 영화제작의 열망으로 증산상제님 진리를 만났습니다

    김성균(48세) | 태안도장 | 2013년 음력 11월 입도

    내가 생각하는 종교


    저는 절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님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불교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때론 친구들, 동네 지인들의 강요 혹은 간곡한 부탁이나 집안의 우환이 닥쳤을 때는, 한동안 교회나 성당을 다녔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들었던 생각은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 똑같이 인간의 잘못에 대한 깨우침과 선행의 실천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가르치고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의 행태와 방법 그리고 강요의 절차들은, 나의 마음속에 이질감을 싹트게 했고 한국 사람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 다른 종교문화라는 배타심을 더욱 강하게 자리 잡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저의 종교에 대한 생각은 영광된 한국역사의 진실을 알게 된 중학교 2학년 말쯤부터 나만의 논리로 점점 체계화 되어갔으며 성인이 되면서 더욱 공고한 종교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산의 정상은 하나이되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산 정상에 계시는 분은 유일한 분이며 그 분이 하늘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는 그 하늘을 만나기 위하여 오르는 길에 불과하며, 사람이 어떠한 길로 그 하늘을 만나고자 하는지의 선택이 종교일 뿐이다.’라고 말입니다.

    진실한 역사에 눈뜨다


    저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대다수의 아이들이 그랬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 이외의 교육적인 혜택을 받아보지 못하고 자란 탓에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유독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던 것은 한국역사였고, 그 관심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활동시간의 글짓기였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한국역사를 배우면 배울수록 너무나 나약했던 우리 조상들의 모습만이 보이고, 그나마 자랑스럽다는 고구려의 역사조차 결국은 중국의 당나라에 굴복당하는 치욕의 역사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역사에 점점 흥미를 잃어갔습니다. 관심분야가 상실되면서 글쓰기도 자연 중단되었고 그때부터 하루하루의 시간은 무의미한 학교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던 중학교 2학년말 무렵 우연히 집 책장에 꽂혀있는 한권의 책을 읽게 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나의 역사인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그 소중한 책은 백기완 선생님이 국민대학교에서 하셨던 한국사 특별강의 내용을 엮은 것이었습니다.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저의 억눌렸던 숨통을 틔워주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백기완 선생님이 국민대학교 강의실 강단에 서시며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 여러분은 이제 저와 함께 먼 여행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국민대학교 강의실 현관 밖에는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천리마가 여러분을 태우고 가기 위해 도착해 있습니다. 모두 눈을 감고 말 등에 올라타십시오. 내가 출발을 하면 천천히 뒤를 따라 오시기 바랍니다. 당신들이 타고 갈 천리마는 목적지까지 당신들을 안전하게 모시고 갈 것이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 준비되셨습니까? 그럼 이제 출발합니다. 지금 우리는 통일로를 거쳐 북으로 달려갑니다. 통일 전망대를 넘어 오른쪽으로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그 철마가 보입니다. 이제 휴전선을 뛰어넘습니다. 개성을 거쳐 평양을 지나 신의주에 도착하여 대한민국의 영산 백두산에 오릅니다. 백두산 천지를 한 바퀴 휘 돌고 중국국경을 넘어 간도를 지나며, 인사하는 우리 민족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합니다. 계속해서 시베리아 벌판을 향해 달립니다. 동쪽 끝 바이칼 호수가 보이네요. 여기서 말들의 목을 축이고 이곳이 고향인 우리 민족들과 잠깐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자 서쪽으로 출발하여 바이칼호수의 끝에서 몽골고원을 지나 최종 목적지인 유럽 대륙과의 경계선 터키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을 돌려…… 지금 막 교정에 다시 도착을 했습니다. 이제 눈을 뜨셔도 좋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소감이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다녀온 이 여행지 전체가 우리 조상님들이 말을 달리고 개척을 하셨던, 우리 민족의 피와 땀이 서린 우리의 땅이며 우리가 되찾아야할 우리의 역사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책은, 환국·배달국·고조선의 일만년 역사와 가슴 벅찬 배달국 14대 치우천황인 자오지천황의 역사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러한 내용은 이후 저의 삶에 중요한 지표가 되어 비로소 배달민족으로서의 민족적 자긍심을 가지고 살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책은 6살 위였던 큰형님이 소장하고 있던 책자들 중 하나였고, 이후 형님의 영향으로 더 많은 서적과 말씀을 들으며 진실한 역사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간 누구도 들려주지 않았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눈을 뜨게 해준 그 책은 1년 후 큰형님이 총학생회 간부로 데모를 주도한 공안사범이 되어 연행될 때, 집안에 들이닥친 형사들에 의해 불온서적으로 분류되어 증거물로 압수당하게 되었습니다. 책은 그렇게 저를 떠났고, 민주화를 열망하던 혈기어린 청년이었던 큰형님은 그로부터 15년 후 고문 후유증과 생활고에 대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돌연사로 저와 이승의 인연이 끊겼습니다. 하지만 큰형님과 그 책이 저에게 던져준 희망은 아직까지 남아 제 삶의 큰 방향이 되어왔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역사를 알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실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세계 최초의 하나님 나라인 환국으로부터 내려온 민족적인 자긍심을 일깨우려 하였던 나름의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허공에서 분산되고, 닫힌 마음과 정신과 귀를 열게 하지 못하는 나만의 지식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2002년 월드컵으로 알려지게 된 도깨비문양의 치우천황이 내가 외치던 그 분이라는 것 정도만이 외침의 종착지로 남았습니다. 이런 종교와 역사의 믿음은 점차 사람들로 하여금 저에 대해 지치도록 만들기만 했습니다.


    치우천황 프로젝트


    중학교 2학년, 꿈 많던 그 시절부터 저는 귀를 닫고 눈을 닫은 많은 사람들을 깨우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영화’라는 결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힘들다는 충무로의 생활을 시작으로 직배사에 입사하여 10년간 영화 마케팅과 배급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실무를 습득하였습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흥행시킨 영화 <스트리트 파이터>로 마케팅 대상을 수여받으며 대리에서 과장으로 1년 만에 승진했으나, 다음해 차장 진급의 약속을 뒤로하고 한국영화 제작을 위해 퇴사를 강행하였습니다.

    치우천황을 영화로 만들겠다는 저의 오랜 꿈을 이제 실행에 옮기기로 하였습니다. 새로 들어간 회사의 대표(대종상 신인감독상 수상)를 만나 본격적인 ‘치우천황 영화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 고증을 위해 치우학회 회장을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정기총회에서 브리핑을 하게 되었으나 일부 회원들의 반발로 무산되었습니다. 재야사학계, 역사왜곡 사이트 운영자 등 다방면에서 치우천황의 진실을 알리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지속하며 영화제작의 길을 모색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회사 대표의 도를 넘는 사기행각에 금전적 손실과 마음을 다치고 퇴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극장영업 및 영화광고 대행사를 운영하며 영화 투자 및 배급을 하고 있었던 김○○ 사장을 만나 의기투합하여 ‘치우천황 프로젝트’를 지속하여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영화계의 역사인식 부족과 한국영화의 잇단 실패, 그로 인한 제작비 부담 문제, 재정적인 압박 등으로 2007년경 프로젝트를 지속할 수 있는 판로가 막히면서 허망함과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그 일은 무기한 잠정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6년간 치우천황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나름대로 역사의 진실을 밝힐 영화시리즈를 기획하고 시나리오 개발을 지속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과 북한이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작성한 시나리오 ‘3일 전쟁: 보이지 않는 위협’이 시나리오 공모전(영화진흥위원회 주최)에서 2013년 3월 추천작으로 선정되어 분기별 본선에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제작 현실성 항목에서 많은 점수를 잃어 아쉽게 탈락, 영화계의 편협성에 다시 한 번 실망하였습니다.

    하루하루 희망과 즐거움으로


    이후 2013년 마지막 공모전인 스토리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기로 하였습니다. 60페이지 분량의 소설인 ‘시간추격자: 시간을 훔치는 사람들’의 출품을 3일 앞두고 마지막 탈고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김 사장으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았는데 ‘치우천황’에 관심 있는 분을 만나러 가야 하니 태안에 같이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출품을 하루 앞두고 태안에 내려가 증산도의 최○○ 포정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당연히 소설은 완전한 탈고를 끝내지 못한 미완의 상태여서 출품을 하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최 포정님과 세 번의 만남 동안 많은 대화와 건네받은 서적들(『도전』과 『증산도 기본교리: 팔관법 도해』 『천지성공』 『개벽 실제상황』 『춘생추살』 『환단고기』완역본)을 통독하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제껏 내가 주장하였던 종교의 기본 사상과 진리가 『증산도 기본교리』에 그림까지 그려져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또 환국·배달국·단군조선으로 이어진 놀라운 우리의 역사를 가장 알기 쉽게 해석하고, 치우천황의 인식을 바로세운 것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시나리오 ‘3일 전쟁’의 말씀이 『도전』에 명시되어 있는 것에도 거듭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막연하게 느끼고 주장하였던 종교의 교리가 증산도의 말씀이며 그 ‘하늘’이 바로 증산상제님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진정한 앎의 궁핍에서 벗어나 소중한 것을 얻은 기쁨을 느꼈습니다. 이제 제가 가야하는 방향을 확연히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제껏 써 온 모든 시나리오, 소설, 자기개발서 등의 기본 사상이 증산도의 교리에 뿌리를 두지 않고는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한 미완의 글들은 사회로부터 외면을 받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진리를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최 포정님을 만나서 증산도를 알게 되고, 상제님의 인간 구원의 사실을 믿게 되면서 그동안 안개 속을 헤매던 글의 향방이 문득문득 새로운 단어의 조합들을 만들어 문장으로, 그림으로 나의 머릿속을 밝혀주는 것 같았습니다.

    삶이 힘들고, 짜증스럽기만 했던 지난날의 삶들이 이제야 상제님을 알게 되면서 하루하루 희망과 즐거움으로 바뀌는 경험을 합니다. 더 나아가 상제님을 믿지 못하고 배척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구원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내가 알게 되고, 삶이 가치를 느꼈듯이 나의 주위, 우리나라, 나아가 지구촌 70억 인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삶이 되고자 증산도에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영상매체와 글을 통하여 상제님의 뜻이 무지한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꼭 상제님의 일꾼으로 쓰임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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