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와 참성단은 문화사적 국보·보물

[STB하이라이트]
#-국보1호 남대문, 보물1호 동대문! 이것은 청산하지 못한 일제 잔재로서 가슴 아픈 우리민족 역사말살의 대표 상징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보와 보물


대한민국의 국보1호는 남대문(숭례문)이고 보물1호는 동대문(흥인지문)입니다.※ 지난 2008년 2월 남대문이 방화로 인해 전소全燒되었습니다.
해방후 대한민국 정부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남대문을 국보1호로(1962.12.20), 동대문을 보물1호(1963.1.21)로 각각 지정하였다.


그로부터 다시 5년여 만에 온 국민의 관심과 정부의 지원 속에 남대문이 복원되었습니다.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경복궁의 4대문으로서 문화역사적 가치가 높다지만, 조선왕조의 궁궐도 아니고 4대문이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이유를 아십니까?

남대문과 동대문은 일제의 전승기념문


남대문과 동대문은 원래 일제가 보물1, 2호로 지정한 것이었습니다.※
※일본총독부는 1933년 8월〈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을 제정, 남대문을 보물1호로, 동대문을 보물2호로 지정한 바 있다.


왜냐구요? 임진왜란 때 일본의 두 장수가 서로 먼저 조선왕조의 수도 한양을 탈취하려는 경쟁을 벌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加藤淸正)입니다.

1592년 음 5월 3일,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온 두 장수 중 고니시가 먼저 동대문을 돌파하여 한양으로 입성하였으며, 같은 날 가토는 길을 달리하여 남대문을 거쳐 한양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조선을 침탈한 일제는 남대문을 보물1호로, 동대문을 보물 2호로 지정한 후 나머지 대문을 철거해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남대문과 동대문은 일제에게는 대 조선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승기념문이었던 것입니다.

아직 해방되지 않은 한국역사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는 남대문을 국보1호로,
동대문을 보물1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일제가 만든 틀을 그대로 수용한 것입니다.
일제는 조선강점기 36년 동안 민족의 고유사서 30만권을 빼앗아갔고 그 밖에도 수많은 문화재와 보물들을 약탈하고 말살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민족의 역사를 강탈하고 왜곡, 축소한 일제의 유산 아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보1호는 참성단


대한민국의 국보 1호는 강화도 마니산에 있는 참성단이 되어야 맞습니다. 참성단은 한반도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제천문화의 성지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297년전, 옛조선의 초대 단군왕검께서 운사 배달 신하에게 명하여 장정 8천명을 동원하여 세운 제천단입니다.
역사적 가치로 보나 문화사적 가치로 보나 600년 역사를 가진 남대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한민족 원형문화의 국가적 유산입니다.
또한 『환단고기』는 현재 남아 있는 우리역사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민족 고대사의 뿌리와 인류 창세역사의 원형을 동시에 밝혀주는 역사문화경전이 바로『 환단고기(桓檀古記)』입니다.
참성단이 국보1호라면,『 환단고기』는 보물1호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자격이 있는 1만년 인류사의 정통사서입니다.
※참성단塹城壇은 국내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제천단’으로 단군조선부터 근세 조선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주재자이신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지내온 한민족의 고유한 제천성소祭天聖所이다.
『환단고기』「 단군세기」 (상생출판 완역본 99쪽 )
戊午五十一年(무오오십일년)이라 帝命雲師倍達臣(제명운사배달신)하사
設三郞城于穴구(설삼랑성우혈구)하시고
築祭天壇於摩璃山(축제천단어마리산)하시니 今塹城壇(금참성단)이 是也(시야)니라.
재위 51년 무오(단기 51, BCE 2283)년에 왕검께서 운사雲師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혈구穴口(강화도의 옛이름)에 삼랑성三郞城(강화도 정족산성)을 건설하게 하시고, 마리산摩璃山(=마니산摩尼山)에 제천단을 쌓게 하시니 지금의 참성단塹城壇이 곧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