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사람을 많이 살리자

[태상종도사님 말씀]
도기 135년 2월 6일, 증산도교육문화회관
[말씀요약] 증산도는 천지의 열매요 우주의 결실이요, 천지를 담는 그릇이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총체적인 진리를 집행하는 곳이 바로 우리 증산도다. 이미 천존 세상도 지나갔고, 지존 세상도 지나갔고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인존 시대가 열렸다. 금화교역기에는 바로 참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내려오신다.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해서 여름 내 크다가 가을 금운金運이 들어오면 화와 금은 상극이 붙어서 화극금火克金하기 때문에 멸망할 수밖에 없다. 토가 토생금土生金해서 금을 낳는다. 그 토가 바로 가을 인존시대를 여는 신미辛未다. 신미가 바로 십무극十無極을 상징한다. 그 신미생으로 오신 증산 상제님이 예수가 백보좌 하나님이라고 한 바로 그분이고 석가모니가 미륵이라고 한 바로 그분이다. 또 공자가 천지 이치를 상징해서 시어간종어간이라고 한, 매듭을 짓는다 고 한 바로 그 절대자 옥황상제님이다.

인존시대는 천존보다도 무섭고 지존보다도 더 무섭다. 인존 시대에는 원칙과 사리에 조금이라도 어긋날 것 같으면 인간 세상에 참여를 할 수가 없다. 인존 시대를 당해서 천지에서 농사지은 것을 인존 상제님이 신도로 이화해서 천지공사를 보셨다. 그 천지공사에서 이미 앞세상이 둥글어갈 시간표, 이정표, 프로그램을 당신님의 대이상향에 입각해 이미 다 결정을 해놓으셨다. 그 프로그램이 도전 속에 다 함축돼 있다.

천지이법으로 보면 지금은 죽이는 세상이다. 여기 앉아있는 증산도 종도사도 살고 싶어서 상제님을 받들었다. “상제님 저도 다 바쳐서 받들 테니 저도 좀 살려주십시오” 내 한 개체의 생명으로 볼 때는 그래서 신앙을 한 것이다. 상제님 사업은 가장 비전 많은 일이다. 선천에 사람농사를 지어서 열매기를 맺어놓은 그 알캥이를 추리는 것보다 더 비전 많은 일이 어디 있는가. 하늘 땅 생긴 이래로 우주원리를 교육시키는 데가 여기 밖에 없다. 내가 하도낙서를 들고 나온 사람이다. 우주일년 도표가 바로 새 세상 문을 여는 키포인트다. 죽는 생명체를 인존 진리를 가지고 살려준다. 그건 천지의 공을 쌓는 것이다. 상제님 진리권에 수용을 당할 것 같으면 그 틀 속에서 다 인존이 된다. 신앙이라 하는 것은 진리 그대로를 신앙해야 된다. 그걸 내가 묶어서 사상신앙이라고 한다. 그 뿌리 틀은 정성이다. 증산도는 국가와 민족과 전 인류를 위해서 하는 문화 사업이다. 문화 사업 중에서도 사람이 죽고 사는 생사양로를 결정하는 것 이상 더 막중한 사업이 어디 있는가. 여기는 억만분지 1%라도 거짓이 없다. 너희들은 좋은 사부를 만나서 그 좋은 개벽진리를 전해받았다. 그래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전 인류를 위해서 같이 봉사 좀 하자는 것이다. 일을 안 하면 조상도 통곡을 한다. 상생의 문화 속에만 수용을 당하면 뭣하는가. 상생의 문화를 실천역행을 해야 될 것 아닌가. 증산도는 선천 성자들이 그렇게 애타게 전한 진리의 결과다. 상제님 진리는 사람은 물론이요 신명에게도 다 해당되는 진리다.


증산도는 천지를 담는 그릇


인류 역사를 통해서 증산도에서 우주변화 원리, 하늘 땅과 사람, 천지인 삼재, 천리와 지리와 인사, 천지이법을 교육시킨다. 종도사가 “증산도는 천지의 열매요, 우주의 결실이요, 천지를 담는 그릇이다.”라고, 여기까지를 교육을 시켰다. 인류역사를 통해서 총체적인 진리를 집행하는 곳이 바로 우리 증산도다.

“증산도는 천지를 담는 그릇이다.” 그 이유를 이 시간에 내가 총체적으로 묶어서 교육을 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노트를 내놓고 잘 필기해서 집에 돌아가서도 몇 번씩 따져보고 더 살펴보아라. 증산도는 인류 역사상 처음 나오는 열매 진리다.

어째서 증산도가 천지의 열매요, 우주의 결실이요, 천지를 담는 그릇이냐? 그냥 그렇게만 듣고 말면 “참 묘한 얘기다.” “뭐 그럴 것도 같고, 한 80프로는 거짓말 같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은가. 그래서는 이 과학문명 시대에서는 통할 수가 없다.

봄 시대는 천존(天尊) 세상이다. 증산 상제님께서 묶어서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높다.” “이때는 인존 시대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결론 말씀이다. 이미 천존 세상도 지나갔고, 지존 세상도 지나갔고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인존 시대가 열렸다. 금화교역기(金火交易期)에는 바로 그 참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내려오신다.

그분이 누구시냐? 기존 성자들도 모두 자기네 나름대로 그 얘기를 했다. 불가에서는 미륵부처님이 출세를 한다고 했다. 석가모니 위치에서 볼 때 자기 시대는 열매기를 맺을 때가 아니잖은가.

인류 역사, 인류 문화라 하는 것은 자연섭리가 성숙됨에 따라서 함께 발전한다. 자연섭리, 생장염장(生長斂藏)이 주이부시(周而復始)해서 둥글어 가는 대로, 그 변화 법칙에 따라서 인류 역사도 변화하고 발전할 것 아닌가.

석가모니가 살 때는 알캥이 문화가 나올 때가 아니다. 그 시대에는 그런 절대자가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후제에 미륵부처님이 출세를 한다고 한 것이다. 결실할 때가 되어야 총체적인 결실문화를 들고 나오는 절대자, 그런 분이 나온다는 말을 한 것이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는 수밖에 없잖은가.

또 예수가 “나도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고 했다. 예수가 천지 이치를 독점을 할 수도 없잖은가. 천리를 어떤 특정인이 자기 마음대로 무슨 재주로 독점을 하는가.

그러니까 서교의 예수도 그때 그 시의(時宜)에 해당되는 절대자 하나님, 자기를 내보낸 하나님이 있다고 한 것이다. 또 요한계시록을 보면 “백보좌 하나님이 온다.”고 했다. 그게 나름대로 다 얘기한 것이다. 석가모니가 얘기한 것이나 서교에서 이야기한 것이나, 공자가 “시어간종어간(始於艮終於艮)이라”, ‘간방에서 비롯해서 간방에서 매듭을 짓는다.’고 한 것이나 내내 같은 얘기다.

시어간(始於艮)이라는 게 무슨 말인가. 태호 복희씨가 5,500년 전에 시획팔괘(始劃八卦)를 했다. 1, 3, 5, 7, 9는 양(陽)이요 2, 4, 6, 8, 10은 음(陰)이라. 무극(無極)이 생태극(生太極) 하고, 태극(太極)이 생양의(生兩儀) 하고, 양의(兩儀)가 생사상(生四象) 하고, 사상(四象)이 생팔괘(生八卦)해서 팔팔은 육십사로 주역의 64괘가 생겨났다. 이 하늘땅이 둥글어 가는 진리를 주역 팔괘에 담아 놨다.

1, 3, 5, 7, 9는 양이요 2, 4, 6, 8, 10은 음이라, 진리의 핵이 수치다. 복희씨가 수치로 묶어서 다 얘기해 놨다. 그게 인류문화의 모태다. 어머니 모(母) 자, 태라는 태(胎) 자, 만유가 다 모태 속에서 생겨나지 않는가. 이 하늘 이 땅이 열린 이후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인류 문화를 처음 개창한 분이 태호 복희씨다.

그렇게 해서 시어간(始於艮)을 해서 종어간(終於艮)을 한다. 바로 이 땅에서 매듭 문화, 알캥이 문화를 들고 나오는 인존(人尊)이 오신다. 유불선 기존 성자들이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내내 같은 얘기를 했다. ‘시어간종어간’이나 ‘미륵이 출세한다’는 것이나 ‘백보좌 하나님이 오신다’는 거나 내내 같은 얘기이다. 사람이 각각이니까 표현은 다르다 하더라도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내내 같은 얘기를 한 것이다.

지금은 금화교역기


때는 바야흐로 금화교역기(金火交易期)가 됐다. 만유의 생명이라는 것은 물에서 나온다. 이 태양계의 9대 행성 중에서도 물이 있고 산소가 있는 곳이 오직 지구다. 그래서 9대 행성 중에 지구에서만 만유의 생명체가 생성을 할 수가 있다. 만유의 생명이라는 것은 물에서 나온다. 여러 말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신도들이 그건 너무너무 잘 알 게다. 북방수(北方水) 거기에서 봄철이 되면 수생목(水生木) 해서 싹이 터서 생물이 생겨난다. 그렇게 봄에 만유의 생명체가 싹이 터가지고서 여름철에 성장을 한다. 잘 키워진다는 말이다.

그렇게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 해서 여름 내 크다가 가을 금운(金運)이 들어오면, 화와 금은 상극이 붙어서 화극금(火克金) 하기 때문에 멸망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가 되는 수밖에 없다.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를 오행이라고 하는데, 토(土)를 떠나서는 수화금목(水火金木)이 존립을 할 수가 없다. 물도, 불도, 나무도 쇳덩어리도 토가 중앙 모태가 되는 것이다. 그걸 떠나서는 설 수가 없다. 불도 화생토의 자연섭리에 의해서 토에 동화가 돼버린다. 화(火)가 토(土)로 동화가 돼버린다는 말이다. 토가 불을 잡아먹는 것도 아니지만 여름 화는 중앙 토에 자연 동화되어 흔적도 없어져 버리고 만다.

토가 토생금(土生金) 해서 금을 낳는다. 그 토가 바로 가을 인존 시대를 여는 신미(辛未)다. 정미(丁未)도 있고, 계미(癸未)도 있고, 기미(己未)도 있고, 여러 가지 미(未)가 있지만 반드시 신미(辛未)라야 한다. 신(辛) 자는 열매기 여물 신 자다. 열 십(十) 위에 설 립(立)을 하면 그게 쓸 신, 열매기 여물 신 자다.

신미가 바로 십무극(十無極)을 상징한다. 그 신미생(辛未生)으로 오신 증산 상제님이, 예수가 백보좌 하나님이라고 한 바로 그분이고, 석가모니가 미륵이라고 한 바로 그 분이다. 또 공자가 천지 이치를 상징해서 시어간종어간이라고 한, 매듭을 짓는다고 한 바로 그 절대자 옥황상제님이다. 여기서 간방은 방위로는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것이다.

다시 묶어서 말을 하면 우리가 신앙하는 증산 상제님이 우주의 주재자요, 선천과 후천, 지나간 세상과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을 전부 총체적으로 묶어서 이화(理化)하는 바로 그 절대자요, 물질문화와 정신문화를 총체적으로 매듭짓는 분이다. 그분이 삼계대권, 천계와 지계와 인계의 대권을 가지고 인간의 몸을 빌어서 이 세상에 강림을 하신 것이다.

하늘도 땅도 사람을 위해 있다


천지는 생장염장이라고 하는 우주질서를 바탕으로 해서 사람 농사를 짓는다. 그걸 다시 알기 쉽게 말하면, 지구년에서 봄에 물건을 내서, 여름철에 기르고, 가을에는 씨 알캥이를 맺어놓는 것과 같다.

헌데 봄철에 천존(天尊) 노릇도 다 하고, 여름철에 지존(地尊) 노릇을 다 하면 가을철에는 인존(人尊) 시대가 된다. 하늘땅에서 농사지어서 결실을 맺어놓으면 그 열매기는 바로 사람이 차지한다. 천지에서 사람 농사를 짓는데 이렇게 농사를 지었으니까, 너희들 원껏 하고 싶은 대로 실컷 먹고 필요에 의해서 사용도 하라는 것이다. 그 얼마나 고마운가. 하나님, 땅님에게 참으로 고맙잖은가.

하늘땅도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진리틀 밖의 행동을 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그런 짓은 절대 못하게 되어져 있다.

천리가 둥글어 가는 틀이 짜여져 있다. 지구년 동안 지구가 돌아가는 도수는 12만9천6백 도, 우주가 한 바퀴 둥글어 가는 데에는 12만9천6백 년. 지구년도, 우주년도 둥글어 가는 그 틀은 생장염장(生長斂藏)이다. 시간표, 이정표가 그렇게 틀이 정해져 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한다. 억만 분지 일 프로라도 어긋날 것 같으면 그건 이치도 아니잖은가. 천리는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러면 지리(地理)는 어떻게 되어져 있는가. 이 지구 어디를 가도 그 땅덩이 위에서 풀도 크고, 사람도 산다. 또 그 땅 위에 날아다니는 새도 있고, 기어다니는 짐승도 있고, 만유 생명체가 생성을 하고 있다. 일본을 가 봐도 그렇고, 유럽을 가 봐도 마찬가지다. 지구상 어디를 가든지 다 똑같다. 나무도 있고, 사람들 이목구비도 비슷하게 생겼다.

헌데 지구라는 틀을 묶어놓고서 보면 이 지구의 핵이 바로 우리나라다. 이 자리에 앉은 증산도 지도자가 그걸 잘 알 수 있도록, 이 지구의 청룡 백호 등등 모든 걸 그려서 일목요연하게, 한눈으로 환하게 볼 수 있도록 표현해 놨다.

하늘과 땅이라는 것은 둥글어 가는 법칙이 있고 그 중심체도 있다. 천지라 하는 것은 그냥 둥글어 가는 게 아니다. 그 중심축, 사령탑, 핵이 있다.

인존 시대를 여신 증산 상제님


천존, 지존을 거쳐 천지에서 농사를 지어 인존 세상이라는 알캥이를 맺어놓는다. 천리와 지의와 인사에 합리적인 최선의 방법으로 남은 가을 세상을 건설한다. 조금 알아듣기 쉽게 말을 하면 총체적인 열매기 문화권을 가지고 현실선경, 지상선경, 조화선경을 만든다.

천존 지존 인존, 결론적으로는 제도적으로도 군사부(君師父)라는 알캥이 문화의 틀이 짜진다. 정답이 그렇게 나온다. 우리 신도들은 그걸 알아야 된다. 이 자리는 그 공부를 하는 곳이다. 헌데 세속 중생들에게 그런 걸 한꺼번에 얘기해야 알아듣지 못하니까 단계적으로 진리를 내놓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나하나 공부를 하고 앎으로써 만사지(萬事知) 문화까지 도달하게 된다. 천리를 통하고 지리를 통하고 인사를 통한다.

“이때는 인존시대다.” 인존시대는 천존보다도 더 무서웁고 지존보다도 더 무서웁다. 인존 시대에는 원칙과 사리에 조금이라도 어긋날 것 같으면 인간 세상에 참여를 할 수가 없다. 이치에 어긋나면 도태돼 버린다. 누가 도태를 시키는 게 아니다. 자연도태가 돼버린다. 다시 말해서 무위이화(無爲而化), 함이 없이 이루어진다. 저절로 그렇게 되어진다.

알아듣기 쉽게 예를 들면, 만유의 초목이 가을철에 가서 씨앗을 여물고 싶어서 여물어지는 게 아니다. 저 잔디풀만 한 것도, 바늘만 한 풀의 씨앗도 자연섭리로 그냥 여물어진다. 뵈지도 않는 저 담배씨의 백 분지 1밖에 안 되는 씨도, 천년 전 5천년 전부터 해마다 그렇게 씨알이 생겨서 지금까지 여물어지고, 또 명년도 천년 후도 무위이화로,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어진다.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부터 인존 시대가 열렸다. 인존 시대를 당해서, 천지에서 농사지은 것을 인존 상제님이 신도로 이화해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보셨다. 천지공사에서 이미 앞 세상이 둥글어갈 시간표, 이정표, 프로그램을 당신님의 대이상향에 입각해서 이미 다 결정을 해 놓으셨다. 그런 현묘불측지공(玄妙不測之功)을 거두셨다.

그 프로그램이 『도전(道典)』 속에 다 함축돼 있다. 『도전』에 쓰여진 대로 이 세상은 하나씩 둘씩 그 프로대로만 둥글어 간다. 상제님께서 백년 전에 삼팔선을 정해 놓으셨다. 삼변성도(三變成道)로, 애기판 총각판 상씨름판으로 난장판 씨름을 붙이셨다. 세상을 정리해야 되니까 오선위기(五仙圍碁) 도수도 그때 붙여 놓으셨다.

지구의 속 알캥이, 한반도 태전


천지이치라 하는 것은 누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위적으로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지리를 알고서 보면, 산천이 틀어지고 꼬부라지는 이치가 꼭 글자하고 똑같다. 상생 상극 모든 게 그렇게 되어져 있다. 한마디로 묶어서 합리적이다. 그게 바로 자연섭리다.

그런 대자연을 누가 어떻게 하겠나?

“천산(千山)이 형부제(形不齊)요, 만인(萬人)이 심부동(心不同)이라.”, 천산이 형부제, 일천 산의 형상이 가지런하지 않다. 지구상을 다니며 보면 모든 산천이 높이도 각각이고 생긴 형체도 각각이다. 이 지구상에 똑같은 방향, 똑같은 높이로, 똑같이 생긴 산천은 하나도 없다. 여기 앉아 있는 신도들 얼굴이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과 같이 산천의 형상도 같지 않다.

또 만인이 심부동이라, 일만 사람이 마음이 같지 않다. 사람은 사람마다 얼굴도 각각이고 마음도 다 각각이다. 똑같은 사람이니까 마음이 같을 것 같지만, 한 사람도 마음이 같은 사람이 없다. 입맛도 다 각각이다. 새콤한 것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쌉싸름한 것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천태만상 아닌가.

지구가 어떻게 생겼냐? 크게 묶어서 지구 전체로 보면 안방이 아시아다. 그 중에서도 우리 조선을 위해서 전부가 다 호위할 호(護) 자, 좇을 종(從) 자, 호종(護從)을 한다. 다시 말하면 속 알캥이가 조선이고, 다른 나라는 가지 지(枝)자 잎새 엽(葉) 자 지엽(枝葉)이다

조선 중에서도 알캥이 고갱이는 바로 이 땅, 이 태전권 안에 들어 있다. 알기 쉽게 저 배추 고갱이를 봐라. 그게 잘 뵈지도 않는데, 그 핵심을 긁어 놓으면 그 알캥이는 다시 안 나온다. 그걸 글자로 얘기하면 인(亻) 변에 두 이(二) 한 자, 착할 인(仁) 자, 어질 인 자다. 그걸 씨 인(仁) 자라고도 한다. 그 인(仁), 핵심, 그게 바로 여기 태전권 내에 있다. 지구의 알캥이, 그 핵을 위해서 나머지는 다 그 하나를 옹호하기 위해서 있는 갓다리, 보호 가닥이다. 이 거대한 지구가 그렇게 생겨져 있다.

인류의 알캥이 결실 문화, 군사부


군사부 법칙은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천지 이법이다. 천지에서 농사지어서 알캥이를 맺어 놓은 그것을 쓰는 분은 천지보다도 더 높은 분이다. 하늘보다도 높고 땅보다도 높다? 그 말이 안 되는 것 같잖은가.

헌데 천지에서 농사지은 것을 인존보고서 마음대로 쓰라는 것이다. ‘이건 사람의 몫이다. 선경세계를 만들어라. 현실선경을 만들어라. 조화선경을 만들어라. 이 알캥이를 가지고 실컷 호강을 해라. 군사부 진리 틀 속에서 유형문화 무형문화, 정신문화 물질문화, 그 총체적인 문화권을 바탕으로 마음껏 행복을 구가하는 좋은 세상을 만들어라. 후천 5만년 동안 선경세상, 현실 조화선경 속에서 마음대로 행락을 구가해서 잘살아 보아라.’ 천지에서 사람 농사지어 놓은 그 바람이 이런 것이다. 그 좋은 세상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추살추살을 거듭하는 천지이법


헌데 사람은 겸허해야 한다. 내가 엊그제 수원에 가서 이런 말을 했다. “여기 종도사도 우리 증산 상제님 신도의 한 사람이다.”

이 가을운의 천지이법이라는 건 다 죽이는 것이다. 천지이법이라는 것은 춘생추살, 봄에는 물건 내고 가을철에는 죽여 버리는 생사양로밖에 없다. 사는 길과 죽는 길이 있을 뿐이다. 대자연 섭리가 봄철에는 물건을 내고 가을철에는 죽여 버린다. 그 이상 더도 덜도 없잖은가.

봄에는 물건을 내고 가을철에는 죽인다. 천지는 그 두 가지 일만 한다. 내고 죽이고, 내고 죽이고, 봄에는 물건을 내고 가을철에는 죽인다. 천지 역사가 그 이상 무엇이 있는가. 내고 죽이고 내고 죽이고 내고 죽이고 …. 10년이면 열 번을 내고 죽이고, 천 년이면 천 번을 내고 죽이는 것이다.

지금은 죽이는 세상이다. 천지이법이 그렇다는 말이다. 누가 죽이는 게 아니다. 천지에서 죽이는 시운을 맞이했다.

미륵님, 백보좌 하나님, 옥황상제님, 그 절대자가 서로 다른 여러 분이 아니다. 그 한 분을 표현을 그렇게 달리한 것뿐이다. 그 절대자, 참하나님이 오셔서 ‘증산도라는 생명의 다리, 상생의 새 문화를 타고 새 세상으로 건너가거라.’ 라고 하신 것이다. 상생의 문화권에 수용을 당해야 살고 잘될 수 있다. 나도, 여기 앉아 있는 증산도 종도사도 살고 싶어서 상제님을 받들었다. “상제님, 저도 다 바쳐서 받들 테니 저도 좀 살려주십시오.” 내 한 개체의 생명으로 볼 때는 그래서 신앙을 한 것이다.

내가 교주 노릇 하려고 신앙한 게 아니다. 신앙을 했으니까 그 좋은 진리를 나 혼자만 알고 나 혼자만 살면 안 되잖는가. 이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반드시 내 유형무형을 다 바쳐서 신앙을 해야 하는 진리 아닌가.

다시 묶어서 말하면 상제님 사업은 가장 비전 많은 일이다. 선천에 사람 농사를 지어서 열매기를 맺어놓은 그 알캥이를 추리는 것보다 더 비전 많은 일이 어디 있는가. 상제님 사업은 12만9천6백년 돌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비전 많은 일이다.

나도 상제님 사업, 사람 살리는 사업을 하는 신도의 한 사람이다. 내가 수원에서 그런 얘기를 했다. 여기 앉아 있는 신도들이나 나나 다 똑같은 상제님 신도다.

“내가 하도낙서, 우주1년을 들고 나온 사람”


헌데 이렇게 신앙을 하면서 상제님 진리를 집행하다 보면, 상제님이 오셔서 천지공사를 보신 것과 같이, 아마 나도 천지에서 필요한 게 있어서 내보낸 것 같다. 내가 이틀 전인가 사흘 전 종의회 때 그 얘기를 했다.

『도전(道典)』 5편을 보면 ‘나는 체격이 소다. 소. 소가 돼서 훔치, 소가 운다는 훔 자, 소가 입을 벌린다는 치 자. 그래서 훔치. 그 공부를 한다. 앞으로 소가 하도 낙서(河圖洛書)를 들고 나와서 우리 일을 하게 된다.’라고 하신 상제님 말씀이 나온다.

상제님이 아마 여기 앉은 사람이 나올 줄을 아셨는지, 상제님이 이 사람을 보냈는지, 천지에서 본래 진리 속에서 내가 나오게 마련이 되어져 있는지 그건 그저 신도를 비롯한 세상 사람들 생각에 맡겨둔다.

여기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소다. 내가 평생을 침을 흘린다. 침을 안 흘리려고 노력도 해 봤는데 되지 않는다. 이상하게 안 된다. 남 앞에서 말을 하다가도 이렇게 침을 흘리고, 밥 먹다 말고도 침 흘린다. 헌데 소는 만날 침을 질질 흘리지 않는가.

또 하늘땅이 생긴 이후로 우주원리를 교육시키는 데가 여기밖에 없다. 한동석이 『우주변화의 원리』 책을 쓰기 전부터 내가 본래 우주1년 도표로 2변을 열었다. 본래 내가 2변을 마무리 짓고 이십 몇 년 뒤엔가 한동석이 『우주변화의 원리』 책을 썼다. 내가 하도 낙서를 들고 나온 사람이다.

왜 그러냐. 우주변화원리가 아니면 상제님 천지공사는 세속 중생들에게는 다만 신명놀음으로 보일 뿐이다. 신명놀음 하는 것만으로는 징을 치고 다니면서 소리를 질러도 포교하기 어렵다. 그것 가지고도 내가 해봤다.

하다하다 할 수 없어서 상제님 말씀과 같이 하도 낙서를 내 놓았다. 그렇다고 해서 하도 낙서만 가지고 되는가. 우주1년 도표를 그렸다. 동서남북, 춘하추동, 금목수화토, 전 6만년, 후 6만년, 분열 생장, 통일 수렴, 그것을 내가 내 놓았다.

그게 아니면 포교는 절대로 안 된다. 제 마누라도 안 되고, 제 자식도 안 되고, 자기 서방도 안 되고. 누구도 안된다. 그 우주1년 도표라야 ‘옳거니, 하늘땅은 그렇게 둥글어 가는구나. 그럴 수밖에 없구나. 야, 여기, 바로 요거다.’ 그렇게 된다. 맞잖은가. 그 우주1년 도표가 바로 새 세상 문을 여는 키포인트다.

공도를 위해 천지에 공을 쌓으라


앞 세상은 인존 틀 속에서 둥글어 간다. 그런데 그 틀이 군사부 문화로 정해져 있다. 군사부 문화라는 것은 절대로 무엇으로써도 거부를 못 한다. 이 하늘 이 땅 위에서 만유의 생명체가 생존하는 시간대가 5만년이 남았다. 5만년이 지나면, 한로(寒露) 상강(霜降) 때가 돼서 추워서, 동결이 돼서 일체 생물이 다 멸망당한다. 그때까지가 5만년이 남았다. 그때까지 이 군사부 문화라는 것은 절대 고칠 수가 없다.

천지이법으로 그렇게 짜여져 있다. 천지의 이법을 누가 거역을 하겠는가. 그건 우주원리다. 우주원리가 그렇게 정해져 있다. 지금 그것을 알고 그 영역권에 수용당하는 사람은 살고 잘되고 그렇잖으면 도리가 없다.

만유의 생명체라는 것은 우주원리에 입각해서 진리에 순종하는 수밖에 없다. 진리에 순종을 해라. 증산도는 어떤 특정인이 무엇을 만들어서 얘기하는 게 아니다. 0.1%도 인위적으로, 거짓으로, 점 하나라도 보태서 얘기하는 게 없다. 다만 천지이치를 집행하는 것뿐이다. 상제님 진리가 우주원리요, 우주원리가 상제님 진리다.

여기는 천지에 공을 세우는 곳이다. 나를 희생하고 공도를 위해서 천지에 공을 쌓는다는 말이다. 상제님 말씀으로 묶어서 “장사 중에 가장 이 남는 장사가 뿌리장사다.” “뿌리장사 이 남는 줄을 모른다.” 뿌리장사, 천지에 공을 세워라. 공(功) 중에 천지에 공을 세우는 것 이상 더 큰 공이 없다.

묶어서 봉사를 하라는 말씀이다. 봉사를 하면 내가 전부 희생하는 것 같지만 절대로 희생당하는 게 아니다. 내 몸은 더 건강해진다. 왜? 천지신명들이 옹호를 해주고, 음호를 해주고, 보호를 해주고, 받들어주고, 보살펴준다. 천지에서 그걸 갚아준다.

공자도 ‘윤리와 도덕, 사회기강을 바로 잡아서 좋은 세상 사람 노릇하고 잘 살라.’라고 한 것이다. 유교라고 해서 진리가 나쁜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그걸 역이용을 했을 뿐이다. 공자도 세상에 그렇게 봉사를 많이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2,500년 동안 “공자님!” 하면서 받들어 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석가모니 진리가 좋고 그르고를 떠나서 석가모니가 3천년이라는 세월을 공양을 받았고, 또 예수도 2천년 동안 떠받들어 주고 있다.

상제님 진리는 죽는 세상에 살려주니까 그건 천지에 공을 쌓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 성자들은 천지에 공을 쌓은 건 아니다. 인간 세상에 다만 봉사를 했을 뿐이다.

죽는 생명체를 인존 진리를 가지고 살려 준다. 그게 천지에 공을 쌓는 것이다. 인존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천지에서 죽이는데 인존 진리를 가지고, 인존이 이화한 진리를 가지고, 인존이 제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진리 속에서 의통으로써 새 세상을 건설한다. 새 세상을 새로 개창한다. 그게 바로 천지에 공 쌓는 것이다.

상제님 진리 틀에서 인존이 된다


천지는 봄에 물건을 내고 가을철에 알캥이를 맺어놓는다. 그러면 천지에서는 할 노릇을 다 마친 게다. 그 알캥이는 인존이 인존의 위치에서 이화를 하는 것이다. 이 말을 알아듣는가 모른다. 그런 건 이제 두고두고 교육을 받으면 될 게다.

그동안은 말로만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높다고 들었을 게다. 이때는 인존시대다. 우리 증산도 신도들이 아직까지는 반 쪼가리 교육만 받아왔다. 내가 반 쪼가리만 내놓고서 말았다. 천지이법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존 얘기라는 것이 당치도 않고, 알아듣지도 못할 게고, 이해도 안 될 게다.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이 다 인존이 되고 싶을 것 아닌가. 원 인존의 틀은 하나다. 그 틀 속에서 각개가 상제님 진리권에 수용을 당할 것 같으면 그 틀 속에서 다 인존이 된다. 그 문화권, 인존시대의 틀 속에서 다 인존이 된다는 말이다. 그 이상 더 비전 많은 게 어디에 있나?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높다. 이때는 인존시대다. 우리 전 신도가 인존이 된다. 위대한지고!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달지리(下達地理)하고 중통인의(中通人義)한다! 문화의 역량이 그렇게 위대한지고. 인존이라는 그런 위대한 통치 능력, 그 인존의 틀 속에서, 인존의 위치를 누릴 수 있다.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이라. 순리대로, 하늘 이치가 지배하는 대로, 그 이치에 합치되게, 그 이치 속에서 그렇게만 살아야 된다. 그 영역권을 초월할 수가 없다. 이치의 영역을 벗어날 것 같으면 물고기가 물 밖으로 뛰어나오는 것과 같다. 사람이나 동식물로 말하면, 생물이 산소가 끊어져서 질식하는 것과 같다. 이치라 하는 것은 그렇게 되어져 있는 것이다.

뿌리를 북돋아야 가지가 번창한다


다시 한 번 묶어 말하면 ‘이배기근(以培其根)이면 이달기지(以達其枝)라.’ 써 이(以) 자, 북돋을 배(培) 자. 흙 토(土) 옆에 설 립(立) 하고 밑에다가 입 구(口) 한 자, 그게 북돋을 배(培) 자다. 그 기(其) 자, 뿌리 근(根) 자, 알기 쉽게 곡식을 심어놓고 고랑 흙을 파서 흙으로 잘 싸서 그 뿌리를 북돋을 것 같으면 이달기지(以達其枝)라. 써 이(以) 자, 통달 달(達) 자, 그 기(其) 자, 가지 지(枝) 자. 그 가지가 발달을 한다. 그 뿌리를 북돋을 것 같으면 그 가지가 분열발달을 한다. 자꾸 퍼지고 가지에 가지가 새끼를 친다.

진리를 옹호해서 그 진리를 홍보하고 여러 사람에게 전해줘라. 사람은 진리 속에서 사는 것이다. 역천역리(逆天逆理)를 하는 사람은 죽는 수밖에 없다. 망하는 수밖에 없다.

세상 사는 틀, 군신좌사


천지의 진리라는 건 그렇게 되어져 있다. 엊그제 내가 종의회 때 군신좌사(君臣佐使) 얘기도 했다. 우리 신도들이 세상 사는데 성공을 못하는 이유가 군신좌사라는 세상 사는 틀을 몰라서 그렇다. 세상만사 사회 속에는 국가를 통치하는 데도 군신좌사가 있다. 나라가 망하고 나라가 잘되고, 개인 가정도 잘되고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가 발전하고 망그러지는 그게 다 군신좌사에 달려 있다.

의사들이 사람을 못 고치는 것도 군신좌사를 몰라서 그렇다. 인간 생리도 그렇고, 천지도 군신좌사가 있다.

내가 생리적인 조건도 더러 얘기해줬다. 인체의 오장이 간심비폐신(肝心脾肺腎)이다. 육부는 그만두고, 우선 오장도 간심비폐신, 금목수화토 오행, 신수 간목 심화 비토 폐금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호흡을 하잖는가. “호출(呼出)은 심여폐(心與肺)요” ‘후~’ 하고서 이렇게 숨을 내쉬는 것은 심장과 폐장이다. 또 “흡입(吸入)은 신여간(腎與肝)이라.” ‘흡~’ 하고 숨을 들이쉬는 것은 신장과 간장이 하는 것이다.

인체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져 있다. 어거지로 그렇게 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어진다. ‘호출은 심여폐요 흡입은 신여간이라.’ 내쉴 숨을 쉬는 것은 심장과 폐장이 하는 게고 들이쉴 숨을 쉬는 것은 신장과 간장이 하는 것이다.

위(胃)는 신지구(腎之口)요, 위라 하는 것은 신장의 입이요. 신(腎)은 위지근(胃之根)이라, 신장이라 하는 것은 위의 뿌리다. 수화(水火), 물기운 불기운을 바탕으로 인체 구조가 되어져 있다. 신장은물을 맡아가지고 있고 심장은 불을 맡아가지고 있다. 약을 쓰려면 이런 것부터 알아야 된다.

잠을 자는 것도 심신(心腎)이 상교(相交)를 해서 심장과 신장이 서로 교류해서 잠을 자게 되는 것이다. 잠을 잘못 자는 것은 심장과 신장이 잘못돼서 잠을 못 자는 것이다. 또 낮잠 자는 게 다르고, 밤잠 자는 게 다르다. 그런 자세한 얘기 하려면 한도 없다.

약(藥)을 쓰는 법에 군신좌사가 있다. 주인이 튼튼할 것 같으면 도둑놈은 쫓지 않아도 도망가 버린다. “에이구 거기 갔다가는 맞아죽는다. 도둑질도 못하고 잡힌다.” 하고. 헌데 주인이 허술할 것 같으면 도둑놈이 침범한다. “덤비면 후려갈겨버리지 뭐,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닌데.” “그 집에 애들밖에 안 살아.” “약한 여자밖에 안 살아.” 한 주먹에 꽉 쥐면 꼼짝도 못하고 “아이구 나 죽어. 살려줘.” 하는 여자만 산다. 도둑놈이 깐보면 겁도 없이 제 집처럼 들어와서 물건도 다 가져가 버린다.

사람을 고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약에도 원 군약(君藥)이 있다. 바탕부터 주인을 튼튼하게 만들어 놓고 나서, 병을 고치는 병약(病藥)은 오히려 그 보좌로만 쓰는 것이다. 그게 원 명의다. 주인이 튼튼하면 병(病)이라는 놈은 거기 붙어 있을 수가 없다. 병이 암만 공격을 해야 난공(難攻)이다. 어려울 난 자, 칠 공 자, 칠 수가 없다. 난공불락이다. 암만 쳐도 정복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도망가 버린다. 그게 약 쓰는 비결이다.

이 세상을 통치하는 수단이 묶어서 군신좌사다. 군신좌사를 제대로 모르면 예컨대 약사들이 약 처방 하나를 못하고 병도 못 고친다. 정치인들이 아무리 지식이 박사가 백 개라 하더라도, 정치학 박사, 경제학 박사, 그 각색 박사를 다 가진 사람이 치자(治者)가 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그 나라를 전복시키는 수밖에 없다. 통치를 할 줄 모르는데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지식이라는 것은 현실과 연결이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건 죽은 지식, 사장된 지식, 공상과 이상에 매몰된 지식이다.

군신좌사라야 통치를 할 수 있게 정해져 있다. 예컨대 사회 속에서 나이 많은 사람은 어린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게 되어져 있다. 윤리를 따지기 이전에 그렇게 되어져 있다. 또 애들은 어른을 공경하고 어른들이 말하면 듣게 되어져 있다. 그건 윤리 이전에 자연 그런 것이다. 군신좌사라는 것도 그와 같이 자연섭리에 의해 그렇게 되어져 있는 것이다.

지리도 그렇게 되어져 있고, 천리도 그렇게 되어져 있고, 인사도 그렇게 되어져 있다. 군신좌사도 진리의 틀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런 건 차근차근하게 이법으로 들어서 풀이해 가면서 말해 줘야 되는데 시간이 없으니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세상 사람들이 그걸 다 모르고서 한 세상 허우적거리다가 다 간다. 우리 신도들이라고 해서 별 수가 있겠는가. 이제 살면서 차츰 그런 교육도 받을 예정을 하면 된다.

일심 정성을 가지고 살아라


내가 묶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 사람은 이 세상을 삶에 있어서 정성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 이 세상에서 각자의 분업적 작용을 하면서 잠깐 살다 가는 것이다. 그렇게 쓸데없이 허송세월 하고 함부로 제멋대로 되는 대로 살려고 하지 마라.

신앙이라 하는 것은 또 진리 그대로를 신앙해야 된다. 그걸 내가 묶어서 사상신앙(思想信仰)이라고 한다. 사상신앙이라는 글자 넉 자 속에는 참 심장한 의미가 다 함축돼 있다. 짧은 시간에 그걸 어떻게 다 말을 해 주겠는가. 사상신앙, 진리 그대로를 신앙하라는 말이다.

그 뿌리 틀은 정성이다, 정성! 사람은 정성스럽게 살아야 된다. 정성, 딴 말로 바꿔서 일심을 가지고 생존을 해라. 일심만 가지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일심소도(一心所到)에 금석(金石)을 가투(可透)라’, 옛날 사람들도 그렇게 얘기했다.

아까도 ‘이배기근(以培其根)이면 이달기지(以達其枝)라’는 말을 했다. 그 여덟 자 속에는 무한한 진리가 함축돼 있다. 하건만 그걸 다 얘기할 수가 없으니까, 내가 묶어서 ‘그 뿌리를 북돋을 것 같으면 그 가지가 발달된다.’고 하는 게다. 참~ 글자 여덟 자로 묶고서 보니까 너무나 아쉽기도 하지만 짧은 시간에 그걸 어떻게 다 표현을 하겠는가.

이 시간을 잘 활용해서 죽고 살기로 포교를 해라. 이 세상이 얼마나 호호탕탕한가. 이 천지를 나가서 봐라. 얼마나 높고 먼가.

내가 어려서 네 살인가 다섯 살인가 먹어서 나 사는 집 마당에서 보면, 그 뒷산이 보인다. 그 뒷산 이름이 임금 왕(王) 자 왕산(王山)인데, 왕산을 이렇게 쳐다보면 왕산 봉우리에 하늘이 붙어 있다. 산이 가서 하늘하고 산봉우리하고 맞닿아 붙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린 소견에 ‘야, 저 하늘 좀 한번 가서 만져보고 와야겠다.’ 늘 그런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어른들은 내가 하려고 하는 걸 자꾸 말린다. 나는 어려서도 하는 행동이 달랐다. 하루는 가만히 보니까 어른들이 없다. 그래서 그 틈을 타서 몰래 잽싸게 집 빠져 나와 하늘을 만지러 산을 기어 올라갔다. 그 산이 아마 한 백 고지쯤 되는가 보다. 거기를 올라갔다.

아니 올라가면서 보면 하늘이 자꾸 멀어진다. 밑에서 볼 때는 산봉우리하고 하늘이 이렇게 맞닿았는데, 한 70% 올라가고 나면 그 다음 봉은 뵈지도 않는데 하늘이 그 봉우리 뒤로 가 있다. 한 80%쯤 올라가면 또 하늘이 더 뒤에 가 있다.

마지막으로 그 봉우리 100%를 올라가서 보니까 세상이 얼마나 넓은가. 그 밖에 산봉우리들이 잔뜩 있고, 그러고서는 하늘이 저 끝에 어디 가서 붙었다. ‘야, 내가 이거 하늘한테 속았구나.’

그 봉우리 꼭대기에 서서 동쪽도 쳐다보고, 서쪽도 쳐다보고, 남쪽도 쳐다보고, 북쪽도 쳐다본다. 참 지금 생각하면 무제무애(無際無碍)다. 갓도 없고 끝도 없고 참 호호탕탕하다. 저 북쪽은 인천 그쪽이다. 그러니 오죽이나 탕탕한가. 그렇게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보다가 허탕을 치고 말았다. “아이구 참 하늘도 이렇게 넓구나. 내가 속았다.” 그러고서 산에서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가장 비전 많은 상제님 성업


천지에서 농사지은 것을, 이번에 사람 씨알을 추리고 새 세상을 건설한다. 우리 일은 그런 좋은 일이다. 포교를 하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도 그 얼마나 환영할 일인가. 나라에서 장려금을 못 줄 뿐이지 전 국민이 장려하는 게다. 국가에서 백성들 먹여 살리고 나라 살림하는데 아무리 돈이 많이 필요해도, 문화 사업하는 사람한테는 세금도 안 거둬 가지 않는가.

증산도는 문화사업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전 인류를 위해서 하는 문화 사업이다. 문화 사업 중에서도 사람이 죽고 사는 생사양로를 결정하는 것 이상 막중한 사업이 어디 있겠는가.

누가 포교를 하지 말라는 사람도 없다. 지금 이 세상은 혼돈 속에서 겉돌고 있잖은가. 스스로 우러나서 신바람이 나서 포교하게 하느라고 오늘 이 시간도 내가 내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높다. 이런 절대자, 10무극 옥황상제, 백보좌 하나님, 미륵부처님. 유불선에서 다 한 얘기 아닌가. 바로 그분이 우리 증산 상제님이다. 진리로써 신미(辛未), 무극상제님이다. 그분이 인간 세상에 오셔서 열매기 진리, 새 세상 무극대운을 열어 놓으셨다. 전 인류를 대표해서 나가서 죽는 세상에 사람을 건지라는 것이다. 꼭 손주 죽은 할아배 모양 눈만 멀뚱멀뚱 뜨고 앉아 있으면 되겠는가.

증산도에서는, 박사가 백 개라도 와서 배워야 된다. 한의사도 배워야 되고, 양의사도 배워야 되고, 법조인도 와서 배워야 되고, 박사들도 와서 배워야 된다. 나는 지식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천리를 통하고 지리를 통하고 인사를 통한 사람이다.

나는 백년을 얘기해도, 10년을 얘기해도 0.1프로도 하자가 전혀 없는 얘기를 한다. 그런 참교육을 받아가지고 소불동념(少不動念),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참 신앙을 해라.

복을 받을 수 있는 역량이 갖춰져야 복도 받을 것 아닌가. 큰 복을 주면 어떻게 받는가. 간장종지만한 그릇에는 주먹만한 것도 못 받잖는가. 간장종지에는 요런 주먹도 들어가지 않는다. 내 앞에서 판 국(局) 자, 국도 좀 키우고 사람스러워져서 영웅도 되고 호걸도 좀 되고 그릇도 좀 큰 사람이 되라.

또 사람은 덕도 쌓아야 될 것 아닌가. 그렇게 해서 나도 잘살고, 세상 사람도 좀 살려주면 그 여러 가지 얼마나 좋은가?

상제님 진리를 전해주는 길잡이가 되라


때는 사정없이 자꾸 흘러간다. 이 아까운 시기를 놓치지 마라.

나하고 같이 더불어 하면 된다. 나는 신도들을 초개시하고 권위를 가지고 신도들을 함부로 대하는 지도자가 아니다. 나는 우리 신도들을 내 살덩이보다 더 아끼고 내 생명체하고 똑같이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참 신도들을 사랑스러운 아버지, 사랑스러운 형제, 자매처럼 대한다.

내가 참 다정다감하고 애정스러운 지도자다. 내가 교주라고 해서 절대 우리 신도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우리 신도들이, 재산이 생명이라고 하는 이 자본주의 세상에, 생명보다 소중한 그 빨간 정성으로 단체를 유지하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참으로 고마웁게 생각한다.

내가 상제님 진리에 1프로라도, 점 하나라도 덧붙여 만들어서 얘기하는 게 없다. 나는 진리의 사도로서 진리를 대변하는 것뿐이다.

증산도는 개벽할 때 사람을 살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가정의 안녕질서만 생각하면 이걸 못 끌고 나간다. 나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생일 때 밥 한 그릇을 내 손으로 해드려 본 사실도 없다. 내가 어머니 아버지 생신에 밥 한 그릇도 못 해드린 주제에 자식들 생일상을 차린다는 것은 감불생심(敢不生心)이다. 양심상 좋은 반찬 갖춰서 생일잔치를 해줄 수도 없었고, 또 한참 어려울 때는 그런 능력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는 굶어죽지 않은 게 참 다행이다. 그 좋은 진리를 내가 다 바쳐서, 내 가정까지 희생해 가면서 전해주는 것이다. 여기는 억만 분지 1프로도 거짓이 없는 데다.

내가 하늘땅 생긴 이후로 지식이 최고 많은 사람이다. 내가 이런 말은 참 안 할 소리다마는, 내가 아는 척을 않는다.

너희들은 좋은 사부(師父)를 만나서 그 좋은 개벽 진리를 전해 받았다. 그래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전 인류를 위해서 같이 봉사 좀 하자는 것이다.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냉혈동물이 아닌 온혈동물, 사람이 아닌가.

사람이라고 할 것 같으면 인정도 있고 도의도 있는 게다. 죽는 세상 사람을 살리기 위해 그저 좋게 상제님 진리를 전해주는 길잡이가 되자는 것이다.

이 세상이 하도 더러운 세상이 돼서 나는 신도들 공금 가지고 쌀 팔아먹고 싶들 않다. 내가 그렇게 해가면서 이 단체를 묶고 내가 교육을 시킨다. 사람이라면, 만일 신도라면, 상제님을 신앙하고 진리를 애호하고 조상을 생각하고 후손도 생각하고 인류애를 생각한다면, 그 여러 가지 측면에서 죽는 세상에 사람을 살려야 한다.

일을 안하면 조상도 통곡한다


지금은 천지에서 폐장(閉藏)을 시켜버리는 때다. “천지의 대덕으로도 춘생추살, 봄에는 물건 내고 가을철에는 죽여 버리는 이런 은위로써 이루어진다.” 이게 상제님 말씀이다. 천지의 명령, 춘생추살(春生秋殺)!

그런 때에 인존 시대에 상제님께서 상생의 문화를 들고 나오셨다. 그게 천지에서 농사지은 것을 추수하는 방법이다. 내가 시간이 없어서 자세한 교육은 아직 못 시켰지만, 인존 얘기를 이 시간에 내가 처음 하는 것이다. 그 인존이 오셔서 인존의 상생의 문화로써 천지에서 농사지은 것을 거둬들이는 약속을 하셨다.

“서자(誓者)는 원천지지약(元天地之約)이니 유기서(有其誓)하고 배천지지약(背天地之約) 즉수원물(則雖元物)이나 기물(其物)이 난성(難成)이라.”

근래에도 테레사 수녀를 보아라. 그 테레사 수녀는 행려병자들 똥 닦아줬다. 그걸 그렇게 정성껏 해서, 그걸 흉내 낸 단체도 4천여 개가 새끼를 쳤다. 그가 죽어서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장, 국제장을 치러줬다.

부처를 믿는 사람들까지 다 테레사 수녀 죽은 데 가서 나무아미타불도 외워줬다. 그런데 증산도 상생문화를 전한다고 해서 누가 무슨 소리를 하겠는가. 겁내지 말고 나가서 힘껏 포교해라.

일을 안 하면 조상도 통곡을 한다. 상생의 문화 속에 수용만 당하면 뭐하는가. 상생의 문화를 실천역행을 해야 될 것 아닌가.

말로만 신앙인인 양 하지 말고 언행이 일치돼야 할 것 아닌가. 입으로만 신앙하지 말고 나가서 행동화해서 진리를 집행하라는 말이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다 상제님 진리를 원하고 바라고 동경을 하고 있다. 부처를 믿는 사람들도 ‘미륵’을 찾는다. 그걸 아직 몰라서 거기 엎드려 있을 뿐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주님’을 찾는데, 그분이 바로 상제님 아닌가.

어떤 사람이 15년 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목사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어야 아무것도 남는 게 없더란다. 머릿속에 만날 이 의문 부호가 남더라는 것이다. 그럴까? 사실일까? 과연 백보좌 하나님이 오실까. 헌데 어떤 기회에 도전(道典)을 보니 “내가 석가와 예수를 내가 쓰기 위해서 내보냈다.” 하는 문구를 보고 나서 활짝 깨달았다고 한다. “옳거니! 그러면 그렇지! 야, 내가 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그러고서 우리 증산도에 들어 왔다.

증산도는 선천 성자들이 그렇게 애타게 전한 진리의 결과다. 천지에서 농사지은 천지의 열매, 우주의 결실이다. 증산도는 천지를 담는 그릇이다. 천지의 결실, 우주의 알캥이, 천지의 열매를 담는 그릇이 바로 증산도다.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높다. 천지가 선천 오만년 동안 농사지어 결실한 그 열매를 담는 그릇이 바로 증산도다. 거짓이 없잖은가. 맞지? (예) 그 열매를 따라는 것이다. 그 열매기를 따러 여기 들어왔는데 가만히 있으면 되겠는가. 세상천지, 암만 좋은 고량진미를 준다 하더라도, 입에 넣고 ‘냠냠’하고 먹어봐야 산함신감고(酸鹹辛甘苦), 새콤하고 짜고 맵고 달고 쓴 것을 알 것 아닌가.

수무족도(手舞足蹈)해서, 손짓도 하고 발짓도 하고 행동화 하라는 말이다. 내가 오죽하면 포교 행각이라고 말을 하겠는가. 발 걸을 행(行) 자, 다리 각(脚) 자, 포교를 하기 위해서는 걸어 다니면서 쫓아다녀야 된다. 세상 사람하고 친해야 사회생활도 할 것 아닌가. 사회 속에서 사람을 사귈 줄 모르면 천치바보 아닌가. 그런 사람은 제 가정도 못 이끈다.

지금은 호주제도 폐지하자고 하는 그런 묘한 세상이다. 일인일적(一人一籍), 한 사람이 호적 하나씩 갖자고 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아니 개도 혈통이 있는데 어떻게 사람이 혈통이 없냐?’고도 한다. 사람이 어떻게 적(籍)이 없냐는 것이다. 그 사람도 옳고, 일인일적이라는 사람 말도 옳다. 허나 진리는 따로 있다. 다음 세상일은 여기 앉은 사람보고 물어봐야 안다. 세상은 제멋대로~ 인간은 자유! 말 다 했잖은가.

내가 번번이 다짐을 받거니와 나서서 일할 텐가? (예) 손 들어 보아라. 알았다.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이 좋은 진리를 가지고 나가서 활동을 해라. 상제님 진리는 사람은 물론이요 신명에게도 다 해당되는 진리다. 미물곤충도 상제님 얘기를 하면 좋아한다. 이 좋은 진리, 저 호숫가에 가서 태을주를 읽어도 신명이 춤을 추고, 저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태을주를 읽어도 미물곤충들도 다 좋아한다. 꼭 포교를 해라. 알았지? (예)

이상!